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51)
검은 머리 영국 의사-151화(151/505)
151화 배 [2]
좀 낫다고 하긴 했지만, 그건 병원에 와서부터의 이야기였다.
돈이 없다 보니 병원에서 방치당한 것은 다행이었다.
이 시기 병원은 진짜…….
어?
의사가 아니라 백정들이 있거든?
놈들의 손을 타지 않은 것은 다행이다 못해 행운이었다.
‘문제는…… 이 사람들은 일상생활이 학대 그 자체였다는 점인가…….’
19세기 런던.
솔직히 말하면, 전생의 나는 영국에 대해 환상 같은 것을 품고 있었더랬다.
신사의 나라니 뭐니 하고 막 어? 대영제국이라고 하고…….
먼나라 이웃나라만 봐도 영국 되게 좋아 보이잖아.
20세기 영국 사람들이 조선에 와서 썼다는 글을 보면 막 엄청 미개하다는 식으로 쓴 글도 있다 보니, 와 영국은 그 시기에 이미 엄청 잘 살았나 보네 했다고.
‘이 새끼들이야말로 진짜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거 아닌가?’
똥 냄새가 난다고?
그럼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저 템스강에서부터 은은히 풍겨 오는 냄새는 다른 무언가의 냄새란 말인가?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저것도 저거 언제 한번 큰 사고가 나긴 할 게 분명했다.
내가 영국 역사를 잘 아는 게 아니다 보니 딱히 할 말이 없는데…….
저런 강물을 떠다 마시는 사람들이 멀쩡히 여름을 매년 보낼 수는 없단 말이지.
‘아. 아니지. 이럴 때가 아니야.’
잠시 딴생각을 하던 나는 애써 정신을 차렸다.
내 옆에 선 명의 리스턴 박사가 자꾸만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어 가며…….
손가락으로 환자 배에 십자가를 그리고 있어서 그랬다.
저게 성호를 긋는 것일까?
아니면 절개선을 미리 그어 보는 것일까.
상식적으로는 당연히 전자여야겠지만, 현실적으론 후자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저, 교수님?”
“응?”
“우리 일단 증상을 물어야죠.”
“아, 그렇지. 나도 모르게. 하하. 환자가 있으면 참기가 어렵단 말이지.”
“네, 뭐. 하하.”
그래…….
외과 의사가 달리 칼잡이겠냐.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 환자나 대고 칼질할 생각만 하는 건 좀 그렇잖아.
“환자분.”
“으음…….”
하여간, 나는 그렇게 십자가 모양의 절개선 긋는 야만적인 행위를 멈추고 환자에게 물었다.
환자가 입을 열자마자 이부터 눈에 들어왔다.
까맣고 누런 이.
그마저도 수가 많지도 못했다.
양치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건 템스강 때문일 가능성도 커 보였다.
‘아니, 아냐. 지금은 배다.’
하, 씨.
하도 문제가 많다 보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어.
하나부터 열까지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다 보니 자꾸 이렇게 되는데…….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손 치고 넘어가는 자세가 많이 필요했다.
하나하나 다 짚고 가기엔 시대가 너무 열악해.
“네, 환자분. 배가 아프시다고?”
“네, 근데…… 아무…… 아무것도. 제가…… 나중에 일을 해서라도.”
환자는 몇 살일까?
내가 장담컨대 보이는 것에서 한 스무 살은 빼야 할 터였다.
이가 빠져서도 그렇지만 너무 고생한 데다가 더해 영양도 부족하다 보니 노화가 심하게 진행되어 있었다.
21세기에서 노안이라고 하면 단순히 얼굴만 늙어 보이는 것을 뜻하겠지만 불행하게도 이곳에선 아니었다.
신체 나이 또한 노인에 준하여서 봐야 할 터였다.
자꾸 안 좋은 생각만 들어서 안됐지만, 할 수 없었다.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어…… 어어.”
“왜, 왜 그래요.”
“나, 나 가지고 실험하려고.”
환자는 아픈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환자들도 도망가려고 하기 시작했는데, 리스턴이 막았다.
“왜 이렇게 유난이야. 치료해 준다고!”
“이, 이 병원에 공짜…… 공짜가…… 어, 그러고 보니 당신!”
“리, 리스턴이다! 절단 마스터 리스턴이다!”
“배, 배 자르려고…….”
보통은 리스턴이 나서면 다 해결이 되던데, 오늘은 예외였다.
리스턴의 명성이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우리 병원의 악명 탓일 수도 있었다.
리스턴은 유난이라고 했지만 사실 유난은 아니긴 하거든…….
‘얼마 전인가? 우리 제멜이 또 한 건 했지?’
우리 병원엔 몇몇 마스터가 있었다.
절단 마스터 리스턴.
사혈 마스터 제멜.
수혈 마스터…… 블런델 등등.
그중 제일 사고를 많이 치는 놈이 있다면 제멜이었다.
‘사혈의 방식을 바꿔 본다고…….’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았다.
알아봐야 머리나 아프지, 뭐.
보통 그렇게 사람이 죽어 나가면 문제가 생겨야 정상인데,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니었다.
원장도 그랬지만, 진짜로 죽어도 별문제 안 생기는 사람들이 있다니까.
물론 딱 살인 사건이면 경찰이 나서기야 할 텐데 병원에서 죽어 나가면 그 누구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자자, 진정하시고! 우리는 실험 같은 거 안 합니다.”
“네, 네가 누군데!”
“아, 저는…….”
그 여파가 상당히 거세서 안심시키려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다행한 일이라면 말빨 좋은 조지프가 어느새 따라붙었단 점이었다.
“프로페서 평으로 말할 거 같으면 마취제의 발명가이자 고통 해방의 아버지입니다. 물약을 창시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왕립 극장에서 해부학 공연을 시연했을 정도로 해부학에 정통한 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공로로 최연소 의대 교수가 되기도 했습니다.”
살짝 약장수 같긴 한데…….
말 잘하는 사람한테 우리가 괜히 약장수라고 하겠나?
실제로 유구한 인류 역사 속에 그런 사람들이 약을 잘 팔았으니 그런 말이 자리하게 된 것일 터였다.
“어…….”
“대단한 사람이로구만…….”
“하긴 리스턴도…… 절단 마스터니, 마스터이긴 하지.”
“근데 왜 우리같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것들에게…….”
조지프에 의해 순식간에 소란했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리스턴은 그런 조지프를 보면서 엄지를 추켜세웠다.
기껏해야 협박밖에 못 하는 그이니, 이렇게 말로 진정시키는 것을 보면 놀랍긴 할 터였다.
아무튼, 기왕 잡은 분위기이니만큼 나는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자. 방금 들은 대로 비로소 마취가 가능해졌습니다.”
사실 70년 전부터 가능했을 텐데, 니들이 파티에만 써서 못 했던 거긴 한데…… 하여간.
“이것은 인류의 위대한 진보입니다. 하지만 모두 그렇게 생각만 했을 뿐, 실제로 진보를 이룬 사람은 없었죠. 그러나 여기 리스턴 박사님이 천재적인 발상을 떠올리셨습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리스턴은 야만인이다.
뛰어난 잠재력은 있지만, 야만인을 야만인이라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
하지만…….
내 든든한 뒷배이기도 하지 않나.
이렇게 돈 안 들이고 금칠할 수 있을 때면 놓치지 않고 금칠을 해 두는 것이 좋았다.
“하하, 과찬이네.”
저 봐.
좋아하잖아.
“마취가 가능하니 우리는 시간을 더 들여서 수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술에는 배도 들어갑니다.”
“으아.”
“역시 우릴……!”
“이 개새끼들.”
배 수술한다니까 왜 이렇게 좋아하냐들.
한 번만 더 좋아하면 칼로 찌르겠어.
편견이 이렇게 무섭다.
한 번만 깨지고 나면 배가 뭐야.
가슴도 열고 머리도 여는 시대가 열릴 텐데.
“우리가 뭐 무작정 열 생각을 하는 건 아닙니다. 증상을 보고, 열 거예요. 우리 리스턴 박사님이 여러 실험을 통해 발견한 것이 있어요. 그걸 확인할 참입니다.”
“거, 거부권은?”
“있죠. 근데 치료 안 받으면 사시겠습니까? 더 아프신 분들 있으실 텐데.”
“그건…… 그렇긴 하지…….”
“자자. 무작정 여는 것도 아니고, 제가 장담도 하겠습니다. 우리 둘이 런던 최고의 명의예요. 제일의 칼잡이라고. 우리한테 목숨 한번 맡겨 보십쇼.”
나는 조지프가 빙의라도 한 듯 필사적으로 혀를 놀렸다.
그래 봐야 태반은 시큰둥하긴 했다.
하지만 딱 봐도 열 때문에 오락가락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뭔가 좀 사기 치는 느낌이 들었지만 어쩌겠나.
저들을 대상으로라도 해야지.
‘어차피…… 충수돌기염이 있으면 열이 나지.’
나라고 해서 뭐 무작정 열고 싶겠나?
당장 열었는데 충수돌기가 아니라 암이나 기타 다른 질환이었다면 어쩔까.
아니, 수술이 가능한 질환이거나 혹은 필요한 질환이었으면 그나마 면피가 될 터였다.
어차피 사법 기관은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21세기형 내 양심은 날 괴롭힐 텐데, 이건 어차피 열었어야 했다는 핑계가 있잖아.
하지만 그마저도 결국엔 핑계만 남을 뿐, 웃음 가스라는 열악한 마취약과 우리 야만인 조수들과 함께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환자가 죽겠지.
‘위염이거나…… 췌장염 같은 거라면…….’
아무튼, 배가 아프다고 해서 무작정 다 여나?
내과적 질환도 많았다.
그거 괜히 열었다가 환자 죽으면…….
‘아후…….’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 가며 열 나는 환자들에게로 갔다.
리스턴은 아무래도 좀 불만이 있어 보였다.
“그냥 다 열면 되는데.”
타당한 불만은 아니었다.
미친놈이…….
뭘 다 열어?
게다가 지금 이놈은 십자가 형태로 열 생각이지 않나.
그런 주제에 저런 생각을 하다니.
훌륭한 살인자다.
“일단 증상을 보죠. 생각해 보세요. 띵띵 부었다면서요.”
“그랬지.”
“그럼 열도 나지 않을까요?”
“비약 아닌가? 붓는다고 열이나?”
“아.”
이것도 모르나.
하도 모르는 게 많으니까 뭘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망할.
나는 애써 이런 생각을 숨긴 채 말을 이었다.
“하여간, 강제로 보다가 사고 나는 것보다는…… 일단 이분들이라도 보죠.”
“그래, 그러지. 가만있자…… 그래, 여기지?”
“뭐가요?”
“으아아아악!”
리스턴은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다가 손가락을 세우더니 그대로 아까 고개 끄덕였던 환자 중 한 명의 우 하복부를 찔렀다.
저러다 뚫리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다.
“오. 아파하는데?”
‘그렇게 찌르면 나도 비명 지르겠다, 이 사람아…….’
나는 황당해서 리스턴을 바라보았으나, 리스턴은 뿌듯해하는 얼굴 그대로 환자의 배에 대고 손가락으로 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저렇게 두면 안 된다.
아니, 그 전에 저렇게 누르면 안 돼.
만약 충수돌기염이었다면 터졌다.
그게 가능한 건진 모르겠는데…….
저렇게 찌르면 터질 거 같아.
“그…… 너무 세지 않았나요?”
“그런가. 나름 살살 누른 건데.”
“그게요?”
“그럼. 내가 세게 찌르면 배에 구멍 난다네. 보겠나?”
“아, 아뇨.”
나는 일단 그를 진정시킨 후, 다른 환자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자세부터 잡았다.
“자, 환자분. 양쪽 무릎 굽혀 봐요.”
“왜…… 자르려고?”
“자르긴 다리를 왜 잘라요. 그래야 배에 힘이 빠지니까, 굽혀 봐요.”
“으응?”
생각해 보니까 아까 리스턴은 그냥 생짜로 찔렀다.
힘이 들어간 상태에서 찔렀다, 이 말인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제대로 된 진찰이 안 돼.
이것부터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에 리스턴 등을 불러다가 눌러 보게 했다.
옆에 있는 사람과 배의 긴장도를 비교하게 하면서였다.
“자, 봐 봐요. 부드러워졌죠?”
“오. 아까랑 느낌이 다르네. 이런 건 어디서 알았나?”
“엄마한테 배웠습니다.”
곤란한 질문이 나왔지만 리스턴이 절단 마스터라면 난 구라 마스터라 거짓말이 그냥 막 술술 나왔다.
“아.”
예나 지금이나 엄마 운운하는데 꼬치꼬치 캐묻는 놈은 없는 법이라 대강 넘어갈 수 있었다.
‘자, 이제 눌러 볼까.’
나는 그렇게 의문을 억누르고는, 환자의 배를 누를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