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0)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0화(160/505)
160화 실험…… [2]
“근데 평?”
“네.”
“이걸 더 먹이는 게 맞는 건가?”
“아.”
리스턴은 템스강 물을 들고 서 있었다.
아니, 저거 언제 저렇게 많이 떠 온 거지?
뭐 이런 의문부터 들었을 정도로 난 당황했다.
왜냐면 이미 구토하고 있는 학생의 머리통을 다른 한 손으로 쥐어 들고서 물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고개만 끄덕이면 그 즉시 물은 알고 있다 직관을 할 것 같은 그런 강렬한 느낌이 들었다.
“아, 아뇨! 희석을…… 희석을 해야 되는데 그건 아니죠!”
“그렇지? 나도 좀 이상하다 여기고 있었네.”
“네네.”
“근데 말이야.”
“네.”
“자네 말대로 미아즈마가 원인이라면…… 그러니까 템스강 물에 있는 미아즈마가 원인이라면 말일세.”
“네.”
“여기 물로 희석하는 게 의미가 있나. 끓이긴 했지만 어차피 템스강 물 아닌가?”
“아.”
그래, 그렇긴 하다.
놀랍게도 지금 시기 런던은 상수도가 깔려 있었다.
이게 1800년대에 이르러서 진행된 일도 아니고 16세기부터 그랬다.
물론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화된 상수도는 아니긴 했다.
‘상류층…… 우리 앨프리드 선배네는 템스강에서도 상류에 해당하는 곳에서 끌고 오고 있지.’
더 전에는 개인적으로 상수도를 깔았다고 하던데, 지금은 그래도 열 개 정도 되는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문제는 이 회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의사들 그리고 도시를 다스리는 이들까지 포함해 이 런던의 지식인 모두가 딱히 상수도의 물을 어디서 끌어와야 하는지에 대해 개념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그저 냄새와 느낌이 나쁘다는 이유로 비싼 동네에서는 냄새 안 나는 물, 그러니까 상류의 물을 더 비싼 돈을 내고 끌어오고 있을 뿐이었다.
같은 이유로, 그러니까 돈이 없는 이들은 싸니까 템스강 똥물을 그대로 퍼서 쓰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런던은 온갖 빈민들로 가득 차 있다.
다시 말하면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똥물을 먹고 마시고 있었다.
‘이거…… 진짜 조만간 개선하기는 해야겠어.’
콜레라의 창궐.
이유를 알 수 없는 설사병의 창궐.
상상 가능한 온갖 병이 다 가능한 상황이었다.
잠깐 어질어질했지만, 19세기에 돌아온 이후 내게는 한 가지 바람직한 습관이 생겼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말이지 모든 것이 문제라 할 수 있는 시대이지 않나.
그거 다 보고 있으면 그것만으로 미쳐 버린다.
“글쎄요…… 관습적으로 끓이고 있긴 한데. 아! 그 물을 한번 보죠. 거기에 미아즈마가 없다면…….”
“아. 그렇군! 그래, 그런 방법이 있었어!”
그러니 한 번에 하나씩만 개선을 해야 했다.
지금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공중보건보다는 일단 병원부터 어떻게 하는 것이다.
세간에서 말하는 것처럼 병원이 죽음의 집으로 불리는 건 이제 그만둬야 하지 않겠나.
21세기에서 온 의사로서는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말인데 부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더더욱 서둘러야만 했다.
“오…… 확실히 없어. 아니, 적군. 있긴 있는데…….”
같은 이유로 리스턴이 필요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내 말에 설득된 상태의 리스턴.
아까 봤지?
혼절할 거 같은 사람 머리채 잡고 물 집어넣으려고 한 거.
그 정도로 실행력도 있고 완력도 있는 사람이다, 이 말이다.
아무튼, 나는 물을 끓이고 나름 증류까지 했다.
그 물을 현미경으로 한참을 들여다보던 리스턴이 감탄했다.
중간중간 미아즈마를 늘어놓는 것도, 뻔히 아는 것을 모른다 하는 것도 다 한심한 일이지만 이로써 이 무지막지한 사내를 감탄까지 이끌어 내었다면 되었다.
나는 흡족한 얼굴이 되어 또 아무 소리나 지껄였다.
“그렇죠? 적습니다. 이것도 한 가지 증거가 될 거 같습니다.”
“아니, 아니지. 증거로는 부족해. 그래, 이게 좋겠군! 이 물도 먹이세.”
“네?”
“문제가 있군. 아까 다 먹었잖아. 그래, 이렇게 하세. 안 그래도 찜찜했어. 다들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나도 이 한 몸 아끼지 않고 응? 의학 발전에 기여를 해야 하지 않겠나.”
“그게 무슨.”
나는 이어지는 리스턴의 광기 어린 말에 모르쇠를 쳤다.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였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이 새끼.
이 물 먹이려는구나.
‘그래…… 지금 관찰되는…… 미아즈마. 아니, 내가 미쳤나. 대장균 비슷한 형태는 이미 죽었어. 그래서 파괴된 거야.’
괜찮았다.
리스턴이 관찰한 미아즈마는 사실 죽은 균에 불과하니까.
‘그게 죽은 겁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뭔가 수상쩍어질까 봐 말을 아꼈을 뿐, 나는 알고 있다.
“그래, 그렇게 마시게.”
해서 나는 찝찝한 마음을 던지고, 겉으로는 우엑 하면서 그 물을 마셨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과 리스턴 그리고 블런델은 역시 평이가 의학 진보에 앞서는 진짜라고 떠들어 댔다.
좀 부끄러웠다.
“우욱.”
“웨에에엑.”
“으, 배가…… 배가.”
내 옆에는 진짜라는 말로도 부족한, 말 그대로 살신성인을 실천하고 있는 이들이 그득했으니까.
세상에.
마시란다고 저 똥물과 시신에서 추출한 물을 마실 줄이야.
“그래, 나도 마셨네.”
“저도요.”
하여간, 나를 시작으로 실험에서 빠져 있던 우리까지 물을 다 마셨다.
그렇게 하고 나서야 나는 나머지 증류수를 환자들에게 먹일 수 있었다.
할 수 있다면 수액의 형태로 주는 것이 더 낫긴 할 터였다.
먹는 것보다 몸에 꽂는 게 더 좋아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흡수의 의미로만 보면 먹는 게 더 나았다.
“웨에엑.”
“웨엑.”
하지만 토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예외였다.
그렇다고 바늘을 꽂아?
‘없는 건 아냐…… 없는 건 아니다.’
이 암울한 세상이라고 해서 주사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없는 건 아닌데, 형태가 꽤나 조악했다.
그리스 시절 농 뽑아내는 용도로 쓰이던 것에서 별다른 발전을 이루지 못해서 그랬다.
‘내가 따로 만들어 둔 게 있어.’
물론 나에게는 무덤에서 살려 온 사람을 완전히 회복시키기 위해 씨름하던 시절 만들어 둔 주삿바늘이 있었다.
‘오버 테크놀로지야…… 무엇보다.’
당장 수액 꽂아 넣는 건 어찌어찌 잘 속여서 할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저어되는 건 이 수액과 바늘의 멸균이 완벽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수술 때도 이게 걱정이긴 하지만 그건 뭐가 되었건 피 안에 뭘 직접 넣는 건 아니지 않나.
그에 비해 이건 제아무리 내가 증류를 했다손 치더라도 완전 멸균인가?
균이 있다면 바로 패혈증이다.
‘죽기 직전까지는 미루자. 그리고 블런델도 불안해.’
블런델은 리스턴과는 또 다른 의미로 열린 사람이다.
나에게서 무언가 배워 가려는 의지가 충만하다.
이건 좋다, 좋다 이건데…….
이 바늘 보면 저 양반이 또 못된 버릇이 도질 게 뻔했다.
바로 섞어 수혈.
하.
“마셔!”
“네, 웁.”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어쩔 수 없이 수액을 후순위로 미룰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강의실은 또 한 번 아비규환이 되었다.
토가 나올 거 같은데 물을 마셔야 하는 고통이라니.
하면서도 좀 미안했다.
“휴, 힘들면 좀 이따 먹게.”
“그래…… 아니, 이게 뭔 지랄인가 대체.”
천하의 리스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블런델과 구석에 가서 앉을 지경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이래야 산다는 걸 알고 있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제자들과 리스턴 그리고 블런델이 수군거렸다.
“가만 보면 제일 독한 면이 있네.”
“그러니까. 환자가 고통스러울 거란 생각은 요만큼도 안 하는 거 같아.”
“저 정도의 과감성이 있어야 의학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걸까요?”
“평이의 야만성이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있다고 봐야겠지.”
“제 친구지만 저럴 땐 진짜 무섭네요.”
블런델, 리스턴, 콜린, 앨프리드, 조지프 순이었다.
미친놈들.
과감해야 할 때는 소심하고, 소심해야 할 때는 지나치게 과감한 건 내가 아니라 니들이다.
내가 사실 21세기에서 와서 다 아는데 이래야 된다고!
라고 외치고 싶다.
하지만 외쳤다간 한때 그렇게 외친 적이 있던 해부학 교보재가 될 확률이 100%라 닥치고 물이나 먹였다.
“먹어!”
“으, 으으!”
그렇게 한 시간 넘게 사투를 벌이고 났더니 기진맥진해졌다.
진짜로 녹초가 되어 버렸다.
다행인 것은, 아주 높은 확률로 독소로 인해 증상이 발현되었을 이들의 증세가 아까보다는 한결 나아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마 내일, 혹은 길어야 모레 정도면 다 호전이 될 터였다.
물론 먹은 게 워낙에 이상한 물이다 보니 이후로 어떤 감염이 생길는지는 알 수 없긴 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인간은 강하지. 게다가 이 시기 인간들의 장이라면 더더욱 그럴 거야.’
21세기 대한민국 사람이 저 물을 먹었다?
그럼 90% 이상의 확률로 중환자실행이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정말로 그래.
하지만 이 시기 인간들은 어떨까.
어린 시절부터 이 비슷한 환경에 노출이 되어 있었을 터였다.
급하게 조성된 슬럼가 같은 경우엔 그냥 골목에 똥오줌 바로 생산하거나 집에서 생산하고 거따 내던지잖아.
음식물은 또 어떻고?
‘냉장고? 먹고 뒤질래도 없지.’
습한 런던 기후상 음식은 쉽게 상할 수밖에 없는데, 빈민의 경우 그런 음식조차 먹어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
이들을 믿어야 했다.
“뭐 그리 흐뭇하게 웃고 있나. 악귀처럼 물 먹여 놓고서. 상식적으로 말이야.”
그렇게 애써 나를 다독이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옆으로 다가와 염장을 질렀다.
악귀라니.
사람 살리려고 애쓰는…….
‘아니, 애초에 그 물 먹일 생각을 한 건 당신이잖아!’
생각해 보니까 개열 받는데, 상식이라는 말을 했다는 점이 더더욱 그랬다.
그러거나 말거나 리스턴은 말을 이었다.
대부분은 그렇지 않지만, 극히 일부의 사람들은 상대가 어떤 반응을 보이건 말건 신경을 안 써도 되는데, 그중 하나가 리스턴이었다.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완력이 있어서 그랬다.
나를 상대로 해도 마찬가지였기에 조용히 있었다.
“생각해 보게, 평. 외과 의사를 지망하고 있으니 간과할 수 있겠지만 말이야.”
뭔가 가르치는 투였다.
똑똑한 사람이고 발전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지만, 내가 리스턴에게 배울 것이 있을까?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아마 완력 키우는 법일 텐데 그것도 아닐 거 같았다.
타고난 건 배울 수 없는 법이니.
물론 나는 겉으로는 경청하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토와 설사를 하는 건 뭔가. 안에 있는 물이 나오는 거지?”
“아, 네.”
의외로 맞는 소리를 하길래 고개도 끄덕였다.
“그럼 물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나?”
“네?”
“안 나오겠지. 그래. 설사나 토하는 이에게는 물을 주면 안 돼. 이게 상식일세.”
“아.”
“하하, 자네 놀랐구만? 그렇지?”
“아.”
“그것뿐만이 아냐.”
아.
이 짤막한 말에 이토록 많은 감정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지금 알았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지금 알았다.
리스턴은 내가 감복했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물을 빼 주는 것이 옳네. 피를 내는 거지. 하하. 이거 이거, 평. 순 맹탕이구만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