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8화(168/505)
168화 항해 [1]
다그닥.
마부 아저씨는 여전히 시뻘건 얼굴로 뻔뻔스럽게 마차 위에 올라탔다.
‘아직 음주 운전 관련한 법이 없나……?’
없을 것 같긴 하다.
아직도 사냥과 같은 취미가 귀족이나 신흥 부자들 사이에서 유행하지 않나?
여기 오기 전까지는 사냥이라는 게 어떻게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취미 거리가 될 수 있나 싶었는데…….
귀족들의 사냥은 내가 생각했던 짠 내 나는 그것이 아니었다.
사실상 총 들고 하는 피크닉이라고 보면 되었다.
가서 뭐 술도 먹고 다 하더라고.
다시 말하면 술 먹고 말도 타고, 총도 쏘고 한다는 거다.
그런데 뭐 술 먹고 마차 모는 것 정도가 무슨 문제가 되겠어…….
“어어, 아저씨!”
“어? 다 보고 있어.”
“뭘 봐요! 나무에 박을 뻔했는데!”
“아냐, 아냐. 말이 다 보고 있어.”
“아…….”
그래, 말은 술을 먹지 않았지.
그러고 나서 보니까 진짜 개같이 인도를 해도 말이 찰떡같이 나가고 있었다.
물론 마부 아저씨도 완전히 무개념인 사람이 아니다 보니 속도를 안 내고 있어서 그렇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떡하니 자동차 만들어지면…… X 되는 건데?’
어?
이 새끼들 속도 쌩쌩 내고 달릴 거 같은데?
술도 먹고, 심한 놈들은 거기서 총도 쏠 거 같다.
너무 지나친 비약 아니냔 생각이 들었다면, 한번 여기 와 봐라.
와서 살아 봐!
‘최초의 자동차가 언제 만들어졌을까?’
모르겠다.
전혀 모르겠어.
이럴 줄 알았으면 역사 공부도 좀 하고 오는 건데 싶었지만, 이내 그 후회는 급히 사그라들었다.
상식적으로 이럴 줄 알 수가 있었겠냐.
누가 와서 직접 너 교수 되자마자 뇌종양 진단되는데 좌절해서 해 보러 가다가 트럭에 치여 죽고 눈 떠 보면 19세기 런던임, 이랬다고 해 봐.
뒤진다고 했을 때 주먹 날아갔지.
“뭔 생각을 또 그렇게 해?”
영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말들을 불안한 눈빛으로 보고 있으려니 조지프가 말을 걸어왔다.
손으로는 아까 아저씨가 주었던 부적 나부랭이를 만지작거리면서였다.
“어…….”
자동차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은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을 때쯤, 입이 먼저 움직였다.
“아저씨 괜찮으시려나 하고 있었지.”
“아, 역시. 넌 좋은 녀석이다.”
이것이 구라 마스터의 위력인가.
무슨 패시브 스킬도 아니고 그때그때 적절한 구라가 마구잡이로 튀어 나간다.
“아무튼, 배…… 마냥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저씨 때문에?”
“어. 우리 아빠가 그렇게까지 엄살쟁이는 아니잖아?”
“엄살쟁이라…….”
엄살쟁이는 절대 19세기 수술을 받을 수 없다.
마취가 나왔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국소 마취가 불가한 이상, 소독이나 다른 처치 등을 병행할 때는 통증이 수반될 수밖에 없거든.
특히 효과적인 항생제나 소독제가 없는 상황이다 보니 아무래도 처치가 좀 더 험악해질 수밖에 없다 보니 더 그랬다.
-술 마시면 된단다.
-아뇨…… 수술 부위 덧나요.
-무슨 소리니. 다들 이렇게 하던데.
-제가 리스턴 박사님의 제자입니다.
-아.
아플 거라니까 바로 어제 배를 째고 연 주제에 술부터 찾던 사람한테 엄살쟁이라고 하면 좀 많이 억울할 거 같다.
그 말은 항해가 이게 보통 힘든 게 아니라는 건데…….
“리스턴 박사님이 있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그래야지. 그러려나?”
“그럴 거야.”
“바다도 어찌할 수 있으려나…….”
우린 아저씨의 공포에 질린 얼굴 때문에, 또 그가 준 부적을 보면서 오히려 더 겁에 질리고 말았다.
그렇게 런던에 도착하자, 벌써 준비를 싹 마친 앨프리드가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아버지는 좀 어떠셔?”
“어? 어어. 우리 평이가 수술 기가 막히게 해 줬지.”
“넌 진짜 대단하다. 배 수술이었다며? 근데 그게 장인 줄은 어떻게 알았어?”
옛날 같았으면 이럴 때 꽤 놀랐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어떻게 알았냐고?
“해부하다 봤어요.”
“아하.”
이미 구라 쳤어.
물론 이게 다 내가 평소에 워낙에 열심히 해부를 해 온 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뭔 말을 해도 다 그럴싸하게 들리지.
“아무튼, 아버지가 배부터 싹 다 알아봐 줬어.”
“오…… 감사 인사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지금은 외국으로 가셨지. 무역상이시잖아.”
“아, 하긴. 설마 아저씨도 부적 같은 거 들고 다니진 않죠?”
그럴 리가 없을 거 같다.
뻔질나게 배 타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무슨 부적이겠어.
그냥 잘 타고 다니겠지!
“아,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라.”
허나 내 기대는 늘 그러하듯 배신당했다.
나는 어느새 앨프리드가 건네준 부적을 쥐고 있었다.
심지어 조지프네 아저씨가 줬던 거보다 훨씬 새것이었다.
“이거 꼭 지니고 있으래.”
“우리 다 주님 믿는 거 아닙니까?”
“몰라. 이건 전통이래.”
“아.”
이 새끼들.
알고 보면 그냥 다 교회 다니는 척만 하는 거 아닐까?
사실 얘네가 밖에 나가서 하는 짓 보면 그럴 거 같긴 했다.
주님, 주님 하는 애들이 어떻게 식민지 가서 그따위 짓들을 하냐고.
“아무튼, 오늘은 좀 쉬고. 내일 가자. 우리 선실도 되게 좋다고 들었어. 그렇게 힘들진 않을 거야, 아마.”
“오.”
잠시 치밀어 올랐던 불만이 금세 사그라들었다.
그래, 아저씨는 주님의 자식이 맞는 거 같다.
선실도 마련했다면 응당 그래야 맞지.
그래, 은혜도 알고.
영국 놈들이 세계사에 나쁜 짓을 한 것도 맞지만 모든 영국인이 나쁜 건 아니지 않겠어?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잠시 밀렸던 회포도 풀고 덩달아 긴장도 풀 겸 업턴에서 들고 온 질 좋은 와인도 마시다 보니 필름이 끊겼다.
그러니까…… 아침이다.
“어…….”
그 정도가 아니라 배 앞이었다.
아니, 지금은 리스턴 앞이라고 보는 게 맞을 거 같다.
“뭘 그리 놀라나.”
원래도 좀 무사 같았잖아?
지금은 진짜 방랑 무사 그 자체다.
옆에 시중들 사람도 고용한 거 같은데 지고 있는 짐이 정확히 그 몇 배는 되어 보였다.
아니, 저런 걸 어떻게 등에 질 수 있는 거지?
진짜로 마나라도 돌리나?
“가면 실험도 해야 하고 우리의 선진화 된 수술 기법과 해부도 뽐내야 하지 않겠나?”
“설마 시신이 있어요?”
“무슨 미친 소리를 하나. 가는 동안 썩을 텐데.”
“아.”
썩는 게 안 가져가는 이유냐.
포르말린에 절이면 되는데…….
아니, 그게 아니라.
“이보게, 평. 프랑스 놈들의 덜떨어진 준법정신은 알고 있겠지?”
“아, 네.”
몰라도 알아야 한다.
리스턴은 어릴 때 프랑스 사람한테 싸대기라도 맞았는지 진짜 싫어하니까.
“그래, 그렇지. 그게 무작정 단점만 있는 건 아니라네.”
“네?”
“시신 수급이 정말 용이하다고 들었어. 그냥 바로바로 파서 온다더구만. 흙도 뿌리기 전에 들고 와서 상태도 깨끗하대.”
“아…….”
하긴 런던만 미개할 리가 없지.
파리라 해서 예외일 리가 있나.
내가 괜한 기대를 품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파리에서 혁명이 있었던 건 알지?”
나 빼고 다 고개를 끄덕였다.
속으로 프랑스 혁명……?
마리 앙투아네트……?
이러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말을 이었다.
“귀족들이 죽어 나갔다고 하는데…… 그치들은 원래 뭐 주기적으로 그러는 놈들이니까 신경 쓸 건 없네. 우리랑은 관계없는 일이야. 다만, 콜린?”
“네.”
“자제는 좀 조심하게. 뭐 티가 나진 않으니 걱정은 안 하겠어.”
“네…….”
상당히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고는, 리스턴은 배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몇몇 지인들을 통해 맛있는 식당들을 수배해 놓았네. 프랑스 놈들이 딴 건 몰라도 음식은 맛있으니 그건 기대해도 좋아.”
와.
그건 나도 좋았다.
생각해 보면 전생에도 딱히 프랑스 음식하고는 연이 없지 않았나.
이제 막 교수 돼서 꽃피려는 순간에 죽어서 그런 것도 있는데 이상하게 대한민국에서는 프랑스 음식이 힘을 못 쓰는 느낌이었다.
입맛에 잘 안 맞아서일 거 같은데…….
‘영국 음식보다는 백배 낫겠지.’
확신할 수 있다.
장어로 젤리 만들어 먹고 생선에 생오이 올려다가 삶아 먹는 이 미친놈들보다는 훨씬 맛있을 거다.
막말로 여기 있는 놈들은 단체로 혀가 어떻게 된 거 같아.
아니면 코가…….
‘어?’
설마 템스강, 저 똥물이 유구한 영국 음식의 전통을 일구어 낸 건가?
어릴 때 다 저거에 망가져서 그따위 음식밖에 만들지 못하게 된 건가?
“자, 가세. 우리 선실이 굉장히 좋다더구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우리를 이끌고 배를 가리켰다.
배는…….
배에는 돛이 달려 있었다.
이상했다.
증기 기관의 시대 아닌가?
내가 알기로 증기 기관차도 시범 운행하고 있던데……?
“클리퍼라는 배야. 엄청 빠르대.”
아니, 증기선 어디 갔냐고.
19세기에 왜 범선이냐?
“와.”
“좋다.”
“이게 최신이던데요?”
이런 의문은 나만 갖고 있는 건지, 다른 놈들은 희희낙락이었다.
혹시 아저씨가 통수친 건가 해서 항구를 둘러봤는데 진짜 다 범선이었다.
아니, 증기선이 하나 보이긴 하는데…….
작아…….
작다……!
‘아직…… 상용화된 증기선이 적나? 그런가?’
이래서야 이거 그냥 대항해시대랑 별반 차이 없는 거 아닌가?
그 시대 뱃사람들이라고 하면…….
“어, 조심하…… 이거 죄송했습니다.”
거칠기 짝이 없을 거다.
그리고 방금 딱 뱃사람이라고 하면 떠올릴 만한, 거친 바다 사나이의 전형이라 할 만한 사람이 리스턴 박사님과 부딪치고 눈을 부라리다가 전광석화처럼 내리까는 걸 봤다.
‘그래,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없을지도.’
그래.
그럴 거다.
그래야 한다.
사실 내심 타이타닉보다는 못해도 그 비슷한 배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아무튼, 올라와 보니 이 배도 나름 괜찮았다.
아니, 꽤나 좋았다.
특히 우리에게 배정된 선실은 좋다 못해 화려하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와.”
“좋네.”
“아저씨가 진짜 돈 많이 쓰셨구나.”
“그래, 일등석이야. 음식도 다를 거래. 항해 거리가 짧아서 뭐 그렇게 비싸진 않았다고 하시더라고.”
“오…….”
좋다.
아니, 좋았다.
딱 항해하기 전까지 좋았다.
“웁.”
전생에 유람선만 타 봤을 땐, 멀미 안 하는 사람인 줄 알았거든?
아니다.
엄청 한다.
이렇게 흔들리는데 안 하는 사람이 있을 리…….
“평…… 너무 약하군그래.”
있군.
리스턴은 안 하고 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를 제외한 모두는 멀미 중이었다.
아니, 우리 일행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래.
이게 보통인가?
“자, 승객들은 자리로 들어가세요! 폭풍이 옵니다!”
보통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 배가 이렇게까지 흔들릴 리가 없어.
하여간, 우리는 웁웁 하면서 방에 모여 부적과 십자가를 꺼내 들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웃긴 건 리스턴도 부적을 들고 왔다는 점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기도를 마구잡이로 드리고 있다 보니 하도 토를 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잘 때가 되어서 그런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일어나 보니 그사이에 폭풍우는 가신 모양이었다.
대신 뭔가 다른 것이 찾아와 있었다.
“오, 평. 마침 잘됐군.”
“여기 심하게 다친 사람이 있어!”
환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