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5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58화(158/505)
158화 이제 슬슬 소독도 더…… [4]
“일단 봐 봐. 봐 보고 말하자. 나도 아직 추측이라고.”
“흐으음.”
“뭐…… 네 말이니까 내가 보기는 할 텐데.”
둘은 내 말에 밍기적거리면서, 현미경에 눈알을 들이밀었다.
어찌나 내키지 않아 하는지 마음이 읽히는 기분이었다.
이 새끼들.
내가 진짜…….
어? 얼마나 답답한지 아냐?
대체 언제까지 미아즈마니 뭐니 해야 하냐고…….
“그래, 이거. 이거 뭐…… 이상하게 생겼네.”
“그냥 여기 있는 거 아닐까?”
둘은 선명하게 보이는 대장균 무더기를 보면서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개새끼들…….
어제 그냥 똥 덩어리 그 자체라고 봐도 무방한데 말이지.
내 생각인데 아마 머지않은 미래에 이 런던에 설사병이 덮칠 거라는데 내…… 내…… 머리털 전부를 건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는데, 그만큼 확신한다.
식수로 쓰는 물이 이 지경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어.
“여기서 보이는 놈들이 우리가 미아즈마 덩어리라고 확신하는 시신에서도 관찰된다면 어쩔래?”
아무튼, 나는 간신히 욱하는 심정을 억누른 채 말을 이었다.
시신 얘기가 나오자, 특히 그거 때문에 한번 죽을 뻔했던 적이 있는 앨프리드가 한결 더 진중해졌다.
“음…… 이게 거기서도 보인다?”
“그래. 다른 곳에서는 잘 안 보이고.”
“그럼…… 어느 정도…… 흠. 그럴 수 있나?”
“그렇다니까. 그럴 수 있을 거 아냐. 아닐 수도 있겠지만…… 만약 그렇다고 해 봐. 그럼 의학은 또 한 번 진보하는 거야. 미아즈마의 정체를 밝히는 거니까.”
“그건 그렇지. 생각해 보니까 약간 들뜨는데?”
반면 조지프는 여전히 똥 씹은 얼굴이었다.
냄새 때문일 수도 있었다.
익숙해졌나 싶으면 또 어디선가 은은한 똥내가 코끝을 찔러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아니, 근데…… 흠. 그런가……? 난 잘 모르겠는데.”
네가 모르겠다는 건 하등 중요한 일이 아니란다.
넌 이 세계의 먼지만도 못한 존재거든.
나중엔 어찌 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래.
“당연히 지금은 모르지. 하지만 그런 생각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안 해 본다는 건 문제 아니냐? 우리 교수님들 봐라. 얼마나 진취적이야?”
대개의 경우 보수적이면서 이상한 데서만 진취적이라는 게 아주 커다란 문제긴 한데…….
아무튼,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들이 있지 않나?
가령 블런델이라든지.
리스턴 박사도 그랬다.
아니, 해부하다가 충수돌기염 찾은 건 진짜 놀랄 만한 일 아냐?
확실히 이 시기는 뭔가 정립된 것이 거의 없는 만큼, 사람들의 사고도 어느 정도 더 유연한 것 같았다.
“음, 그것도 그렇네. 이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렇다니까. 그러니까 이거 잘 기억해 두라고. 내가 그림으로 그려 두기도 하긴 할 텐데…… 시신도 한번 보자고.”
“그래, 그러자. 그럼 잘 자라.”
“어.”
“아.”
“왜.”
“저 물은 좀 버려. 냄새가 너무나. 네 말대로 저게 미아즈마 덩어리면 어쩌려고?”
“아.”
그래, 잘했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부터 머리가 좀 아프더라고?
이놈들 때문인가 했는데, 사실 이놈들 때문에 머리가 아프기엔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렇다면 범인은 역시 이 물일 터였다.
해서 나는 철통을 창밖으로 흩뿌렸다.
거의 똥물 뿌린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 시기 런던은 악취가 거의 디폴트값이었으니까.
“음…… 똥물…… 템스강 물을 현미경으로 봤더니 이런 게 있었다, 이 말이지?”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나는 현미경을 들고, 어제 그린 그림까지 챙겨다가 리스턴 박사를 찾아갔다.
시신 들여다보는 거야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그 이후가 문제라서 그랬다.
그래, 두 개체에서 동일한 세균, 미아즈마가 보였어.
근데 뭐 어쩌라고?
‘얘기하다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동물 실험을 할래도 뭘 잡아 오든 사 오든 해야 할 테고…….’
뭔가 입증된 이후에 다른 놈들에게 소독을 강요하려고 해도 리스턴은 필수템이었다.
나 혼자 떠들어 봐야 별 소용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하지만 런던 제일검이 나선다면 어떨까.
산천초목이 모두 벌벌 떨면서 손도 닦고, 모든 물품도 닦고 할 터였다.
그러자면 아예 이 실험 초기부터 리스턴을 끌어들이는 편이 유리했다.
“네. 이게 시신에도 있다면, 미아즈마가 혹 이 형태의 무언가라는 가설이 성립하지 않을까요?”
“으음…… 하지만 그러려면 이 무언가가 염증을 일으킨다는 증거가 필요한데?”
“그건…….”
내가 또 생각을 해 놨지.
연구라는 게 반드시 전향적으로만, 그러니까 지금부터 일을 벌여야만 가능한 건 아니거든.
후향적 연구라는 말이 있지 않나.
그러니까 어디 가 가지고 템스강 물 먹고 아픈 사람들을 모아 오면…….
“뭐, 방법은 있긴 하겠군그래.”
오.
역시 리스턴인가.
천재가 달리 천재가 아닌 건가.
아직 후향적 연구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임에도 그 비슷한 것을 떠올린 건가!
“아무튼, 이럴 게 아니라 한번 보지. 그럴싸한 가설이야. 나는 개인적으로 이게 맞았으면 좋겠군그래.”
역시, 역시 리스턴이다.
반응도 응?
우리 하잘것없는 제자 놈들하고는 딱 다르잖아.
이미 지위가 높은 데도 마음이 완전히 열려 있어요.
“하하, 형님만 믿습니다.”
“내가 안 그래도 이상하다 싶었어. 현미경이라니. 자네 같은 뛰어난 사람이 계시 운운하면서 장난이나 할 사람이 아닌데 말이야. 이런 가설이라니. 간만에 또 흥분이 되는구만그래.”
“과찬입니다. 다 형님 덕이죠. 형님 아니었으면 어찌 현미경을 빌릴 수 있었겠습니까?”
“하하. 얘기가 또 그렇게 되나.”
리스턴은 껄껄 웃으면서 해부학 실습실로 들어섰다.
한쪽 구석에는 내가 포르말린으로 말려 놓은 시신이 한 구 놓여 있었다.
주로 내가 제자들에게 천천히 인체 구조를 알려 주기 위해 사용하는 시신이었는데, 저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속적으로 적은 수의 시신이나마 납품을 받고 있었다.
동의를 다 받고 하는 일이라니 다행이긴 한데…….
‘마음에 드는 일은 아냐. 하지만…….’
저런 시신이 있어야 수술 연습이 용이한 것도 사실이긴 했다.
아예 기본조차 없는 시기이다 보니 카데바 실습이 별 의미가 없지 않나.
처음부터 다 가르치고 또 실습을 해 보려면 아무래도 인체와 최대한 비슷한 상태의 시신으로 연습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걸로 할까.”
하여간, 리스턴은 나머지 시신.
그러니까 납품받은 시신 중 하나를 골라, 그 안에 고여 있던 액체를 따랐다.
이제 와 하는 말인데 진짜 실습실 냄새는 가히 환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원래도 끔찍했는데 포르말린 냄새까지 더해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네, 좋죠.”
하지만 나는 물론이거니와 다른 이들 또한 냄새 따위에 흔들릴 만큼 나약한 사람들은 아니다 보니 그저 그렇게 물 떠다가 나올 수 있었다.
나는 그걸 현미경 바닥에 슥 부었다.
‘대미안 경…… 미안합니다.’
그럴수록 대미언 경에게 미안한 마음이 불어만 갔지만, 뭐 어쩌겠나.
이렇게 해서 그도 제대로 된 수술을 받게 된 거 아니겠어?
소변 질금거리던 거 생각하면 현미경 아예 안 돌려줘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아니지. 내가 왜 리스턴 같은…….’
너무 19세기화된 거 같아 반성을 하면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역시.”
세균이 득실거렸다.
중간중간 죽어 버린 세포들도 보이긴 했는데, 그건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너무 복잡한 걸 한 번에 납득시키려고 했다간 탈이 날 거 같아서 그랬다.
“잘 봐 봐.”
“음.”
내 뒤로 나선 것은 어제 같은 것을 보았던 앨프리드였다.
“오…… 이게.”
“어, 진짜 이게 여기.”
이놈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긴 한데…….
솔직히 말하자면 여기서 주로 보이는 균은 대장균이 아니었다.
포도상구균이 태반인데, 배율이 그 하나하나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하진 않아서 다행이었다.
모인 모습만 보인다, 이 말인데 그렇게만 보면 제대로 아는 게 없는 이상 다 비슷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림도 일부러 애매모호하게 그려 놓기도 했고.
‘이게 선의의 거짓말이다…….’
나는 남몰래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죄를 사하여 주실 것을 바라며, 리스턴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는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아즈마의 정체가 밝혀질 수도 있는 상황이지 않나.
나야 뭐 다 개소리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뒤에 선 놈들이야 의학도라 하기엔 아직 모자란 놈들이니 그렇다 치겠지만.
반평생을 의학에 매진해 온 리스턴에게는 그야말로 중요한 순간이라 할 수 있었다.
“허…….”
그래서일까.
리스턴은 현미경에 한번 댄 눈을 도통 뗄 줄을 몰랐다.
벌써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허, 햐, 하 와 같은 말만 내뱉고 있었다.
“이거야…… 정말 여기서도 보이는군그래.”
“네. 이게 만약 미아즈마가 맞다면. 그러니까 병을 일으키는 게 맞다면…… 앞으로 이 비슷한 것이 관찰되는 곳은 죄다 닦아 내야 할 겁니다.”
“공기 중이 아니라…… 냄새가 아니란 말인가……. 허어. 그래, 현미경으로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이 보인다는 말은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지. 그걸 이렇게 연결…… 흐음.”
리스턴은 현미경에서 눈을 떼고 난 후에도, 심지어 나랑 대화를 하는 와중에도 허, 햐, 하와 같은 말을 지속적으로 내뱉고 있었다.
심정이 이해가 가서 나는 그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되었건 후향적 연구도 진행하려면 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나.
‘일반인들이 그냥 말해 달라는 대로 말해 줄 리가 없지…….’
잘 보여야 하기도 해서 잠자코 있으려니, 리스턴이 마침내 멀쩡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이게 정말 맞는 가설인지 확인을 해 봐야겠네.”
“네네. 제가 생각이 있…….”
“따라오게. 물 뜨러 가야지.”
“네? 어…… 무슨 물이요?”
“템스강.”
“응?”
뭐지?
어어 하는 사이에 나는 템스강에서 강물을 떠 온 리스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강물이 그러니까 똥물이 가득 담긴 통을 들고 병원 복도를 가로질렀다.
“어, 어디 가요?”
“강의실.”
“강의실……?”
왜일까.
강의실이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이 뽑힌 콜린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겠지?
아닐 거야.
아니어야 해…….
아니죠?
그렇죠, 주님?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리스턴을 따라 걸었다.
하도 키가 커서 그런가, 그냥 걷는 데도 거의 뛰어야 따라잡을 수 있었다.
드르륵.
문제가 있다면, 따라잡긴 했는데 이미 안에 들어와서라는 점이었다.
“뭔가…… 이 냄새는.”
강단에 서 있는 건 또 하필 블런델이었다.
리스턴은 코를 싸쥔 블런델과 학생들을 보더니, 비장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마취제의 발견만큼…… 아니, 그보다 더한 발견이 될 수 있는 시점일세. 이거 마실 사람 있나?”
실로 말도 안 되는 요구였는데,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 전원이 손을 들었다.
“저, 저요!”
“저요!”
주님…….
거기 어딘가 계시는 건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