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6)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6화(166/505)
166화 업턴 [2]
일단 살부터 빼야겠군.
첫 감상은 이랬다.
대개 중년 남성의 배가 그리 보기 좋은 물건이 아니라는 건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나마 21세기에 이르러서는 건강에 대한 상식이나 개념이 널리 퍼지다 보니 관리하는 중년이라는 말도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지만…….
여기선 상식이나 개념을 기대했다간 뒤통수 깨지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냥 봐서는 뭐가 보이진 않네.’
간신히 생각을 정리한 나는 아저씨의 배를 차근차근 살피기 시작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최근에 식충이 두 놈이 빠져서 그런가, 집안 형편이 좀 더 나아지긴 한 모양이었다.
보다 푹신해진 침대 위에 누운 아저씨의 양쪽 무릎을 굽히게 한 후 바라보고 있자니 딱히 탈장이 바로 보이진 않았다.
“뭐가…… 없는 거 아냐? 눌러 봐야 되는 거 아냐?”
사람 눈이 다 거기서 거기다 보니 조지프가 끼어들었다.
아마 자기도 나름 인정받고 있다는 걸 어필하고 싶기도 할 터였다.
아무래도 업턴까지 소문이 퍼지려면 나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나?
아저씨나 아줌마나 말은 안 해도 살짝 섭섭하긴 했을 게 뻔했다.
해서 나도 평소처럼 조지프에게 뭐라 하는 대신 좀 띄워 주기로 했다.
은혜 갚아야지 않겠나.
그래야 우리 엄마 아빠도 계속 어? 여기 얹혀살지.
“어, 그래. 뭐가 안 보이네. 근데 복통이 없어서 눌러 보기는 좀 그렇고…….”
“그럼 어쩌지? 딱히 이쪽으로 병이 없는 건 아닐까?”
물론 띄워 주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뭐가 돼야 띄우지.
이렇게 계속 똥볼만 차는데 뭘 하겠어…….
‘아냐. 내가 괜히 구라 마스터가 아니지.’
허나 최선을 다해 봐야 했다.
해서 나는 방금 조지프가 가리켰던 애매한 부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그래. 여긴 병이 없을 거 같아.”
탈장이 발생할 것 같지 않은 부위였다.
뭐 거기 이전에 다친 적이 있었다면 또 모르겠는데, 내 기억에 그랬던 것 같진 않았다.
배 타고 와서도 딱히 몸이 다치진 않았잖아.
나이를 고려했을 때 지금 오히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은 사타구니였다.
이쪽이 헐거워지면서 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말이었다.
좀만 더 말랐으면 지금도 보일 거 같은데 아쉽게도 두둑한 지방이 모든 것을 덮고 있었다.
“으음.”
“아저씨, 힘 줄 때 아프다고 했죠? 뭐가 나오고.”
“어? 어어. 그랬지.”
“그럼 힘을 줘 볼까요?”
“어디…… 어디에?”
배지.
배를 보고 있는데 달리 어디겠나.
이럴 때마다 확실히 19세기에 온 것이 실감이 난다.
그만큼 내 참을성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보니 나는 남몰래 한숨도 쉬지 않고 바로 말해 주었다.
“배요.”
“아하. 그래. 읍. 윽.”
하여간, 아저씨가 힘을 주자마자 사타구니, 그러니까 서혜부 쪽에 볼록 뭐가 나왔다.
장이다.
소장.
“어어! 이거!”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는 19세기 사람들에게는 좀 다르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주, 주여! 악령이!”
“아니, 이런 거였나! 이 사람이! 당신 술 만들어 팔아서 그래!”
“아이고.”
아버지는 하늘을 향해 울부짖었다.
아줌마는 수십 년간 아니, 대를 이어 팔아 온 술 탓을 하면서 은근슬쩍 아저씨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우리 엄마?
엄마는 주저앉았다.
그래…… 애써 그렇게 보려고 하면 저게 뭔가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긴 한다.
‘원래 장이란 것이 움직이는 거잖아……?’
힘을 세게 준 다음엔 힘을 뺀다고 해서 바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보니 여기서 장의 연하 운동도 어느 정도 관찰이 가능했다.
꿀렁인다 이건데…….
“조지프, 네 생각은…… 얘 어디 갔어?”
어차피 저 셋은 일반인이지 않나.
그것도 고등 교육을 받지 않은.
19세기 사람들.
그러니까 이런 반응도 무리는 아닐 거다.
하지만 조지프는 같은 19세기 사람이라고 해도 내 곁에서 수 개월간 보고 배운 것이 적지 않지 않나?
비록 내가 이들의 상식에 맞게, 그러니까 눈높이 교육을 해 왔다손 쳐도 나름 과학적인 사고를 키워 주었다는 것에 감히 반기를 들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주여!”
아니, 아닌 거 같다.
그 반기를 조지프 본인이 들고 있다.
“조지프? 십자가는…… 왜. 아니, 그리고 집에 뭔 십자가가 그렇게 큰 게 있어?”
“이걸로 내려쳐야지!”
“그런 걸로 내려치면 아빠 죽어!”
“아니! 악령이 죽어!”
“그.”
어쩐다.
나도 그리 작은 편은 아닌데, 그렇다고 해서 조지프만큼 큰 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새끼 약간 눈알이 돌아갔다.
‘아.’
여기서 내 19세기 전용 이해심이 발동했다.
하긴 21세기에도 VIP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명의인 교수님도 자기 가족 볼 때는 귀신같이 이상한 실수를 하더라고.
얘도 그런 거 아닐까?
아빠가 아프니까 정신이 나간 거야.
제발 그렇다고 해 주라.
“안 돼!”
“이놈아! 아빠를 죽이려고.”
“네 이름이 뭐냐!”
“이 새꺄! 아빠 이름도 몰라?”
“여, 역시 악령?”
미친놈.
아버지한테 네 이름이 뭐냐고 지랄을 하네.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어?
구마 사제라도 된 양 굴어.
‘여기서 사탄 들린 사람이 있다면…….’
역시 조지프가 아닐까?
해서 나는 조용히 녀석의 뒤로 이동해 목을 졸랐다.
시늉을 했다는 건 아니었다.
“어, 어?”
“너 똑바로 대답 안 하면 죽는다.”
“아니, 태평아!”
“시발놈아, 그냥 묻는 말에만 답해.”
“어? 어어.”
목을 조르면서 시발 신공을 시전했다.
리스턴 박사님은 목 조를 필요도 없이 그냥 ‘시발’이라고 나지막이 웅얼거리기만 해도 방 안의 분위기를 바꾸던데 나는 아직 그 정도 경지에 오르진 못했다.
그래도 조지프 정도 압도하는 건 일도 아니다 보니 그대로 말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주여…….”
“술 때문이야.”
“아이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소음이 대단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의외로 아저씨가 멀쩡하단 점이었다.
“내가 악령에 씌었을 리가 없지. 내가 주일 성수도 하고 어…… 내가 말이야…….”
적어도 악령에 의한 일이란 생각은 안 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캐묻다 보면 어김없이 실망할 게 뻔해서 그러진 않았다.
여기서 살려면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 해야만 했다.
괜히 뭔가 더 해 보려 하면 안 돼.
늘 상처받는다.
“배에 있는 장기는 뭐가 있지?”
하여간, 나는 조지프에게 물었다.
조지프는 내 질문에 반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해부를 가르치면서 또 수술을 가르치면서 계속 질문을 던져 왔던 것이 주효한 모양이었다.
여전히 십자가를 들고 있긴 하지만 이제는 아버지를 후려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십자가를 감히 바닥에 내려놓기 어려워서인 것으로 보였다.
“어…… 간! 비장!”
“더.”
원래 같았으면 이따위 답이 나왔을 때 뒤통수를 후려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것도 참 대견하다.
해서 나는 조르고 있던 목을 좀 더 풀었다.
“시, 신장이랑…….”
“그런 거 말고 밥 지나가는 곳.”
“아, 위.”
“그리고?”
“장.”
“그래. 장.”
원하는 답이 나왔다.
조지프도 장이란 말을 주워 넘기고 나서야 뭔가 떠오른 바가 있는지 광기에 사로잡혀 있던 눈알이 조금 돌아오는 듯했다.
그래서 이젠 아예 풀어 주었다.
“어어.”
그러자 아저씨가 잠깐 두려워했지만, 잠시뿐이었다.
어차피 장이 튀어나와서 어지간한 용사가 아니고서는 움직이지도 못한다.
일어난 상태라면 또 모르겠지만, 누워 있잖아.
일어나려면 힘을 한 번 더 줘야 하는데 그 통증을 버티면 독립운동해야지.
아, 여기 기준으로 하면 순교이려나.
아무튼, 그럴 만한 위인은 아닌 만큼 그대로 누워 있었다.
“장……? 저거 장인가?”
“그래. 장은 움직이지?”
“어…… 그렇지.”
수술하면서 봤다.
정확히 말하면 맹장 수술하면서.
-으아아 이거 뭐야!
-이게 왜!
-이거 다 잘라야 하는 건가!
수술 도중이니까 감히 크게 외치진 않았지만 나와 리스턴을 제외한 우리 바보 삼 형제가 이렇게 절규하는 걸 나는 다 들었더랬다.
대체 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똥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싸는 것으로 여겼을까?
아무튼, 그것도 이제 다 옛말이다.
“어, 꾸물거리지. 장이구나. 근데 왜 장이……?”
“그야…….”
이젠 아니까.
그래, 여기까지 왔다.
정말…… 정말 장하다 김태평!
의지의 한국인이다, 김태평!
“여기에 뭔가 구멍이 났겠지.”
“왜? 장이 뚫었나?”
물론 한 산을 넘었을 뿐이었다.
아직 넘을 산이 수두룩했다.
보라.
이 순수하게까지 느껴지는 멍청한 답을.
상식적으로 장이 사람 몸을 뚫겠냐?
그냥 그 부분이 노화에 의해 약해지면서 늘어지는 거지.
더욱이 이 부분은 원래 여러 구조물이 지나는 인대가 있는 곳이다.
늘어날 여지가 아주 많다는 얘기다.
“모르지, 그건.”
여기서 모르겠다고 해야 한다니.
시발…….
하늘이시여.
듣고 있다면 내게 뭐라도 좀 내려 줘.
상태창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리스턴급의 완력이라도 줘.
이성적으로 납득을 시킬 수 없다면 완력으로 굴복시켜야겠다.
“몰라?”
하지만 하늘은 지금껏 그랬던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또 구라를 시전해야만 했다.
“응. 몰라. 하지만 뭐랄까…… 이게 좀 작은 장이 있잖아? 그런 애들은 틈이 있으면 비집고 잘 들어가지 않을까?”
“흐음. 그건 큰일이네. 작은 장을 미리 잘라야 하나.”
“아니, 그건 좀.”
“그런가?”
“아무튼, 중요한 건 아버지 몸이니까…… 수술을 하자.”
“근데 이거 장이잖아?”
수술이라는 말에 조지프가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번에는 내 만렙에 다다른 이해심도 바닥이 나서 나 또한 뭔 소리냐는 표정을 짓게 되었다.
“장은 원래 우리 몸인데…… 굳이 수술을 해서 제거할 필요가 있을까?”
아하.
이런 생각인가.
그래, 그럴 수 있지.
근데 지금 그러면 안 된다.
‘파리 갔다 오는 거 최소로 잡아도 한 달. 이번에 와서 확인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장 낑긴 다음에 봤을 거야.’
구멍은 점점 넓어지게 되어 있다.
더 많은 장이 끼게 된다 이건데,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낑겨 버린다.
구멍에 눌린 장은 그대로 썩게 되고, 지금으로서는 반드시 죽는다.
“구멍을 막을 거야. 장을 자르는 게 아니고. 아버지가 인마 이렇게 아파하고 불편해하시는데.”
“아…… 근데 배 열면 3분지 1은 죽는다며?”
“그렇지. 하지만…….”
이 경우는 아니다.
많이 열 필요도 없어.
게다가 여기 술이 얼마나 많은가.
여기 아줌마, 엄마, 아빠 시켜서 알코올 증류하면 된다.
“이건 아닐걸. 일단 해 보자고.”
“어…….”
조지프는 잠시 고뇌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 들어서 손해 본 적이 없지.”
“그렇지?”
여태 내가 보여 준 것들이 의미가 없진 않았던 모양이었다.
거기에 더해 아저씨도 호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평생 수술이라는 거 한 번은 해 보고 싶었지!”
좀 이상한 이유에서였다.
광장에서 그 고통의 울부짖음을 보고서도 하고 싶었나 보다.
여러모로 혼란한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