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5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59화(159/505)
159화 실험…… [1]
내 기도는 어디에도 닿지 못한 듯하다.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고?
강의실에 있던 학생들이 이미 두 부류로 나뉘었다.
두 부류 중 어디가 최악인지는 나조차도 가늠할 수 없었다.
“하하. 이렇게 의학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다니! 아주 좋은 일이야!”
리스턴은 두 개로 나뉜 그룹을 보면서 껄껄 웃고 있었다.
-자네도 마셔 보는 건 어떤가?
-아뇨…… 저는 기록해야죠.
-아, 그렇군.
-형님도 기록해야 되니까 마시지 마시죠.
-하지만 병이라는 건 직접 겪어 봐야 정확한 법일세. 더군다나 이거 말이야.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 않나? 실험 대상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네.
-아까 제가 말씀드린 대로, 애초에 물 먹고 아팠던 사람들을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요……?
-예끼, 이 사람. 일반인들이 우리랑 같은 줄 아나? 그치들은 오늘 있었던 일도 밤이 되면 까맣게 잊는 사람들이야!
나도 그냥 웃었다.
답 없는 상황에 혼자 심각하게 있으면 뭐 하겠나.
웃기라도 해야 버틸 수 있을 거 같았다.
더군다나, 21세기적인 잣대를 조금만 치워 보면 사실 지금 리스턴이 하려는 실험만큼 직관적인 것도 없었다.
“자, 각자 자기 앞에 있는 잔을 들게.”
한 그룹의 잔에는 시신에서 추출한 물…….
그걸 그대로 주었다가는 아무리 젊고 건강한 성인이라도 바로 죽을 게 뻔했기 때문에 10분지 1로 희석을 한 물이 있었다.
“자, 마시게.”
다른 한 그룹의 잔에는 템스강에서 떠 온 물을 희석한 물 아니, 액체가 있었다.
저런 걸 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좀 그래.
꿀꺽.
꿀꺽.
아무튼, 이 끔찍한 실험에 자원한 것도 참 놀라운 일인데…….
저렇게까지 아무 망설임 없이 마실 수 있다는 건 더 놀라웠다.
대단하다, 진짜.
대단해.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의학이 발전한 건가 싶기도 했다.
‘하긴…… 지금 이 수준에서…… 21세기 수준으로 가려면 뭐든지 해 보긴 해 봐야겠지……?’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인의 상식이라는 것이 말 그대로 현대에 이르러서야 만들어졌다는 것을 정말이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음…… 별거 아닌데?”
“아무렇지도 않아.”
내 만류에 의해 조지프와 앨프리드도 실험에 빠졌다.
단 한 명, 콜린은 예외였다.
마취제 때도 이 뽑힌 놈이지 않나.
자기 몸을 무슨 교보재 정도로 여기고 있는지 이번에도 제일 먼저 나섰다.
-교수님! 저는 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할 수 있어도 안 해야 되는 게 맞는 거라고…….
대체 왜 저걸…….
아무리 말려도 별 소용이 없었다.
대신 이 실험이 성공할 경우 이름 석 자만 적어 달라고 온갖 난리 법석을 피웠는데 그걸 보니까 또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집에서 인정을 못 받고 있나……?’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독 인정 욕구가 강한 애들이 있지 않던가.
그래도 좋은 대학 나와서 의사씩이나 되었는데도 그 욕구가 너무 강해서 열등감으로 표출되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게 잘 풀려서 성공하는 친구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불행해질 따름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그랬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네만?”
그런 상념에 젖어 있을 시간도 거의 없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게 성공할까? 정말 그럴까? 하면서 좀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던 리스턴이 화장실 급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상식적으로 뭔가 먹었을 때 벌써 이상이 나타나면 그게 독이지 세균이냐?’
아, 독…….
독소가 있긴 할 터였다.
그로 인한 증상도 나타나겠지.
‘청산가리 같은 것만 아니라면 희석도 했으니까 죽진 않을 거야.’
독소로 인한 증상에는 뭐가 있을까?
신경독 같은 건 호흡 곤란을 일으키지만, 자연계에서 그만한 독을 발견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다.
복어나 일부 독개구리, 독사 정도?
대부분의 독소는 설사나 구토를 일으키기 마련이었다.
‘근데 그것도…… 어찌 보면 세균에 의한 걸로 보이잖아?’
흐음.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일단 기다려 보시죠, 미아즈마에 노출이 된다고 해서 바로 딱딱 아픈 건 아니잖아요?”
“하긴…… 시신 해부실에 있어도 바로 아프진 않지. 다 그런 것도 아니고.”
“다 그런 게 아닌 건…… 공기가 아니라 저 이상하게 생긴 놈이 미아즈마라고 가정하면 설명이 됩니다. 저놈이 몸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에 한해서 증상이 생겼지 않겠습니까?”
“아. 으음. 그런 식으로 생각을 해 볼 수도 있겠구만.”
리스턴은 흠흠 하면서 턱 밑을 긁었다.
저 흉측한 얼굴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굳이 들들 들이파면서까지 알고 싶지는 않았다.
무섭잖어?
“기다리는 동안 뭐…… 술이라도 한잔할까요? 어차피 시간이 꽤…… 어쩌면 며칠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사이에 이 친구들은 다 여기 지내도록 하고요.”
“어? 여기 가두라고?”
“가두다뇨? 밥도 갖다 주고, 침대도 있는데요.”
“어…… 자네는 참…… 무서운 면이 있구만그래.”
말을 듣다 보니까 내가 좀 잘못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얘네들 집에 보내는 건 좀 안 될 일이었다.
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크게 제한되는 시기이긴 해도 집보단 낫지 않겠나?
일단 얘가 지금 아픈 건지 어떤 건지도 내가 있으면 바로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일단 시기상으로 독소 때문인지 감염 때문인지 알아볼 수 있겠지.’
괜히 집에 있다가 아파서 피 뽑히고 하면 어쩌냐고…….
가뜩이나 감염이 진행 중이거나 한데 피 흘려서 지치게 만들면 살 사람도 당장 죽게 만들 수 있을 터였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시대가 그래.
미친놈들이 너무 많어…….
“자, 들었지? 닥터 평의 명대로 니들은 여기서 우리 허락 없이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 알아들어?”
아니,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나쁜 놈 같잖아!
가뜩이나 리스턴이 예의 그 애병을 칼집째로 들고 있어서 분위기가 심각한데 저따위 말까지 하다니…….
나는 애들이 너무 무서워서 기절하는 건 아닌가 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다 기우였다.
활기찬 얼굴로 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블런델은 그런 제자들에게, 방금 전까지 자기 수업을 듣고 있던 애들에게 허허 웃으면서 말했다.
“다들 의학의 진보를 위해 노력하니 보기 좋아. 살아남으면 학점 잘 줄 테니 그리 알게.”
저게 할 말인지는 모르겠다.
‘살아남으면’이라니…….
“일단 먹지.”
아무튼, 나는 앨프리드 조지프까지 해서 다섯이서 강의실 맞은편에 있는 강의실에 자리했다.
리스턴은 최근에 돈 벌었다는 것이 헛소문이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연구실에서 프랑스산 와인을 들고 왔다.
세상에 프랑스 와인이라니!
영국에서 프랑스라고 하면 다 질색팔색하는 줄 알겠지만, 영국인들도 혀는 솔직하다 보니 음식과 술은 프랑스제라고 하면 환장하는 편이었다.
“와…… 이 귀한 걸!”
“하하. 고생 좀 했지. 아무튼, 마시세.”
우리는 그렇게 와인을 따서 먹기 시작했다.
부어라 마셔라는 당연히 아니었다.
아무리 19세기가 야만의 시대라고 해도 병원에서 의사가 만취하는 건 말이 안 되지 않나?
심지어 지금은 평소와는 달리 학생들을 사지로 밀어 넣은 참이었다.
이 와중에 교수란 작자들은 술 먹고 나자빠져 있다면 그게 사람인가.
“우우웁.”
한 세 시간쯤 지났을까?
맞은편에서 그리 달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드르륵.
반가운 소리는 아니지만 예상했던 소리였다.
그래, 독소에 의한 것이라면 지금쯤이지.
해서 나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맞은편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너무 예상했다는 것이 티가 나지 않도록 조금은 느릿하게 움직였다.
이 실험을 계획한 건 아니지만, 미아즈마가 공기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마당에 시간까지 맞추면 내가 봐도 너무 마녀 같잖아?
아무리 마녀사냥의 붐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는 시대라고는 해도 이 정도면 최소 교수형이다.
재수 없으면 불에 탈 수도 있고.
“우우웁!”
아무튼, 맞은편에 도달하자 실험에 나섰던 20명 중 무려 열 명이 토하고 있었다.
시신 쪽 일곱, 템스강 셋.
템스강 쪽은 잘 보니까 바지가 좀 물든 게 설사도 한 것 같았다.
리스턴이나 다른 이들이 볼 때는 그냥 우연인가 싶겠지만, 나는 이 차이가 왜 나게 되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시신 쪽은 포도상구균이고…… 템스강 쪽은 대장균이 메인이군.’
균이 달라서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시신을 기원으로 하는 균과 변을 기원으로 하는 균이 같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자자, 일단 이쪽으로!”
“어어. 학생들이니까 수은을 쓸까?”
나는 이제 아주 훌륭한 환자가 된 학생들을 데리고 나왔다.
다행히 같이 있던 이들이 사이코 과학자들이 아니라 의사들이었다 보니 분석보다는 우선 치료하자는 얘기부터 나왔다.
“제멜 박사님은 어떨까요? 피 뽑아야 될 거 같은데.”
“아니, 아니. 내가 배를 갈라 보지.”
불행한 것은 21세기 의사들이 아니라 19세기 의사들이라는 점이었다.
독소도 위험하지만 이들이 내놓는 치료들이 훨씬 더 위험해 보였다.
아니,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로 그랬다.
수은, 사혈, 배 가르기.
와…….
진짜 주옥같은 선택지 아닌가?
“이, 일단…… 미아즈마가 들어간 거 아닙니까?”
어떻게든 해야 했다.
안 그러면 다 죽겠어!
“어, 그렇지. 미아즈마를 먹였지.”
내 말에 우선 배 가르기를 시전하려고 했던 리스턴이 반응했다.
예전 같았으면 일단 가르고 봤을 가능성이 큰데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이만하면 21세기까지는 아니더라도 20세기 정도까지는 온 거 아닐까?
‘노려보지 마라…… 배 가르면 뒤져, 인마.’
웃긴 건 내가 멈춰 세운 것에 불만을 품는 학생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따지고 보면 나보다 먼저 의대에 온, 그러니까 선배들인데…….
아무튼 배가 갈리지 않아서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그걸 희석해 보면 어떨까요?”
“희석? 물을 먹여?”
“네.”
“그걸로 치료가 되겠나? 그래도 뭔가 해야지.”
“그…… 우선은 미아즈마를 희석해서 내보낸다는 개념으로 접근해 보면 어떨까 싶은데요…….”
감염이라면 얘기가 살짝 달라진다.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달라진다고 해도 아까 말했던 수은, 사혈, 배 가르기가 오진 않지만.
아니, 아니지.
배 가르기는…… 간혹 고름집이 잡히면 가능하긴 하다.
‘리스턴이 이 중에서는 제일 나은 건가!’
나는 남몰래 충격과 공포에 시달리면서 말을 이었다.
“일단 물을 먹여 보고 내일, 내일도 이러면 치료를 해 볼까요?”
“아, 그럴까. 하루면 뭐 죽을 리가 없지.”
“그러니까. 사실 수은이 비싸긴 해.”
“저도 제멜 박사님은 무서워서요.”
리스턴, 블런델, 앨프리드가 차례로 납득했다.
납득의 이유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 그런 거까지 바라는 건 너무 커다란 욕심이었다.
“자자. 그럼 물을 먹여 봅시다.”
지금 당장은 내 뜻대로 움직여 준다는 것에 감사를 느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