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6)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6화(176/505)
176화 콜레라 [1]
“아우.”
그냥 기다리지는 못했다.
중간중간 화장실에 가서 내 안에 들어온 미아즈마…… 아니, 독소를 빼내고 있었다.
말을 상당히 점잖게 하려고 애를 쓰긴 썼는데 그냥 설사를 하고 있었다고 보면 됐다.
그 와중에 계속 든 고민이 있다면 창문을 여는 게 나은가 아닌가였다.
분명 이 방 안엔 내 몸에서 나온 분자가 날아다니고 있을 터였다.
그럼 보통은 창문을 열어야 할 텐데…….
아무리 봐도 밖에도 그런 거 같단 말이지?
‘파리…….’
파리보단 런던이 나은 것 같다.
템스강보다 센강이 한 수 위야.
똑똑.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당연히 베를리오즈일 터였다.
어떻게 알았냐고?
마차가 왔거든.
“아, 네.”
“잘 지내…… 어? 왜 이렇게 수척하십니까.”
“하하. 물갈이를 좀.”
“아…… 뭐 그럴 수 있죠. 저도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고생 좀 했습니다.”
“아…….”
오스트리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말이로구만.
성급한 일반화는 위험한 일이지만 지금 유럽에 있어서는 딱히 그렇지도 않을 거 같다.
그냥 유럽은 지옥이라고 봐도 될 거 같아.
“아무튼, 나가시죠.”
“아, 네. 근데…….”
밖으로 나왔더니 냄새가 더 난다.
이상해.
이게 일반적인 일일까?
그럴 리가 없을 거 같다.
아무리 19세기 사람들이 강하다 해도 이건 좀…….
“원래 센강에서는 이런 냄새가 납니까?”
“아. 아뇨. 아니, 나기는 합니다. 근데 어제부터 더 나요.”
“어제……부터요?”
“아, 맞다. 리스턴 박사님이 힌트를 주셔서 경찰에서 토막 살인범을 잡았다고 하거든요. 근데 보니까 그놈이 벌써 여럿을 죽였다더라고요?”
여기서 리스턴이 왜 나올까.
아니, 나도 연루되어 있는 일이다 보니 관심이 확 쏠렸다.
“어…… 그래요?”
“네. 그렇다 보니까 지금 거의 뭐 축제 분위기입니다.”
“그거랑 냄새랑……?”
“뭐 새로 즉위한 왕께서도 민심을 다잡아야 하는데 이때다 싶으시겠죠? 음식과 술을 내려서 다들 엄청 먹고 있습니다. 많이 먹으면 많이 싸게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
이게 이렇게 연결이 된다고?
사실 대한민국에 살던 나라면 이해가 안 갔을 터였다.
뭐 싼다고 강으로 바로 흘러간다는 게 말이나 되나?
하지만 놀랍게도 19세기는 그런 시절이었다.
심지어 그 정도가 아니라 그 강물이 바로 상수도로…….
“아무튼, 가시죠. 지금 분위기 좋아서 공연도 성공리에 마칠 거 같습니다. 쇼팽 그 친구는 운도 좋지.”
“잘됐네요.”
운이 좋다기보다는 그냥 사람 자체가 쩐다고 보면 맞을 터였다.
쇼팽이라니…….
안 그래도 조성진 팬인데…….
문제가 있다면 이제 갓 스물이나 됐을 법한 쇼팽이니만큼 내가 아는 곡이 있을지 여부였다.
뭐 모르는 곡이라 해도 쇼팽 곡이니 좋을 거란 기대는 있었다.
무엇보다 그 쇼팽을 눈앞에서 대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자 흥분이 됐다.
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흥분할 수는 없었는데 배가 여전히 좀 아파서 그랬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어제 만난 사람들, 눈앞에 있는 베를리오즈를 포함해서 다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이쯤 되면 오길 잘했단 생각도 들고?’
비록 파리에 오자마자 시신 관람도 하고 길바닥에 똥 천지인 것을 보면서 경악하긴 했지만, 그런 와중임에도 불구하고 예술혼은 불탄다는 걸 똑똑히 보지 않았나.
다그닥.
아무래도 많이 싸서 그런가 정신도 좀 없고, 나도 일조했을 강의 냄새 때문에도 혼미한 와중이었지만 마차는 별로 개의치 않고 달리고 있었다.
주변으로 구토하는 사람들이 좀 보였는데 그 옆으로는 술 취한 행인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었다.
아픈 게 아니라 술에 취해서 토하는 거잖아?
뭐 술에 취한 것도 어느 정도 아픈 거라고 할 수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어어.”
“왜 이렇게 빨러!”
그중에서는 심지어 마차를 향해 뛰어들다가 되레 화내고 있는 놈들도 있었다.
거참…….
똥 지린 놈이 뭐 묻은 놈에게 성낸다고 하나?
아니, 이건 그냥 적반하장이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느리게 달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제대로 치인다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사람이 죽을 만큼 빠르게 달리고 있긴 했다.
하여간, 우리는 무척이나 고풍스러워 보이는 건물 앞에 당도했다.
그것을 올려다보고 있는 베를리오즈의 옆얼굴에서는 일견 성스러움마저 느껴졌다.
“여기가 파리 음악원입니다.”
“아, 여기가.”
나 또한 감개가 무량했다.
재능만 있었다면, 나도 음악을 전공하고 싶었거든.
결국엔 감상자로 남게 되었지만 그런 내게도 이곳은 특별한 곳이었다.
‘눈앞의 베를리오즈, 드뷔시…… 그리고 조성진이 나온 그 음악원이구나.’
여길 내가 드뷔시나 조성진보다 먼저 발을 들이게 될 줄이야.
“정말 음악을 좋아하시나 봅니다.”
“아, 네. 신의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짝 오버한 거긴 한데, 시대상을 감안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죽어 가는 사람에게 있어 의학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위해가 되는 시대 아닌가.
그에 반해 음악은 늘 위로가 되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게 최선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하. 이거야 원. 너무 좋군요. 아무튼, 안으로 드시죠.”
“네.”
런던에서 와서 따뜻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따뜻한 날씨는 아니지 않나.
걸치고 있는 옷도 아무래도 썩 좋은 옷이 아니다 보니 마차에서 나와서 감상에 젖는답시고 서성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기가 끼쳐 왔다.
다행인 것은 안은 꽤 따뜻하다는 점이었다.
과연 예술의 도시 파리답게 음악원에선 돈을 아끼지 않은 모양이었다.
마침 관현악단으로 보이는 이들이 연습이라도 하고 있는지 귀도 즐거웠다.
“얘기 들었겠지. 이분은 닥터 평이네. 조선에서 오신 귀족이시지.”
“아…… 안녕하십니까? 오스트리아에서 온 쇼팽이라고 합니다.”
“아,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쇼팽을 소개받았다.
사실 음악이나 들었지 어찌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쇼팽 했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조성진이었으니 뭐 말 다 한 셈 아니겠나?
‘엄청 말랐네. 키는 170정도 되겠고…….’
170이라고 하면 좀 작네 싶을 텐데 이 시기에서는 꽤 큰 편에 속한다고 보면 되었다.
아마 2년 전에 작고했을 슈베르트의 키가 150대라고 하니, 거인까지는 아니더라도 큰 편 아니겠나.
리스턴 박사님은 190 가까운 키에 어깨도 떡 벌어졌으니…….
그 인간이야말로 괴물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잠시 딴생각을 했는데 딱 걸렸다.
그렇다고 리스턴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건 좀 이상하잖아?
괜히 구라 마스터인 것이 아니기도 해서 나는 대강 둘러댈 수 있었다.
“아, 이상하게 듣지 마십쇼. 너무 말라서요.”
“응?”
“아, 이분이 런던에서 아주 유명한 의사입니다.”
“아아.”
이상하게 듣지 말라는 말만큼 이상하게 여겨야 하는 말도 드문 법이다.
쇼팽은 그 격언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는지 눈을 흡 뜨다가 베를리오즈의 말을 듣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런 반응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말을 이었다.
뿐만 아니라, 쇼팽의 얼굴도 자세히 살폈다.
‘아직 발병은 하지 않았군그래.’
워낙에 일찍 죽는 게 흔하던 시절이었다.
그걸 감안하면 베를리오즈는 60 넘어서 갔었던 거 같으니 장수한 편인데, 불행하게도 쇼팽은 그러지 못했다.
이 사람은 40을 넘기지 못한다.
왜?
결핵 때문에.
‘결핵 치료 약이 나오는 건 20세기 중반이야.’
노력은 해 볼 거다.
결핵만큼 많은 사람을 다양한 곳에서 쉬지 않고 죽인 병도 그리 흔치 않거든.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결국, 예방이 최선이었다.
“마른 사람이 결핵에 더 잘 걸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아시죠? 기침하다가 피 토하고 하는.”
“아…… 무서운 병이죠. 제가 그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단 말씀입니까?”
“네.”
따지고 보면 그냥 여기 있는 사람 전원이 걸릴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명백히 그렇게 죽었던 사람이 아무래도 제일 확률이 높겠지.
“잘 드시고…… 사람 많은 곳은 어지간하면 피하십쇼. 그리고 혹 걸렸다 싶으면 제게 연락 주십쇼. 런던 의과대학으로 주시거나 또는 리스턴 박사님에게 연락을 주시면 아마 답을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아, 네. 명심하겠습니다.”
말은 명심하겠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할는지는 모르겠다.
어떻게 아냐고?
건성이야.
하긴, 이제 스무 살 먹은 사람한테 건강 관리하라고 하면 뭐 얼마나 먹혀들겠나.
자고로 사람은 자기가 좀 아프고 난 다음에야 건강에 신경을 쓰게 되는 법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얼마간 더 얘기를 나누다가 음악을 들으러 갔다.
메인은 관현악단이었는데, 쇼팽은 아직 그렇게 명성이 쌓인 사람이 아니라 그런지 피아노곡 몇 개만 하고 말았다.
에튀드 Op. 10에 해당하는 곡들이 있어서 귀는 즐거웠다.
기분이 좋아졌다, 이 말인데…….
“웨에엑.”
“우웨에에엑.”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보다 보니 확실히 낮보다 토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 같았다.
아니, 거즘 다…… 토를 하고 있다.
그 토사물은 흐르고 흘러 센강에 닿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물은 상수도를 타고 수도관을 통해 또다시 각 가정집에 배달이 되겠지.
‘술 먹고 토한 거니까…….’
애써 좋게 생각하려 해 봤지만 불길한 생각이 가시질 않았다.
술 먹는 사람들이 확실히 줄어들어 있거든.
근데 토는 한다.
이건…….
‘아.’
그리고 중간중간, 어둑해서 확실한 건 아닌데 바지 내리고 있는 놈들도 있다.
아무리 19세기 사람들이라 해도 사람은 사람일진대 아무 부끄럼 없이 공공장소에서 변을 볼까?
어지간히 급하지 않고서야 그러진 않지 않을까?
그렇잖아.
“왜 그러십니까?”
내 표정이 좋지 못함을 느꼈는지, 베를리오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어 왔다.
우리 다 같은 광경을 보고 있는데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뭐 어쩌겠나.
나는 이제 그러려니 하는 마음을 품게 된 지 오래다 보니 별로 놀라지도 않고 답할 수 있었다.
“아, 저기 저 사람들 아픈 거 같아서요.”
“네? 아, 하하. 원래 술 취한 사람들이 저렇죠. 오늘따라 많아 보이긴 합니다만, 하하. 원래 파리 사람들이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센강의 해 저물어 가는 광경을 보며 술 먹다 취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아, 그렇군요.”
똥물 보면서도 낭만에 취할 수 있다니.
이것이 낭만파의 시대 19세기인가.
21세기 사람인 나로서는 절대 이해가 불가한 광경이었다.
아무튼, 파리 사람이 원래 저렇다니 근심을 좀 덜 수 있었다.
아주 잠시 동안만 그랬다.
“아, 평. 이제 오나? 오늘 아주 재밌었다네.”
호텔에 들어가자 상기된 얼굴의 리스턴이 있었다.
어제 클럽에서 나던 냄새를 풍기고 있었는데 피에르한테 삥 좀 뜯은 모양이었다.
“어떤 일이요?”
“이놈들이 템스강물을 먹으라 했더니 그것보다 센강의 물이 더 더러울 거라고 하면서 실험을 할 거면 프랑스식으로 제대로 하자고 하더구만.”
“아…….”
자부심 있는 건 좋은데 방향이 좀 이상하지 않냐?
“근데 지금 다들 토하고 설사하고 난리도 아냐. 확실히 미아즈마가 많은 거 같네.”
“아, 그렇습니까? 몇 명이 먹고 몇 명이 증상이 있는데요?”
“그게 중요한가? 프랑스 놈들이 내 앞에서 똥을 지렸다니까!”
“아.”
지금 가 봐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