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화(16/505)
16화 산부인과 실습 [1]
아저씨는 콘돔에 매료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하여간 일이 그렇게 되었다.
고무에 일가견이 있는, 그러면서도 돈은 궁한 화학자를 찾아다니느라 여념이 없달까.
마음 같아서는 나도 따라 다니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사장이고 난 학생이었다.
“끄아아아악!”
그 때문이라고 하면 좀 이상하긴 한데.
하여간 나는 아침마다 선배의 손을 째고, 상처를 벌려 고름과 죽은 조직을 제거한 후 마차에 올랐다.
그래서 그런지 선배는 요근래 부쩍 힘들어 보였다.
먹는 걸 신경 써야 한다고 해서 잘 먹고 있었는데도 살이 좀 빠지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다행인 것은, 선배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의 양이 현저히 줄어 간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이제 슬슬 상처를 그냥 둬도 될 것 같아요.”
“어, 제발…… 벌써 일주일째야.”
“그래도 열은 안 나잖아요. 주변에서 봤던 사람들하고 비교하면 어때요?”
“확실히…… 나는 그렇게는 안 됐어. 조선의 의학이 정말 대단한 거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조선이 아니라 그냥 현대 의학이 대단한 것이지만.
이제 와서 솔직하게 말하기엔 너무 거짓으로 점철된 인생이라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하여간 선배는 죽지 않을 거예요. 이젠 확신할 수 있어요.”
“이제야 확신하는 거야?”
선배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한 번 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진짜였다.
‘항생제가 있어도 위험하다고…… 먹는 것만으로는 무리였을걸?’
죽음의 문턱에 있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죽을 뻔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라는 느낌이랄까?
당사자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몇 번인가 죽음을 목도한 경험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네 말이라면…… 확실하겠지. 음.”
치료하면서 계속 입을 털지 않았겠나?
대학 병원에 있을 때도 말이 많았던 건 아니었다.
너무 아파하는데 해 줄 수 있는 게 그것뿐이어서 그랬다.
선배도 의대생이긴 하니까 일부러 의학적인 사견을 슬쩍 털어 보았다.
“하여간…… 오늘부터 실습이라고?”
“네. 실습이 진짜 빠르네요?”
“빠른 건가? 실습으로 배워야지, 아니면 어떻게 배워?”
“아, 하긴 그렇네요.”
책은 두고 어디다 쓰냐.
먼저 지식을 쌓고 환자를 봐야 삽질을 안 하지.
아니, 그보다 공부도 안 하고 의사들이 하는 대화를 알아들을 수는 있냐?
아니지.
아냐.
의사는 먼저 의사의 머리를 가져야 한다.
그건 교과서로 쌓은 지식과 병원에서 쌓는 경험이 조화를 이룰 때 가능해지는 법이었다.
“그래. 모르는 거 있으면 물어봐. 너는 어쩐지…… 나보다 잘할 거 같긴 한데.”
물론 나는 이 집에 영원히 얹혀살기로 작정했기 때문에, 분위기를 깨는 대신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프는 워낙에 윗사람을 동경하는 편이다 보니 나를 따라서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마 녀석의 눈에 선배는 1년 먼저 정도를 걷고 있는 의대생으로 보이겠지.
‘아냐. 아니다…… 정도가 아니라 사도…… 아니. 길이 아니야, 이것들이 걷는 건.’
산부인과 실습이라.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부터 나왔다.
이 시기의 산부인과가 어땠는지 잘 알아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안 봐도 뻔해서 그랬다.
내과도 외과도 개판인데, 갑자기 산부인과를 잘할 리는 없잖아.
-우리 병원 산부인과는 정말 유명해.
게다가 유명하다고 했다.
리스턴도 유명하다고 했다.
여기서 기대가 되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닐까?
“와…….”
하여간 우리는 마차에서 내려 병동으로 향했다.
산부인과 병동이었다.
거대했다.
말 그대로 거대했다.
“와…….”
의학적인 수준과는 별개로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의 규모였다.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환자가 많았다.
심지어 다 산모였다.
진짜로.
그냥 다 산모들만 모여 있었다.
보통 산부인과라고 하면 임신을 확인받기 위한 사람이나…… 초기, 중기 임산부들도 검진을 위해 오지 않나?
“자식. 놀랐구나?”
“선배도 오늘 실습이에요?”
“어, 실습은 보통 같이 돌아. 그래야 배우고 또 배우지.”
“그…….”
돌림 배움이라 이거지?
그래서 잘도 교육이 되겠다 싶었지만.
어차피 난 배울 생각이 없어서 괜찮았다.
게다가 관심도 별로 쏠리지 않았다.
난 경관을 살피고 있었다.
고작해야 병원인데 ‘경관’이란 단어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그럴 만했다.
‘산모가 이렇게 많은데 병실이 네 개면…… 각 병실마다 환자가…… 서른 명…….’
현대에선 다인실이라고 하면 보통 6인실이지 않나.
6인실도 솔직히 너무 갑갑해서 5인실이나 4인실로 줄여 나가고 있는 실정이었는데 갑자기 30인실?
이게 현실인가.
복도에서 대강 봐도 병실 상황은 지옥이었다.
“자자! 거기 1학년! 그래, 너. 정신 차려! 실습이라고 긴장하고 있는 건 알겠는데.”
넋을 놓고 보고 있으려니, 교수가 나를 불렀다.
블런델이라고 했었나?
다행히 조선인이라는 게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선배 말로는, 그냥 산부인과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도 보니까 살짝 눈이 돌아가 있었다.
“오늘은 환자가 적은 편이야. 많이 몰릴 땐 이 복도에도 환자가 넘친다! 정신 차려!”
열정이 넘쳐서가 아니라 그냥 힘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하여간 블런델 교수는 말을 이었다.
“마침 산통이 있는 환자가 있어. 따라와!”
그러면서 동시에 손짓을 하곤 앞장서서 걸었다.
성큼성큼 걷길래 우리는 다 그 뒤를 따라 걸었다.
아무리 정원이 얼마 안 된다고 해도, 다 합치면 대충 15명은 되었다.
그러니까 대인원이라는 얘긴데…….
그렇게 걸어간 곳에는 허름한 차림의 산모 하나가 누워 있었다.
“으…….”
신음을 흘려 가면서였다.
‘곧 나올 것 같은데……?’
비록 내가 산부인과에 대해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급해 보여.
아주.
“자, 산통이 지속이 되면…… 여기가 열린다.”
어…….
교수님?
커튼 같은 거 안 치십니까?
아무 준비도 없이 치마를 확 걷어 버리시면…….
미친놈이세요?
나는 내 황당한 감정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주변을 돌아보았다.
근데 둘러보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이 새끼들은 전부 환자만 보고 있었다.
‘그, 그래. 여기는 19세기…… 야만의 시대지.’
잘 보니까 환자도 남편도 딱히 불만은 없어 보였다.
그래.
환자도 불만이 없는데 내가 난리 치는 건 좀 그렇지?
해서 그냥 있었다.
“자, 먼저 촉진을 해 봐야 해. 그럼 언제 처치를 해야 할지 알 수 있는데…… 이 아기는 머리가 좀 커서 이 위를 살짝 절개하고, 나중에 봉합하는 게 좋다.”
오…….
확실히 이때의 의사들도 환자를 살리기 위해 노력을 했구나 싶었다.
벌써 저런 처치를…….
아니, 잠깐만.
교수님?
“자, 이렇게 촉진을 해 보면…… 아이가 언제 나올지도 대강 알 수 있지.”
장갑 안 끼십니까.
맨손이잖아…….
그 전에 손은 안 닦냐!
“자, 촉진 실습은 둘로 제한하지. 그 이상은 환자가 불편해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미 불편해하는 거 같은데?
아니, 아니지.
지금 불편해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미친놈이 지금 진찰이 아니라 살인을…….
양수가 터진 환자를 손도 안 닦고 만진다고?
-산욕열이라는 게 있다. 아이를 낳고 나면 나는 열이지. 이건 피할 수 없는 일이야. 열이 나기 시작하면 우리는 산모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걸 보고 있자니, 갑자기 아까 병동에 들어오기 직전 블런델이 했던 얘기가 떠올랐다.
산욕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긴 했다.
허나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었었나?
외과 전문의다 보니 산부인과 쪽으로 뭐 대단한 지식이 있지는 않다만, 그랬던 것 같진 않았다.
“오…… 진짜 머리가…….”
“그래, 머리가 많이 내려왔지. 이제 슬슬 분만을 해야 한다는 뜻이야. 옮기도록 하지.”
허나 저런 이유로 나는 열이라면, 지극히 위험할 터였다.
손에 묻은 균이 그대로 복강 안으로 쳐들어갈 테니까.
가뜩이나 산모는 아이를 낳느라 기진맥진한 상황인데, 저렇게 균을 인위적으로 넣어?
이걸 살인이라고 하지 않으면 달리 무엇이 살인일까.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어.”
“야, 괜찮아?”
“아니. 내 손 쨀 때는 피도 잘 보고 하더니…… 왜 이렇게 심약해?”
“얘가 때때로 이럴 때가 있어요. 교수님이 알면 그러니까…… 제가 좀 부축할게요.”
“어? 아니, 나도 도울게.”
“네. 고마워요.”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도 아득해졌다.
미친.
미친놈아.
그러면 안 돼!
“……어.”
까무러쳤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낯선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눈 떴나?”
그리고 낯설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 들었더라?
아, 그래.
리스턴.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
시발?
“어어.”
칼 들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일단 내가 괜찮다는 걸 최대한 어필했다.
바로 몸을 일으켰다, 이 말이었다.
일어나 보니 병실이었다.
“아, 일어났나. 이상하게 심약할 때가 있어.”
“아…… 그게.”
“아냐, 괜찮아. 원래 또 유난히 산부인과가 안 맞는 애들이 있긴 해.”
“그…… 네.”
아뇨, 맨손으로 검진해서 그런 건데요.
니들 역시 의사가 아니라 살인자인데요.
이러면 어떻게 될까?
뒤지지 않을까?
그래서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상하게 등 쪽이 좀 간지러웠다.
젖은 느낌?
아니, 뭐가 지나가는 느낌?
‘그럴 리가 없지.’
나 누워 있었잖아.
그렇잖아?
여기서 뭐가 지나가겠어.
신경 끄기로 하고 완전히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러자 조지프가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물었다.
“괜찮아? 이거야 원…….”
“그…… 산모는 어떻게 됐어?”
“응? 아. 애기 잘 낳았어. 산모는 지금 병실에 있어.”
“그래…….”
하긴, 당장 어떻게 될 건 아니겠지.
“근데…… 너 왜 그런 거냐?”
이번에 입을 연 것은 조지프가 아니라 선배였다.
앨프리드.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당연하긴 할 터였다.
이 새끼는 날 무슨 악마로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웃으면서 생살 째고 고름 빼고 하는 짓을 매일 했잖아.
“징그러워서 그런 건 아니지? 그럴 것도 없었잖아.”
그래서 그런가, 정답을 알고 있었다.
허나 진짜 답을 말해 줄 수는 없었다.
이단으로 몰려서 죽을 테니까.
“그냥…….”
하지만 이대로 둘 수도 없었다.
‘개새끼들.’
뭐라고 둘러대야 이걸 바꿀 수 있을까.
뭐라고…….
‘일단 애를 여기서만 낳지는 않겠지?’
그래.
이번엔 예언가 메타보다는 통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안 그러면 좀…… 이상하게 볼 거 아닌가.
선배랑 조지프는 몰라도.
다른 놈들은…….
“하여간 교수님은 뭐래요?”
“교수님? 블런델 교수님? 그냥 뭐…… 저래 가지고 수술은 어떻게 보겠냐고 했지.”
새끼.
내 수술 경험이 못 해도 수십 배는 더 될 것 같은데.
아, 진짜 21세기 가르침 내리고 싶다.
‘내가 을이지. 잊지 말자.’
나는 참을 인 자를 새긴 후,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 끝난 건가요?”
“어. 너 근데.”
“네?”
“등에 구더기 있다.”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