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6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69화(169/505)
169화 항해 [2]
“나는 자네가 아편 팅크라도 먹고 자는 줄 알았네.”
“그러니까요. 뭔 잠을 그렇게 곤히 자는지…….”
“우리 평이가 몸이 약해서 그렇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를 보면서, 리스턴, 앨프리드 그리고 조지프가 차례로 이러쿵저러쿵해 댔다.
“으…….”
콜린?
콜린은 아직 누워 있었다.
신음을 흘리길래 다쳤다는 놈이 이놈인가 하고 식겁했는데, 그건 아니었다.
“괜히 노블 킴이 아니다, 이거지.”
“그렇긴 합니다.”
“집안 내력이래요. 이런 거 보면 귀족이 맞는 거 같긴 합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조선의 귀족은 몸 쓰는 일을 아예 안 해도 된다던데요?”
“사냥 이런 거 안 한다고?”
“네. 오히려 그런 거 하면 상스럽다고 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몸이 약할수록 귀족적이다?”
“네네.”
“거참.”
내가 완전히 가까워질 때까지도 리스턴과 조지프는 떠들어 대고 있었다.
사람 면전에 두고 약하네 어쩌네 하는데…….
기분은 나쁘지만 뭐라 할 말이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마음에서 19세기 사람들을 이길 수가 없다.
죽으면 죽는 거지 뭐 하는 사람들을 대체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아무튼, 이거 안 좋은데요.”
앨프리드는 환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 으으으…….”
강인한 얼굴의 환자는 누가 봐도 뱃사람이었다.
아까 폭풍우인지 나발인지가 불 때 밖에서 뭔가 하다가 다친 모양이었다.
하긴 나머지 승객들이야 다들 선실에 있었을 테니 괜찮지 않았겠나.
일등석 상황을 보면, 이등석, 삼등석이라고 해서 아주 후루꾸로 만들어 놨을 거 같진 않았다.
‘아니, 아냐. 섣부른 판단일 수도…….’
나는 공산당이 싫다.
싫은데…… 전에 노동자들이 밧줄에 일렬로 앉아서 어깨 걸고 쉬고 있는 걸 복지랍시고 떠들어 대는 걸 보니까 그런 게 왜 세계사에 등장했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산업 혁명 이후 인류는 전에 없는 부를 거머쥐기 시작했지만, 그 부는 정말 적은 수에게만 분배되고 있었다.
최소한의 복지도 없이 그냥 탐욕 속에서 발전하고 있다 이 말인데…….
참으로 혁명 마려운 시대 아닌가.
“빠, 빨리 어떻게 좀!”
하여간, 그런 생각은 내가 할 만한 생각은 아니긴 했다.
조선에서 온 노블 킴이자 런던 최연소 의과 대학 교수인 동양인이야말로 혁명이 일어나면 일 순위로 죽창 찔릴 대상이지 않겠나.
게다가 지금은 환자가 앞에 있었다.
얼굴이 하얘진 상태였는데 바이탈을 재 보면 아마 높은 확률로 혈압이 떨어졌을 거 같았다.
‘그런 것치고는 출혈은 없다.’
눈에 보이는 출혈은 없다는 게 더 올바른 표현이겠지만 적어도 이 시대에서는 보이는 출혈이 없으면 감히 출혈이 없다고 해도 좋았다.
왜냐.
아무도 피 닦을 생각을 하지 않거든.
혹 복강 내 출혈인가 해서 배도 들춰 보았는데 그냥 마른 몸이었다.
보기 좋게 날씬한 몸은 아니고, 약간 만성 췌장염이 있을 거 같은…… 그런 몸이다.
‘그럼 통증인데……?’
피가 나야만 혈압이 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통증에 의한 쇼크도 분명히 존재하지 않나.
가뜩이나 별다른 진통제랄 게 없는 이 시대에서는 그리 드문 것도 아니었다.
“여기 좀!”
“으아아아!”
그때 옆에 같이 와 있던 선원이 환자의 팔을 두들겼고, 환자는 말 그대로 비명을 질렀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부러졌다는 걸.
‘아니, 다친 사람이 왔으면 일단 옷부터 찢거나 벗겨서 관찰을 해야지…… 이건 진짜 기본 중의 기본인데.’
예전 같았으면 아마 이런 식으로 투덜투덜댔을 터였다.
하지만 이젠?
후후.
내가 인마 리스턴 박사랑 으이? 밥도 묵고, 사우나는 안 가고, 형 동생 하는 사이다 이 말이야.
19세기 사람 다 됐다 이거다.
기본 중의 기본일수록 지켜지는 경우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알게 된 지가 오래다.
“가위.”
“응?”
“어딜 자르려고. 자를 거면 내가 칼 꺼내면 되는데.”
하여간, 옷을 찢으려고 살짝 힘을 줘 봤는데 악력이 달려서 무리였다.
나는 괜히 또 남들이 그러한 사실을 눈치챘다간 약하네 뭐네 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은근슬쩍 원래 당기려고 했다는 식으로 옷을 살짝 당기며 나머지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정작 움직여야 할 조수 조지프는 가만히 있고 가만히 있어야 할 리스턴이 자기 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아, 아니. 옷이요. 옷.”
“아, 팔이 아니라?”
“팔을 갑자기 왜 잘라요.”
“하하, 이 친구. 하여간…… 교수 자리를 너무 일찍 준 게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니까.”
리스턴은 그렇게 칼집 앞에서 우뚝 멈춰 선 채 껄껄 웃었다.
때마침 파도라도 쳤나 어쨌나 배에서 끼이익 신음 소리 같은 게 나서 더더욱 공포스러웠다.
그러고 보니까 아까는 폭풍우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그냥 뻗었는데…….
왜 우리 범선 탔어?
“골절은 말이야. 치료가 안 된다네.”
“음.”
범선 생각은 슥 사라졌다.
골절이 치료가 안 된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린가.
솔직히 대한민국이라면 팔 부러진 정도는 119 불러다가 가면 바로 맞출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환자 팔을 봤더니 여전히 옷에 둘러싸여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 아냐…… 엑스레이가…… 없다.’
그제야 나는 이 시대에 엑스레이가 없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배 수술에야 엑스레이를 잘 쓰지도 않을뿐더러 CT를 꿈꿀 수 없다는 건 예전부터 각오하고 있던 터라 괜찮았는데…….
“자. 마침 우리가 파리 의학회에 가는 길이라 말이야.”
“운이 좋습니다, 환자분.”
“하하. 그러니까요. 이분이 리스턴 박사님입니다!”
내가 그렇게 스턴에 걸려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리스턴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뿐만 아니라 나머지도 마찬가지였다.
조지프와 앨프리드 모두 내게 훈련받은 대로 마취 가스통을 꺼내고, 그 통에 마취용 연결 기기를 끼고 있었다.
리스턴?
리스턴은 칼집에서 칼을 뽑았다.
상당히 고무적인 일은 미아즈마에 대한 학습이 된 덕에 일등석에 있던 술을 들이부었다는 점이었다.
그 모습이 어째 좀 더 망나니스럽게 보이긴 했지만, 그따위 말을 했다가 진짜로 한 마리 망나니를 보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나는 닥치고 있었다.
아니, 닥치진 않았다.
“자, 잠깐!”
“뭔가.”
“왜 훼방을 놔.”
“그러니까. 교수님 너무 하시네.”
나 김태평.
해야 할 말이 있다면 호랑이 아가리 속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비록 대부분 구라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해 오긴 했지만…….
아니, 지금도 그럴 참이지만.
상처를 확인도 하지 않고 팔부터 자를 수는 없었다.
“우리, 우리 조선에서는!”
일단 조선 드립이다.
“응?”
“조선?”
“아…… 그 의학의 나라 말인가.”
내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하던 일 계속하던 앨프리드와 조지프와는 달리 리스턴은 일단 칼을 다시 칼집에 꽂았다.
그것을 신호로 둘 다 행동을 멈추었다.
이런 상황에서 눈치 없이 움직일 수 있는 놈이라면 벌써 뒤졌을 거다.
“조선에서는 골절을 아주 효과적으로 치료합니다.”
“오.”
“오오.”
“그런가? 어떻게?”
개방형 골절이라면, 그러니까 뼈가 살을 뚫고 나왔다면 미안하지만 방법이 없다.
지금부터라도 빵 썩혀서 먹이는 게 아마 다른 어떤 치료보다 살아날 확률이 높을 거다.
아, 아니지.
그때야말로 리스턴이 활약해야 할 때다.
잘라야 산다.
하지만…….
서걱.
일단 나는 내 가방에 있던 가위로 환자의 옷을 잘랐다.
이로써 가위는 오염이 되었다고 판정해야 하겠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수술이 필요하다면, 환자는 죽어.
개방형 골절은 20세기 중에서도 중반 이후에나 정복된, 정말이지 치료가 극히 어려운 질환이다.
예전에 교통사고 사망률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높았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을 만큼 유명한 일이기도 하다.
“휴.”
아무튼, 잘라 봤더니 환자의 팔은 그냥 부러져 있었다.
살을 뚫고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는 말이었다.
물론 이상한 방향이 좀 불뚝 나오긴 했는데…….
‘위팔뼈가 부러졌어. 깔끔하게 부러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여기를 자르면 대체 어떻게 되는 걸까.’
내가 이걸 너무 자세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 좀 슬프긴 한데, 하여간 팔뚝 정도는 자르면 어찌 되는지 눈에 훤했다.
근데 이쪽은 너무 높다.
심장이랑도 너무 가까워.
내 눈빛을 읽어 낸 걸까, 리스턴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솔직하게 이건 자르게 되면 70%는 죽는다고 봐야 한다네.”
“아.”
“아…….”
나만 탄식을 터뜨린 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제일 절망한 것은 환자였다.
아직 젊은데 눈앞에서 당신 죽을 거라고 하면 당연히 절망스럽겠지.
“어찌, 방법이 있나?”
하여간, 리스턴의 말을 들어 보니 괜히 칼을 넣은 게 아닌 모양이었다.
70%의 사망률이라면…….
아무리 리스턴이라고 해도 좀 쫄리겠지.
하여간, 나는 아까부터 머리를 굴려 놨기 때문에 바로 구라를 털 수 있었다.
“조선에는 씨름이라는 운동이 있죠.”
“씨름?”
“교수님이 가면 아마 가장 잘할 겁니다.”
“아, 칼로 베는 건가?”
“아, 아뇨. 상대를 넘어뜨리면 이기는 겁니다.”
“아하.”
의사가 저런 말을 할 때 납득한다는 것도 꽤나 이상한 일이지만, 뱃사람들도 전혀 불만이 없어 보였다.
“근데 그게 이렇게 붙잡고 던지는 거다 보니까 가끔 뼈가 부러진단 말입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조선에서 유행하는 것 중 하나가 밧줄 타긴데.”
“밧줄?”
“네, 이렇게. 공중에서.”
“허…… 조선이라는 나라는 정말 들으면 들을수록 신비한 나라로구만!”
리스턴은 지금 당장이라도 배를 하이재킹해서 조선으로 향할 거 같은 기세로 감탄했다.
진짜로 그렇게 된다면 나부터 해서 상당히 여러 사람이 곤란해지겠지만 리스턴은 나름 또 훌륭한 문명인이다 보니 자제의 미덕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잘 부러지죠. 그래서 발달을 했는데…… 일단 가스 틀어라.”
“응? 틀어?”
“어.”
뼈가 부러지고 저런 식으로 어긋나는 이유는, 근육이 땅겨서 그런다.
그 근육의 수축을 어떻게든 이겨 내야 한다.
즉 골절의 첫 번째 치료 원칙은 견인에 있다.
근데 환자가 맨정신이면 이 통증을 견디겠나.
일단 재워야 했다.
그래 봐야 이 정도 가스로 뭐 얼마나 효과가 있겠나 싶긴 한데…….
‘믿는다, 19세기 뱃사람.’
슈우욱 소리와 함께 가스가 틀어졌다.
배 안이라 완전 밀폐된 공간이라 그런가. 살짝 새는 것만으로도 잠시 정신이 몽롱해질 지경이었다.
여러 가지로 어려운 가운데, 나는 리스턴에게 말했다.
“교수님이 중요합니다.”
“나야 늘 중요하지. 그래, 뭘 하면 되나.”
“천으로 여기를, 네. 그렇게 해서 당기고 계십쇼. 조지프 넌 나랑 둘이서 환자 손을 당긴다.”
“어…… 혹시 이 사람이 자네에게 뭐 잘못했나?”
“그러니까. 고문을 하려고…….”
생각해 보니까 이게 모양새가 썩 좋지만은 않았다.
가뜩이나 손만 대면 아파하는 사람 팔을 당겨야 되잖아?
아마 그런 이유로 이 견인에 대한 비밀이 밝혀지지 않았던 모양인데…….
어쩔 수 없다.
“네, 좀 안 좋은 일이 있었네요.”
“하하, 감히 내 아우를 괴롭히다니, 안 될 말이지.”
“감히 평이를?”
의리에 호소한다.
뭐가 되었건 간에 치료만 되면 된다.
방금 가스에 취해 가면서도 환자가 뭔가 굉장히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중엔 감사 인사를 올리게 될 것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