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0)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0화(170/505)
170화 항해 [3]
“읍읍.”
과연 뱃사람이다 싶었다.
아니, 가스가 막 들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정신을 차리고 날 노려보고 있어.
“이 새끼 눈알 봐라. 확 숟갈로 파 버릴라.”
“읍, 읍!”
근데 어쩌냐.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닌데.
나도 우리 교수님이 이렇게까지 격하게 나올 줄은 미처 몰랐는데…….
아무튼, 눈알을 부라려 준 덕에 리스턴 등은 정말로 나랑 이 환자 사이에 뭔 일이 있었는 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해 꽉 붙들어 잡게 되었다, 이 말이었다.
‘강력한 진통제 없이 이 짓을 하게 되다니.’
사실 나도 정형외과 의사가 아닌 데다가 있던 병원이 워낙에 큰 병원이다 보니 다른 과 환자를 기웃거릴 일도 별로 없었다.
물론 수술방이야 가끔 놀러 가기도 하고 했지만…….
이런 건 응급실에서 보는 질환이잖아.
외상센터에 있었으니 옆에서는 봤지만 직접 뭘 해 본 건 군의관 때가 전부였다.
‘그때…….’
처음엔 다행히 골절 환자가 아니라 어깨가 빠진 병사였다.
아, 나한테 다행이라는 거지 환자에게도 다행이라는 건 아니었다.
내가 뭐 그런 걸 배워 봤어야지.
대강 구조는 알지만…….
‘응급의학과 형한테 영상통화로 배워서 넣었지.’
결과적으로 넣기는 넣었다.
진짜 죽을 똥 살 똥 별짓 다 하다가 넣었는데, 진통제가 없었다면 아마 나나 그 친구 둘 중 하나는 뻗었을 거다.
난 맞아서 그 친구는 아파서.
다행히 해롱거릴 만큼 센 진통제가 있었던 데다가, 근이완제도 있어서 어찌저찌할 수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없어. 웃음 가스도…… 솔직히 지속되는 통증에는 아주 효과적이진 않아.’
배 수술도 하는데 이걸 못 하나 싶을 수도 있겠는데…….
사실 배 수술은 쨀 때가 제일 아프고 그 후로 장기 만질 땐 둔한 통증만 주지 않나.
그에 반해 뼈 통증은…….
난 아무리 생각해도 관우가 생으로 팔뼈 깎았다는 건 대륙의 거대한 구라 아닌가 싶다.
그건 사람이 의지로 참을 수 있는 종류의 통증이 절대 아니거든.
그냥 죽어.
“자, 일단 교수님.”
“응.”
“이거 책상 다리 좀.”
“이걸로 때려?”
그렇게 확 당기려다 보니까 여긴 깁스가 없는 세계관이라는 걸 깨달았다.
급한 대로 부목이라도 대어 주어야 한다 이건데, 그런 게 있겠나?
내가 만들지 않았다면 그냥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다행히 책상 다리가 쭉 뻗은 것이 부목으로 대체하기 좋을 것 같아서 말했더니 리스턴은 그 놀라운 용력으로 책상을 들어 올렸다.
“어어, 교수님!”
옆에 있던 뱃사람들도 화들짝 놀랐다.
넘실거리는 파도에 흔들리지 않도록 바닥에 고정해 놨었거든.
못으로 박아 놨다 이건데, 당기자마자 우지끈 소리와 함께 뽑혀 나왔다.
확실히 이 사람은 좀 더 옛날에 태어났어야 한다.
장군이 아니라 왕이 되었을 거 같어.
“다리만요.”
“그니까. 다리로 쳐?”
“아, 아뇨…… 그냥 다리를 잘라 달라고요.”
“아, 이 사람 다리를? 부러진 건 팔이야.”
“아니, 아니. 책상 다리를. 제 말이 어려우세요?”
“말을 이상하게 하네. 아무튼…….”
저 봐라.
붕.
언제 뽑았어, 칼?
그리고 언제 잘렸어, 다리?
뻔질나게 사람 다리도 자르던 양반이라 그런가 책상 다리 정도는 진짜 단칼에 잘라 내 버렸다.
“자.”
“아, 이건 일단 바닥에. 거기!”
“어어.”
다들 놀란 가운데 리스턴 교수는 무심한 얼굴로 다리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받아다, 이제야 정신을 차린 블런델 교수에게 주었다.
비몽사몽간이긴 하지만 이따 달라고 하면 줄 수는 있을 터였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대강의 부목과 묶을 만한 것까지 싹 구비를 해 놓고서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이제 슬슬 시작할 거란 뜻이었다.
“하나, 둘, 셋 하면 당기십쇼.”
“어, 그래.”
“이게 생각보다 어려울 거예요. 팔도 굵은 편인 데다가, 아플 거라…… 힘이 들어갈 겁니다. 그걸 이겨 내야 해요.”
“내가 누구 이기는 건 아주 잘하네.”
“네, 믿습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솔직히 반신반의했다.
칼로 책상 다리 자르는 거랑 이건 좀 얘기가 다르거든.
괜히 정형외과 레지던트 뽑을 때 힘센 것도 보는 게 아니라니까?
약이란 약은 다 쓰고 하는데도…….
이게 쉽지가 않아요.
‘그래도 하는 수밖에 없다.’
안 하면 어깨 잘라야 하고, 그럼 죽는다.
어떻게 해 봐도 죽을 거야.
그러니 이제 해야만 했다.
나는 이를 으득 씹으며 외쳤다.
“하나, 둘, 셋!”
“합!”
“엇!”
그리고 아랫배에 힘을 꽉 주면서 동시에 팔을 잡아당겼다.
조지프도 그랬다.
리스턴도 그랬는데…… 와…….
‘이 사람…… 이제 찾았다. 정형외과다!’
방금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실제로 찢어진 건 아닌 거 같은데…… 분명 살가죽이 좀 늘어났었어.
뼈?
뼈는 대강 맞았다.
우람한 뱃사람의 팔 근육은 리스턴 박사의 힘 앞에서는 영 맥을 못 추고 그저 늘어뜨려질 뿐이었다.
‘근육이 좀 망가졌을 수도 있겠어…….’
생전 처음 봤다.
근이완제 주고 해도 이렇게는 안 되거든?
근데…….
이게 막…….
솔직히 나랑 조지프는 없어도 될 뻔했다.
세상에 혼자서 이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왜 그러나. 뭐 잘못됐나? 역시 잘라? 내가 볼 땐 아까보단 나아 보이는데.”
“아, 아뇨. 아닙니다. 너무 잘됐어요. 역시 교수님입니다. 이거 조선에서는…… 정말 어려운 일인데…… 이렇게 단방에.”
“하하. 부끄럽지만 힘쓰는 일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네.”
“그, 그렇죠.”
믿음이 부족했다.
이 사람은 신이다.
아니, 신까지 가면 십자가 매달려 뒤질 테니까…….
아마 전생에 항우 정도는 되었을 거다.
“다리 줘요.”
“어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재빨리 움직여서 환자의 팔에 부목을 대고, 붕대 대용으로 쓸 커튼을 이용해 꽉 묶어 주었다.
“내가 할까? 그렇게 해서 묶이겠나?”
내가 볼 땐 꽉인데, 리스턴이 볼 때는 살짝인 모양이었다.
확실히 저 힘으로 꽉 당기면 팔이 졸릴 것 같다.
그게 필요한 상황이라면 부탁을 하겠지만…….
이것도 또 무작정 꽉 묶는 게 능사는 아니지 않나.
그랬다가는 피가 안 통해서 팔이 죽는다.
혈압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으면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이기도 하고, 또 응급실 인턴 돌다 보면 개같이 구르면서 또 혼나면서 배우게 되는 일이기도 했다.
무조건 손가락 끝이 보이게 해야 한다.
보랏빛을 띠기 시작하면 풀어야 하니까.
“아, 아뇨. 이게 또 조선의 비방입니다.”
“허…… 조선…… 이것 참 신기하네. 일단 아까보다는 확실히 나아 보여. 뼈가 붙은 건가?”
“아, 아닙니다. 오래 걸립니다. 그냥 방향이 어긋나 있던 것을 맞춰 준 거죠.”
“흐음…… 어떤 원리에서 그렇지?”
이 원리를 말해도 되나.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병원균 개념도 대충 뭉개서 알려 줬잖아. 뭔들 못 할까.’
물론 아주 잠시뿐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지금 파리 가는 것도 또 다른 구라 치러 가는 거잖아.
나 빼고 모두는 미아즈마라 생각하고 있을 테니 이 중에서 구라 치는 사람은 나뿐이긴 하지만…….
아무튼, 이 지경까지 오게 된 마당에 더 못 칠 것도 없었다.
“사실 조선에서는 그냥 경험적으로 했을 뿐입니다.”
거기에 더해 나는 구라를 아주 잘 치게 되었다.
조선에 대한 신비로움 또한 나날이 더해 가는 것도 있고 하다 보니, 내 말에 토를 달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근데 여기 와서 해부를 하면서 말입니다.”
“어어.”
“교수님이 팔을 좀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거기서 제가 실수를 해서 뼈를 부러뜨린 적이 있습니다.”
“뼈를?”
“네.”
“그랬던 적이 있나.”
이 봐라.
그랬던 적이 절대로 있을 리가 없는데 고개를 갸웃거리잖아.
이젠 내가 떠들면 다 그럴싸하게 들리게 되었다니까.
“네네. 근데, 그랬더니 팔 근육이 살짝 줄더군요.”
죽었으니까 수축을 한 건 아니다.
그냥 근섬유가 가장 편안히 놓일 만한 길이로 돌아갈 뿐.
“으음?”
“살아 있는 상태였다면 더 줄었을 거 같습니다. 아마도…… 근육이 수축을 하지 않습니까? 이거 보세요?”
“뭘 봐.”
“제가 알통이 작아서 그런데. 어우. 교수님…….”
“그래, 이렇게 되지. 근육이.”
나는 그 압도적인 알통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네네. 그렇게 수축을 하는 힘 때문에 부러진 팔뼈가 이렇게 어긋나는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니까…….”
“다시 당겨서 맞춘다, 이건가?”
“네.”
“그리고 그걸 이렇게 고정을 하는 거고?”
“네!”
“좀 모자라 보이는데…… 단단한 걸로 사방을 둘러싸야 하는 거 아닌가?”
와…….
이럴 때마다 확실히 19세기건 21세기건 사람의 지능 자체는 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적어도 리스턴은 나보다 재능이 있는 거 같아.
잘만 가르치면…….
나이와 지위 모두 역전되어 있긴 하지만, 감히 바라건대 그렇게만 한다면 아마 더더욱 역사에 남는 의사가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마땅한 것이 없어서요.”
“그렇긴 하지. 이럴 때마다 대장장이한테 쇠를 두드리라고 할 수도 없고…… 만들어도 당장은 뜨거워서 못 쓰겠지.”
“그렇죠.”
석고라는 게 혹시 있을까요?
라는 말을 나는 간신히 참았다.
이것도 나중에 한번 찾아보면 될 일일 터였다.
생각보다 이미 있는데 안 쓰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잖어?
“그…… 된 겁니까?”
“네. 일단은요. 하지만 이거 움직이면 다시 맞춰야 하니까 절대 움직이면 안 됩니다. 가만히 쉬게 하세요.”
우리의 대화 사이에 뱃사람이 용기를 내어 끼어들었다.
대상은 난데 어쩐지 눈치는 리스턴의 것을 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방금 보여 준 모습들이 워낙 좀 그렇잖아?
하여간, 나는 최선을 다해 설명을 해 주었다.
“아, 근데 이런 일이 흔한 건 아니죠?”
“네? 아…… 뭐, 드물진 않죠.”
그러다 또 이렇게 다치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나 하고 물었다.
폐쇄형 골절이어서 망정이지 개방형이었으면 진짜 죽었다고, 이거.
돌아온 답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희망적이진 않았다.
“그렇군요. 기도합시다.”
“네.”
해서 나는 손을 모았고, 뱃사람은 부적을 집어 들었다.
나중에 혹시 마녀로 몰려서 죽게 되면 배 탈 때 집어 드는 부적을 말해야겠다 싶었다.
“잠깐 나가지. 바다 보는 맛이 있다네.”
이것도 치료라고 진이 빠져서 쉬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갑갑한지 콜린까지 두들겨 깨워서 밖으로 나왔다.
쉬고 싶었는데 억지로 끌려 나가는 거라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딱 바다를 보기 전까지만 그랬다.
“와.”
“조선엔 이런 바다가 없나?”
시원한 바람에 기분이 좋아진 나를 보면 리스턴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뭐 섬나라인 영국만은 못하겠지만 우리도 삼면이 바다 아닌가.
“아, 아뇨. 반도입니다. 이탈리아처럼요.”
“아, 그렇군. 아무튼…… 이렇게만 가면 금세 프랑스겠군그래.”
“바로 파리는 아니겠죠?”
“무식한 소리. 칼레에 내려서 마차 타고 갈 거네. 거기서도 또 며칠이 걸릴 거야. 쓸데없이 넓다네, 프랑스는.”
프랑스라…….
거긴 또 어떤 마경일까.
런던보다는 낫겠지?
나을 거다.
나아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