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8화(178/505)
178화 콜레라 [3]
“이, 이 개같은 영국 놈들.”
“물을 먹으니까 설사가 계속 나오는 거야!”
개념과 개념이 충돌하고 있었다.
말도 안 되는 개념이긴 한데…….
저게 이래 봬도 2천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유서 깊은 얘기였다.
우리의 위대한 의사 히포크라테스 옹께서 4체액설을 창안한 이래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뭐라고 했나?”
“아니, 아닙니다.”
지금 흔들리고 있었다.
리스턴이라는 소드 마스터를 마주하게 된 우리 빠게트 놈들은 속수무책으로 물을 먹고 있었다.
심지어 바다 건너오면서, 주로 내 주장에 의해 강화된 물을 먹고 있었다.
그러니까, 소금물이다, 저거.
“우웁.”
“짜…….”
그렇다고 해서 바닷물처럼 짠 건 아니었다.
지금 저렇게 설사하고 토하는데 바닷물 같은 거 먹이면 사람 죽는다.
삼투압 때문에 가뜩이나 빠져나가려 용 쓰는 물들이 막 나가.
아니면, 소변으로 나가야 할 물이 폐에 차던지.
그래서 농도를 잘 맞춰야 하는데 우리가 뭐 그렇게까지 개량을 순식간에 할 수가 있나?
해서 대강 싱겁게 뿌리고 있어서 진짜로 토할 거 같은 맛의 물이 저들의 입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저게 대체…….”
“저 악마 같은 놈들.”
센강 물을 먹은 1층 빠게트에 비하면 2층 빠게트들의 상태가 월등히 나은 상황이었다.
세상에 시신 물보다 더한 물이 있나 싶을 텐데 여기 있었다.
평소의 센강 물은 어떨지 모르겠는데 지금 이 시점에서 센강 물은 그냥 독극물이다.
대체 어떤 연유에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상하수도 모두 같은 수원을 쓰고 있다는 것은 물론 잘못이겠지만, 그게 물이 이렇게 더러워질 수 있다는 걸 뜻하진 않잖아.
‘이건…… 일단 사태 끝나고 알아봐야겠어.’
지금은 이 병원만의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당장 내일만 되도 그러지 않을 수 있었다.
도시 전체가 센강의 물을 퍼다가 먹고 있지 않나?
예외가 있기는 했다.
고급 주택이나 고급 레스토랑은 물맛을 중요시하는 미식가와 귀족 또는 신흥 부르주아를 위해 상류의 물을 길어 와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정말이지 극소수였다.
‘어쩌면…… 이제 파리는 하나의 지옥이 될 수도 있어.’
환경오염으로 인해 사람이 떼죽음을 당했던 경우를, 대개는 런던 스모그 사태만 있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사례가 있다.
시발.
생각해 보니까, 파리야.
‘2만 명이 죽었어…….’
콜레라.
21세기 대한민국에서조차 문제가 되곤 하는 전염병이지 않나?
2급 법정 전염병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
이유가 다 있는 법이다.
이 병은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치사율이 무려 50%까지 치솟는 병이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대로 된 상하수도 설비와 물을 끓여 먹는 등의 간단한 일만으로도 감염률을 극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점인데, 이곳은 이 간단한 일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다.
‘원래 하려고 한 치료는 뭘까.’
성급한 일반화는 금물이긴 하다.
하지만 콜레라라고 갑자기 제대로 된 치료를 하겠나?
말도 안 되지.
모르긴 해도 사람 죽이는 방향으로 특화가 되어 있을 게 뻔했다.
‘만약 도시 전체…… 그거까지 가지 않더라도 여러 군데서 치료를 하게 된다면, 이쪽과 비교가 될 거야.’
이전엔 사람 죽는 게 너무 무서웠다.
지금이라고 하나도 무섭지 않은 건 아닌데, 결국, 인간은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 봐야 아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됐다.
미아즈마의 새로운 개념을 우리 일행에게 때려 박을 수 있던 것도 결국, 리스턴 박사님 주도하에 이루어진 모종의 실험 덕이잖아.
그렇게 해 놔야 나중에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그래, 이게 맞다.
“자네, 왜 그렇게 웃나. 무섭게.”
빠게트 놈들의 목숨으로 우리 소중한 런던 시민들의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웃었나 보다.
리스턴은 환자들로 가득한 곳에서 홀로 웃고 있는 나를 보며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블런델 또한 나를 보면서 옆에 있던 조지프와 숙덕숙덕하고 있었다.
그래 봐야 목소리가 작지도 않고 또 층고가 쓸데없이 높아서 다 들렸다.
“역시 악당이라니까.”
“그렇죠? 무서울 때가 있어요.”
어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나를 위한 해명만 늘어놓을 타이밍은 아니었다.
내가 의도치 않게 벌어진 상황이 상당히 좋은 교보재가 되어 주고 있지 않나?
런던에서는 분명 시신에서 나온 물이 더 독했는데, 이곳 파리는 정반대였다.
센강 물을 먹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아프다.
그것도 뒤지게.
“교수님.”
“어, 웃다가 그러니까 더 무섭군.”
“원래는 시신 물을 먹은 사람이 증상이 더 심했죠?”
“어, 그렇지. 어? 그러고 보니…… 여긴 아니네? 확실히 미아즈마의 종류가 다르군그래. 프랑스 놈들의 똥이 그렇게 독한 건가.”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거 같다.
적어도 지금 이 시점에서, 여기 있는 빠게트들이 싸 재끼는 건 독이었으니까.
콜레라균이 잔뜩 들어 있는…….
‘항생제…… 페니실린도 아니고 테트라사이클린을 써야 해.’
사실 테트라사이클린도 많이 양보한 거다.
아주 오래된, 흙 속에 사는 미생물들이 분비하는 물질을 분리해서 만든 항생제니까.
지금은 이것보다 훨씬 좋은 게 많이 나왔는데…….
그럼 뭐 하나 당장 없는데.
다행이라고 해도 좋을는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콜레라에 있어 핵심 치료는 항생제가 아니라 체액 손실을 따라가는 거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하는 것처럼 물을 주는 거다, 이 말이다.
물론 그래도 죽어 나가긴 할 거다.
이건…….
런던에서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니까.
“네, 그런 거 같습니다. 에휴, 이 빠게트 놈들.”
“그거 아주 좋은 표현이네. 빠게트 놈들.”
우리의 말에 쓰러져 있던 빠게트 하나가 꿈틀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대장균 감염이나 포도상구균의 독소로 인한 설사와 콜레라로 인한 설사는 격이 달라서 그랬다.
그야말로 급속도라는 표현을 써야 할 정도로 빠르게 수분 손실을 일으키는데, 물만 잃어버리는 게 아니었다.
안에 든 전해질 또한 잃어버리게 되는데 이로 인해 경련을 일으키게 되는 경우도 흔했다.
소금이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모르겠다.
“일단 마셔라, 이놈들아.”
“으으.”
하여간, 나는 온 힘을 다해 물 거부하는 놈들의 입에 깔때기 비슷한 것을 꽂고 물을 부었다.
“고문을 해?”
“이…… 이 악독한 놈들. 피에르는 어찌 저런 놈들을 데려왔단 말인가.”
그 모습이 흡사 고문 같아 보이긴 했을 터였다.
그래서 2층에 있던 놈들이 이러쿵저러쿵 떠들기 시작했다.
괜찮았다.
런던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쟤네들도 픽픽 쓰러지는 거 시간문제다.
원래 저기가 더 독하다고.
“으읍.”
“으아아아. 나와!”
“그냥 복도에 싸!”
“아, 안 돼!”
좀 기다렸더니 아니나 다를까 위에서도 곡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가실까요?”
“그래.”
여기는 종류는 다르다.
아마 치사율로만 따지면 반의반의 반도 안 될 터였다.
런던에서처럼 운이 좋으면 아무도 안 죽을 수도 있단 말이었다.
다만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영국 놈들에게 질 수 없다고 하면서 너무 많은 놈들이 마셨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우리는 학생들뿐이어서 건강한 환자들이었는데, 여긴 딱 봐도 좀 나이가 있어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단체로 상 치르겠군…….’
상이라…….
제대로 장례식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시신을 묻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있을까?
그렇지 않으면 생매장당하는 사람이 꽤나 있을 터였다.
아니, 아닐 수도 있다.
여기도 병원이니까.
죽은 의학도는 거의 전원이 반강제적으로 해부 실습실로 보내지잖아?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 채 환자들에게 물 주느라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었다.
창밖에 떠오르는 해가 파리라는 도시 위를 비추고 있었다.
그 빛 아래 드러난 도시의 모습은 어제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우선 강물이 이상하다.
색이 이상해.
그리고 오가는 사람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상하다……?’
의학의 역사는 정규 과목이 아니다.
진짜 대충 배우고 넘어가는, 챕터 하나도 안 되는 부분에 불과하다.
족보에도 잘 안 나와.
허나 콜레라로 2만 명이 죽었다는 건 너무 특이한 사건이다 보니 기억에 남는데, 적어도 1830년은 아니었다.
물론 콜레라로 사람이 천 명 이상씩 죽어 나가는 건, 근대적인 상하수도 설비가 들어서기 이전의 대도시에서는 그냥 매년 있던 일이긴 했다.
하지만 지금 이 도시의 분위기를 보면 고작 천 명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 같다.
“평.”
감 좋은 리스턴이 내 옆에 섰다.
어제 거의 날밤 지새워 가면서 이곳의 100여 명에 가까운 환자들을 돌본 터라 그로서는 드물게 퍽 지쳐 보였다.
“네.”
“도시가 이상하네. 너무 조용해.”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런던도 이랬던 적이 있네. 콜레라야.”
“아…….”
좀 놀랐다.
경험적으로 이런 걸 알 수 있다니?
‘아니, 아니지. 리스턴은 천재야. 지식이 부족한 거지 머리가 나쁜 게 아니야.’
이런 사람이 거의 매년 연례행사로 벌어지는 사건을, 심지어 의학적으로 연관이 밀접한 사건을 허투루 넘겼을 리가 없다.
“하긴, 여기서 설사하고 토하는 사람들. 특히 1층에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증상이 심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큰 일이네.”
와, 감동이다.
내가 드디어…….
19세기 의사와 어느 정도 감정이 통하게 되었구나.
아닌 게 아니라, 진짜 큰일이다.
만약 2만 명 아니라 5천 명이라도 사망할 만큼의 감염이라면 재해다, 재해.
“우리, 잘못 치료한 것일 수도 있네.”
“네?”
허나 묘하게 대화가 평행선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금세 깨달을 수 있었다.
뭔 소린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을 덧붙이는 건 별 소용 없는 일이지 않나.
해서 나는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사실 제일 각광받고 있는 건 손더스 사의 악취 제거액이야. 또는 아편이나 에테르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 피마자유도 얘기가 있었는데, 그건 내가 써 봤는데 별로였고. 혹은 설사를 더 일으켜야 설사가 멎는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네.”
음.
다 들었는데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러 주장이 있는데 하나도 맞는 게 없어.
다행한 것은 이미 리스턴은 어느 정도 그래도 현대 의학의 세례를 받은 몸이란 점이었다.
자신은 아예 모르겠지만 이미 받았어.
“교수님.”
“말하게.”
“이건 미아즈마의 개념이 냄새에 머물러 있을 때 하던 치료법 아닙니까?”
“아, 악취 제거제? 음. 그러고 보니…… 그렇군그래.”
“실제로 이게 효과가 있었다면 매년 사람들이 그렇게 죽어 나갔겠습니까?”
“옳은 말이야. 그에 비해 우리 환자들은 여전히 경련하는 사람도 하나 없네. 아, 그럼……?”
“역시 콜레라를 일으키는 미아즈마도 있을 거란 추정이 맞지 않겠습니까? 증상이 더 심한 거죠. 하지만 결국, 희석시키다 보면 나을 겁니다.”
사실은 수분을 따라가서 맞추는 것이고, 시간을 끌다 보면 우리의 훌륭한 면역세포가 콜레라 놈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는 것이겠지만.
그런 말까지 할 수는 없었다.
“그렇군. 좋아. 그럼 사람을 더 고용하지. 이대로 가면 우리도 쓰러져 죽어.”
“네!”
그리고 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필요한 치료는 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