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56)
검은 머리 영국 의사-156화(156/505)
156화 이제 슬슬 소독도 더…… [2]
장난감……?
나는 잘못 들었나 해서 리스턴에게 다시 물었다.
“현미경 말입니다. 현미경.”
“그래, 그러니까. 그 장난감.”
“음.”
대화는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나와 리스턴과의 현미경에 대한 인식이 너무나 달라서 그랬다.
‘이게 말이 되나…… 의사가 되어 가지고 현미경을 장난감이라고…… 아, 혹시 그런 건가?’
교수 중에 꽤 있지 않나.
우리 과가 최고라는 자부심이 지나치게 된 나머지 우리 과만 최고야가 되어 버린 인간들.
리스턴은 그런 끼가 상당히 다분한 사람이다 보니 아무래도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외과가 최고지.
현미경 보는 놈들이 뭐야?
뭐 이따위 생각?
현대 의학에서 병리과의 역할이 어떤지를 생각해 보면 참 어이가 없는 생각인데, 19세기는 어이없는 일이 매일같이 아니, 거의 매 순간 벌어지는 시대다 보니 나는 이번에도 그런갑다 하게 되었다.
“현미경 보는 분들이 계시긴 하죠?”
“아, 있지. 많아. 너도 아는데?”
“아, 그래요? 누구요?”
그런 생각에서 물어봤더니만 그래도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확실히 이 병원 안에 몇 명 정도는 있을 법하긴 했다.
이 양반들이 실험 정신이 대단하잖아?
솔직히 실험 정신이라기보다 모험 정신이라고 보는 게 옳다 싶을 정도로…….
‘블런델도 그렇고…… 미친놈이긴 해도 제멜이나 토마스도 그렇지. 케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생각하다 보니 떠오른 건데, 내가 이름 아는 교수들은 진짜로 다 특이한 거 같네.
정말 대단한 시대고 병원이다 싶었다.
아무튼, 내가 이렇게 생각을 이어 나가는 동안 리스턴은 내 질문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이내 답을 해 주었다.
“그래, 대미언 경이 있겠군그래.”
“응?”
너무 의외인 부분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그 사람이 의학에도 조예가 있던 사람인가?
뭐……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전에는 의학이 일종의 취미의 영역에도 닿아 있다고 들었던 거 같거든?
임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얘기는 다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보니 정확하진 않지만, 아무튼.
“대미언 경 말일세. 현미경이라는 게 보통 비싼 물건이 아니거든.”
“아…… 비싸군요.”
하긴 비쌀 거 같다.
유리 깎아다가 배율을 높이는 작업이 쉬울 리는 없잖아?
저번에 수술 기구 새로 만들다가도 놀라지 않았나.
이 시대에는 맞춤 기구나 물건의 가격이 정말이지 어마어마했다.
산업 혁명이 일어났다고 해 봐야 자동화가 되기에는 아직 한참 남은 시대라 그럴 터였다.
“그렇지. 그래서 귀족들이나 가지고 있을 뿐이야. 아까 말했듯이, 아주 비싼 장난감이지.”
“아…….”
장난감이라고 하는 게 진짜 장난감이었구만…….
이런 미친…….
마취 가스의 재현이냐?
원래 있었는데 그냥 노는 데 썼던 거야?
‘이 새끼들…… 설마 막 어? 다른 것들도 다 있는 건 아니겠지?’
알고 보니 19세기에 이미 대부분의 약들도 개발이 되어 있는데 다른 방향으로 쓰고 있다든지…….
언제 한번 파티장에 가서 조사를 해 봐야겠어.
거기가 보물 창고일 수도 있단 말이지?
“근데 그건 갑자기 왜?”
“아, 아니. 제가 뭔가 생각이 나서.”
“혹시 주님의 계시인가?”
생각이라는 말에 리스턴이 몸을 일으켰다.
계시 운운하면서였다.
원래 같았으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 대 후려쳐야 하는 시점인데…….
상대가 리스턴이고 또 내가 지금 있는 곳이 과학과 미신이 혼재해 있는 19세기다 보니 반응이 절로 다르게 튀어 나갔다.
“그런 거 같습니다. 아까 수술하고 나서 걱정이 돼서 기도를 한참 했거든요.”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는다고 했던가.
그걸 요즘처럼 실감하는 때가 없는 거 같다.
기도라고 해 봐야 평생 한 거 다 합쳐도 10분이 될까 말까일 거 같은데…….
한참 했다니.
“역시 신실하구만. 그래, 환자들을 위한 기도는 쉬면 안 되지.”
“네네. 그렇죠.”
“아무튼, 계시의 가능성이 있다면 잠자코 있을 수야 없지.”
리스턴은 계시라는 말에 몸을 일으켰다.
외투도 걸쳤다.
안 그랬으면 좋겠지만…….
곰곰이 따져 보면 또 리스턴 없이 대미언 경을 만나러 가도 되나 싶기도 했다.
물론 뭐 내게 은혜를 입었으니 문전 박대할 일이야 없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위험천만할 수 있지 않겠나.
런던의 치안은 빈말로도 좋다고 하기가 어려우니까.
‘게다가 나는 작고 소중하다구…….’
엄밀히 말하면 작은 편이라기보다 오히려 큰 편에 속하겠지만, 얼굴 보면 오금 지릴 만큼이나 무서운 놈들이 너무 많았다.
“같이 가세. 나도 아까 수술한 거 복기하던 게 마침 거의 끝나서.”
“아, 네. 형님이 같이 가 주시면 좋죠.”
해서 나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 리스턴과 함께 대미언 경에게로 향했다.
당연히 가는 길은 안전했다.
일단 마차를 타고 가는 것도 가는 것이지만, 중간중간 시비 붙은 것도 리스턴이 얼굴만 보이면 갑자기 사죄가 터져 나왔다.
-히익, 죄송합니다.
-소, 소드 마스터…….
-리, 리스턴 박사님, 죄송합니다!
이런 식으로?
“아…… 리스턴 박사님과 닥터 피영 님? 안에 연락하겠습니다. 잠시만 앉아 계시죠.”
도착하고 나서야 뭐 문제가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나는 은인인데.
리스턴도 원래 그랬지만 최근 들어서는 확고부동한 런던 제일검 아니, 런던 제일의 명의로 자리 잡고 있고.
“들어오시라고 합니다. 기분이 아주 좋으시군요.”
경비병이라고 해야 하나?
누구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미언 경의 집도 저택이었다.
웅장한 정원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대미언 경이 보였다.
전에 봤을 땐 전혀 못 느꼈는데 지금 보니 진짜 귀족 그 자체였다.
하긴 작위까지 있는 진또배기 귀족이니만큼 귀티가 좔좔 흐르는 것이 당연하긴 했다.
‘하지만 자꾸…… 수치스러움 100배 포즈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 없군…….’
나는 애써 수술할 때 봤던 모습을 떠올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대미언 경.”
“그래, 반갑네. 잘 지냈나? 나는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다네.”
그래, 얼굴만 봐도 알겠다.
정말이지 시원하게 비운 사람의 얼굴이야.
‘내 수술이 잘 통한다니 정말 다행이구만…….’
하면서도 사실 반신반의했더랬다.
이게 되나?
정말로?
나는 비뇨기과 의사가 아니란 말이지…….
아무튼, 잘되었으니 뭔가 받아 내기도 좋지 않을까?
막말로 내가 뭐 달라는 것도 아니고 빌려 가서 쓰고 다시 줄 거잖아?
아니, 봤는데 배율이 형편없다 싶으면 빌려 가지도 않을 거다.
“네, 공작님께서 잘 봐주신 덕에 정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봐주긴 무슨. 그냥 원장 만나서 몇 번 밥이나 먹은 걸세.”
“네, 그게 아주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밥만 먹었겠어?
잘 봐주라고 어깨도 퉁퉁 치고 했겠지.
내가 소위 말하는 로열이 아니다 보니 옆에서 많이 봐서 잘 안다.
와…….
진짜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대우가 달라지더라고.
나도 뭐, 병원 내에서 뭐라고 하는 놈들 하나도 없긴 하지.
리스턴 덕이 더 크긴 하겠지만 물리적으로 안 될 놈들이 있다면 그때 힘을 발휘해 줄 터였다.
“그래…… 오늘은 어쩐 일인가? 이미 진료는 다 끝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뭔가 원하는 게 있겠지?”
대미언 경은 본인 지위가 지위이니만큼 운도 떼지 않았는데 내가 뭔가 부탁하러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뭐든지 말하게. 누구를 죽여 달라고 해도, 그 사람의 지위에 따라 들어줄 용의가 있네. 하하.”
생각했던 것보다 더 섬뜩한 말도 했다.
아무튼, 저런 것도 생각하고 있는데 현미경 빌리는 거야 무조건 되겠다 싶었다.
“저, 현미경이 혹시 있으십니까?”
내 말에 대미언 경의 얼굴이 아까 리스턴이 지었던 얼굴로 화했다.
이 새끼가 지금 뭔 소리지? 하는 얼굴이라고 할까.
“그건…… 그 장난감은 왜 찾나?”
“그…… 제가 한번 써 보고 싶어서요.”
“하하. 찾으려면 오래 걸릴 텐데, 잠시 기다리게.”
“네네.”
“어디 창고에 있을 거야. 찾아올 동안 차나 마시지.”
“네.”
“리스턴. 자네도 앉게.”
“네.”
대미언 경은 얘도 장난이나 하려나 보다 싶은지, 하인들에게 가져오라 일러 놓고는 소파에 앉았다.
관리가 아주 잘 되어서 그런가, 소파에서 그 흔한 먼지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렇게 위생에 신경을 쓸 거면 좀 더 써서 몸도 닦고 하지 싶었다.
모르긴 해도 저 대미언 경조차 몸 씻은 지는 꽤 되었을 터였다.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내가 수술한 날이 마지막으로 씻은 날이 아닐까?
결벽증으로 소문났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 달에 한 번 정도 목욕을 했다고 하니 말 다 한 셈이었다.
“차가 아주 좋군요.”
리스턴은 차보다는 술이 그것도 독주가 어울리는 흉악한 얼굴을 한 주제에 차가 좋네 향이 좋네 운운했다.
실제로도 좀 즐기는 편이다 보니 뭐라 할 건 아니긴 한데…….
자꾸 뭐라고 하고 싶었다.
“자네는 어떤가?”
나?
나는…….
아.
아아 먹고 싶다.
그것도 잘게 간 얼음에 담은, 한 모금만 마셔도 머리가 띵해지는 그런 아이스 아메리카노!
“너무 좋습니다. 홍차의 풍미가 아주 좋군요.”
“하하. 그럴 줄 알았네. 이게 아주 좋은 물건이거든. 운남에서 온 걸세. 알지? 청나라.”
“아, 네. 그럼요. 그래서 그런가 차가 아주 고급지군요.”
“자네는 참…… 차도 좋아하고 취향이 마음에 들어.”
물론 입에서 튀어 나간 것은 언제나 그렇듯 구라였다.
정직과 신뢰의 대명사였던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19세기 놈들 때문이다.
“공작님.”
“아, 왔구만. 아니, 이거 가져올 때 좀 닦아 왔어야지. 이대로 갖고 오면 어떻게 하나!”
“아, 죄송합니다! 닦아 오겠습니다.”
그사이에 현미경이 도착했다.
먼지투성이인 상태로.
당연하게도 공작님의 불호령이 잇따랐고, 곧이어 반짝반짝 닦여진 현미경이 내 앞에 도달했다.
생긴 건…….
‘내가 주로 쓰던 광학 현미경하고는 많이 다르게 생겼네…….’
생긴 것만 봐서는 진짜 도무지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봐야 할지도 모르겠어.
“줘 보게. 자네는 그러고 보니까 이거 처음 보겠구만.”
내가 뭘 보려고 하는 대신, 현미경 자체를 뜯어보고 있자 대미언 경이 뭔가 느꼈는지 자기 앞으로 옮겨 갔다.
그러곤 상당히 익숙하게 조작을 하더니만 옆에 있던 홍차 잎을 올렸다.
“이게 비싼 이유가 있어.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 보게.”
“네.”
보니까 배율 조정도 되는 물건이었다.
아주 세밀한 거 같진 않은데, 대략 100까지는 맞출 수 있는 거 같았다.
대미언 경이 맞춰 준 것은 50배였다.
하여간, 봤더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보였다.
“허…….”
이 정도면 진짜 세균도 보일 거다.
아니, 보인다.
확신할 수 있었다.
홍차 잎이 이렇게까지 거대하게…….
심지어 내부 조직까지 다 보일 정도지 않나.
이보다 더 배율이 올라간다면 반드시 보일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신기하지? 하하. 조심하게, 그거 본다고 나도 한 몇 달 밖에도 안 나갔다구.”
“걱정입니다. 갑자기 장난감에 빠질 생각을 하다니.”
“자네가 잘 이끌어 주게. 천재라고는 해도 아직 어린애지 않나.”
“하하. 철이 없죠. 걱정 마십쇼. 때려서라도 제가 잘 이끌겠습니다.”
내가 의학의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사이, 두 어른은 속 터지는 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두고 봐라. 내가 이제…… 진짜 소독의 개념을 만들어 주마.’
나는 화를 내는 대신 절치부심하기로 마음먹었다.
뭔가 보여 주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리스턴은 받아들여 줄 것이란 확신이 들었거든.
누구보다 꽉 막힌 사람처럼 생겼지만, 누구보다 열린 사내 리스턴.
저 사람이 내 편인 이상 두려울 만한 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