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7)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7화(177/505)
177화 콜레라 [2]
“뭐 하러 가나. 똥 싸는 거 다 똑같지.”
그렇게 방을 나서려는 나를 일단 리스턴이 잡았다.
“그래. 그리고 자네도 몸이 편치 않잖아?”
블런델도 그랬다.
여차하면 아편팅크를 먹이려고 나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기도 했다.
지금도 봐라, 저거.
언제 사 온 거야.
열 받는 건 저걸 먹으면 확실히 설사는 멈출 거라는 점이었다.
장의 연동운동이 멎어 버리거든.
그럼 이러겠지.
-역시 만병통치약이구만! 하하!
-이제부터 우리 병원은 무조건 아편이다!
-모르핀을 놔라!
미친놈들이라는 생각만 들진 않는다.
이해가 가.
감기약으로 쓸 수도 있긴 하거든.
기침이 멎으니까?
물론 숨도 멎겠지만…….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미아즈마의 종류가 다르면 어쩝니까?”
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별 생각은 없었다.
당연히 종류가 다르지 않겠나?
여기 환경이 다르고 하니까?
균주의 다양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다들 이렇게 말할 터였다.
하지만…….
“대체 무슨 소리야, 이게?”
“뭔 말을 하는 건가. 미아즈마의 종류가 다르다니?”
이들에게는 그게 또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미아즈마라는 개념이 무언가 나쁜 놈이지 않나?
병을 일으키는 무언가라는 개념만 잡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아즈마의 종류라는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을 거 같긴 했다.
“그…….”
이해가 막 돼.
19세기 사람들이!
이러면 안 될 거 같은데 나도 어느새 19세기 사람 다 되었나 봐!
하여간, 이 위기를 어떻게든 타개해야만 했다.
‘돌아라 머리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일단 이 사람들하고 내 사이가 보통 사이가 아니잖어.
게다가 나는 조선에서 온 구라 마스터다.
신비의 나라 조선…….
“풍수지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조선에는.”
“풍수지리……?”
문제가 있다면 풍수지리에 대해 아는 것이 풍수지리라는 네 글자랑 배산임수밖에 없다는 건데…….
상관 없었다.
이 사람들은 풍수지리고 나발이고 하나도 모를 테니까.
“지리적인 특성에 따라 물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당연한 일 아닙니까? 대영제국이 운영하고 있는 여러 회사들을 봐도…… 인도에서 나는 물건 다르고, 아프리카에서 나는 물건 다르지 않습니까?”
와…….
나도 놀랐다.
그냥 막 입을 놀리는데 이런 말이 나올 줄이야?
하여간, 앵글로·색슨 놈들이 무식하긴 해도 지금 당장은 세계 경영을 하고 있는 입장이기 때문에 바로바로 이해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긴 하지.”
“확실히 물건이 다르지. 자라는 식물도 다르다고 들었네.”
두 교수가 이러고 있으니 곁다리로 따라온 입장인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 등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나마 앨프리드는 아버지가 국제 무역상이기 때문에 주워들은 게 많아서 더 열렬히 끄덕이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조지프도 그 집에 있으면서 나랑 같이 주워들었기 때문에 순 맹탕은 아니었다.
아저씨가 사람이 워낙 좋다 보니 어디 다녀오거나 하실 때마다 특산물을 선물로 주시기도 하고 그랬잖아?
심지어 이 시기에는 그놈의 담배나 코카나무를 옮겨 심으려는 노력이 있었다 보니 더더욱 잘 알아들을 수 있을 터였다.
딴 건 모르겠는데 코카나무는 안데스산맥 말고는 안 자란다고 하더라고?
아저씨가 하는 말이니 이게 사실인지 여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사람들은 그렇게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제가 여기 오면서 보니 확실히 프랑스 땅에서 자라는 식물이나 이런 것들이 영국과는 다르더군요.”
“아, 그렇지. 뭔가 멋이 없어.”
“후진 편이지.”
어떻게 봐도 프랑스는 신께 축복받은 땅 아니던가?
서유럽 최고의 옥토라고 봐도 무방했다.
21세기에서도 프랑스는 거의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으니 말 다 한 셈이었다.
그만큼 산천초목도 참으로 아름다웠는데 내 앞의 두 영국인들은 이 악물고 이를 부정하고 있었다.
뭐 굳이 뭐라고 하진 않겠다.
국뽕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을 수밖에 없는 거니까?
여기로 치면 주모가 막걸리 대신 위스키를 주려나?
“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나무가 어쩜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자라는지…….”
해서 나는 이들의 국뽕을 한껏 채워 준 후 말을 이었다.
“아무튼, 조선의 풀과 나무도 이곳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음식도 다른데…….”
“아.”
“아이고.”
음식 얘기는 괜히 했다.
어떤 맥락에서 얘기를 꺼내도 음식은 이들의 컴플렉스가 되기에 그랬다.
굳이 뭐 미안하다고 해서 이들의 자존심을 더 깔아뭉갤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그냥 넘어갔다.
“그렇게 생각을 해 보니까, 미아즈마도 다르지 않나 싶어졌습니다.”
“아…… 그럴 수 있겠군. 확실히…… 하긴. 아프리카나 인도로 향했던 군대가 말라리아로 유독 고생을 했다고 들었네.”
“아, 그렇지. 풍토병이 있다고 들었어. 그게…… 그래. 그러고 보니 미아즈마가 달라서일 수도 있겠구만.”
다행이다.
그래도 19세기라서 다행이야.
10세기쯤 됐으면 나는 아마 창대에 꽂힌 채로 십자군 전쟁의 십자가로 쓰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 검은 머리와 노란 피부야말로 신의 저주가 실존한다는 증거라고 하면서…….
그에 비해 이 지성인들을 보면 어떤가.
세상에 풍토병이란 말도 알잖아.
나는 감동했다.
“역시 교수님들이라면 제 말을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습니다. 물론 아닐 수도 있겠지만…… 확인은 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 프랑스 놈들이 하루에 몇 번이나 똥을 싸고 토를 하는지. 할 때 양은 어떤지. 양상은 어떤지 등등. 다 기록을 해 두면 두고두고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하하하하! 이거야 원! 생각만 해도 신나는구만!”
“그러니까 말이야. 할 수 있다면 화가도 부르고 싶군그래.”
“생각만 할 게 아니라 부르지! 나 돈 많아!”
“아, 맞다! 자네 이제 갑부지!”
둘은 뭐 어디 가서 프랑스 놈한테 싸대기라도 맞았는지 너무 신나 버렸다.
사실 나도 좀 신났다.
미아즈마의 종류를 가릴 수 있게 된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더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 분명했기에 그랬다.
더욱이 이곳 프랑스에서는 아직 소독에 대한 개념이 전무하다 싶은 상황이지 않나.
이 사람들이야 프랑스 사람들 죽어 나가는 것에 대해 알 바냐고 하겠지만 내게는 비슷한 생명이다.
앗.
방금 비슷하다고 했나?
가, 같은 생명이다.
다그닥.
하여간, 우리는 다들 들뜬 얼굴이 되어서 다시 왕립 외과 아카데미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니 우리의 센강에서 나는 냄새가 더 심해져 있었다.
‘불길하다…….’
원래 이럴 리가 없다.
사람들이 밤에만 쌀 리는 없잖아?
오히려 보통은 자다 깨서 아침에 뭐 먹고 장이 활성화되면서 싼다고.
그렇다면 아침에 냄새가 심하다가 밤이 되면 조금이라도 더 나아져야 할 텐데…….
‘뭔가…… 뭔가 벌어지고 있는 거 같아.’
멀리서 메아리처럼 들려오는 건 분명 토악질하는 소리일 터였다.
중간중간 철퍼덕대는 소리도 있는데, 자세히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마차는 그야말로 막힘없이 달리고 있었다.
“오늘따라 여기 사람이 없네.”
밤이라 그런 건 아닌 거 같았다.
아니,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상당히 많았어.
술 취한 깡패 같은 사람도 있고 했는데…….
뭔가 줄어들었다.
다그닥.
불안감을 안고서 도착한 병원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으아악.”
“어어어어.”
좀비처럼 돌아다니는 사람들 중엔 우리의 장 피에르 선생도 있었다.
프랑스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뿜뿜 하더니만 센강 물을 용기를 내어 마신 모양이었다.
사람이 국뽕에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법인데…….
아무래도 프랑스 놈들의 뇌는 달달한 와인에 절여져서 그런가 판단력이 흐린 것 같았다.
아니, 세상에 우리 템스강 물보다 딱 봐도 독해 보이는 걸 꿀꺽했어?
“그, 교수님. 시신 물하고 센강 물하고. 어디가 무슨 물 마신 건지 아시나요?”
“알지. 1층이 센강. 2층이 시신이야.”
“아…… 그럼…… 대체 규모가……?”
“이 사람들이 자존심을 부리더구만. 영국 놈들이 그렇게 용기를 내었다면 프랑스인으로서 질 수 없다고 하더니 온 병원 사람들이 다 먹었네.”
“아.”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이것이 본토 19세기인들이란 말인가?
섬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패기에 나는 그만 질려 버렸다.
물론 그렇게 계속 있다가는 이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릴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이곳의 공기 중에 균주가 넘쳐흐르게 될 것이고…….
그러다간 나도 걸릴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나는 나도 모르게 품에 늘 지니고 다니던 조악한 형태의 마스크를 꺼내어 찼다.
“음?”
“왜 그러나, 쫄보같이.”
“그러니까. 똥 냄새야 파리에서 늘 맡는 거 아닌가? 게다가 자네는 어제오늘…….”
“벗게. 부끄럽게 이 무슨 짓인가?”
그러자 리스턴과 블런델의 비난이 쇄도했다.
21세기에 유행하던 상남자론이 여기에서도 유행하고 있는 걸까?
아니, 아니다.
그것과는 다르다.
여기 이 사람들과 비교하면 21세기 사람들은 다 하남자다.
하나뿐인 목숨을 가지고 모험하는 이들을 대체 무슨 수로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교수님들. 미아즈마가 다를 수 있어요. 파리 놈들은 익숙해서 살아날 가능성이 있지만 우리는 죽을 수도 있습니다.”
“죽어?”
“네.”
“그건 안 되지.”
아니, 취소.
쫄보잖어.
그렇게 우리는 마스크를 낀 후, 아비규환을 지났다.
대강 모아 보니 무려 1층에만 오십 명이 있었다.
위에도 오십 명이 있을 거란 얘긴데…….
이 당시 병원 규모를 생각해 보면 진짜로 전원이 다 먹은 모양이었다.
‘입원한 환자는 어쩌고…… 아니, 아니지.’
환자들을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이 시기 병원에서는 뭘 안 해야 사람이 살어.
뭔가 최선을 다하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이 죽어 나가잖아?
우리가 대신 봐 주는 것도 의미가 없을 터였다.
나야 도움이 되겠지만 우리 친구들은 파리 사람들과 도긴개긴일 테니.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발적으로 죽음의 물을 삼킨 이 불쌍하고도 용감한 이들을 돌보는 것일 터였다.
다행히 이것에 대해서만큼은 우리 팀이 에이스였다.
“아시죠? 뭐 해야 하는지?”
“물 증류해서 먹여야지. 싸건 말건.”
“그렇죠. 미아즈마를 희석해야 합니다!”
“내게 맡기게. 화가도 불렀으니…… 이거야 원. 오늘은 잊지 못할 날이 되겠어. 돌아가면 여기저기 선물이라도 해야겠군그래.”
게다가 의욕도 충천이었다.
프랑스 놈들의 굴욕적인 모습을 이렇게 코앞에서 볼 수 있다니.
아마 런던에 있는 어떤 귀족을 데리고 와도 다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마셔!”
“으윽…… 물 먹고 이렇게 된 건데…….”
“자네 몸에 있는 미아즈마를 희석해야 해!”
“대체 그게 뭔 소린가. 미아즈마는 공기야!”
“지랄 말고 마셔. 죽기 싫으면.”
“으읏.”
자존심 강한 프랑스 놈들의 저항이 문제긴 했는데…….
그 콧대 높던 놈들도 리스턴 박사님이 칼 한번 뽑으니까 물을 벌컥벌컥 마셔 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의 고독한 싸움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