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1)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1화(171/505)
171화 파리 [1]
파리.
2차 세계 대전 당시, 이 아름다운 도시가 전쟁으로 인해 파괴되는 꼴은 볼 수 없다는 명목하에 프랑스는 나치에 항복했다.
그 결과 비시 프랑스라고 하는, 그들이 최선을 다해 숨기고자 하는 역사가 탄생하고 말았다.
하여간, 그걸 알게 되고 나서…….
아니, 대체 얼마나 아름답길래 그런 결정을 내렸나.
이 비겁한 놈들 뭐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여기가 파리로군. 거참 쓸데없이 국토가 넓어. 좀 줄였어야 했는데…….”
“그러니까요. 프랑스 놈들에게는 과분한 땅입니다.”
“맞습니다.”
더욱이 내 주변에 있는 리스턴 박사와 조지프 그리고 앨프리드가 워낙에 프랑스에 대해 악의를 품고 있다 보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요약하면 프랑스에 대한 내 감정이 좀 별로였다 이 말인데…….
“와…….”
순수하게 감탄이 나왔다.
아름답다.
정말 아름다운 도시다.
어떻게 이 시기에 이런 도시를 만들 수 있었을까?
런던에 비하면 일단 하늘도 좀 나은 편 같았다.
날씨가 좋잖아!
해가 내리쬐잖아!
“뭘 그리 놀라나?”
“아, 아닙니다.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가지고…….”
“그렇지. 그래. 하여간, 좀 줄여 놔야 한다니까?”
하지만 그러한 감상을 그대로 풀어낼 수는 없었다.
여태 살짝 느끼고 있긴 했는데…….
확실히 영국과 프랑스 사이는 약간 우리와 일본 사이랑 비슷한 거 같다.
아니면 뭐 중국과의 사이랑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을 거 같고.
여하간에 안 좋다 이 말이다.
다그닥.
그러거나 말거나 프랑스는 영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인 동시에 유럽의 전통적인 지배자 격인 나라이지 않나.
지금이야 영국이 대영제국이고 그렇지만…….
유럽 대륙 자체에 대한 영향력만 놓고 본다면 역시 프랑스를 빼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기에 교류는 빈번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그렇잖아?
불만과 투덜거림이 이어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 되었건 우리가 탄 마차는 파리로 들어서고 있었다.
‘아.’
그렇게 가까이서 보게 된 파리는…….
‘더럽냐…….’
더러웠다.
바퀴에 걸리는 거, 저 검은 거.
저거 다 똥이다…….
‘아 맞다. 하이힐이 나온 게 똥 안 밟으려고 그랬다고 했지?’
나야 역사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그냥 낭설 아닌가 했었는데, 지금 보니까 낭설은 아닌 거 같았다.
이런 망할.
역시 19세기는 이런 건가?
어?
그런 거냐고…….
“아니…….”
아니다.
내가 틀렸다.
방금 전까지 내 머릿속 최악의 도시는 런던이었다.
근데…….
아닌 거 같어…….
“애들이 왜 이렇게 많죠?”
“애들? 아, 고아들이겠지.”
거리에 애들이 많았다.
누가 봐도 헐벗은 애들이었다.
런던보다 아무래도 훨씬 따뜻한 곳이지 않나.
사실 파리도 열대 날씨는 아니긴 한데, 런던보다는 그래서 그런가. 애들이 좀 너무 옷을 덜 입었다.
노출을 하기 위해 덜 입은 게 아니라 진짜로 그냥 입을 게 없어서…….
“고아요?”
“그래, 고아. 프랑스 놈들이 원래 그렇지 않나. 최근에 혁명이 있었다 보니 더 그렇겠지. 뭔 놈의 혁명을 이렇게 좋아하나 몰라, 이놈들은.”
그 꼴을 보면서 리스턴은 쯧쯧 하고 혀를 찼다.
나머지 인원들도 그랬다.
따지고 보면 런던에서도 내가 고아를 못 본 건 아니거든?
여기처럼 많은 건 아니긴 한데…….
그럼에도 꽤 있었다구.
“읍.”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생각도 그리 오래 유지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왜냐.
악취가 나기 시작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센강입니다.”
“어…….”
센강?
내가 예전에 봤던 책 중에 한강은 남북을 가르고 센강은 동서를 가른다는 제목의 책이 있었다.
내용은 모르겠는데 제목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라는 그 유명한 그림도 센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하지 않았나?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고?
‘여기나 템스강이나 거기서 거기겠는데?’
심지어 너비조차 템스강보다 좁아서 그런가. 더 구려 보였다.
“어, 어?”
“왜 그러나?”
“사람이 지금.”
“응? 아니, 저거 뭐야. 괜찮은 건가?”
방금 그 강에 수경 같은 거 낀 사람이 뛰어들었다.
수경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
어차피 뭐 보이는 것도 없을 거 같은데…….
“아, 저거 시신 건지러 뛴 겁니다.”
그때 붙임성 좋은 마부가 대꾸했다.
어쩌다 보니 프랑스 파리에 눌러앉게 되었다는 영국인인데 이런 식으로 영국에서 오는 이들을 안내하고 하면서 먹고사는 모양이었다.
그만큼 입담도 좋고 설명도 잘해 줘서 좋았는데 이번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양반이 영어를 많이 까먹어서 이러나 싶기도 했다.
뭘 건져?
“응?”
나만 그런 것은 아니었는지 리스턴도 되물었다.
그러자 마부는 뭐 대수냐는 얼굴로 대꾸했다.
“시신이요, 시신. 여기서 워낙 많이 죽어서요.”
“빠져 죽는다고?”
“아, 네. 스스로 몸을 던져요.”
“자살을 한다, 이 말인가?”
“네.”
“왜 번거롭게 물에 뛰어들지……?”
자살을 왜 하지 라는 말은 당연하게도 나오지 않았다.
자살에 대해 의문을…… 품기엔 너무 많이 죽어 나가서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사방을 돌아보면 오직 절망만이 가득해 보이는 삶이 너무도 많지 않나.
심지어 우리 병원도 산부인과 입원 병동을 보면 창문이 2미터 위에 설치되어 있었다.
삶을 비관한 산모들이 유리창을 통해 투신할까 봐서였다.
오히려 그 때문에 환기가 안 되고. 미아즈마가 아니지! 병원균이 쌓여서 더 죽어 나가고 있는데…….
하여간 우리 런던에서는 물에 뛰어드는 것보다는 목매다는 방식이 선호되고 있었다.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엄청 뛰어들어요. 그래서 저렇게 건지는 직업이 돈을 꽤 법니다.”
“물이 이렇게 더러운데 용케도 찾아내는구만?”
“그게…… 막상 의뢰를 받아서 건지고 보면 딱히 의뢰했던 사람이 아닌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잉…….”
“워낙에 뛰어드는 사람이 많은데, 그중에서 뭐 연고가 없는 사람들이 아무래도 더 많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방치되어 있던 시신을 건지는 거죠.”
“그럼 돈을 못 받지 않나?”
리스턴의 말에 마부가 하하 웃었다.
이 양반 이제 리스턴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게 되었을 텐데도 이러는 것을 보면 정말이지 어지간히 우스운 말이었던 모양이다.
‘여기 오는 길에 강도도 만났는데…….’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다시 한번 명복을 빈다.
아니, 사람을 봐 가면서 덤벼야지…….
감히 소드 마스터한테 덤벼?
그나마 우리가 다 의사라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다 죽었다.
내가 최선을 다한 덕에 둘만 죽었다, 이 말이다.
“마침 보이는군요.”
하여간, 무엄할 정도로 킥킥대던 마부는 다리를 건너다 말고 중간쯤 모습을 드러낸 섬을 가리켰다.
다리 중간에 있는 섬이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는 나름 규모가 있었다.
그리고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여기 해부 실습실이 있나?”
아, 그래.
시신 냄새가 났다.
정확히 말하면 부패하는 시신 냄새가…….
하여간, 블런델의 질문에도 마부는 하하 웃었다.
“모르그가 있습니다.”
“모르그? 그게 뭐지?”
“시체 안치소인데…… 전시소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전시소라고?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블런델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이었다.
리스턴도 마찬가지였고 나머지 학생들도 다 그랬다.
나?
19세기 분들도 이해가 안 가는데 내가 어찌 이해를 할 수 있겠나.
마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식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숫제 마차 방향을 살짝 틀었다.
“보여 드리죠. 보통 분들은 절대 안 끌고 갑니다만, 여러분들은 의사니까요. 나름 굉장히 인기가 있습니다.”
“인기가 있어?”
나름 설명도 덧붙이고 있는데, 그래 봐야 별 소용은 없었다.
오히려 의문만 더더욱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이려.”
그동안에도 마차는 달려서 딱 안치소 앞에 섰다.
그냥 안치소라기보다는 나름 연구도 하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방금 옷에 피 칠갑을 한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맨손으로 안에서 지나갔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 우르르…….
‘그래, 런던이나 여기나 다 같은 19세긴데 어디 하나만 다를 수는 없겠지.’
익숙한 꼴이다 보니 처음처럼 기겁하진 않았다.
“내리시죠. 돈을 내야 합니다.”
“돈을 내?”
“전시소라니까요.”
“자네 속이는 건 아니지? 그럼 재미없네.”
“네? 교수님을요? 차라리 교황님을 속이지. 전 일찍 죽기 싫습니다.”
“뭐, 그렇긴 하지.”
리스턴은 마부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껄껄 웃었다.
사실상 사기에 대해 가장 자유로운 사람이니만큼 애초에 속을 거란 걱정도 안 했을 터였다.
하여간, 우리는 얼마간 돈을 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
그리고 누군가 경악을 터뜨렸다.
보니까 블런델이었다.
누구보다 끔찍한 일에 진심인 그가 이럴 정도면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나마 사람들이 많아서 잘 안 보여서 망정인데…….
유리창이 있었다.
그 너머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침대가 있었고, 그 위에 놀랍게도 시신이 놓여 있었다.
“휘유, 오늘 사람이 많을 거 같더라니. 역시 그렇군요.”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블런델은 여전히 정신이 좀 나가 있었다.
런던에서 온 사람이지만 이건 선을 넘어도 너무 세게 넘었다고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미친놈들이 시신을 전시하고 그걸 구경해?
그것도 돈을 내고?
하지만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아까 오면서 보니까 신문에 토막 살인에 관련한 기사가 떴더군요.”
“그래서?”
한편 리스턴은 담력 만렙이니만큼 성큼성큼 다가가며 물었다.
아마 키가 크니까 금방 안에 뭐가 있는지 보일 터였다.
“그런 특이한 시신이 뜨면 시민들이 몰립니다. 와서 추리도 하고 뭐 그러죠. 일종의 유흥거리입니다.”
“아…… 거참…….”
레볼루숑의 나라라서 그런가……?
단두대의 나라라서 그런 거야?
토막 살인 당한 시신을 돈 내고 보러 와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그러고 보니까 어?
막 떠드는 소리가 나긴 한다.
“아. 이런. 진짜네.”
그리고 제일 앞서가던, 동시에 제일 키도 큰 리스턴이 탄식을 터뜨렸다.
어지간한 사람들보다 머리통 하나는 큰 사람이니만큼 여전히 뒷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 보이는 모양이었다.
“뭐, 뭐…….”
“어…….”
“비키세.”
나는 프랑스 말을 모른다.
하지만 리스턴을 돌아본 이들은 아마도 이렇게 말을 했을 터였다.
그렇지 않으면 홍해가 갈라지듯 확 갈라질 리가 없어.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우리는 곧 시신을 볼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참혹한 시신이었다.
살해당한 시신.
이걸 전시하다니.
경찰은…….
경찰이 하는 거겠지.
“초보의 솜씨로군.”
“네?”
“초보야. 잘 보게. 평. 단면을 봐.”
“어…… 네?”
아니, 댁은 여기서 왜 추리를 하고 앉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