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4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49화(149/505)
149화 좀 낫지? [2]
그 모든 장면을 원장님은 어쩐지 좀 불안하다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리스턴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덕분에 뭔 생각을 하고 있을지 뻔히 파악할 수 있었다.
‘절단술이 사라지면…… 병원 수입이 줄까 봐 걱정하고 있구나.’
뭐…….
신의료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일각에서는 우려가 나오긴 하지 않았나.
하지만…….
모르긴 해도 21세기의 의료 비용과 19세기의 의료 비용을 비교해 보면 전자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겠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의료 기술은 진보에 진보를 거듭할수록 필요로 하는 환자들이 많아지니까.
이전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포기했던 것이 치료가 가능하게 된다면,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어?
“좋아.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겠군그래.”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리스턴은 껄껄 웃고 있었다.
방금 몇몇 환자들에게 절단이라는, 선고에 가까운 말을 해 놓고 저렇게 밝게 웃어도 되는 건가 싶기는 한데…….
뭐 인권이 없는 시대이긴 하지 않나.
모두가 밝은 미래를 믿어 의심치 않지만, 너무 그러다 보니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어둠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 그래도…… 이 전통적인…….”
“세월이 증명하는 치료법인데…….”
“이 산화구리를 보십쇼. 이 영롱한 녹빛을.”
게다가 이런 개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놈들이 너무 많지 않나?
이럴 때 강하게 휘어잡지 않으면, 내 생각은 다르다면서 개소리가 아니라 숫제 개짓거리를 멈추지 않을 놈들이 하나 가득이었다.
“전통이고 나발이고 간에 절단술이 필요할 정도로 나빠진 환자가 훨씬 많지 않나. 게다가 처음에 보고했던 환자 수와 지금 여기 있는 환자 수가 다른데…… 죽은 거지?”
“모르죠, 저희는.”
“다 나아서 병원에 오지 않은 거 아닐까요? 그렇게 따지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건 자네가 더 잘 알겠지. 나아? 여기까지 올 정도로 다친 환자가 그냥 낫는다고?”
“으음.”
“으으음.”
그런 면에서 볼 때 리스턴은 그야말로 개혁의 화신이었다.
이 인간만 설득하면 다른 놈들은 설득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힘과 논리 그리고 명성까지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으니까.
“이제부터 적어도 우리 병원은 상처 치료할 때 평이의 가이드라인을 따른다. 불만 있는 놈, 있어?”
“그…….”
“뭐.”
“아니, 아닙니다.”
의사 1이 침몰했다.
“넌?”
“저, 저야 뭐…….”
의사 2도 침몰했다.
당연했다.
얘는 아예 리스턴 박사한테 한 대 쥐여 터진 적이 있다고 들었거든.
잘 보면 코가 삐뚤어졌는데 맞기 전에는 안 그랬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였다.
“넌?”
“저…… 저는.”
“불만 있으면 나가든가.”
“아니, 그건 아닙니다.”
“그럼 시키는 대로 해.”
“네, 네.”
3도 뭐 말할 것도 없이 우리의 뜻에 동의했다.
속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는 그렇게 되었다, 이 말이었다.
이참에 아예 이 더러운 치료실 전체를 뒤엎어 버려야겠다.
사람 써서 청소도 하고…….
제발 저 고쟁이 같은 것들 다 버리고.
아니, 불태워 버려야 해.
모르긴 해도 저 천 무더기에 온갖 잡균들이 죄 섞여 있을걸.
“흠흠.”
그렇게 대강 교통정리가 끝나 갈 무렵, 흠흠 거리면서 원장님이 다가왔다.
어째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하긴 그럴 터였다.
뭔가 개선이 필요할 거 같아서 내게 의뢰를 한 것일 텐데, 지금 돌아가는 꼴을 보면 개선이 돼도 너무 된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드는 거 같았다.
절단술이 여전히 병원 수입 중 꽤 커다란 포지션을 차지한다고 들었거든.
“닥터 리스턴, 닥터 피영. 나 좀 보지.”
“아, 네.”
“네, 원장님.”
그래서 그럴까.
우리 둘만 따로 불렀다.
원장과 독대까지는 아니더라도…….
셋이서 보는 자리라니.
전생에서도 몇 번 갖지 못했던 영광이었다.
‘확실히 내 지식은 완전 사기구나. 적어도 이 시기는…… 완전히 씹어 먹을 수 있지.’
다른 놈들이라면 좀 걱정하면서 벌벌 떨 수도 있을 거 같았다.
하지만 난 원래도 그랬지만, 19세기 와서 버티느라 더더욱 긍정 회로 돌리는 데 익숙해진 참이다 보니 이따위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실제로 돈 걱정은 안 해도 좋게 만들 수 있었다.
왜?
여기서 치료받으면 절단 안 해도 된다는 소문만 나 봐라, 응?
대박이지.
물론 리스턴 박사님이 잠시 일거리가 떨어질 수는 있겠지만…….
다른 병원에서 계속 삽질을 이어 나가는 이상 런던의 절단술이 아예 사라지는 일 따위는 없을 게 분명했다.
“앉지.”
원장실은 층고가 진짜 높았다.
그런 것에 비하면 딱히 안이 화려하거나 하진 않았다.
사실 병원에서 큰돈을 벌기가 쉬울 리가 없는 시대이긴 했다.
운이 좋아야 살고 아니면 죽는데 뭔 돈을 벌겠어.
그저 어떻게든 오래 살고 싶은 귀족들의 후원과 여기 말고는 당장 갈 곳이 없는 하층민들로 인해 돌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네.”
“네.”
하여간 나는 원장 반대편에 앉았다.
애써 표정 관리를 하고 있던 참이었는지, 지금은 그저 우울한 얼굴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일단 아주 잘했네. 잘했어. 헌데…….”
“네.”
“이거 절단술이 아예 끊기면, 리스턴은 어쩌지? 사실 병원 입장에서는 말이야, 절단술이 좀 있기는 해야 하는데…… 이렇게 치료하면 절단술이 아예 사라지는 건 아닌가?”
원장이 되어 가지고 사람 팔다리 덜 자르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나 하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기는 한지 재빨리 단서를 붙였다.
“잘된 일인 건 나도 아네. 하지만 병원을 운영해야 하니…….”
“아예 없어지진 않을 겁니다.”
뭐, 질질 끌어서 뭐 하나.
나는 바로 그의 불안을 줄여 주었다.
“응? 그런가?”
“네.”
거짓부렁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소독약도 없고, 항생제도 없는데 어떻게 모든 환자를 치료하겠어.
절단술이 필요한 환자가 10% 이내로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완전히 없애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도 줄긴 하겠지?”
“네, 줄긴 할 겁니다.”
“리스턴 박사가 우리 병원의 기둥인데 말이지.”
“그건.”
원장의 넋두리에 이번에는 리스턴이 나섰다.
뭔가…….
분연한 기세가 느껴졌다.
사실 리스턴이 얼굴 때문에 뭘 해도 그렇게 느껴지는 사람이긴 한데, 오늘은 뭔가 달랐다.
“이건 평에게도 말을 안 했던 것인데…….”
“뭔가. 설마.”
떠나나?
안 되는데.
그럼 안 된다.
리스턴 없는 나는 그냥 시끄러운 광대란 말이야.
리스턴 칼이라도 있어야 위엄이 서지.
“배를 수술해 볼 생각입니다.”
“배를……?”
내 걱정과는 달리, 리스턴이 꺼낸 말은 전혀 예상 밖의 단어를 품고 있었다.
배.
달리 말하면 복부.
21세기 아니, 20세기에도 외과 하면 복부 수술이 메인이었다.
분과 나눌 때 배 안의 장기를 가지고 나눌 정도지 않나.
대장항문, 간담췌, 위 등등.
허나 지금 이 시절에는…….
“그건 쉽지 않은데.”
원장의 얼굴이 아까와는 다른 이유로 어두워졌다.
배를 건드린다는 건 금기였기에 그랬다.
배가 아파서 종래에는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와도 그랬다.
물론 요로결석과 같은 질환에서는 종종 배를 열기도 하긴 했는데, 그건 방광 정도만 여는 것인 데다가 애초에 ‘아파 죽을 거 같으니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이판사판이다’ 느낌으로 여는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배를 연다는 건, 적어도 이 시기에는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환자들이 죽을 거야.”
“환자들은 지금도 많이 죽습니다.”
“그거야…….”
리스턴의 말에 원장님이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생각해 보니까 지금도 많이 죽긴 해서 그랬다.
날마다 송장 치우는 게 일이잖아.
그거야 21세기 병원에서도 마찬가지긴 한데…….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면 진짜 너무 억울했다.
죽을 거 같은 사람이 죽는 것과 절대 죽어서는 안 될 사람이 죽어 나가는 건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으니까.
“하지만 배를 열고 죽으면 자네를 탓할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란 말이지.”
“안 열어도 죽을 거 같은 환자들부터 열지요.”
“으음…….”
“어차피 절단술은…… 딱히 평이가 아니더라도 줄어들 겁니다. 제가 고안한 수술법 모두 마취가 없어서 만든 수술법이지 않습니까?”
“그랬나? 나는 그게 자네가 편해서 그렇게 하는 줄 알았네.”
“말이 됩니까? 나도 의산데. 당연히 환자를 위해서 만든 거죠.”
“그, 그렇군.”
원장은 고개는 끄덕거리면서도 여전히 그런가? 하는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사실 리스턴의 수술법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의사라기보다는 인간 백정이라는 생각이 날 수밖에 없거든.
하지만 이것도 꽤 억울할 만한 일이었다.
리스턴이 단순히 나랑 친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마취가 없을 땐 진짜 그게 최선이거든.
생각해 봐.
30초만 아파야지 30분씩 아프면 살겠어?
“아무튼, 마취가 되기 시작할 때부터 고민했고…… 또 연습도 많이 했습니다.”
“연습을 했나? 누굴 대상으로?”
“아니, 당연히 시신으로 했죠. 내가 미친놈입니까?”
“아아, 그렇군. 그래.”
원장은 이번에도 미심쩍어하는 얼굴이었다.
사실 이번에는 나도 좀 미심쩍긴 했다.
아무리 봐도…….
우리 리스턴 박사님은 의사라기보다는 뒷골목 갱단 두목 같아서.
“아무튼, 평이가 도와준다면 간단한 수술들은 가능할 겁니다. 해부를 더 하면서…… 느낀 건데, 의심 가는 질환군이 하나 있어요.”
그는 그 두목 같은 얼굴로 말을 잇고 있었다.
이건 나도 정말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해부로 질환군을 의심한다?
‘뭐…… 한때 그런 식으로 의학이 발전했던 적이 있지.’
아니, 한때라고 매도할 일도 아니었다.
여전히 해부는 필요한 학문이었으니.
몇몇 질환은 부검으로만 확진이 가능하기도 하고.
“이걸 보세요.”
“고추인가?”
“아니…… 배 안을 수술할 거라는데 뭔 고추입니까?”
“이거 이렇게…… 아, 이거 충수돌기? 그건가?”
“그렇습니다. 아니, 나를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미안하네. 주먹 쥐지 말게. 무서워.”
“안 때립니다!”
“그래, 그래.”
리스턴을 놀릴 수 있는 유일한 인간이 원장이라더니 과연 소문대로였다.
와 어떻게 주먹 쥔 리스턴 앞에서도 저렇게 깐죽거릴 수 있지?
잠시 궁금해졌는데, 내 하잘것없는 궁금증은 금세 스러져 버렸다.
리스턴이 자신이 왜 박사고 왜 명의인지 증명을 해내기 시작해서 그랬다.
“아무튼, 배 아파 죽은 사람들을 해부하다 보니 여기가 이상하게 띵띵 부어 있더라고요.”
“부어? 여기가? 근데 다 붓지 않나?”
“아니, 여기만 유독 부었다니까.”
“그래, 일단 그렇다 치고 넘어가.”
“하.”
“주먹 풀고.”
리스턴은 하늘을 잠시 바라보고는 말을 이었다.
둘 사이에 어떤 사연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방금은 경찰서장이라고 해도 한 대 맞았을 거 같았거든.
아무튼, 나는 감복했다.
리스턴에게.
혼자 이 정도 발견을 해내다니.
그야말로 대단하지 않나.
“다 그런 건 아니고, 부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니까 배 아파 죽을 거 같은 사람들이 있을 때 일단 배를 열어서 여기가 띵띵 부었는지 확인을 하고 잘라 보는 거죠.”
“안 부었으면.”
“할 수 없지.”
“아.”
마지막 ‘아.’는 나다.
이번에도 감복했다.
너무 19세기 의사스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