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8화(18/505)
18화 산부인과 실습 [3]
와…….
시벌.
시벌 새끼들.
“다 비슷하네?”
“역시 우리 병원이 제일 좋은 것 같아.”
앨프리드와 조지프는 둘 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이니만큼 저따위로 중얼거리고 있다.
나도 그러고 싶은데,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아무도 손을 안 닦네?’
오히려 손을 안 닦는 걸 자랑스레 생각하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어쩌면 다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정말 그런 거라면 너무 참담할 것 같아서 일단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다그닥- 다그닥-
하여간에 마차는 이제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선배랑 조지프는 그동안 내내 떠들었다.
“확실히 우리 병원이 제일 대단해!”
“괜히 리스턴 박사님이 우리 병원에 계시는 게 아니군요!”
개새끼들.
그 잘난 병원에서 대체 하루에 몇이나 죽어 나가는지 아냐?
“아…….”
“왜?”
“아니, 아니에요.”
생각하다 보니 나도 모르긴 했다.
그래, 확실히…… 나도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알고 싶지 않아서 그렇긴 했는데…….
뭔가 바꾸려면 알아야 할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나야 참 고통스러워지긴 하겠지만.
암만 그래도…… 알아야겠지.
시바.
‘내일. 내일부터 하자.’
미룰 수 있는 만큼은 미루고.
나는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은 채, 일단 선배를 데리고 부엌으로 향했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이렇게라도 풀어야 했다.
하여간 그 생각을 하면서 보니까, 욕이 나왔다.
“다 나았네요?”
“응? 정말? 와…… 진짜 다행이다.”
아무리 스트레스가 쌓였다 해도 멀쩡해진 손을 쨀 수는 없지 않겠나.
다 나았으면 봉합을 해야 할 텐데 이것도 걱정투성이였다.
일단 바늘이…….
‘이거 깨끗하려나…… 괜히 봉합했다가 썩는 거 아니야?’
실도 그랬다.
멸균된 실이 있겠냐.
끓여서 써야 할 텐데…….
죽자고 고생해서 썩은 살 다 도려낸 마당에 그런 짓을 또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또 그냥 막 두기도 뭐하긴 했다.
“음…… 이걸…… 음.”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을 하고.
딴 거 못 들어가게 막아야지.
그러자면 한두 땀 정도는 꿰매야 할 것 같았다.
“일단…… 물 끓이시고.”
“네. 지금 끓이고 있습니다.”
“술도 끓일게요.”
“네.”
미리 경고를 하진 않았다.
그럼 도망갈 것 같았거든.
대신 눈빛만으로 통하는 친구, 조지프를 이용해 일단 선배를 붙잡았다.
“어, 어어?”
“일단 있어 봐요. 오늘로 이거 끝.”
“근데 왜 칼이랑 포크 안 들고…… 이상한 걸…… 이상한 걸 들어?”
이상한 거.
그래, 맞다.
이상한 거긴 했다.
‘미안하다…… 선배.’
어쩌겠나.
제대로 된 봉합사는 먹고 죽으려 해도 없는데.
대신 바느질에 쓰는 바늘과 실은 있었다.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것 같아서 들고 다니고 있었는데 그게 오늘이었다.
부글부글.
끓기 시작한 물에 실과 바늘을 넣었다.
그다음 증류해 낸 알코올로 손을 닦고, 상처에 부었다.
“음.”
예전엔 진짜 뒈지도록 아파했었는데.
이제는 면역이 된 건지 아니면 알코올의 독성에 의해 신경이 손상되었는지, 그냥 참을 만해 보였다.
아마도 후자일 터였다.
원래 통증은 면역이 되질 않거든.
오히려 어지간한 통증에 반응하지 않으면 신체는 그 정도를 더 높이는 쪽으로 움직이기 마련이었다.
의사들이 진통제를 먹는 데 별로 망설임이 없는 게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하여간.
‘그래…… 이것도 안 아파하지 않을까?’
나는 도수가 대략 70%를 넘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강한 알코올로 손을 문질러 닦아 내면서 상처를 살폈다.
확실히 이제는 꿰매도 될 것 같았다.
시신에 있던 균이 뭐가 되었건 간에 다 죽었다.
확실히 죽었어.
“자, 그럼 이거…… 꿰맬게요.”
“응? 이렇게 뜨겁게 해서?”
“금방 식어요. 그리고 이렇게 안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원래.”
“뭔 소리야. 다들 그냥 꿰매는데.”
그래서 뒤지는 거라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진짜 강한 인간들이라고…….
이렇게 발전 없이 한 몇백 년만 지나면 세상에서 제일 강한 육상 동물의 지위를 노려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강한 사람들만 살아남을 테니까.
“읍.”
하여간 난 씻어 낸 바늘로 선배의 살을 꿰뚫었다.
폭 소리 나면서 바늘이 들어가야 되는데.
“으으…….”
“이거 왜 이러지?”
“역시…… 이건 리스턴 박사님께…….”
“가만히 있어 봐요. 움직이지 말고.”
“안, 안 움직이게 생겼어? 아파! 아프다고!”
잘 안 됐다.
‘원래 이러나?’
이유야 알 수 없었다.
사실 나도 이런 바늘로 사람 살을 꿰매는 건 처음이니까.
‘와…… 난 진짜 온실 속의 화초였네.’
처음부터 어?
그냥 준비된 걸로만 수술을 해 왔잖아?
이런 것도 해 봐야 경험이 쌓일 텐데.
‘아냐…… 아냐!’
사실 해 볼 필요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하여간 이따위 상상을 하면서, 겨우겨우 반대편 살을 뚫고 바늘을 뺐다.
그동안 온갖 고문 아니, 시술을 견뎌 온 선배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했다.
그제야 나는 바늘 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찌른 게 아니라…… 찢었네.’
바늘 끝이 그렇게까지 날카롭지가 못했다.
천은 뚫을 수 있겠지만 살을 뚫기엔 뭉툭했다.
‘이런 망할.’
앞으로 두 땀은 더 꿰매야 할 텐데.
나는 미안한 얼굴이 되어 선배를 돌아보았다.
‘다음부터는 내가 이거 갈아서…… 날카롭게 만들어 볼게.’
다음엔 그렇게 할게.
이번엔 그냥 하자.
기왕 꿰매기 시작한 거…… 끝은 보자고.
“으……”
“평아. 괜찮은 거야?”
선배는 거의 뭐 혼절하기 직전이었다.
조지프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날 바라보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지금 해야 해. 덜 아플 거야.”
“덜 아파? 죽어 가는 거 같은데.”
“안 죽어. 살리고 있어.”
“으음.”
물론 내가 강경하게 나가니까, 조지프는 별생각 없이 나를 도와서 선배를 꾹 눌렀다.
“개, 개새끼들아.”
선배가 뭐라고 욕을 한 것 같은데 듣지 않기로 했다.
뿌드득.
하여간 나는 선배의 살을 뚫고 또 뚫었다.
바늘이 일직선으로 빠져 있어서 제대로 봉합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외과 교수 짬밥이 어디 가는 건 아니어서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완성도는 보일 수 있었다.
“살이 이렇게 위로 뒤집혀도 되는 거야?”
그걸 보면서 조지프는 속 뒤집히는 소리를 해 댔다.
새꺄…….
원래 살은 꿰맸을 당시에는 살짝 위로 나와 있어야 한다고.
안 그러면 제대로 붙지를 않아요.
“야…… 역시 이거 리스턴 박사님께…….”
선배도 마찬가지였다.
하긴, 당장 꿰매고 난 직후만 놓고 보면 리스턴 박사 쪽이 더 이쁘긴 할 터였다.
거기는 그냥 바느질하듯이 사람 살을 꿰매 버리니까.
하지만 그럼 안 되었다.
실제로 리스턴 박사인지 개나발인지가 꿰맨 살은 엄청 벌어지잖아.
잘려 나간 게 다리 쪽이고 워낙에 여유분이 남아서 망정이지, 배였으면 그거 때문에라도 다 뒤졌어.
“이렇게 둬도 잘 붙어요.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조선에서는 다 이렇게 한다니까?”
“아니, 그 조선이라는 나라가…… 은둔의 나라라던데.”
“누가 그래요.”
“아빠가.”
아빠?
아, 우리 물주님?
거기서 나온 말이라면 내가 부심을 부릴 수는 없지.
실제로 19세기 초라면 그렇게 불렸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건 맞지만. 하여간 의술은 꽤 한다니까요?”
나는 급격한 태세 전환과 함께 지금 하고 있는 말에 대한 합리화 작업에 들어갔다.
예전엔.
그러니까 한 번 죽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전통의학, 한의학에 대한 내 평가는 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여기 와서 보니……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한의학이 나았다.
가서 보지는 않았지만 확신했다.
이거보다 더한 것들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으니까.
“으음.”
“봐요. 선배도 살았잖아. 원래 같으면 어? 죽었어요.”
“사람이 눈 뜨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그런 말이건 저런 말이건 사실이잖아요.”
“그건…… 그건 그렇긴 해. 네가 이따금 보여 주는 의학적인 식견도 꽤 있어 보이고.”
있어 보이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거다.
건방져 보일지 모르겠는데, 내가 전 세계 최고의 의사라고.
현시점에서는 아무도 비교조차 안 된다고.
“그러니까 제 말 들으시죠.”
“그래, 뭐…… 그러지.”
나랑 대화하고 있다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 할 텐데.
선배는 어쩐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새끼.
나중에 보자.
내가 진짜 의사만 되면…… 명의로 이름 떨친다.
‘아…… 선배 병원에서 일하겠구나.’
잘할게요, 선배.
-산모는 어딨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밖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곤 누군가가 산모를 찾기 시작했다.
산모?
설마…….
‘선배 엄마?’
그러고 보니 선배 엄마는 한 번도 못 봤다.
임신해서 그런가?
그 정도의 위생 관념은 없을 것 같은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선배를 뚫어지게 봤더니, 선배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어.”
생각지도 못하게 탈룰라를 해 버렸다.
말도 안 했는데, 살짝 억울하긴 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리게 했으면 사과하는 게 맞았다.
“아, 죄송합니다.”
“괜찮아. 나 낳다가 돌아가신 거라…… 기억도 잘 안 나.”
“그래도요.”
“아무튼…… 우리 시녀 중 하나가 임신했는데, 애기가 나오려나 보네.”
시원하게 고개까지 숙이면서 사과를 박았다.
선배는 생각보다 쿨하게 받아 주곤 밖을 내다보았다.
흰옷을 곱게 차려입은, 나이가 지긋한 여자 하나랑 신사복을 갖춰 입은 중년 사내 하나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집사가 그들을 이끌고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을 무렵,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가만있자…… 이거 또 하나 죽어 나가는 거 아냐?’
두 남녀는 허허 웃으며 걷고 있었고, 인상도 좋았다.
하지만 내 눈엔 그냥 두 살인자로만 보일 뿐이었다.
이 집안엔 신세도 잔뜩 지고 있고, 앞으로도 두둑하게 질 생각인데 미리 빚을 좀 지워 놔야겠지 않겠나.
아무래도 병원 사람들보다야 상대하기도 쉬울 테고.
내 구라가 잘 먹혀서, 이 집안사람들은 날 조선의 귀족쯤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현생은 몰라도 전생의 나는 족보 산 상놈이었던 게 분명했기에 살짝 찔리긴 했지만.
사람 살린다는 핑계 앞에 뭐가 중요하겠나.
“선배.”
“응?”
“우리 산부인과 실습도 했는데, 저기도 가죠.”
“어……?”
“아, 음. 그럴까? 근데 저기 여성분은…… 흠. 조산사 같은데?”
새꺄…….
조산사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니들이 의사인 줄 아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앉았네, 새끼가.
욕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후.
힘들었다.
“네, 그…… 우리 조선에서 쓰는 말 중에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타산지석?”
“다른 산의 돌조차 나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인데…… 다른 사람의 실수조차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일리가 있네.”
“그러니까요. 가서 한번 보죠.”
“그래, 그럼. 가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