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7)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7화(167/505)
167화 업턴 [3]
“후…….”
탈장 수술.
이거 솔직히 진짜 별거 아닌 거다.
뭐 장이 낑겨 가지고 썩기 시작했다면 얘기가 완전 달라지긴 하는데 보통은 안 그래.
특히 대한민국처럼 시내 나가서 사방을 둘러보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쓸 만한 병원이 보이는 곳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나?
나야 그중에서도 원탑이라고 할 수 있는 병원 교수였으니 말 다 한 셈이다.
“긴장돼?”
“어? 어.”
하지만 나는 지금 조지프의 말대로 긴장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VIP라서 VIP 증후군의 발현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니었다.
VIP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내가 그런 호로자식은 아니니까.
‘항상 이런 식이지?’
집에서 하려다 혹시 우리 마을에 치료실이란 게 있나 해서 여쭤만 봤다.
혹시 모르잖아.
런던보다는 여러모로 살기가 나은 곳이니까.
물론 기존에 있던 수공예로 벌어먹던 사람들이 이미 싹 망해 런던 슬럼가로 향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것도 있지만…….
“그럼 리스턴 박사님께 데려갈까?”
“어? 아니, 아냐. 우리가 하자.”
아무튼, 아까 봤던 치료실을 겸해서 썼다는 장소를 보고 났더니 잘 먹었던 김치가 올라올 거 같았다.
나는 사실 도살장에라도 온 줄 알았다.
냄새가 너무 심해서.
근데 거기가 치료실이라네?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다행한 것은 이제 조지프가 더 이상 ‘왜 그래? 저기서 하지?’와 같은 개열 받는 소리는 안 한다는 점이었다.
-모르긴 해도 현미경으로 보면 미아즈마가 엄청 많을 거 같은데.
기특한 새끼.
용어가 좀 틀리면 어떠냐.
용도가 바르면 그만인 것을!
“여기서 해야 해.”
나는 용기 충천한 얼굴로 몸을 일으킨 후, 식탁을 내려다봤다.
비록 김치 국물이 묻어 있지만 이건 이제부터 수술 테이블이다.
“박박 닦자.”
“어? 어어.”
“너네 아빠야. 더 신경 써야지.”
“어어, 그래. 근데 이렇게까지 해?”
너네 아빠라는 말은 똥구멍으로 처먹은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혜도 모르는 호로자식이 된 걸까.
뭐 이런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녀석이 상당히 억울하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아니, 생각해 봐. 이 바닥에 있는 미아즈마는 그냥 여기 있는 거잖아? 움직이겠지? 살아 있잖아.”
“쪼끄맣던데……?”
“우리 손에 묻어서 옮겨질 수 있잖아.”
“안 만지면 되지?”
“흐흐.”
이런 논리면 새꺄 수술방을 왜 멸균 상태로 유지하냐?
아니, 방포는 왜 치고 수술복은 왜 입어?
그냥 손만 잘 닦고 수술하면 되지.
아무래도 이 자식은 아직 사람이 집중하다 보면 사소한 움직임을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얼마나 심각한 수준으로 무시할 수 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한번 지를까?’
여기서 시발 한번 해 주면 또 순한 양이 될 텐데.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무위로 돌아가고 말았다.
“같이 닦자.”
“그래. 뭐든 시켜라.”
부모님이 와서 그랬다.
이 당시에도 이 욕이 조선에서 통용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는데, 굳이 지금 상황에서 그러한 사실을 확인하고픈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여긴 조지프 집이지 않나.
금의환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인정받는 모습을 보여야지.
“그렇긴 한데 내가…… 내가 부족하다.”
“하긴, 네가 운동신경이 좀 없긴 해. 근데 용케 수술은 잘한단 말이지.”
참아야지?
그래, 참자.
참을 인 자 세 번이면 살인도 참는다잖아?
나는 그게 실제 살인을 의미한다는 것을 지금 깨닫고 있었다.
하여간, 조지프도 내 참을성에 감동을 했는지 뭔지 박박 닦는 데 동참했다.
그 덕에 우리는 상당히 깨끗한, 솔직히 말하면 19세기에 이르러 내가 본 중 제일 깨끗한 식탁 아니, 수술 테이블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저씨, 여기 누울 수 있어요?”
“어? 어어. 천천히…… 아이고…… 이게 한번 나오면 잘 안 들어가.”
“이거 정말 악령은 아닌 거지? 신부님 모셔 올까 하는데.”
아뇨, 아닙니다.
그러니까 제발 가만히 계셔요, 아주머니.
여기서 신부님 오시면 아저씨 뒤져, 진짜.
-갈! 악령의 소행을 감히 믿음도 없이 칼로 해결하려 들다니!
-아? 이것이 그럼 장이란 말인가? 내 축복기도를 하겠네.
전자가 최악이고 후자가 최선인데 둘 다 진짜 상상만 해도 어질어질하다.
굉장히 높은 확률로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질 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절대로 막아야 했다.
“아뇨, 아닙니다.”
“아휴, 근데 이게 만약에 악령이면 어쩌니. 배 열고 나오면…….”
“정 걱정이 되시면 저기 의자에 앉으셔서 기도를 좀.”
“아, 그래. 그래야겠다. 아이고, 저 양반이 술 팔아서 그래.”
양조 집안인 거 한참 전에 알고 오셔 놓고…….
아니, 그 전에 와인 잔이나 내려놓고 말씀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잠깐 패륜에 가까운 대사가 떠올랐지만 참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으…….”
눕느라 힘이 들어갔는지 고통스러워하는 아저씨를 내려다보았다.
보통 수술복을 입고 눕지만 그런 거 없는 우리는 그냥 발가벗겼다.
아래는 입혔다.
수술 범위 안에 들어오긴 하는데…….
지금 벗으라고 하면 아저씨도 탈장 악령설에 동참할 게 뻔해서 그랬다.
마취가 없던 시절이었다면 더더욱 그랬을 테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까 마을 돌면서 얻어 온, 이런 게 왜 그냥 마을에 있는진 모르겠지만, 웃음 가스를 조지프가 들고 왔다.
“아빠.”
“응?”
“잘 자요.”
“어? 어어. 어…….”
이제 가스 돌리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조지프만 한 인재도 없을 터였다.
이 시대의 여행길이라는 건 아무리 짧아도 위험할 수 있다 보니 혹시 몰라 들고 온 내 수술 기구 함 덕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저 절묘한 양 조절은 나로서는 감히 따라 할 엄두도 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쓰윽.
“에구머니나! 이게 무슨 짓이니?”
하여간, 나는 정신 잃은 아저씨의 바지를 벗겼다.
옆에 있던 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곤 저도 모르게 자기 아랫도리를 보는데 아무래도 아버지가 진 것 같았다.
말투에서 나를 책망하는 기운보다는 원인 모를 패배감이 느껴져.
“수술하려고요. 여기 튀어나와 있잖아요.”
“그럼 거기만 살짝 벗기고 하면 안 되니?”
“안 됩니다. 조지프? 미아즈마에 대해 설명드려.”
“아, 아버님. 그게 말입니다.”
실로 드물게 아는 척할 기회가 생긴 조지프는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이론에 구멍이 숭숭 나 있는 만큼 제대로 된 설명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좋았다.
기본 지식이라곤 아예 없는 아버지로서는 절대로 이해가 불가능했거든.
어느 정도 배운 사람들, 즉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이럴 때 더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게 되는 법이지만 이 시대 사람들은 그냥 신앙을 갖게 되기 마련이었다.
“그래, 그렇구나.”
하나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끄덕이는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네네. 그러니까 저기 가서 나머지 분들 이제 못 오게 해 줘요. 알코올만 전달해 주시고요.”
“그, 그래.”
그렇게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등을 보다가 나는 다시 아저씨의 수술 부위를 닦았다.
아무래도 백인이다 보니 털도 많아서 깎을 것도 많았다.
“그렇게까지……?”
“어허, 미아즈마.”
“그, 그래.”
당분간은 만능으로 쓰일 미아즈마를 무기로 아저씨 털까지 대강 밀고는, 메스를 집어 들었다.
박박 닦았다.
괜찮을 거다.
한 2, 3일만 경과를 보고 돌아간다면 그럴 터였다.
리스턴 박사도, 앨프리드 선배네도 인정머리 없는 사람들은 아니니 마차 좀 늦게 보내는 거 가지고 뭐라 하진 않을 거 아냐.
지이익.
그런 생각을 하다가 절개를 넣었다.
그러자 신기하게 감염이니 뭐니 하는 생각들이 슥 사라졌다.
덕분에 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수술 부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쑤우욱.
서혜부 인대가 역시나 예상대로 늘어나 있었다.
나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그 사이로 낑겨 들어온 장을 부드럽게 밀어 넣었다.
약간 자극이 되었는지 아저씨가 살짝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혈관이나 이런 데 건드리고 있었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역시 더 복잡한 수술로 넘어가기 전에 근이완제를 찾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지이익.
그 생각과는 별개로 내 손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인대가 늘어났다면 그걸 좀 좁혀 주면 되는 거 아니겠나.
다행히 아주 늦게 발견한 게 아니다 보니 간단한 봉합만으로도 상당히 좁혀 줄 수 있었다.
이거 또 욕심부린답시고 꽉 닫아 버리면 원래 지나는 애들이 손상을 입을 수 있으니 중도를 지켜야 했다.
물론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좋아.”
“벌써?”
“어, 이거 간단한 거야.”
“역시…… 네가 수술 하나는 진짜 기똥차게 잘한다니까.”
“뭐, 그렇지. 수술은 내가 최고지.”
“그러니까. 괜히 교수 된 게 아냐.”
아버지 일이라 그럴까?
누가 봐도 수술이 깔끔하게 끝나 가고 있다 보니 조지프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내 친구가 교수다! 하하하하!”
아.
아니네.
저 새끼…….
아빠라고 자세히 보려다가 가스를 좀 마신 모양이었다.
다행인 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반대편으로 뛰어나갔다는 건데…….
‘뭐…… 다 끝났어. 이제 닫는 것도 다 됐고…….’
가스를 끼리릭 잠갔다.
아저씨가 깨어나길 기다리기 위함이었다.
“어, 어우.”
10여 분을 기다리고 나자 아저씨가 몽롱한 얼굴이 되어 일어났다.
“괜찮으세요?”
“어, 어어. 수술은 언제 하는 거냐?”
“했어요.”
“했다고? 아니, 보통 수술은…….”
아저씨가 기억하는 수술은 광장에서의 그것이니만큼 많이 다르긴 할 터였다.
아저씨는 그 후로도 한참을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리다가 다시 잠에 빠졌다.
그사이 나는 마부 아저씨에게 사정을 설명했고, 그는 마침 술 더 먹고 싶었는데 잘됐다며 껄껄 웃었다.
이미 고주망태가 되어 있었는데 거기서 더 먹다가 뒤지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이후로 3일 동안 내내 술독에 빠져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했다.
아저씨?
아저씨도 운이 좋았다.
알코올의 위력인지 뭔지는 몰라도 감염의 징후 하나 없이 멀쩡하게 다 털고 일어났다.
“이제 가니?”
“네.”
“파리라…….”
오히려 지금이 제일 고통스러워 보였다.
항해라는 게 진짜 끔찍스러운 일인 모양이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저씨는 이제 슬슬 다시 런던으로 돌아가려는 나와 조지프를 보다가 문득 뭔가 아주 중요한 게 생각났는지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곤 아주머니가 보지 못하게, 아주 은밀한 표정을 지어 가면서 물건을 건넸다.
부적이었다.
내가 여기 부적은 생전 처음 보는데, 부적 맞는 거 같았다.
“아버지……?”
조지프는 배신감에 치를 떨면서 아저씨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술만 마실 뿐 평소 얼마나 독실한 퀘이커 교도로 살아왔던 아저씨였나.
근데 부적이라니?
“바다에서는 이런 게 다 필요한 법이다…….”
“무슨 그런……?”
“인마. 미국으로 간 청교도인들도 이거 다 가져갔어!”
“네?”
종교의 자유를 찾아 떠났던 이들도 미신을 버리지 못했다니.
바다에 대한 공포가 한층 더 깊이 엄습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