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3)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3화(163/505)
163화 실험…… [5]
“흐어어…….”
리스턴의 명은 지엄했다.
도저히 어길 수 없는 숙명이라도 되는 듯 우리 앨프리드 선배의 몸을 속박했다.
표현이 좀 이상한데, 쉽게 말하면 그냥 죽어 나가고 있다는 얘기였다.
“교대.”
“으어어.”
물론 앨프리드만 죽어 나가는 건 아니었다.
조지프, 콜린이 돌아가면서 풀무질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미안하긴 했다.
헌데 관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가 없잖아.
‘패혈증…… 이렇게 진행이 빠를 줄이야. 이게 살아날 수 있을까?’
될까?
포도상구균…….
이놈은 무척 독한 놈이지 않나.
페니실린이라도 있으면 모르겠지만 내가 쥐고 있는 건 썩은 빵뿐이었다.
거기서 더 발전한 게 있냐고?
없다.
화학자들에게 성분 분석을 맡기긴 했는데 어째 지지부진했다.
하긴, 이게 쉽게 되는 거면 20세기에나 이르러서 되었겠나.
“근데, 평.”
그렇게 고민에 빠져 있으려니 리스턴이 나를 불렀다.
표정이 심각했다.
이제야 사람이 죽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 모양이었다.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하나?”
“아.”
그제야 시계를 돌아보니 벌써 풀무질을 한 지 열 시간이 흘러 있었다.
다행인 것은 독소로 인해 증상이 발현되었던 것으로 보였던 애들은 거즘 다 좋아졌단 점이었다.
거기에 더해 감염으로 의심되는 애들도 당장 밤보다는 확실히 나아지고 있었다.
애들이 워낙 강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나마 희석한 것을 먹여서 그런가 경과가 좋았다.
심지어 아무 증상도 보이지 않는 놈들도 넷이나 있었다.
대체 저 새끼들은 뭘까?
“일단은 계속해야죠.”
“솔직히 말해 보게. 살 거 같나?”
“그…… 흐음.”
나는 다시 환자를 돌아보았다.
높이 쳐 봐야 나보다 서너 살이나 많을까 싶은 녀석이었다.
앳된 얼굴인데 명백히 죽어 가고 있었다.
숨소리를 들어 보니, 이건 또 별 차이는 없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군. 흐음…… 그래, 계속 이 짓을 해야 한다 이거지?”
리스턴은 교대해 풀무질을 해 대고 있는 조지프를 돌아보았다.
주변으로는 앨프리드와 콜린이 땀에 전 채 널브러져 있었다.
저게 앰부백이라도 됐으면 훨씬 나았을 텐데 풀무다 보니 쥐어짜는 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놈들이 다 좋아지고 있어서 어제처럼 바쁘게 물 먹이러 뛸 필요가 없어졌다는 점이었다.
“야! 뭐 구경났어! 가서 물 안 처먹어?”
아니, 뭐 좋아져서 그렇다기보다는…….
리스턴이 물 먹여야 살아난다는 데 딱 꽂혀 버려서 이렇게 되었다고 하는 게 맞았다.
“히익.”
“네, 먹겠습니다!”
몇 놈은 저러다 저거 물 때문에 일 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셔 대고 있었다.
하지만 굳이 말리지는 않았다.
젊기도 하고, 무엇보다 물만 마셨는데 그…….
어? 그것들을 이겨 낸 놈들이지 않나.
걔들이 물 때문에 뭐가 되겠어?
안 되지.
그러면 진짜 이 세상이 잘못된 거다.
나는 꿀꺽대는 애들을 뒤로하고, 다시 환자를 돌아보았다.
‘이대로 두면 죽는다.’
혈압도 떨어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아직 제대로 된 혈압계가 없다 보니 정확한 계측은 안 되는데…….
하여간, 맥이 약해지고 있었다.
호흡도 호흡인데 아무리 숨을 쉬게 해도 혈압이 떨어지면 폐로 들어온 산소가 멀리 안 갈 거 아닌가.
‘수액…… 이래 죽나, 저래 죽나. 그 상황이야.’
이판사판이다, 이 말이었다.
내 눈빛이 조금 변한 것을 확인했을까?
아니면 전에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 걸까.
블런델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혹시 수액인가? 전에 했던, 그거?”
“아…… 네. 다만 좀 문제가 있어요.”
“왜? 나도 왜 그걸 안 하나 했었네.”
“아시다시피 우리가 마신 물에도 미아즈마가 일부 있긴 하지 않았습니까?”
멸균 과정을 거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마시는 용도라면 문제 될 일이 없기도 하고.
그런 걸로 문제가 생길 거라면 벌써 인류 멸종이지.
아니, 인류까지는 모르겠는데 런던 사람들은 다 죽었어.
“아, 그렇지. 우리가 확인했지.”
“이제 와서 그걸 부정하는 건 무리지.”
리스턴과 블런델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미아즈마라는 단어만 빼면, 거의 현대 의학의 개념이 잡혔다고 볼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당연히 구멍이 숭숭 뚫려 있겠지만 하여간…….
‘어라? 나 왜 눈물이…….’
감개무량하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걸까.
지난 몇 달간의 개고생 그리고 마음속 쌓였던 분노와 탄식과 같은,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감정이 마치 주마등처럼 휘리릭 지나갔다.
“어, 자네 왜 그러나.”
“괜찮나? 하긴 밤을 새웠잖아.”
“몸이 약하다니까. 아편팅크라도 줄까? 그거 먹고 푹 자면 좋아져.”
“아, 그럴까. 아니면 뭐, 피가 몰려서 그런가. 한번 빼 줘?”
아.
아직 멀었군.
분노가 새로운 에너지가 되어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어느새 차오르던 눈물도 쑥 들어갔다.
아편과 사혈이라니.
이 시대에는 여전히 극복해야 할 난관이 너무 많았다.
“아니, 아닙니다. 일단 수액을 꽂죠. 근데 죽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아요. 가족 연락하죠.”
“그래, 그건 내가 하지. 내가 신부님도 부르겠네.”
“경찰은…… 부를 필요 없을까요?”
어떻게 보면 아니, 어떻게 봐도 우리가 죽인 거 아닌가?
과실치사 정도는 될 거 같은데…….
이제 막 출셋길 열렸는데 이런 걸로 발목 잡히게 되면 큰일이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 것도 큰일인데, 이 시대에 나라는 사람이 벌써 사라지면 어떻게 되겠나.
앞으로 수도 없는 죽음을 거치고 나서야 원 역사대로 흘러가게 될 게 분명했다.
아니, 난 솔직히 아직도 여기가 내가 살던 지구가 맞는지도 모르겠어.
내가 알고 있는 현대 의학의 시대가 영영 오지 못할 수도 있다.
“경찰?”
“왜?”
내 걱정과는 달리 둘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이었다.
“그…… 사람이…….”
“실험하다 죽는 건데. 수술하다 죽는 거랑 차이가 없네.”
“아.”
하긴, 여기 맨날 숱하게 죽어 나가는데 경찰이 온 적은 거의 없지.
그나마도 사람이 죽어서 온 게 아니라 우리 때문에 왔었다.
니네 혹시 시신 사는 거 아니냐고.
아니, 동의받은 시신은 괜찮은데 혹시 도굴한 시신 사는 거 아니냐고 왔었다.
그런 정도의 일이 아니면 우리 런던 경찰들은 너무 바빠서 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좀 불러 주시고. 아, 맞아. 이거 풀무질할 사람도 좀 필요한데.”
“그건 내가 잡아 오지.”
“아…… 그, 네.”
리스턴의 잡아 온다는 말만큼이나 믿음직스러운 말이 또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여간, 나와 블런델은 그렇게 리스턴을 보내고 나서 증류수를 떠 왔다.
‘그냥 넣으면 안 돼. 적은 양도 아니고…….’
소금을 뿌려야 했다.
정확히 개량해서.
다행히 여기 단위가 개판이긴 한데, 나도 하루 이틀 산 게 아니다 보니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그래 봐야 머릿속에서 익히 아는 과학적인 단위로 변환해서 해야 하긴 하는데…….
하여간.
“소금은 왜 뿌리나?”
내가 하는 것을 매의 눈으로 살피고 있던 블런델이 물었다.
뭐든지 배워서 써먹겠다는 생각이 전해져 왔다.
이런 거 보면 이 시대 의사들은 낭만이 있었다.
단지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사명감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적 탐구심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뭔가 더 상위에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시벌.
그거랑은 별개로 이걸 또 뭐라고 둘러대야 할까.
여기서 삼투압이니 혈액의 농도니 하고 떠들어 댔다간 너무 수상해 보이지 않겠나.
그거 관련한 연구하는 모습은커녕 해부 말고는 아무것도…….
아, 칼 들고 수술도 좀 했지.
“소금을 뿌리면 고기가 오래가죠?”
“아, 그렇지.”
걱정과는 별개로 구라 마스터인 내 입은 절로 구라를 털어 대고 있었다.
“제 생각인데, 그 소금이 미아즈마와 연관이 있을 거 같습니다.”
억측이다.
아니, 맞는 말이긴 하다.
소금 곁에 두면 어지간한 세균은 터져 죽거든.
하지만 고기가 오래가는 것과 바로 연관을 지으려면 부패가 세균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혀내야만 했다.
“음. 가능성 있는 얘기야.”
하지만 블런델은 의외로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구라가 이 정도였나.
아니면 설마 벌써 거기까지 머리를 굴린 건가.
모르겠는데, 하여간, 잘된 일이었다.
“그럼 팍팍 넣지. 소금이 비싼 것도 아닌데.”
아니, 잘된 일이 아닐 뻔했다.
철저히 개량해서 넣고 있는데 한 움큼이 더 들어갈 뻔했어.
“조선에서는 말입니다.”
“조선? 갑자기?”
“고기를 잴 때 다 계산을 해서 잽니다.”
“재?”
“아, 그러니까. 소금 뿌릴 때요.”
이런 게 있었나?
없었을 거다.
애초에 조선은 고기 먹는 문화가 여기처럼 일상화되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블런델이 뭐 어떻게 알겠냐.
“아하. 자네 말을 들어 보면 말일세. 언젠가 조선이라는 나라에 꼭 가 보고 싶네. 대단한 나라 같아.”
“대단한 나라죠.”
그래, 이게 국뽕이다.
상당 부분 날조된 국뽕이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인가 보다.
나도 모르게 가슴을 펴고 말했다.
“하여간, 그래. 뭐 자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근데 난 여전히 소금이 미아즈마를 죽인다면 이미 이 친구 몸 안에 들어간 미아즈마를 죽이기 위해서라도 소금을…… 흠. 나중에 한번 해 봐야겠군.”
이제부터 블런델을 주시해야겠다.
배운 것을 실행에 옮기고자 하는 태도는 물론 학자로서 너무 좋은 태도긴 한데 의사로서는…….
의사는 환자한테 실습을 해야 하잖아.
소금을 쏴?
뭐…….
적은 양을 쏘면 그걸로 당장 죽지는 않을 텐데…….
아닌가.
그런 사례를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자아…….”
아무튼, 나는 그러한 걱정을 잠시 뒤로하고 환자의 혈관을 찾았다.
그나마 혈압이 엄청 떨어진 건 아닌지 찾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만약 그랬으면 또 중심정맥관 잡을 뻔했다.
모든 술기가 감염 위험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걸 감안하면 그건 피하는 게 좋았다.
‘옳지.’
원래 소변줄로 써야 하는 폴리로 팔뚝을 감아서 정맥을 찾은 후, 주삿바늘을 꽂았다.
수액 라인 따위는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물건이기에 바늘을 그대로 꽂고 있어야 했다.
“잘 잡아.”
“어.”
그건 뭘 몰라도 그냥 보기만 해도 움직이다가 어디 찌르면 죽을 거라는 확신이 들 만한 상황이라 널브러져 있던 나머지 둘이 와서 환자를 붙잡았다.
이미 의식이 나가 있지만 이제 수액이 들어가다 보면 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컸다.
그때가 걱정이었다.
전에도 한번…….
“내가 잡지.”
그때 리스턴이 나타났다.
진짜 몇 명을 잡아 왔다.
“니들 이제부터 이거 하고. 평. 물 부어.”
“아, 네.”
딱 보자마자 환자가 어떤 식으로든 움직일 일은 이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물을 부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얼마간 물이 들어가고 나자, 환자가 켈록거리기 시작했다.
“잘 잡…….”
흔들리면 안 된다고 소리를 치려 했으나, 나는 이내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때…… 때렸어요?”
“어.”
“아.”
환자가 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