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53)
검은 머리 영국 의사-153화(153/505)
153화 배 [4]
“사람 배 열기 전에 그런 표정이라니.”
저도 모르게 미소가 새어 나왔나 보다.
저 흉악스러움의 대명사인 리스턴 박사님이 날 보면서 질색했다.
“살짝 소름 돋네…….”
“소심하다지 않았나…….”
“그냥 이런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으셨나.”
나머지 놈들, 그러니까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콜린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거참.
억울하다.
난 살인마가 아니라고.
“조지프, 여기 당기기나 해. 선배는 그거 들고 대기하시고.”
“어…… 알았어.”
“그래.”
“난 뭐 하면 되나?”
“교수님은 일단 보세요. 이상하다 싶으시면 제지하시고.”
“그래. 그러지.”
아무튼, 메스를 쥐었으면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집도는 해야 했다.
다른 거창한 이유를 대기보다 우리가 보유한 이 아산화질소, 즉 웃음 가스는 오래 쓰기 어려운 놈이지 않나.
일단 30분까지는 괜찮다고 보고 있긴 한데…….
이게 뭐 혈액검사로 뭘 본 것도 아니고, 영상 검사를 해서 머리 대미지가 있는지를 확인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경험적으로 내린 결론이다 보니 정확진 않았다.
다시 말해 수술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이 말이었다.
‘감독하라고 하니까 좋아하는 거 봐라.’
그러기 위해서는 일말의 여지도 없애야만 했다.
방해만 할 놈들이 뻔하니 미리미리 약을 쳐야 한다는 뜻이었다.
원래 수술방에서는 집도의가 칼 딱 들고 ‘오늘 무슨 무슨 수술할 거다’라고 하면 어?
메스 탁 건네고, 보조의가 알아서 당기고 어?
아후.
내가 이렇게 산다.
지이익.
잠깐 불만을 토로했지만 정작 살갗을 째고 들어가기 시작하자마자 잡생각은 사라졌다.
나도 어쩔 수 없는 외과 의사다 보니 피를 보자마자 딱 거기에 꽂혀 버려서 그랬다.
“닦아.”
“어어. 근데 나 선배야.”
“난 교수예요.”
“어, 네. 죄송.”
일단 당기는 건 조지프의 일이었다.
메스로 째기 전부터 살을 좌우로 당기고, 째고 들어가면서부터는 포크같이 생긴 걸로 단면을 당기고, 복막까지 다 째고 들어가면 아미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든 걸로 당기게끔 가르쳐 놨다.
원래 같으면 그거보다 더 잘해야 하지만, 수술의 개념 자체가 나와 크게 다른 시대다 보니 이거 이상 바라는 건 뭐랄까…….
그래, 죄였다.
아니, 악이야.
‘뭔가 더 하려고 하면 무조건 사고 치겠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방금 피 닦은 앨프리드의 손을 바라보았다.
멸균 거즈 따위는 언감생심이었다.
멸균?
안 될 말이지.
해서 그나마 깨끗한 천을 삶아서 쓰고 있었다.
지이익.
최대한 피 닦을 일이 없게 하는 게 좋다, 이 말인데…….
그렇다고 없는 전기칼을 들고 올 수는 없지 않나.
뭐, 좀 더 여유가 생긴다면 달군 쇠를 지혈제로 사용해 볼까 싶기도 한데…….
‘꽤 고온이어야 한다는 게 문제란 말이지.’
부엌 같은 데서 달궈다가 오면, 오는 동안 다 식어서 써먹기도 어려울 터였다.
그렇다고 여기서 달궈?
여기서?
화르륵 타오르는 강의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그래, 일단은 있는 걸로 열심히 해 보자.
뭐 이런 생각으로 나는 마침내 복막을 째고 들어갔다.
이렇게만 보면 엄청 후진 술기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텐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당겨.”
“응.”
“어디…….”
일단 절개 부위와 방향부터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달해 오지 않았겠나.
아마 첫 배 수술은 리스턴의 바람처럼 십자가 모양의 절개 아니었을까.
더 이상 수술이 아니라 살인이었겠지.
내가 여기 온 이상 그런 일은 없다.
맥버니 포인트에 정확히 외측에서 내측으로 사타구니에 평행한 선, 즉 사선으로 들어가는 절개.
이 절개야말로 복근에 가장 적은 손상을 주면서 동시에 제일 좋은 시야와 더불어 접근 또한 수월하게 만드는 절개 아닌가.
“어딨지…….”
“이렇게 찾아?”
“아니, 이렇게 된다고?”
“뭐가 보여서 찾는 거야?”
거기에 더해 집도의의 역량이 미쳤다.
내가 내 입으로 하는 얘기다 보니 좀 그렇긴 한데…….
생각해 봐라.
내가 대학교수였다니까?
거의 뭐 임용되자마자 죽어서 그렇지…….
이런 기본적인 수술에 대한 역량은 미쳤다는 말도 좀 부족할 지경이다, 이 말이었다.
‘눈 감고도 찾지. 수백 번은 뒤졌던 배 속이다…… 더 찬양해라. 찬양해!’
나는 극적인 효과를 더 주기 위해 눈을 감고, 벌써 잡은 지 한참인 충수돌기를 쥔 채 잠시 기다렸다.
그랬더니 역시나 방금 전에 입 다물고 있던 리스턴이 참지 못했다.
“더 째게. 이거 조막만 한 구멍 내서 무슨 수술을 하나.”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보이긴 할 터였다.
환자 생각이 지극한 사람이라지만, 뭐가 되었건 지금까지 그야말로 호쾌하기 그지없는 수술만 해 온 사람 아닌가.
단칼에 팔다리를 잘라 버리던 사람이, 지금 나처럼 배에 기껏해야 6, 7cm나 될까 말까 한 절개선 넣고 낑낑대는 꼴을 보고 있으면 답답해 돌아 버리게 될 게 뻔했다.
“시야가 안 나오지 않나. 뭘 하려면…… 시야가 제일 중요하다네.”
게다가 시야에 대한 말은 또 맞는 말이었다.
확실히 수술의 반은 시야 확보에 있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똑똑한 야만인이라 그런가, 가끔 이렇게 날 헷갈리게 한다.
“찾았어요.”
“눈 감고?”
“저도 해부하면서 그 이상하게 튀어나온 게 이상하다 싶었거든요. 기억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기억만으로…… 이걸 찾아냈다고? 자네는…….”
“네, 천재입니다.”
“그…….”
나는 천재를 입에 담으면서 혹시나 튀어나올 반발을 잠재우기 위해 타이밍 좋게 충수돌기를 끄집어 당겼다.
말이 충수돌기지 가뜩이나 부은 놈 함부로 팍팍 누르다가는 터질 수도 있었기 때문에 주변 장을 당겼다.
그러자 원래보다 몇 배는 크게 부어 있는, 누가 봐도 이놈은 흉악한 놈이구나 싶은 놈이 나왔다.
그제야…….
우리 멍청한 제자들은 내가 한 수술의 정체를 깨달았다.
“어라, 나 이거 어디서 본 기억이…….”
“어…….”
앨프리드는 빼 주자.
이 사람은 그때 수술받은 당사자니까.
“네, 앨프리드 선배도 그때 이거였을 겁니다.”
“잠깐만,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건가?”
뒤늦게, 자신이 이 대화에 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리스턴이 말했다.
이 양반은 그때 없지 않았나.
자, 어디 보자…….
리스턴은 자신의 말에 내가 영감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근데 나는 전에 너무 급한 나머지 앨프리드 배를 팍 째 버렸단 말이지?
‘어찌 수습할까.’
고민은 짧았다.
괜히 구라 마스터겠어?
입만 벌리면 그냥 구라가 술술 나왔다.
“앨프리드 선배가 한동안 못 나온 적 있지 않습니까?”
“그랬지.”
“그때 복통이 있었습니다. 열도 났고요.”
“열과 복통이? 죽을 뻔했군그래.”
21세기 사람들은 아마 이해가 어려울 터였다.
열나고 배 아픈 게 뭐 어때서?
하지만 약 없는 시대에 그런 증상은 거의 죽음을 의미했다.
리스턴이 미친놈이라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란 뜻이었다.
“그렇죠. 아시다시피 선배는…… 제 은인입니다. 제가 덕분에 제대로 된 집에서 돈 걱정 없이 배울 수 있게 해 주었으니까요.”
“아니, 평아. 아니, 교수야. 아니, 교수님. 내 생명의 은인이…….”
“그때 뭐라도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앨프리드는 중요하지 않다.
조지프? 콜린? 얘네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리스턴은 어떻게든 구워삶아야 했다.
늘 느끼잖나.
어지간한 법보다는 주먹이 우선인 시대에 리스턴을 대동하고 다닐 수 있다면, 왕실 정도 말고는 프리패스로 다닐 수 있을 터였다.
해서 나는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기도했습니다.”
“응?”
그 자리에 있던 조지프가 의문을 표했다.
기도를 했었나?
뭔가 조선말을 했던 거 같은데.
시…… 뭐더라?
‘인마, 얼굴에 다 보인다.’
그래, 그때 욕했지!
했지만 기도도 했다.
진짜다.
19세기에…….
쥐구멍이 실제로 있는 방에서 수술하려면 기도 아니라 다른 뭐라도 해야 했다.
“아…… 그래, 근데?”
“그때였습니다. 머릿속이 환해지는가 싶더니 지금 선배가 아파하는 쪽, 그쪽에 문제가 있을 거란 생각이 딱 들더군요.”
“아니, 그럼 그래서 그냥 열었는데, 살았다고?”
“어어, 교수님 옷은 왜…….”
“그때도 이만큼밖에 안 쨌네?”
내 말에 리스턴은 반신반의하는 얼굴로 아니, 객관적으로 볼 때 ‘20%신80%의’하는 얼굴로 다짜고짜 앨프리드 선배의 옷을 들쳤다.
이게 다 엄연한 컨타미네이션(Contamination, 오염)이었다.
멸균이어야 할 수술방에서 옷을 벗기다니.
앨프리드가 과연 언제 샤워를 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며시 장갑으로 수술 부위를 가렸다.
“네, 그때 해 봤던 수술이…… 우연찮게 오늘과 같군요.”
“허, 참. 이거야 원. 이게 정말…… 허. 주님의 계시라고?”
리스턴은 허참을 그 후로도 한 열 번인가 더 하더니, 종래에는 이해를 포기하고는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겠지.”
아마 그렇게 보일 터였다.
이걸 왜 구라를 치냐고.
바로 그런 타이밍에 구라를 치는 것이 구라 마스터…….
아니, 이게 아니고.
“그렇습니다. 제가 왜 형님한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래, 그렇지. 주님의 은총일세. 이미 앨프리드가 이 수술로 살았고, 이 환자도…… 내가 봤을 땐 환부를 무리 없이 도려낼 수 있을 거 같네.”
“네. 아, 한번 보시죠.”
이제 반신반의의 레벨로 넘어온 거 같았다.
그렇다면 더더욱 몰아붙여야만 했다.
정신없이.
툭.
나는 실로 충수돌기의 뿌리를 묶은 후, 가위로 툭 잘랐다.
그와 동시에 역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아직 멀었다.’
나는 그에 그치지 않고,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리스턴의 코앞에서 충수돌기를 쨌다.
그러자 역한 냄새라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한, 이 19세기 야만인들에게도 벅찬 냄새가 온 방 안에 뻗어 나갔다.
“아욱.”
“미아즈마가 가득하니, 이것이야말로 환자의 병인이었을 겁니다.”
“아, 알았으니까. 그거 버려!”
“어디다가요?”
“그…… 줘, 주지는 말고. 콜린.”
“네?”
“자네가 들고 나가게.”
“전 장갑도 없고…… 마취 가스 봐야 합니다.”
“내가 볼 테니까. 자꾸 냄새나는데 입 열게 할 건가!”
“히익.”
보다 못한 야만인의 포효에 질린 콜린이 맨손으로 잘린 충수돌기를 들고 뛰었다.
불쌍한 놈…….
모르긴 해도 저 냄새 빼는 데 며칠은 족히 걸릴 터였다.
“우우욱.”
불행한 콜린이 복도에서 토악질을 해 대는 사이, 나는 마무리를 했다.
충수돌기 쨌으니까 닫기만 하면 되지 않겠나.
엄청 간단했다.
실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는데…….
‘그래도…… 앨프리드 선배도 이거 하고 살았잖아.’
나는 애써 내 불안감을 가라앉히면서 봉합을 완료했다.
다 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리스턴이 눈을 감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러다 뭔가 이상한 말을 했다.
“평.”
“네?”
“나도 계시를 받은 거 같네. 다음 환자는 내가 하지.”
“어? 네?”
이 양반이 이럴 사람이 아닌데?
그래도 신중한…….
아.
‘시발…… 마취 가스…….’
리스턴은 웃음 가스를 소량 맡았고, 환각을 본 게 틀림없었다.
신실한 사람이다 보니 주님이라도 본 모양인데…….
“기다려, 기다려요!”
나는 마치 신의 사자라도 된 듯 복도를 향해 성큼성큼 나서고 있는 리스턴을 붙잡기 위해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