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3)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3화(173/505)
173화 파리 [3]
다그닥.
그 붙임성 좋던 마부가 말이 좀 줄었다.
지쳤나 해서 보니까 살짝 질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왜 그러지?
자기가 보여 주려고 했던 거 봤고, 심지어 더 안쪽에서 봤잖아.
게다가 우리의 능력도 이곳 경찰에게 증명한 참이지 않나?
‘뭐…… 벌써 며칠 동안 이동했으니까…….’
지칠 때도 됐다 싶었다.
나도 슬슬 힘들긴 하거든.
가만히 앉아서 이동하는 것도 이게 만만한 일이 아냐.
괜히 옛날엔 떠돌이가 고생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았었는지 알 것도 같달까?
“워워.”
하여간, 우리는 시신 전시실이 있던 시테섬을 지나 센강을 완전히 건넜다.
그러고 나서도 좁다란 길을 한참 달려야 했는데 이게 길이 진짜로 엉망진창이었다.
똥 밭이라는 얘기는 아니었다.
아니, 똥 밭이 맞는데 그거야 뭐 익숙해진 지 오래니까 이제 와서 그런 걸로 뭐 놀랄 이유가 있겠나.
‘아니…… 사람 쳐 죽이겠어…….’
길이 어찌나 좁고 구불구불한지, 이러다 사람 치겠어가 아니라 이미 몇몇 치고 왔다.
그게 일상인지 아파하는 기색은 보여도 뭐라고 하지도 않았다.
부랑자라 그런가. 괜히 문제 일으켰다간 더 크게 아프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거 같기도 했다.
이쪽도 하늘과 강을 보면 산업혁명이 이미 한창일 텐데…….
런던과 비슷하거나 어쩌면 더 심한 빈부격차가 있는 모양이었다.
“다 왔습니다.”
그렇게 꽤나 달리고 나서야 우리는 우리가 가르침을 줄 병원에 도착했다.
유럽의 여느 건물이 그러하듯 상당히 고풍스러워 보이는 건물이었다.
석조 건물이 확실히 멋이 난다.
그럼 기대가 되냐?
그렇지는 않았다.
“프랑스 왕립 외과 아카데미라…… 이름은 거창하구만그래.”
리스턴은 프랑스어에 있어 말은 잘 못 해도 더듬더듬 읽을 줄은 안다고 했다.
거기에 더해 원체 머리가 좋은 양반이다 보니 여기서 지내는 며칠 동안 더 늘어 가지고 간판에 있는 글씨를 턱턱 읽어 냈다.
확실히 왕립 아카데미라고 하니까 아까보다도 한층 더 있어 보였다.
“잘 오셨습니다. 닥터 리스턴, 오래간만이구려.”
하여간, 우리가 앞에 도착해서 잠시 서성거리고 있으려니 누군가 안에서 나왔다.
여럿을 대동하고서였는데 우리랑 비슷한 구성이었다.
교수 하나에 조수 여럿.
물론 우리는 조수처럼 보이는 내가 교수긴 한데…….
“아, 오랜만이군.”
다행히 이 사람이 영어가 좀 되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일정 마치시면 호텔로 모시겠습니다.”
“아, 그래. 부탁하지.”
리스턴은 마부에게 팁을 좀 건네고 방금 인사를 건넨 사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들은 건데 이름이 피에르라고 했다.
장 피에르.
너무 프랑스스러운 이름이라 오히려 가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딱 들어가니까 로비부터 나왔다.
확실히 프랑스가 아무리 대영제국에는 못 미친다고 해도 식민지가 한두 개가 아니지 않나.
본토의 부유함으로는 뭐 비교도 못 할 정도고.
유럽의 옥토란 옥토는 다 가지고 있는 놈들이다 보니 상당히 화려했다.
그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의외로 한 초상화였다.
“아, 이분이 닥터 평이로군.”
“그래. 내가 편지로 말했지? 대단한 친구야.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온 귀족일세.”
“하하. 어쩐지 다른 동양인들과는 다르게 어딘지 모를 기품이 느껴지는군그래.”
둘은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더니, 내가 여태 보고 있던 초상화를 가리켰다.
“이 사람이 우리 프랑스 외과가 있게 한 주인공이시네.”
피에르는 자부심 어린 얼굴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이건 나도 좀 흥미가 일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그럴까.
“펠릭스 경이신데, 원래는 이발사였네. 그러다 루이 14세의 치질을 치료하라는 명을 받게 되지.”
“아.”
치질.
그래, 나 이거 내 전임 교수님 자료 뒤지다가 봤다.
나름 치질 수술의 집대성을 이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치질을…….
그게 따지고 보면 혈관 덩어리인데 그걸 막 태웠더라고.
그러다 항문이 같이 타면 뭐 이제 죽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 사람이 실로 그걸 묶어서 지혈을 어느 정도 한 후에 자른다는 술식을 개발했다.
“루이 14세에게 바로 수술을 할 수가 없으니, 다른 이들에게 연습을 하게 되네. 그 과정에서 75명이 사망하게 됐어. 그 결과 현대의 치질 수술이 완성된걸세.”
“아.”
대체 어떻게 그걸 왕에게, 상대적으로 실험적인 수술을 할 수 있었을까 했는데 그게 아니었구나.
아무리 왕을 치료했다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75명이나 죽었는데 이렇게 떡하니 명예로운 자리에 초상화를 지킬 수 있다니…….
내가 프랑스 사람이라고 해도 혁명 한 번쯤은 생각을 했을 거 같다.
“아무튼, 이쪽으로.”
피에르는 그렇게 설명을 하다가 이내 발걸음을 우측으로 옮겼다.
딱 봐도 복도가 어둑한 것이…….
뭔가 좀 심상찮았다.
물론 우리는 다 익숙했다.
저 깜빡거리는 가스등 하며 어디서 많이 보지 않았나?
“그래도 외과 아카데미에 왔는데 해부부터 해 봐야지.”
“그렇지. 하하 해부는 아무래도 내가 최고 아니겠나?”
“팔다리는 그렇지. 하지만 자네도 알겠지? 마취가 가능하게 된 이상…… 다른 곳도 슬슬 건드려 봐야 하네.”
“하하. 이 친구…….”
그래, 우리는 해부 실습실로 향하고 있었다.
두 교수는 은근히 경쟁의식을 불태우고 있었는데, 역시나 팔다리 절단에 있어서만큼은 이 프랑스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팔다리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프랑스 사람이 인정하는 걸 보면 뭐 말 다 한 셈 아니겠나.
사실 리스턴은 이후로 내게도 배웠으니 이제 해부로는 이길 사람이 없긴 할 터였다.
뻔한 승부보다 내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아무래도 프랑스의 해부 실습실의 위생은 어떤가였다.
찍.
바로 그때 옆으로 쥐가 지나갔다.
진짜 쥐다.
잘못 봤나 했는데…… 쥐야.
“아…….”
“뭘 그리 놀라나. 당연한 일인 것을.”
그리고 우리의 피에르 교수님은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러냐는 투로 내게 말했다.
‘하긴 여기만 깨끗한 것도 너무 이상한 일이긴 해…….’
나는 잘못 품었던 기대를 싹 접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 흔히 보던 광경이었다.
날아다니는 파리.
썩어 가는 시신.
심지어 그 시신에 행한 해부조차 별 체계가 없다 보니 어떤 것은 어떻게 하면 끔찍하게 보일 수 있을지 골몰했던 것으로 보일 정도로 엉망이었다.
“평.”
나갈까, 하는데 리스턴이 날 불렀다.
“네?”
“마침 새 시신이 들어온다고 하니, 그때 실력을 좀 보여 주지.”
“아…… 그런가요?”
“그래. 내일이면 적어도 네 구가 수급이 될 거라고 하네. 여기 지금 있는 건 좀…… 그렇잖아.”
“아, 네.”
지금은 아니군.
바로 나갈 수 있군.
이 생각으로 네 하고 나왔는데 나오면서 생각해 보니까 말이 어째 좀 이상했다.
시신이…….
내일 수급이 된다는 걸 어찌 알고 있는 걸까?
뭐 설마하니 어디서 사형식이라도 있는 걸까?
“여기는 프랑스지 않나. 이들에게 준법정신을 기대하는 건 과도한 처사일세.”
내 얼굴을 읽어 낸 리스턴이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내가 볼 때는 영국도 도긴개긴이었는데, 영어를 알아듣는 피에르조차 이에 대해 별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하늘 위에는 하늘이 또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우리는 해부 실습실에서 나와 강의실도 보고, 그 강의실에서 수술이 이루어진다는 것도 들었다.
어떤 수술은 아예 극장에서 시행하기도 한다고 했다.
나약한 버전의 나였다면야 기절이라도 했겠지만, 지금의 내게 이런 일은 그저 익숙한 일일 뿐이었다.
그래서 상당히 심드렁한 얼굴로 구경 다닐 수 있었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그렇게 수업하는 것도 구경하고 있으려니, 피에르가 자신의 머리를 두드렸다.
그러곤 상당히 밝은 얼굴로 리스턴을 돌아보았다.
“자네가 근데 문학이나 음악에 조예가 있던가?”
아니, 정정.
약간 비웃는 듯한 얼굴이었다.
아까는 반가워하더니만 이제 보니까 서로 먹이는 사이 같았다.
저러다가 리스턴이 주먹 먹일 생각을 먹게 되면 큰일일 텐데…….
“뭐, 그럭저럭 있지.”
리스턴은 어떻게 봐도 문학과 음악에 조예는커녕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보이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그냥 지기 싫어서 고개를 끄덕이는 거 같은데…….
피에르는 마침 잘됐다고 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래? 그거 잘됐군. 내가 친하게 지내는 예술가들이 모이는 클럽이 있는데, 가 보겠나?”
“밥은 먹고 가야지.”
“아아. 물론이지. 그치들이야 밥 대신 술 퍼먹는 이들이긴 하지만…… 우리까지 그럴 수는 없지 않나. 무엇보다 영국에서 온 자네들에게 프랑스 음식을 되도록이면 많이 먹여 주고 싶구만그래.”
“음.”
음식 얘기에 리스턴은 더 이상의 기 싸움을 포기했다.
영국인들이 음식은 못 만들어도 음식에 대해 양심은 있는 편이라서 그랬다.
사실 양심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인간들이라 해도 감히 영국 음식을 보고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 않겠나.
게다가, 매우 놀랍게도 우리의 리스턴 박사님은 인성이 뛰어난 편이다 보니 저런 반응도 그리 놀랄 것은 아니었다.
“내가 사지.”
“아, 늘 고맙네.”
거기에 더해 피에르는 우리에게 음식을 쐈다.
약간 불쌍한 영국 놈들…… 이라는 말이 귓가에 맴돌고 있는 느낌이긴 한데.
나야 조선 사람이니 그리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게다가 음식 맛이 매우 훌륭했다.
물론 이게 내가 21세기에서 먹었던 그런 음식 맛과 비견될 정도라는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자작하게 끓인 신라면에 우유 부어다 먹는 맛에 비하면 이 시기 음식들은 다 별로였다.
“와…….”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이건 내 감상이었고, 다른 놈들의 감상은 살짝 불쌍해 보일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어떻게든 프랑스제를 깎아내리고 싶어서 안달이 난 얼굴이긴 한데 한 입 한 입 먹어 갈 때마다 어째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감탄뿐이었다.
리스턴도 그랬다.
그는 제법 멋들어진 손동작으로 프랑스 와인도 마시고 있었다.
“맛있군.”
“그래, 영국 음식에 비하면 어떤가.”
“우리 음식은 쓰레기야.”
“자네 취했나?”
“솔직한 거지.”
심지어 매국노에 해당하는 말까지 해 댔다.
뭐, 그럴 만큼 훌륭한 식사였다.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는데…….
“이제 슬슬 클럽으로 가세. 매번 다른 곳에서 열리는데, 마침 이번에는 아주 가까워.”
“그래. 근데 그 클럽 이름이 뭔가?”
“하시시 클럽이라네.”
“하시시라.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군그래.”
“그렇지. 약간 모래 내음이 나지 않나? 사막의 언어일세.”
둘은 술도 마셨겠다, 신이 나서 떠들어 대고 있었다.
길거리를 함부로 걸어가면서였는데 둘 다 딱히 괴한의 습격 따위는 걱정하지 않는 듯했다.
당연했다.
프랑스의 깡패들도 다가오긴 했는데 리스턴을 확인하자마자 순간이동이라도 하듯 멀어지고 있었으니.
그보다 내 머릿속을 휘저은 것은 따로 있었다.
‘하시시……? 내가 이걸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