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화(17/505)
17화 산부인과 실습 [2]
구더기?
아니…….
구라를 쳐도 뭐 믿을 만한 걸 쳐야지.
신성한 병원에서 구더기가…….
‘해부 실습실……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얼마 안 떨어져 있다.
그래, 여기서도 코를 잘만 벌름거리면…….
은은한 썩은 내가 몰려오고 있지 않나.
“시벌.”
나도 모르게 욕을 하며 등 뒤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면서도 아닐 거라 믿었지만, 손에 뭔가…… 축축한 게 걸렸다.
시발.
“이거…… 진짜네.”
“진짜지, 그럼. 왜 거짓말을 하겠어.”
내 손에 묻어 나온 구더기를 보면서 선배는 그냥 이렇게 말했다.
조지프도 보고만 있었다.
교수님!
댁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러니까 말이야. 거기 환자가 있던 데라서 그래.”
허나 로버트 리스턴 박사는 이 중에서 제일,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편해 보였다.
아니, 당연하게 여긴다고 해야 하나?
‘환자가 있던 곳에 이런 게 있으면…… 그럼 안 되는 거잖아요.’
뭔 개소리를 해도 아무도 개기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그럴까.
맞아 뒈져야 할 것 같은 말을 하면서도 무려 웃었다.
웃어?
웃었냐?
뭐 어쩌겠어.
고개나 끄덕여야지.
“아, 네.”
나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겉옷을 벗어서 뒤를 확인했다.
누런 물이 묻어 있었다.
아.
고름이네…….
그나마 옷은 사정이 나은 편이었다.
침대는, 그러니까 내가 누워 있던 침대는 진짜 미쳤다.
‘으아…….’
미쳤다.
정신 나갈 거 같아.
진짜로.
‘이게…… 이거 다 구더기……?’
알을 낳고도 꽤 방치했는지 득실득실했다.
여기 있던 환자는 그럼 대체 어떻게 됐을까?
죽었을 것 같은데.
“얼마 전에 해부 실습실로 온 시신이 여기 있었어.”
죽었구나.
그걸 해부했고.
“내가 해부하다가 다친 사람이 이 사람이었대.”
지금 다친 지 일주일이 됐는데.
그럼 일주일 동안 이렇게 뒀다고?
나는 뭔가 항변하는 느낌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렇다고 리스턴 박사님을 노려볼 수는 없어서 나머지 둘을 노려보았다.
당연히 별 소용은 없었다.
조지프야 나처럼 신입생이고, 선배도 1년 선배니까.
“하여간…… 음.”
나는 침대에서 홀연히 떨어진 후, 교수에게 고맙다고 했다.
뭐가 고마운지는 모르겠지만 교수들한테는 그냥 고맙다고 해야 되더라고?
일을 시켜도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어야 좋아하잖아.
19세기라고 해서 별 다를 바 없는 건지, 로버트 리스턴도 좋아했다.
“그래, 몸조심하고. 오늘은 일찍 가.”
“네, 교수님. 감사합니다.”
나는 끝까지 감사하다고 하고, 집으로 가는 대신 산부인과 병동으로 향했다.
“?”
“?”
그런 나를 보며, 조지프와 앨프리드 모두 물음표를 띄웠다.
저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주여…… 저들은 저들이 하는 짓을 모르나이다…….’
나는 예수님이 된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병실…… 상태를 좀 보죠.”
“상태?”
“우리 병원이 런던 최고야.”
지랄 마.
그럴 리가 없어.
그래서는 안 돼.
“우리가 최고라는 마음가짐…… 이게 우리가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하여간 난 입 터는 거 하나는 자신 있는 사람이었다.
리스턴 같은 사람 앞에서는 뒈질까 봐 못 해도, 얘네 둘 앞에서야 뭐,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음.”
“듣고 보니까 또…… 그렇긴 하네?”
지금도 봐.
먹히잖아.
“우리 나름대로 보자고요. 무슨 생각으로 병실을 만들고 운영하는지. 그런 걸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특히 선배는…… 나중에 아버님이 병원 세워 주실 수도 있잖아요.”
“아, 또 그렇긴 하네.”
진짜냐?
진짜 부자구나, 선배.
나랑 친하게 지내.
“가죠, 그럼.”
“역시 식견이 대단한 후배야.”
“우리 평이가 업턴에서부터 날리긴 했죠.”
나는 두 부잣집 도련님 아니, 친우를 데리고 산부인과 병동으로 향했다.
아까 본 것처럼 병동은 총 네 개의 병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각 병실은 30인실이었고.
와.
두 번째인데도 충격이 가시질 않았다.
세상에 30인실이라니.
인권 같은 건 고려하지 않는 건가?
“여기부터 들어가 볼까요?”
기억을 더듬어서 아까 본 산모가 있던 병실 안으로 향했다.
아까는 놀래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의심을 안 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딱 들어서자마자 불쾌한 냄새가 났다.
코를 막지는 않았다.
실례가 될 테니.
내 뒤를 따르고 있던 둘도 그랬다.
‘이런 걸 참아 내는 게 훈장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나랑 생각은 다를 터였다.
그걸 어떻게든, 시간이 걸려도 교정해 주긴 할 텐데.
“아니…… 근데 왜 창이 저 위에 있어요?”
병실은 진짜 넓기도 했는데, 층고가 진짜 높아서 웅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런 넓고 높은 곳마저 더러워 보이게 만드는 건 일종의 재주 영역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여간 나는 그제야 창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모르지.”
조지프는 답하지 못했다.
“난 알아.”
앨프리드는 달랐다.
“이게 예전에는 창이 그냥 나 있었는데, 간혹 거기로 뛰어내리는 산모들이 있었대.”
“네? 왜…… 왜요?”
“너야 뭐 업턴에서 왔고. 너도 잘사는 집안 출신이니까 잘 모르겠지만…… 여기 빈민층들은 진짜 가난하거든. 자살해 버리는 경우가 있어.”
“자살이요?”
“응.”
산모가 자살을 했다 이 말인가.
그렇게 끔찍한 일이 있었으면 뭔가 복지 정책을 만들어야지.
창을 위로 올려 만들어서 해결해?
‘역시 19세기…….’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을 보여 주는 시대다웠다.
진짜 미친놈들의 시대라고나 할까?
‘이건 일단…… 보류.’
선배가 병원 지을 때는 이러지 말라고 해야지.
하지만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래서 닥치고 있기로 했다.
대신 침대를 살폈다.
자세히 안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더러웠다.
“이거…… 이건 안 갈아요?”
“응? 아니, 갈지.”
“언제요?”
“환자가 입원할 때…… 자기가 챙겨 와. 그러지 못하면 원래 쓰던 거 받고.”
“아.”
와.
그런 시스템이었구나.
그래서 아까 거기도 그냥 남아 있었고.
이건…… 이건 고쳐야 되는데…….
“근데…….”
“왜?”
이렇게 해맑게 물어 오는 놈에게 뭐라고 한담.
‘뭐라고 하지 말까?’
말을 해 봐야 소용이 있을까 싶긴 했다.
사실 내 입장에서는 그냥 이대로 입 닥치고 있다가, 자격증인지 면허인지 하여간 뭐든 따고 뭐라 하는 게 이득이긴 했다.
하지만 그동안 죽어 갈 환자들은 어쩐단 말인가.
내가 뭣도 몰라서 방치했다면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하겠지만.
난 알지 않나.
‘다 보인다고…… 미래가.’
이들의 미래가 보인다.
과연 얼마나 죽어 나가고 있을까?
내 상식으로는 거의 50% 이상일 것 같은데.
그래도 그것보다는 낮을 거란 직감은 있었다.
만약 그렇게까지 죽어 나가면 사람들이 오겠냐?
‘19세기 사람들이 생각보다 아주 강했나 봐.’
아무리 강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었다.
전에 봤던, 아마도 맹장염이었을 환자도 죽었잖아.
이 새끼들이야 뭘 모르니 멀쩡히 있을 수 있겠지만.
난 아니었다.
“이게 이렇게 더러우면 염증이 생기지 않을까요?”
“염증이 더럽다고 생겨?”
아닌가?
꼭 그럴 필요는 없을까?
앨프리드와 조지프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내가 먼저 뒈질 것 같았다.
‘아냐…… 사람 목숨을 떠올리자.’
단순히 좀 아프고 마는 문제였다면 물러섰을 텐데.
사람이 죽을 게 분명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
뭐라고 하나.
뭐라고 해.
아.
그래.
교수를 내가 뭐 야바위해서 딴 건 아니지 않나.
번개같이 좋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시신에서 항상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았어요?”
“냄새야 고약하지.”
“여기도 냄새 맡아 봐요.”
나는 일단 내 옷을 보여 주었다.
“윽.”
둘 다 코를 싸쥐었다.
내 옷인데.
망할.
“어디서 맡아 본 냄새 아니에요?”
“응?”
“선배 손에서 제가 짜낸 고름 냄새잖아요.”
“어…… 어어.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비슷한 입자가 원인 아닐까요?”
나는 과연 언제까지 박테리아, 바이러스 말 대신 입자라는 말을 써야 할까.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먹혔다.
“아. 그렇다면…… 이건.”
“이 입자가 어디든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럼 다 죽어야지.”
“피부가 있잖아요.”
면역 시스템이란 얘기도 하고 싶었지만.
그 순간 광장과 십자가 엔딩이 떠올랐다.
그냥 십자가도 아니고 불타는 십자가.
화형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형벌이라던데.
내가 몸소 나서서 실험해 볼 필요는 없지 않겠나.
“피부가 막아 주고 있는데, 그게 찢어지면…… 입자가 들어오는 거죠.”
“음. 그렇군. 근데 산모는? 산모들은 피부가 찢어지거나 하는 게 아닌데?”
양수는 그럼 어디서 터져 나오냐!
이 말을 하면서 뒤통수 한 대만 때리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데.
그 소원은 나중에 이루기도 했다.
선배잖아.
그것도 병원도 세울 만큼 부자인 선배.
“양수 터지잖아요. 그게 나오려면 어딘가 찢어졌겠죠.”
“아. 와…… 넌 정말…… 너 천재 아니냐?”
참.
천재라는 말을 하는 데도 더럽게 오래 걸리네.
당연히 천재지.
거기에 미래 지식까지 들고 있는데.
이걸 천재라는 말로 퉁치면 되냐?
“아뇨, 과찬의 말씀입니다.”
물론 겉과 속이 다르기로도 내가 또 천재의 영역에 있어서, 겸양을 떨 수 있었다.
“이게 묻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천도 깨끗이 해야겠지만…… 손도 닦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음. 약간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 같은데…….”
비약?
이걸…….
“그런가요?”
“응. 입자가 손 닦는 거랑 연관이 있다면…… 우린 안 닦는데도 괜찮잖아. 환자들 예후랑 관계없어 보이는데?”
아니, 아냐. 아니다.
손 닦아 봐.
닦으면 달라져.
“그, 그런가요?”
“그렇지. 네가 아직 신입생이라서 그런데…… 우리는 의대생이기 전에 과학자라고. 귀납적 추론이라고 아니?”
귀싸대기부터 때리고 싶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진짜 통계로 접근해야겠구만, 역시.’
속으론 영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알기로…… 애를 여기서만 낳는 건 아니거든?
다른 병원도 꽤 많다고.
시스템이 설마 다 같을 리는 없을 테니…….
‘손에 뭐 묻는 게 싫은 사람이 하나는 있겠지.’
그중에서 괜찮아 보이는 곳을 찾아 가르침을 주면 어떨까.
네가 그렇게 중요시하는 귀납적 추론의 기반이 되는 게 바로 통계라고.
통계로 조져 주겠어.
응?
“그럼 나갈까요? 가는 길에 다른 병원도 좀 봤으면 좋겠는데. 가능할까요?”
“왜?”
“그냥…… 견학?”
“넌 정말 배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구나. 들러 볼 수는 있을 것 같아. 어차피 우리 아버지가 여기저기에 후원금을 내서.”
“오.”
“그럼 갈까?”
“네.”
간다!
제발 다른 곳이 딱 하나라도 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