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2)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2화(162/505)
162화 실험…… [4]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너네 물 마시면 죽는다고 했던 깡패가 너네 물 안 마시면 죽는다고 하기 시작하자 변화가 상당히 극적으로 벌어졌다.
“네네, 먹겠습니다!”
“네!”
가뜩이나 목말라 죽겠는 상태 아니겠나.
특히 열까지 나는 애들은 앞뒤로 쏟아 내면서 동시에 열로 인해 점막이 말라 버리기까지 해서 더더욱 목이 말랐다.
“으…….”
다만 기운이 없어서 적극적으로 나서진 못했다.
이렇게 그냥 두면 아마 죽을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원래 세상은 강한 사람만이…….
‘아니, 아니지. 이건 너무 리스턴식이잖아.’
퍼뜩 정신을 차린 나는 증류수를 열나는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내일부터는 소금도 좀 타서 줘야겠네.’
수액으로 주는 것에 비해 입으로 먹이는 것이 더 우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었다.
수액으로 주려면 농도를 맞추어야 하지 않나.
계량이 아예 안 되는 시대는 아닌 만큼 가능하기야 하겠지만 하여간, 나는 이 물에 이런저런 조작이 더 가해지는 것이 너무 불안했다.
멸균에 대한 개념은커녕 방법조차 거의 없는 상황에서는 내가 뭔가 만지면 만질수록 사람이 죽어 나갈 확률이 높아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셔.”
“네, 네.”
열이 그 잠깐 사이에 좀 더 올랐다.
‘이거…… 진짜 사람 하나 죽는 거 아닌가.’
<리스턴 박사, 조선에서 온 마술사 김태평과 실험 도중 사람 죽여.>
헤드라인으로도 딱이다.
딱이긴 한데 진짜로 신문에 날 거 같진 않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19세기에서 사람 죽는 건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거든.
게다가 의학도가 의학의 발전을 위해 매진하다가 죽었다고 하면 경찰은 오지 않을 터였다.
뭐, 뭔가 화제가 된다면 칭찬이나 하러 오겠지.
실제로 해부 실습하다가도 심심치 않게 죽어 나가고 있잖아.
그나마 우리는 장갑을 억지로라도 지급하고 있다 보니 어지간한 골통이 아닌 이상 그걸 써서 나름 생존율이 올라가고 있지만, 다른 의과대학에서는 장갑 끼는 것이 사도의 길이라 규정했다.
‘지들만 죽어 나가는 거지 뭐.’
나는 그렇게 한숨을 푹 쉬다가, 일단 물이나 먹였다.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게 아니라 이것뿐이었다.
만약 물도 스스로 못 삼킬 정도로, 그러니까 폐렴이 생겨서 삽관을 하게 되거나 아니면 그냥 의식이 혼미해져서 흡인성 폐렴이 생길 가능성이 생기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수액을 받아 넣어야 하지 않겠나.
전에 한번 해 본 경험에 의하면, 아직은 어불성설이다.
최대한 뒤로 미루는 것이 좋았다.
“으으.”
“그래, 열심히 마셔라.”
나는 열로 인해 뜨거워진 상대의 머리통을 두드리고는 물을 남겨 두었다.
그렇게 한동안 물을 먹이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었다.
그사이 물 먹은 놈들이 여기저기 무언가를 싸 대고 또 쏟아 낸 통에 강의실 안은 온통 악취로 가득해졌다.
“이런 망할.”
리스턴조차 참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 나갔을 정도였다.
“저 냄새 안에도 미아즈마가 있는 것이 분명하네.”
“그…….”
여기서 아니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모르겠다.
근데 한 가지 확실한 건 있어.
별로 좋은 일이 벌어질 거 같진 않아.
“그럴 거 같습니다.”
해서 나도 동조했다.
사실…… 악취를 풍기는 곳에 미아즈마 아니, 균이나 바이러스가 많은 건 사실이잖아?
저런 걸 잘 처리해 버릇하는 걸 가르치게 되면 이 런던도 좀 더 살 만한 지역이 될 수도 있었다.
좋게 좋게 생각하면서, 나는 리스턴 박사 등과 함께 연구실로 돌아왔다.
무슨 일이 생기면 블런델이 혹 관에서 깨어났을 경우 치라고 만들어 두었던 종을 치라고 일러두고서였다.
애초에 땅속에서도 당길 수 있을 만큼 길게 고안된 제품이니만큼 연구실까지도 충분히 닿았다.
“휴.”
“이렇게까지 할 게 있나. 어차피 물 먹으면 나을 텐데.”
마지막으로 종이 잘 울리는지 확인을 하고 나자 리스턴이 껄껄 웃었다.
그 폼이 자못 당당한 것이 아무래도 세상 모든 감염질환을 저 물 먹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거…… 이렇게 그냥 두면 물고문도 하겠는데.’
내가 오바하는 건가?
뭐 이런 생각이 든다면 아직 19세기 런던을 잘 모르는 거다.
여기서는 상상 가능한 모든 일이 벌어질 수 있을뿐더러, 21세기 인간으로서는 아예 상상도 못 할 일들일수록 매일같이 벌어진다.
“그……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까요. 그리고 물만으로 살아나면 약은…….”
“그래, 내가 새로운 가설을 준비 중일세. 깨끗한 물이야말로 최고의 약이야.”
아.
이런 말 어디서 들어 본 거 같다.
21세기에도 있어.
약간 사짜 냄새나는 사람들이 이런 말을 주로 하지.
그리고 막상 가면 그냥 물이 아니라 뭔가 다른 것도 팔고…….
‘리스턴은 순수한 상태니까 돈을 바라진 않겠지만…….’
원래 맑게 미친 사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다.
숨은 동기가 있으면 그 동기만 어떻게 하면 고쳐지는데 저런 건 약도 없거든.
‘지금 당장 뭐…… 그럴 건 아니니까.’
방법이 있는 게 아닌 데다가, 내 생각에 오늘만큼은 잘 수 있을 때 자지 않으면 아예 못 잘 가능성이 높다 보니 난 일단 자리에 누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무래도 나뿐인 듯했다.
나머지는 자리에 눕기는 했지만 잘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치 수련회 온 중학생이라도 된 것처럼 재잘재잘 입을 멈추질 않았다.
“만약 이게 증명이 된다면…… 하하. 나는 정말 역사에 이름을 남기겠군.”
“저희 다 남길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 실험에 참여했고 또 주도하기도 했으니까요.”
“하하하하! 그렇지! 이게 다 평이 덕분이야.”
“고맙다, 평.”
“고마워!”
그래…….
고마워하는 건 좋다 이거다.
근데 자야 된다고…….
니네가 이상한 거 먹였잖아.
생각보다 감염 환자들은 손이 많이 가는 환자들이라고.
게다가 그냥 이상한 것을 넘어 너무 이상한 것을 먹여 놨다 보니 당최 이 환자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아예 미지수였다.
“하하하.”
“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그러거나 말거나 이놈들은 껄껄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약간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니, 옆 옆 방에서는 니들이 물 먹인 애들이 지금 토하고 설사하고 복통으로 아파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라고.
그 와중에 열나는 애들도 있고…….
“이제 좀 잘까?”
“네.”
하여간, 거의 모든 일에 있어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한 리스턴이 휘영청 저물어 가는 달을 보며 하품을 하고 나서야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이제부터는 입을 열면 죽는다.
누구한테?
리스턴한테.
정말 내가 저 완력이 있었다면 이 시대를 두 배는 더 빨리 바꿀 수 있었을 텐데.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한을 기도로 풀고 자려는데, 줄이 흔들렸다.
설마.
지금까지 조용했잖아.
내 예상보다 템스강 물이 약했든지 아니면 19세기 사람들이 강했든지 둘 중 하나라 여기고 있었는데.
딸랑딸랑.
이제야말로 자자 하는데 그 기대를 종소리가 철저히 무너뜨렸다.
“하.”
화가 났다.
종을 친 사람한테 화가 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이 상황이 화가 나.
드르륵.
하지만 어쩌겠나.
나는 의사고 저기 환자가 있다.
그것도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사람들이 생각해도 별 틀릴 게 없는 환자가 있다.
‘시발.’
억울한 기분에 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걸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우리 무식한 19세기 의사들은 무식하긴 할지언정 열정 하나만큼은 21세기 의사 누구를 데려와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사람들이니까.
드르륵.
하여간, 나는 종이 울린 곳 안쪽으로 들어갔다.
새벽에 무슨 일이 터져도 대응이 가능할 수 있게끔 내가 이 병원에 와서 만들어 내거나 수정해 왔던 거의 모든 기구를 가져다 놓았다.
물?
물도 조지프와 앨프리드, 콜린을 노예처럼 굴려서 어마어마하게 준비해 놨다.
그래, 무슨 일이 벌어져도…….
“교수님! 숨을 잘 못 쉬는 거 같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있으려니, 본인도 엉덩이 뒤가 불룩 나온 것이 상서롭지 못한 증상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을 위해 종을 울린 살신성인의 화신이 눈에 들어왔다.
누워서 헉헉대고 있는 놈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열이 났던 놈이다.
지금도 난다.
“청진기!”
원래는 이 사람이 죽었나 살았나 판정하는 데 쓰려고 만들었던 조악하기 짝이 없는 청진기가 내 부름에 응했다.
뭔가 마법적인 말이 되었는데 당연히 조지프가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끼는 동시에 일단 윗도리부터 벗겼다.
‘숨을 이렇게 헐떡거리는데 옷도 안 벗기고 대체 뭐 하냐…….’
아휴.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어쩌겠어.
이런 거까지 지금 구구절절 고치려고 들면 사람 죽는다.
‘이런…… 이미 늑간근(Intercostal Muscle)이 움직인다!’
급성 호흡곤란에 있어 가장 명확한 징후다.
여기서 더 방치하면 청색증이 오고 거기서 더 지나면 죽는다.
‘폐렴…….’
소리를 들어 보니 소리가 뭉개지고 있었다.
다행히 폐렴이 엄청 심한 건 아닌 거 같지만 그것조차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사실 청진을 제대로 한 건 군의관 때의 일이기에 그랬다.
대학 병원에서는 이상하면 사진부터 찍지, 이런 건 잘 안 한다고.
“삽관!”
“어? 삽관? 근데 이거…….”
“어쩔 수 없어! 마취해!”
“마, 마취. 알았습니다!”
콜린이 부리나케 달려서 마취 가스를 들고 왔다.
끼릭끼릭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미리 준비해 놨던 독주를 목에 부었다.
순수 알코올이 있으면 더 좋은데…… 이게 자꾸 날아가더라고.
21세기에서는 대체 어떤 식으로 보관을 했던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여하간에 박박 밀다 보니 때부터 밀려 나왔다.
하.
좀 씻자!
‘무리지…….’
결벽증으로 소문났던 여왕마저 한 달에 한 번 씻었다잖아?
“칼!”
“네!”
“당겨!”
“네!”
아무튼, 나는 이제 나름 보조에 익숙해진, 그리고 환자를 보자마자 철부지의 얼굴에서 완연한 의사의 얼굴이 된 조지프와 함께 일단 환자의 목을 쭉 쨌다.
그러곤 구멍에 쇠로 된 관을 넣었다.
이게 안에서 부식이라도 되면 중금속 중독이 되겠지만 그렇게 오래 넣을 생각도 없고, 또 지금 그따위 것을 생각할 상황도 아니었다.
지금은 일단 당장의 위기를 넘겨야 했다.
“풀무 달아!”
“네!”
그렇게 들어간 관에 풀무를 연결했다.
말 그대로 대장간에서 주로 쓰는 건데 아무리 봐도 지금의 고무 제조 기술로는 앰부백 비슷한 것도 만들 수 없을 거 같아 이걸 고쳐서 쓰기로 했다.
슉.
하여간, 그렇게 꽂아 넣고는 우리는 풀무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고농도 산소를 넣어 주는 게 아니라 그냥 숨만 도와주는 거다 보니 효과가 내가 중환자실에서 겪었던 거처럼 드라마틱하진 않았다.
그나마 좀 나아지는 건, 처지는 의식 때문에 억제되던 호흡을 밖에서 넣기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이제 어쩐다.
하고 있으려니 풀무질을 하고 있던 앨프리드가 처연한 얼굴이 되어 물었다.
“근데, 평.”
“응?”
“이거…… 언제까지…… 언제까지 해?”
“아.”
기계가 없지.
당황한 내 표정을 읽은 리스턴이 내가 해야 하지만 하기 싫었던 말을 해 주었다.
“하지 말라고 할 때까지 하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