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50)
검은 머리 영국 의사-150화(150/505)
150화 배 [1]
치질 수술도 하긴 해야 하는데…….
일단 뒤로 미뤘다.
그래, 나도 안다.
치질, 그거 진짜 아프지…….
고통스럽고…….
하지만.
“그래, 뭐…… 없으면 할 수 없지. 근데 그거 확실한 건가?”
“확실합니다. 제가 제멜한테 받은 시신만 거의 스무 구가 넘어요.”
“많이도 죽어 나가는구만.”
“배 아프다고 하면 아무것도 못 하지 않습니까?”
“뭘 아무것도 못 하나. 피도 빼고, 수은도 주고…… 그거 아나? 어떤 병원은 냅다 모르핀도 준다네.”
“그래서 죽잖아요?”
“그야…… 뭐, 사는 사람도 있긴 한데…….”
“많이 아파하는 사람은 대부분 죽습니다.”
“어, 그건 그렇지. 거의 죽지.”
자, 이 대화를 봐라.
아직 모르겠다고?
그럼 더 들어 보자.
“그래, 그럼 뭐…… 흠. 배 열어 보지. 그래서 있으면 떼고 아니면 말고……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까?”
“그렇죠.”
“그럼 환자 선정을 잘해야겠는데.”
난 이 대목에서 그래도 원장은 원장이구나 싶었더랬다.
환자 선정, 이게 다른 말로 하면 적응증을 아주 잘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지 않나.
그래, 그래야지.
“문제 안 생길 환자들로 말이야.”
하지만 그 바로 다음 대목에서 원장은 실로 악당 같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미쳤나 싶어서 돌아보니, 리스턴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래야죠. 아직은 확실한 게 아니니까?”
“경험이 쌓이면 일반 환자들한테도 슬슬 해 보지. 근데 난 아무래도 찜찜하네. 배라니.”
“마취도 나왔겠다 천천히 할 수 있다니까요? 뭐, 더 연습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알았어, 허가하지. 대신에 문제 안 생길 환자…… 그래. 내가 지정해 주는 환자들만 일단은 건드리게. 뭐…… 어차피 다른 병원에서도 골칫거리가 되는 환자들은 많으니까 말이지.”
“네네.”
이렇게만 보면 의사가 아니라 무슨 악당들이 모의하는 것처럼 보였다.
말이 되나 싶을 수도 있을 텐데…….
이게 19세기 런던의 현실이었다.
이 세상에는 정말로, 죽어도 별문제가 안 생길 사람들이 있었다.
사실 급속한 발전으로 인해 비대해져만 가는 런던에서, 또 앞으로의 발전만 꿈꾸는 이곳에서 사람다운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마는…….
‘병원의 골칫거리라…….’
거리의 부랑자들치고 건강한 사람은 없다고 보면 되었다.
그 사람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일하다가 다치면 고쳐 주는 게 아니라 버리는 회사들이 문제였다.
그렇게 거리로 한순간에 내몰린 이들은 바닥없이 쭉 미끄러졌다.
이런저런 병원을 전전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또는 시신 납품업자한테 걸려서 시신이 되거나 하여간, 죽었다.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막 죽을 수는 없지.’
이럴 때, 나는 내가 여전히 21세기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천부인권이라는, 우리는 당연히 여기던 사상이 이곳엔 아직 존재하지 않거든.
아니, 자연권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기는 하는데 거기서 말하는 인간이 좀 급이 있어.
그 급에 속하지 않는 인간은 아예 인간으로도 보질 않는다니까?
“응?”
하여간, 나는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선, 분명 누구 죽이러 가는 게 뻔한 리스턴을 붙잡았다.
“왜 그러나?”
“아까 배 말입니다.”
“뭐…… 평 자네도 이건 안 되네 어쩌네 고리타분한 소리를 할 작정인가? 그렇다면 일 없네. 의학은…… 자네는 오히려 잘 모르는 듯한데, 마취가 나오고 나서 확실히 진일보할 수 있네. 어쩌면 대부분의 병을 저 돌팔이 내과 놈들이 아니라 우리 외과 의사들이 수술로 치료하게 될 수도 있어.”
으읏…….
지금은 또 빛 모드의 리스턴인가.
야만인 아니면 빛 둘 중 하나만 하면 안 되냐?
왜 이렇게 헷갈리게…….
‘아니, 아니지.’
분명 리스턴의 말은 나 같은 외과 의사의 마음에는 쏙 드는 말이었다.
하지만 말만 옳으면 뭐 하나.
저 말이 옳았다는 걸 입증하는 데까지 정말이지…….
‘시신으로 탑을 쌓게 될걸…….’
아, 배를 열 때는 소독이라는 걸 해야 되는구나.
당장 이 간단한 깨달음이라도 얻게 되려면…….
대체 얼마나 오래 걸릴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까닭 모를 죽음을 맞이하게 될까.
그래 봐야 이놈들은 미아즈마니 뭐니 하면서 속 터지는 소리나 할 텐데.
“아니, 저도 배를 열어야 한다는 건 동의합니다.”
“오, 그런가? 하긴 나는 자네는 그럴 줄 알고 있었네.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도 더 진취적인 사람 아닌가! 자, 그럼 같이 여세. 우리 아우가 같이한다고 하면 나야 좋지.”
“그런데 좀 더…… 신중히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중히?”
뭐부터 가르쳐야 할까.
이게 진짜 어려운 일이었다.
왜냐면 정작 아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다 안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을 가르친다는 게 쉬울 리가 없잖아?
다행인 것은 이미 내가 이러한 일에 있어 꽤나 경험이 쌓였단 점이었다.
이제 와 어지간한 시련은 내게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지.
“네. 아까도 말씀하셨잖아요? 어떤 환자는 충수돌기란 게 띵띵 부어 있는데…… 안 그런 사람도 있다고.”
“그게 의문이지. 그래서 한번 갈라 보려고.”
당신은 궁금하면 보통 사람 배를 열고 봅니까?
라는 질문을 간신히 참았다.
보통은 그렇다는 말이 나올까 봐서였다.
그렇게 나오면 나도 딱히 할 말이 없잖아…….
“아니, 그걸 미리 조금이라도 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무슨 수로?”
“증상이나…… 뭐 이런 걸로?”
“다 배가 아프다고 했네. 차이가 없어. 내가 그런 것도 확인 안 했을까 봐. 하하.”
하하.
웃어?
배 아프다는 걸 그냥 배가 아프다는 것으로 퉁 치고 넘어가는 놈들이 어디 있…… 여기 있지.
후후.
그래.
정말이지 앞이 깜깜한 시대다.
생각해 보면 맹장염이라는 건, 그러니까 충수돌기염이라는 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질환인데 치료해야 할 놈들이 이따위 인식을 갖고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러시안룰렛이지 않나?
“배의 어디가 아프고 어디가 아프기 시작하고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하? 제멜의 말처럼? 그 돌팔이 놈이 윗배가 아프면 구토도 할 가능성이 높으니 미리 구토를 하게 하거나 하던데…… 그 말을 믿나? 난 잘 모르겠네.”
아.
그런 짓도 하고 있습니까…….
윗배가 아플 때 구토를 할 수 있다는 건, 그 부위에 위가 있으니 추론이 가능한 내용이긴 한데…….
그렇다고 미리 구토를 하게 한다는 건 또 어떤 새끼 입에서 나온 신박한 아이디어인지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는 여기 와서 또 하나 크게 늘어난 재주 즉 구라를 신명 나게 치기 시작했다.
“구토를 하게 한다는 건 모르겠지만…… 확실히 윗배가 아프면 구토를 할 가능성이 올라가긴 하지 않겠습니까?”
“어째서?”
“윗배에 뭐가 있습니까?”
“윗배가 있지.”
나는 잠시 구라 치는 것도 다 관두고 그냥 때릴까 싶었다.
아니, 그냥 죽어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만약 죽을 때마다 200년씩 전으로 가는 것이라면…….
차라리 좀 더 옛날이 나을 거 같기도 했거든.
“아니, 그 안에요.”
“안에? 아…… 안에. 해부를 하다 보면…… 아, 그래. 위가 있지. 그래. 음 위가 아프다? 호오.”
하지만 그러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지 않은가.
애초에 내가 여기에 왜 다시 태어나 살아가게 되었는지도 알 수가 없는데 그런 보장이 어딨겠어.
나 나름대로는 아무래도 의학이 발전하는 동안 너무 많이, 또 쓸데없이 죽어 나갔으니 그걸 어떻게든 수정하라는 거 아닐까 싶기도 했고.
해서 나는 다시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도 리스턴은 일단 천재였다.
“네네. 그럼 그 충수돌기가 원래 있는 부위 주변이 아플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음. 확실히. 자네 말에 일리가 있네. 그럼 가지.”
“어딜요?”
“내과 병동으로. 배 아픈 사람들은 다 거기 있지 않나. 가서 거기 아프다는 사람이 있으면 배를 열어 봐야지.”
“그…….”
이렇게 바로 연다고?
아니, 물론…….
내가 옆에 있으니까 크게 사고 칠 일은 없긴 할 터였다.
적어도 술기 면에서는 내가 어지간하면 다 카바 쳐 줄 수 있었다.
이래 봬도 내가 교수였잖아?
지금도 교수긴 한데.
21세기에서는 이렇게 후루꾸로 딸 수 없다.
진짜 개빡세…….
“지금요?”
“제멜 그 돌팔이가 또 얼마나 죽일지 모르진 않나. 알지? 거기서 사실상 시신 제일 많이 나오는 거?”
“그건 그렇죠.”
시신 납품업자, 납품업자 하는데…….
제일 많이 죽이는 건 제멜 아니면 블런델이다.
하…….
그거 생각하면 진짜 가슴이 답답해지는데…….
그래, 결심했다.
이건 어떻게든 해야 할 일이야.
“그럼 가죠.”
“역시 자네는 시원시원하구만!”
“네네.”
“과연 내 아우야! 하하하!”
나는 그렇게 껄껄 웃는 리스턴과 함께 내과 진료실로 향했다.
외과 병동도 그렇지만 내과 진료실과 병동도 지옥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으어어…….”
“살려 줘…….”
“흐아…….”
방금 병실 문틈을 통해서 봤는데, 와…….
피를 진짜 엄청 빼.
저렇게 빼도 살 수 있다니.
어쩌면 헌혈도 400mL가 아니라 1리터씩 할 수 있는 거 아닐까?
21세기는 모르겠는데, 19세기 사람들은 될 거 같기도 해.
“여긴가.”
하여간, 나는 리스턴을 따라 배 아픈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여기도, 당연하겠지만, 지옥이었다.
와.
온갖 치료를 다 하고 있었다.
“음? 자네 여기 웬일인가?”
여러 의사들의 손을 통해 자행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제멜이었다.
그는 이 의사들의 우두머리 격이었기 때문에 제일 좋은 자리에 있었고, 그래서 우리의 접근도 제일 먼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먼저 알아차렸을 수도 있는데 그들은 리스턴이 무서워서라도 입도 벙끗 못 하고 있었다.
“어, 배 아픈 환자들 좀 보려고 하네.”
“배? 왜 이제라도 내과학을 좀 배워 보려고 하나? 잘 생각…….”
“아니, 배 수술을 하려고.”
“아니…… 뭔 소린가, 그게. 배를 열면 사람은 죽어.”
제멜은 굉장히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사람은 죽는다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직까지는…….
내가 없었으니까.
“배를 안 연다고 안 죽나. 자네가 다 치료했으면 나도 안 왔어.”
“열심히 일하는 사람 앞에서 시비인가? 어어, 환자들도 있는데 그런 말을.”
“자네가 봐도 죽을 거 같은 환자들 있지? 그중에 원장님에게 더 치료하지 말라고 들은 환자들도 있을 거야.”
“어…… 그럼 그게……?”
“어차피 돈도 못 내지 않나. 방법도 없고.”
“그건…… 그렇긴 하지.”
배금주의, 배금주의 하는데 이때가 진짜 배금주의 끝판왕이라고 보면 되었다.
돈 없고 가문 배경 후지면 그냥 같은 사람이 아니라니까?
제멜도 비슷한 생각이었기 때문에, 방금 전까지 사람 죽네 어쩌네 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얌전히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우리는 죽음이 드리운 사람들, 그러면서 동시에 치료도 없이 방치된 사람들 넷을 마주하게 되었다.
‘차라리 운이 좋았다고 해야 되나?’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돈이 없어서 사혈도 안 받았고, 약도 안 먹었다.
그냥 아픈 채로 있었다 이 말인데, 이 시대에는 이게 어쩌면 예후가 제일 좋을 수 있었다.
적어도 뻘짓은 안 했으니.
“자, 이제부터 확인하지.”
“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리스턴과 함께 환자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