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5)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5화(175/505)
175화 하시시 클럽 [2]
내가 관상 얘기도 했었나?
하긴, 별의별 얘기 다 하긴 했을 터였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이 사람들이 결국, 런던에서의 내 가족과 같은 이들이지 않나.
술을 먹어도 이들이랑 먹고, 밥을 먹어도 이들이랑 먹으니까.
‘뭐 그래도…… 다행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사람이라서 다행이다 싶었다.
“블런델! 자네 벌써 뻗으면 어떻게 하나!”
“으으…… 어지러운데.”
“아니, 이 좋은 걸 두고 어지럽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망발이야!”
아니, 아닌가.
저건 그냥 약쟁이잖아?
아니, 카르텔 보스?
“그래, 글은 계속 써 보긴 해야겠군.”
하여간, 옆에 있던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이런 식으로 중얼거리더니 하시시를 한 모금 빨았다.
당연한 얘기를 하면서였다.
역사에 남을 작품을 몇 개나 쓴 양반도 이런 고민을 하긴 했구나 싶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지만, 내게는 살짝 위안이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19세기 의학.
이거 내게 좀 버겁거든.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많다, 이 말이었다.
‘그래…… 계속 밀고 나가 보자…….’
나는 빅토르 위고의 진중한 얼굴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내가 제정신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시시 이거 독하네…….
피에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그냥 대마도 아니고 대마를 응축한 무언가라고 하는데.
나는 진짜 시늉만 내고 실제 연기는 남들이 내뿜어 대는 것만 마셨는데도 해롱거리는 느낌이다.
“저기, 나는 어떻소?”
잠깐씩 깜빡도 하고, 또 술도 마시고 양옆에 있는 베를리오즈와 빅토르 위고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려니 반대편에 있던 이가 말을 걸어왔다.
묘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눈은 동그랗고 커다란데 쌍꺼풀이 짙게 져 있었다.
코는 둥글넓적했고 피부는 거뭇했다.
거기에 더해 머리는 곱슬이었다.
‘혼혈인가……?’
아마 백인과 흑인 사이의 혼혈인 듯싶었다.
‘딱히 차별을…… 적어도 이 자리에서 받는 거 같진 않아.’
그러고 보니 내게도 이상하리만치 호의적인 모임이었다.
아무래도 이미 인종적인 무언가를 뛰어넘은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서 그런 듯했다.
그 이유가 된 사람은 당연히 지금 내 눈앞에서 동그란 눈을 뒤구르르 굴리고 있는 이 사람일 테지.
딱 보니까 여기 면면들이 보통이 아니다.
피에르야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뭐…… 리스턴과 교분이 있는 사람이니만큼 나름 유명한 사람이지 않겠나?
베를리오즈나 빅토르 위고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흑인 혼혈에 프랑스 파리…… 딱 한 사람뿐이지.’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나름 잡지식에 능했던 아버지 덕에, 또 어릴 때부터 이런저런 소설을 많이 읽어 온 덕이었다.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습니다. 알렉상드르 뒤마 아니십니까?”
“아니?”
다들 놀랐다.
당연하게도 제일 크게 놀란 것은 알렉상드르 뒤마 본인이었다.
후에 몽테크리스토 백작이라는 장르 소설의 효시라 불리는 불세출의 명저를 남긴 위대한 문호는 어딘지 모르게 주눅 든 얼굴로 나를 마주하고 있었다.
“나를…… 나를 어떻게? 혹, 내가 루이 필리프를 지지한 사실이 런던에도 퍼졌단 말이오?”
루이 필리프?
미안하지만 내가 아는 건 오직 잡지식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런 사람은 몰라.
이럴 때 굳이 거짓말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오. 누군지도 모릅니다.”
“현재 프랑스의 국왕이신데, 모른단 말이오?”
“아.”
프랑스 혁명 때 왕 다 죽은 거 아니었나?
나는 나의 무지함을 털어놓지 않기 위해 은근슬쩍 주제를 바꾸었다.
“하여간, 희곡 작가로 명성이 높다고 들었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이걸…… 하하, 이것 참 영광입니다. 근데 제 생김새까지 알려졌단 말입니까?”
“관상이죠.”
“허어!”
구라도 좀 쳤다.
어차피 다시 볼 가능성은 희박하지 않겠나?
이 기회에 프랑스에도 조선에 대한 신비한 이미지를 박아 넣으면 언제라도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영국, 프랑스가 사실상 제국주의 첨병이잖아?
혹시 모르지.
우리가 일본보다 더 발전하게 될지도?
“거참 조선이라는 나라는 알면 알수록 신비하다니까.”
리스턴은 이미 조선에 매료된 지 오래다 보니 감탄을 늘어놓았다.
물론 암만 리스턴 박사가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제는 하시시에 의해 정신 줄 놓을 때가 한참 지났기 때문에 그는 곧 옆에 있는 피에르와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뭔 얘기를 하는지는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기도 했을뿐더러 나도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뒤마와 대화를 본격적으로 개시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참 영광입니다. 그…… 이런 말을 해서 그렇지만 런던에서도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좀 있는 편입니까?”
“아, 그럼요.”
사실 잘 모른다.
차별이 없진 않을 거 같은데, 적어도 내 앞에서 하는 놈들은 없거든.
있긴 했는데 지금은 리스턴에 의해 싹 정리된 지 오래였다.
지금은 나와 리스턴 그리고 경찰들과의 유착 관계를 대다수의 사람들이 알게 되어서 감히 그런 얘기를 꺼내는 놈들은 없었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뒤마는 차별을 당하고 있을 거란 점이었다.
“이거 어려우시겠습니다. 실은 저도 좀 그렇습니다. 당당한 프랑스의 시민인데도 불구하고…… 거참.”
“자네는 걱정할 거 없다고 해도 그러네. 문단 놈들 말은 신경 쓰지 말게. 글은 잘 쓰면 그만이야. 자네 희곡 나올 때마다 잘되는데 무슨 걱정인가.”
빅토르 위고가 그의 말에 위로를 건넸다.
과연 레미제라블 같은 명작을 썼을 만큼이나 훌륭한 사람 같았다.
“아무튼, 이거 정말 반갑습니다. 제가 제대로 모시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아아. 잠깐. 나도 모실 건데. 순서를 지키게.”
이번에는 베를리오즈도 나섰다.
나야 별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파리에 온 이상 적어도 한 달은 지내다 갈 거 같거든.
오는데 일주일도 넘게 걸렸는데 금방 갈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19세기의 여행은 이렇게 좀 쉬어 줘야지, 안 그랬다간 뒤지는 수가 있었다.
“쇼팽이라는 젊은 음악가의 음악도 연주할 겁니다. 제가 봤는데 썩 괜찮아요. 음악에 조예가 있으시다면.”
“네? 쇼팽이요?”
“아는 이름입니까?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는데……?”
“아, 아뇨. 이름이 특이해서요.”
“아, 하하. 그렇죠. 아무튼, 시간 되면 오시죠.”
“네네.”
와, 쇼팽도 있어?
확실히 영국이 아무리 대영제국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어도 유럽 본토의 예술적 역량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나름 조성진 공연도 보러 갔던 몸이니만큼, 쇼팽 본인을 볼 수 있다는 말을 듣자 마음이 들떴다.
그래서 그랬을까?
적당히 먹었어야 했는데 거기서 주던 음식도 많이 먹어 버렸다.
-주의하게. 물갈이를 할 수 있어. 제대로 된 식당 말고는 어지간하면 술만 먹게. 아니면 하시시를 피우거나.
리스턴의 당부도 잊고 그랬다.
사실 파리라는 점이 내 주의력을 흩어 놓기도 했다.
아니…….
그렇잖아.
파리라고 하면 문화의 중심지라는 느낌이 있잖어.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도 죄다 정말이지 역사에 길이길이 남는 사람들이었고…….
비록 딱 그날 낮에 본 파리의 모습은, 센강의 모습은 끔찍했지만 그때는 취해서 잊었다.
“이보게, 평. 화장실 혼자 쓰나? 좀 나오게.”
“죄송, 죄송!”
“자네 혹시 어제 거기서 뭘 줏어 먹었나? 내가 그러지 말라니까. 원래 사람은 다른 지방에 가서 주의하지 않으면 이렇게 설사를 하게 되어 있네. 게다가 파리를 보게. 런던 못지않게 미아즈마가 쌓여 있을 거 같지 않나?”
“으아.”
“이런. 시발.”
리스턴은 참으로 시기적절하게 내게 배운 욕을 지껄이고는 뒤로 물러섰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무례하기는 했다.
19세기 문짝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좀 허접스럽다 보니 냄새가 새어 나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소리도 적나라하게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날 제일 괴롭히는 건 그냥…….
설사였다.
“으아아아아!”
“어쩌지?”
“어쩌겠나. 사람이 약한데. 일단 오늘은 우리끼리 가지. 어차피 가서 당장 해부할 것도 아니고 가져온 템스강 물이나 먹이면 되네. 시신 물이야 여기도 충분히 많은 거 같더군.”
“신선한 시신 들어온다고 하지 않았나?”
내가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동안 블런델과 리스턴은 대화를 이어 나갔다.
문가에 서서 그러고 있었는데 참 비위도 좋은 양반들이다 싶었다.
“아 그거. 공급자가 어디서 잡혔다던데. 좀 기다리면 다른 놈들이 들고 올 거라고 하더군.”
“아니, 그거 괜찮은 건가? 잡히고 그러는 거면…….”
“훈방 조치라고 하니까 걱정 말게.”
“훈방이라고……?”
“여기 프랑스야. 법이라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네. 당장 7월에 혁명도 일으킨 놈들이야. 혁명이 취민가 이번이 몇 번째야?”
“하긴…… 여기 엉망이긴 하지.”
대화로 미루어 보건대 아마도 블런델은 방 안을 둘러보고 있을 터였다.
분명 호텔방인데 청소 상태가 엉망이었다.
런던에서는 내가 호텔을 가 볼 일이 없다 보니 비교는 안 되는데, 아무리 그래도 호텔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나 어제 쥐도 봤다구.
“하여간, 평. 대강 추스르고 쉬고 있게. 혼자 밖에 나가지 말고. 여기 위험할 수 있어.”
“아, 네. 근데 저 이따 베를리오즈가…….”
“아, 그놈은 믿을 만해 보이긴 하던데…… 근데 똥 지린 모습을 어제 처음 본 사람한테 보이는 건 괜찮나? 정 그러면 내가 대신 얘기해 줄 수도 있네.”
뭐라고 해 주려나.
똥쟁이라고?
그럼 쇼팽에게도 전해지겠지?
안 될 말이었다.
그리고 난 딱 느낌이 왔다.
이건 아직 감염이 아니라 독소다.
물만 먹고, 다른 거 먹지만 않으면 돼.
아니, 물이 문제구나.
술을 먹어야 되나.
“아, 아뇨. 괜찮아질 거 같습니다.”
“그럴 수가 없을 거 같은데…… 아무튼, 가겠네.”
“네네. 형님 잘 다녀오십쇼.”
“그래. 잘 싸고 있게나.”
아무튼, 나만 남겨 두고 다들 나갔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했다.
말 그대로 죽도록 싸고 나서야 밖으로 나온 나는 마비된 코를 깨우기 위해, 또 이따가 올 손님한테 방 안의 냄새를 맡게 할 수 없단 생각에 창문을 열었다.
“응……?”
이상했다.
왜…….
창문을 열었는데 화장실 냄새가 나지.
‘아, 강가라서……?’
하긴, 템스강에서도 비슷한 냄새가 나기는 하는 거 같았다.
한데 이 정도였나 싶기는 했다.
강에서 이상한 김 같은 것도 나고 있었다.
잘 보니까 강가를 지나던 사람이 구역질하는 모습도 보이고…….
‘파리가 런던보다 심한가 보네.’
의대 다니던 시절에 오염에 대해 배우긴 했다.
주로 예시로 들던 건 런던 스모그 사건인데, 그거 대강 보면 한 번 있었고 바로 고친 거 같겠지만, 사실은 수십 년에 걸쳐 반복되던 것을 1952년에 대량으로 사람 죽어 나가고 나서야 고치게 된 사건이다.
하여간, 그렇다 보니 런던만 부각되었는데 파리도 장난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그냥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물 대신 술을 마셨다.
이따 베를리오즈가 오면 쇼팽을 만나러 갈 생각만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