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4)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4화(164/505)
164화 실험…… [6]
물을 부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인간 자체가 너무 강해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호흡이 좋아지고 있다…….’
소금물 붓는다고 보통 이렇게 되던가?
만약 그랬다면 현대 의학은 못 살리는 사람이 없을 터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가?
마구 죽어 나간다.
진짜 최선을 다해 어마어마한 설비를 이용해도.
‘여기 진짜 지구가 아닌가?’
이 친구들 혹 지구인이 아닌 거 아닌가?
그러니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우연은 아닐 터였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
이게 산다고?
“하하. 물이 만병통치였구만.”
난 눈앞에서 기적을 맛본 느낌이 들어서 그저 조용히 있었다.
그사이, 삽관했던 것을 빼고 직접 수처(Suture, 봉합)까지 해낸 리스턴 박사가 껄껄 웃었다.
다시 봐도 실력이 좋긴 했다.
가르쳐 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저렇게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자꾸 봉합하는 당시에 양측 절단면을 딱 맞추려는 습관이 있는데 그것만 개선하면 어디 가서 봉합 장인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터였다.
확실히 괜히 소드마스터가 아니다.
“그래. 그런 거 같아. 흐음.”
리스턴은 저런 말을 해도 괜찮았다.
명색이 외과 의사고 나랑 같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보니 어지간한 사고는 치기 전에 막을 수 있거든.
게다가 의외로 또 섬세한 면이 있었다.
바로 어제 이 이상한 물들을 먹여서 설득력이 확 반감된 면이 있긴 한데…….
그래도 19세기 의사들 중에서는 상당히 어? 이 정도면 진짜 신중하다고.
‘저 인간은…….’
그에 반해 블런델은 리스턴보다 훨씬 과격한 인간이었다.
일단 피를 섞어서 줬던 놈이지 않나?
거기에 더해 생매장을 막아 보겠다는 숭고한 꿈까지 꾸고 있는데…….
내가 청진기 만들어서 준 후로는 이제 더 사고를 치지 않는 거 같긴 한데 그전에 했던 짓을 보면 진짜 이게 사망 확인인지 확인 사살인지 헷갈리는 일들이 많았다.
아니, 세상에 심장을 찔러서 피가 튀는지 보겠다는 건 어디서 나온 발상이야?
‘저 인간은 앞으로 물만 때려 부어도 이상하지 않은 놈이지…… 문제는…….’
이제 여기에 꽂히게 되었으니 한동안 물을 주게 될 것이 뻔했다.
보통은 그러면 큰일이다.
제대로 된 치료를 해야 할 타이밍에 물을 주면 어찌 되겠어?
가령 약을 줘야 하거나 혹은 급히 째야 하는데 물을…….
‘아니, 오히려 잘된 건가?’
하지만 19세기 한정으로 물은 만병통치가 맞다고 봐도 좋을 거 같았다.
다른 이상한 짓 하는 대신 물만 준다고 하면 거의 뭐 최고 아니겠나?
그렇잖아.
이 새끼들…….
무슨 이론이나 가설을 세우고 환자를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상상만으로 환자를 본다니까?
“이제 슬슬 다 좋아지고 있는 건가?”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아무튼, 물을 부은 효과를 보고 있었다.
한 이틀 정도 되었을 때까지는 진짜 개고생했더랬다.
증류수 만드는 게 이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닌데…….
가뜩이나 아픈 놈들에게 대강 만든 물을 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그렇다고 설사와 구토로 뻔히 탈수 증세를 보이는 놈들에게 물을 안 줄 수도 없고.
이러한 복잡한 기전들을 다 말해 줄 수가 없다 보니, 또 간만에 진짜 몸이 힘들다 보니…….
-시발놈들아! 물 안 끓여!
나는 또 한 번 험한 말을 하고야 말았다.
-시발?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 입에 착 감기는구만. 욕인가?
-네, 욕입니다.
-자자. 다 들었지? 시발놈들아! 물 끓여! 빨리빨리 움직여!
그 결과 나는 한 마리의 악마를 깨우고야 말았다.
미스터 시발.
나의 형님 리스턴이 새롭게 획득한 별명 아니, 칭호였다.
말에는 느낌이라는 게 있는 법인데, 리스턴의 말마따나 뜻을 몰라도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거나 긴장이 되게 만드는 말이 바로 이 단어였다.
영어는 욕이라고 해 봐야 약간 좀 창의적인 욕이 다이지 않나?
억양이 막 엄청 강하지도 않고…….
-이거 좋구만.
그런 거나 쓰다가 마법의 단어를 배우고 나더니 리스턴은 이제 하루에 한 번 그 말을 안 하면 입 안에 가시가 돋치기라도 하는지 매일 사용하고 있었다.
그 덕분이라고 하면 좀 너무 상스럽지만, 하여간, 우리는 위기를 넘겼다.
“제군들.”
리스턴은 감명 깊은 얼굴로, 실험에 참가했던 학생들을 다 불러 모았다.
모두 스물이었다.
단 한 명의 낙오도…… 그러니까 죽은 사람이 없었다.
이따위 실험을 한 것이 잘못이긴 한데, 하여간, 아무도 안 죽었다.
“수고했다. 덕분에 의학이 한 번 더 진보했어. 정말이다. 미아즈마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바뀔 거야.”
리스턴은 수고했다는 의미로 맨 앞에 있던 학생의 어깨를 두드렸다.
열도 나고 설사도 하고 증상이 제일 심했던 녀석인데, 지금도 엉덩이 부근에 무언가 상서롭지 못한 것이 묻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대단히 뿌듯해하고 있었다.
볼품없어 보이긴 했지만…….
‘가슴을 더 펴라. 자격이 있다.’
나중에 어떻게 기록이 될까.
아마도…….
세계 최초로 세균 개념을 잡게 되는 현장으로 기억이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몸에 똥이 묻었건 뭐가 묻었건 무슨 상관이겠나.
이 녀석들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실험에 나선 놈들이고 심지어 성공한 놈들이었다.
“자, 그럼 원장에게 갈까.”
“원장에게?”
그러나 리스턴은 치하를 상당히 대충 끝내고 곧장 강의실을 나섰다.
아무리 증상들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너무 싸 재껴서 그런가 아직도 냄새가 나서 그럴 터였다.
“그래. 이걸 말해 줘야지.”
“아, 하긴. 그렇지…… 가자고.”
게다가 급한 일이 있었다.
원장.
대체 원장님으로 불리는 일 외에 하는 일이 뭐가 있는 건가 싶긴 한데, 들어 보면 런던 사교회에서 그래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거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이 개념을 인정하게 된다면 적어도 런던의 의학 수준은 진일보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미아즈마가 실은 공기나 이런 것이 아니고 어떤 생물이다?”
“네, 아니…… 공기가 아주 아니라는 건 아닙니다. 거기에도 뭔가 있겠지. 근데 종류가 다를 가능성이 큽니다. 적어도 우리에게 진짜 위험한 미아즈마는 바로 이놈들이에요.”
리스턴은 원장실로 쳐들어가서 곧장 종이 쪼가리를 밀어 넣었다.
종이에는 개발새발 그린 세균이 있었다.
약간 의도적으로 그렇게 그린 것이긴 했다.
대장균과 포도상구균을 완전히 구분하게 되면 이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헷갈리게 될 거 같거든.
“흐음.”
원장은 고뇌에 빠졌다.
그사이 리스턴은 지난 며칠간 행했던 실험에 대해 말했다.
“먹였다고?”
“네.”
원장은 그 우악스럽기 그지없었던 실험에 대해 놀란 얼굴이 되어 되물었다.
역시 원장이라는 위치에 괜히 오른 것이 아니로구나 싶은 순간이었다.
순간이라고 표현한 것은 말 그대로 그 순간에만 그렇게 느껴서 그랬다.
“학생들보다는 좀 어려운 사람들에게 먹이지 그랬나. 그게 더 안전하지.”
“그럼 돈을 써야 하지 않습니까.”
“아하.”
이놈들아.
니들 진짜 악마냐?
사탄 들렸어?
“아무튼, 먹이자마자 약한 놈들은 설사와 구토를 했습니다. 한 세 시간 버텼나?”
“약해 빠졌군.”
이야기 핀트가 좀 이상한 거 같아서 내가 살짝 끼어들었다.
“저기, 약한 게 아니라. 미아즈마에 의해 증상이 생긴 거지 않습니까.”
“아, 아아. 그래. 신기한 게 그렇게 먼저 싸 버린 놈들은 먼저 낫더군요.”
“그래? 약한 놈들이……?”
내 덕에 다시 제대로 된 흐름으로 돌아온 리스턴이 나를 한번 돌아보고는 말을 이었다.
“네. 이 미아즈마의 밀도가 낮아져서라고 생각합니다.”
“아…… 싸면서 나왔다? 그것은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과 유사하군.”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러고는 자신이 전에 했던 얘기를 그대로 읊어 대는 원장을 보며 한심하기 그지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자기 상사를 보며 그런 얼굴을 할 수 있나?”
“저는 할 수 있지 않나요?”
“보통은 그렇지. 그래, 내가 틀렸다면 말을 해 보게.”
그 후로는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었다.
“아…… 그러니까 미아즈마가 이 작은 놈들이라고 치면 그놈들이 빠져나가서 증상이 약해졌다?”
“네.”
“그럴싸하군. 확실히…… 그리고 자네는 이게 적어진 물을 마셨는데 다 멀쩡했다고?”
“네.”
“근데 자네는 그냥 강해서 멀쩡한 것일 수도 있지 않나?”
“블런델도 먹었고. 여기 평도 먹었습니다.”
“아. 그럼…….”
뭔가 내 뜻대로 되어 가고 있긴 한데…….
왜인지 모르게 방금 기분이 나빴다.
“확실히…… 흠.”
원장은 내 얼굴을 보며 확실히 납득했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민에 빠졌다.
아니, 우리가 했던 말을 되짚어 보는 거 같았다.
저래 봬도 한창 시절에는 날리던 사람이다 라는 말을 다름 아닌 리스턴에게 들었기 때문에 조용히 기다렸다.
날렸다는 게 학문적으로 날렸다는 뜻이 아니어서 그랬다.
‘하긴…… 이 시기에 저렇게 오래 의사 노릇 하려면…….’
보통 완력으로 되겠나?
왕진 나갔다가 못 돌아오는 의사들이 어디 한둘이야?
괜히 의대에서 승마를 가르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다 죽어 나가니까 도망치라 이건데…….
도망을 치려면 어느 순간에는 싸워야 하는 순간도 있기 마련이었다.
그러한 것을 보면 리스턴은 진짜 의사가 천직인 셈이었다.
“다시 봐도 그럴싸해. 이 내용을…… 공표하도록 하지. 주 저자는 누구로 할 건가.”
“평이죠.”
“흐흐. 자네는 정말 피영을 애정하는군그래?”
“그럴 수밖에요. 제가 지금껏 의사로 살아온 세월 동안 배운 것보다 닥터 평을 알고 배운 것이 더 많습니다.”
“그래, 그러지. 하지만…… 공표한다고 바로 받아들여질 거 같진 않군. 너무 급진적이야. 아마도 공격이 있을 수도 있네.”
21세기에서 의사 입에서 나오는 공격이란 단어는 말 그대로 학계의 공격을 말했다.
즉 반박 논문이 나온다거나 아니면 소문이 돈다거나 뭐 이런 것들인데…….
“제가 같이 다니면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겠군. 피영. 들었지? 나도 자네를 아낀다네. 절대, 절대로 혼자 다니면 안 돼.”
여기서는 의미가 좀 더 직접적이었다.
진짜로 뒤지는 수가 있었다.
실제로 뭔가 제대로 된 주장을 펼치다가 정신병원에 갇혀 죽은 사람도 있지 않나?
이 시기 정신병원이라는 게 사실상의 감옥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끔찍한 시대다, 정말.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파리에 학회를 가겠다고?”
“네.”
“응?”
이건 내가 모르는 일 같았다.
그래, 리스턴 정도면 학회 갈 만하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원장이 나도 바라보았다.
“평을 데려간다…… 이거 공표하고 가면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가서 똑같은 실험을 할 겁니다.”
“똑같은……? 아…… 또 이걸 먹이겠다?”
“네. 우리 의견에 반하는 놈들에게 먹인다고 하면 아마 자존심 때문에라도 나설 놈들 많을걸요?”
“프랑스 놈들이야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 이상한 데서 용감한 놈들이니까.”
“네, 그렇죠.”
“그래, 뭐…… 피영이 상처 치료 방법을 살짝 손봐 준 덕에 절단 환자가 좀 줄었네. 지금까지 워낙 고생한 것도 있고…… 다녀오게. 몸조심해야 해. 프랑스가 코앞이라고 해도 배 타고 가는 길은 힘들어.”
“저한테 하는 말입니까?”
“아니, 피영이지. 자네는 수영으로도 갈 수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