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7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79화(179/505)
179화 대재앙 [1]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다.
런던이고 파리고 간에 그냥 공기 오염은 다 같았던 모양이었다.
그냥 런던에서 스모그 사태가 좀 더 조명을 받았던 거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 영향도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여기보다는 런던이 더 추우니까…….
‘운이 좋았다, 이 말이지.’
인식이야 거기서 거기지 않겠나?
파리의 뒷골목 풍경이 런던에 비해 더했으면 더하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된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털었다.
그러곤 뒤를 돌아보았다.
벌써 이틀째 앓고 있는 환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의 뭐 깨어 있는 시간엔 싸기만 하고 있다 보니 다들 상태가 빈말로도 좋다곤 할 수 없었다.
냄새야 일단 참고 본다 치더라도, 눈도 퀭하고…… 하여간, 엉망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소독약을 마구 치고 싶어질 정도로 불결하기도 했는데, 이만하면 그래도 나은 셈이었다.
‘셋이 죽었어, 벌써.’
콜레라는 급성기에 특히 위험한 질환이지 않나.
설사가 너무 심하다 보니 탈수가 쉽게 오고 그로 인해 신장과 간 등의 다기관 부전이 오면서 사망해 버리기 일쑤였다.
또는 그렇게 쇠약해진 틈을 타 패혈증에 빠지기도 했다.
잠깐 썩은 빵이 아쉽단 생각이 들었지만 이상한 거 먹어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또 그런 러시안룰렛 같은 약을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셋이 위독한데…….’
처음 환자는 총 101명. 그중 셋이 죽었고 또 다른 셋이 죽어 가고 있다.
치사율이 6%에 육박하고 있다는 건데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점이었다.
아마 다 나을 때까지 보면 총 열 명 정도는 잃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망할…… 가망이 없어 보이네. 모르핀을 줘야 할 수도 있겠어.”
그러다 보니 처음엔 빠게트 새끼들이라고 하면서 약간은 들떠 있던 리스턴조차도 좀 침울해져 있었다.
블런델도 그랬다.
상대적으로 철이 없어 그나마 어제까지는 들떠 보였던 앨프리드와 조지프, 콜린도 지금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 마스크에도 뭐가 튀어 있는 상황이다 보니 좀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영국인이나 프랑스인이나 다 같은 사람 아니던가.
누군가 눈앞에서, 그것도 치료를 하고 있던 와중에 죽어 나가는 꼴을 보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라 할 수 없었다.
“으음…….”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건 우리의 장 피에르 선생이 분연히 자리를 떨치고 일어났다는 점이었다.
나이도 많은 양반이 어찌 이럴 수 있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애초에 입만 대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아마 나처럼 그저 독소에 당했던 것 같은데…….
하여간, 그 또한 침울한 얼굴이었다.
단순히 동료들이 아프거나 죽어 가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큰일이네.”
그는 탈수 때문에 잔뜩 쉰 목으로 말했다.
우리도 힘들긴 했지만 도저히 씹을 수 있을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힘겹게 고개를 돌려 그에게 집중했다.
“방금 들어온 소식인데…… 다른 병원에도 환자들이 몰려오고 있다더군.”
“다른 병원?”
나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강물이…… 기이했거든.
19세기 대도시 물이라는 것이 원래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더럽기 마련이지만 센강의 물은 그렇게 치부할 수 있을 정도도 아니었다.
“그래. 너무 많이 몰려와서 정확히 집계가 안 되는데…… 적어도 몇천 명은 되는 거 같네.”
“몇천 명이라고?”
아니, 이번에는 나도 놀랐다.
리스턴과는 좀 다른 방향에서 놀랐는데, 뭔가 내가 알고 있는 시점과 사건 발생이 달라서 그랬다.
이만한 사건이 30년에도 있었을까? 근데 32년에도 또 그렇게……?
아니, 그럴 수는 없다.
아무리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픽픽 쓰러져 가는 19세기라 해도 수천 명 단위로 콜레라가 발생했다면 기록을 해 놨을 거야.
‘그냥 내가 기억을 잘못하고 있는 건가……?’
물론 내가 사학가가 아니다 보니 무엇 하나 확실한 것은 없었다.
사람들이 의사라고 하면 의학에 관한 모든 것을 잘 알 거라 생각하곤 하는데…….
정작 우리는 그냥 임상 배우기도 벅차다.
심지어 다른 과로 넘어가면 아예 모르는 것도 많아.
유튜브에 의사 셋이 나오는 영상 보면 댓글에 선생님들 다 알면서 모르는 척 반응하는 거 따숩다고 하는데 그런 게 아니라 진짜 몰라서 찐반응이 나오는 거다, 이 말이다.
이 사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도 소싯적에 의대생치고는 책을 좀 봐서 그런 거지 의대생들이라고 다 아는 건 결코 아니었다.
“치료는 어떻게 하고 있나?”
하여간, 내가 그렇게 잠시 딴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리스턴이 물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상당히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제 그는 이 병원균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을 잡아 가고 있는 상황 아닌가.
원래 과학이라는 것이 한 발자국 더 와서 뒤를 보면 딱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구나 싶기 마련이다 보니 어떻게 보면 적대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었다.
“뭘 하겠나…… 설사하고 있으니 물 제한하고 그냥 눕혀 두고 있지.”
“그렇게 하면 다 죽지 않겠나?”
“원래 콜레라는 그런 병이지 않나. 이 망할 저주스러운 병 같으니.”
장 피에르 선생은 저주를 입에 담고는 그의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이 양반은 설사 멎은 지도 좀 됐는데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둡나 했더니 그의 눈에는 저 동료들의 태반은 땅에 묻힐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지나친 억측은 아니었다.
원래 콜레라는 그런 병이긴 하니까.
제대로 된 치료를 하지 않고 그냥 두면 절반은 죽는 무서운 병.
거기에 대고 19식 의료를 더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싹 다 뒤질 수도 있지.’
설사하는데 물을 제한한다니.
한숨이 아니라 절규가 튀어나올 거 같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건, 믿는 구석이 있어서였다.
“다 죽이고 싶나?”
“응?”
“여기를 보게! 우리의 위업을 보라, 이 말일세!”
리스턴이 일어났다.
피곤에 찌든 얼굴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두려움을 심어 주기에 마땅해 보이기도 했다.
며칠간의 고생은 그에게 짜증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고, 눈앞에 빠게트가 보이는 고집은 분노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보통 콜레라는 첫날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지! 그렇지 않나!”
“그, 그렇긴 하네.”
“네 잘난 동료들을 보게. 우리가 정반대의 치료를 한다고 지랄했지만, 그럼에도 많이 살아남지 않았나. 죽은 이들도 있지만 그중 한 명은 우리 치료를 거부하고 도망쳤다가 죽은 거야. 그렇게 보면 사망률이 아주 낮지 않나?”
“그…… 그렇지만. 전통이…….”
“이보게, 갈릴레이의 말을 상기하게. 전통이란 것도 결국, 과학적으로 틀렸다고 입증이 되면 과감히 없애 버려야 하는 거야!”
“이게 입증은…….”
“현미경 같이 본 건 잊어버렸나? 그 안에 득실거리던 그것이 미아즈마의 정체가 아니면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미아즈마는…… 공기…….”
“이런 시발놈이!”
참다못해 터져 버린 리스턴은 장 피에르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장 피에르는 실 끊어진 인형처럼 널브러졌다.
“이런.”
리스턴은 이제 어쩐다 하는 얼굴로 장 피에르의 뺨을 두들겼다.
깨우려고 하고 있는 거 같긴 한데 모양새가 어째 확인 사살하는 것처럼 보였다.
벌커덕.
그때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디서 봤다 싶더니만 첫날 봤던 경찰이었다.
“리스턴 교수님, 계십니까?”
“웬일이지?”
리스턴은 경찰이 오자 자신도 모르게 시신에서 아니, 장 피에르에게서 떨어지고는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병상이 부족해서 이미 바닥에 누워 있던 환자들도 꽤 있는 상황이었다 보니 장 피에르가 그리 튀어 보이진 않았다.
“아, 마침 계셨군요. 아니, 아까 장 피에르 선생이 콜레라 때문에 난리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래도 이쪽 병원에서 리스턴 교수님이 하는 치료가 더 효과적인 거 같다고 해서요.”
“아.”
아니, 이 새끼.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 그렇게 말을 했어야지.
왜 눈앞에서는 지랄을 해 가지고 처맞고 난리란 말인가.
어?
하마터면 진짜 뒤질 뻔했잖아.
“근데 뭐 다른 병원에서 말을 듣겠습니까? 그래도 한번 의사들 모이게만 해 주면 설득을 해 보겠다고 했는데…… 여기 있을 거라고 했는데 어디 갔지.”
경찰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바닥에 널브러진 장 피에르에게로 향했다.
진짜 딱 한 대 맞았는데 정신 차릴 생각을 못 하고 있었다.
혹 죽었나 싶어서 경동맥을 짚어 봤는데 다행히 뛰고 있긴 했다.
‘휴. 알리바이 만들 뻔.’
뭐, 설사한 흔적도 있겠다…….
병리학적인 검사가 가능한 시대도 아니니 콜레라로 죽었다고 하면 알 게 뭐란 말인가.
물론 이건 죽었을 때의 얘기고 지금은 살았으니 대응이 좀 달라져야만 했다.
“너무 고생해서 그런가 뻗었네.”
“교수님?”
“그렇지 않나.”
“아, 네. 그렇죠.”
그때 리스턴이 나섰다.
지가 팬 주제에, 쓰러진 장 피에르를 공주님 안기로 가볍게 안아 들면서였다.
저거 저렇게 들려면 힘이 대체 얼마나 세야 가능할까를 가늠하다 보니 리스턴의 뻔뻔함에 대한 비난 따위는 쏙 들어갔다.
나만 비겁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다들 그랬다.
“아…… 이런.”
“가는 길에 깨어나지 않겠나. 가세. 나 혼자면 통역할 사람도 마땅치가 않고. 설득이 어려울 거야.”
“지금처럼 마부가 해 주면…… 아픈 사람 아닙니까.”
“콧대 높은 의사들이 그 말을 듣겠나? 그래도 장이 나름 이 바닥에서 명성이 있다고 알고 있네. 가세.”
“그…… 뭐, 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런 거겠죠. 갑시다, 그럼.”
“그래.”
경찰도 석연찮은 구석이 아예 없어 보이는 건 아니었다.
사실 그야말로 경찰로 살면서 얼마나 많은 폭력 사태를 보아 왔겠나.
파리의 치안이야말로 엉망진창이다 보니 뭐…….
‘저 사람도 잘 참네.’
하지만 리스턴 앞에서 뭐라 할 용기가 날 정도는 아닌지 군말 없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말을 타고 앞으로 달렸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마차를 타고 달렸다.
‘프랑스에 와서도 경찰 호위를 받게 되는구나…….’
참…….
리스턴은 이렇게 보면 사기 그 자체다.
저 힘도 힘이지만 저 우기기도 보통은 넘잖아?
그 결과가 이렇다.
“어…… 여기가…….”
그렇게 달리다 보니 너무 많이 흔들려서 그런가 장 피에르 선생이 깨어났다.
꿈이라도 꾼 건지 모르겠는데 어리둥절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아, 마차일세. 자네 많이 피곤했나 봐.”
“내가 쓰러졌나?”
“그래.”
“하긴…… 무서운 기세로 싸긴 했네. 근데 뒤통수가 왜 아프지?”
“아까 넘어지면서 부딪쳤네.”
“아.”
리스턴은 신묘한 거짓말로 친구를 속여 넘긴 후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보니 입가를 씰룩거리고 있었는데 암만 리스턴이라고 해도 이 상황이 양심에 찔리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한참을 달렸고 나름 깔끔해 보이는 건물에 닿을 수 있었다.
안에 들어서자 상당히 많은 의사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불만이 가득해 보였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사이에 참을성 부족한 환자들은 물을 마시고 있을 거요!”
“그러니까 말이야! 사람이 죽어 나가게 된다고!”
온당한 불만은 아닌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