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81)
검은 머리 영국 의사-181화(181/505)
181화 대재앙 [3]
파리 의료계는 정확히 반으로 갈라졌다.
명문 중의 명문이자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몽펠리에 의과대학의 코라이를 중심으로 하는 소위 히포크라테스파.
그리고 런던에서 온 리스턴 박사와 나 그리고 장 피에르 박사로 대표되는 소드 마스터파 아니, 외과 의사파.
말이 반이지, 아무래도 내과 의사들이야말로 진짜 의사라는 인식이 팽배하던 때이다 보니 저쪽이 수가 더 많긴 많았다.
기분이 나빴지만…….
오히려 리스턴이나 블런델 등은 잘됐다 싶은 모양이었다.
“이 재앙이 런던에서 벌어졌다고 생각해 보게.”
“그러니까 말이야.”
둘은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긴 틈을 타, 병실에서 나와 미리 떠다 둔 물로 비누까지 이용해 손을 닦았다.
내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자발적으로 하고 있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
너무 감개무량한 나머지 나는 옆에 있던 포도주를 한 모금 홀짝였다.
병원에서 일하는 주제에 술이냐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응수하겠다.
지금 파리의 물은…… 도저히 신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있었다.
보통 콜레라라는 것도 수인성 전염병이다 보니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그 지역과 인접한 곳으로 번지기 마련인데 지금은 아무래도 센강 전체에 문제가 발생한 듯했다.
그렇다 보니 사방에서, 정말이지 중구난방으로 발생 중이었다.
해서 우리는 모든 물을 일단 원시적으로나마 해 아래 며칠 두었다가, 안에 침전물이 내려앉으면 건져다가 그걸 증류하고 있는데…….
‘하아.’
그게 쉬울 리가 있겠나.
시간도 시간인데, 일단 충분한 물을 수급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당장 설사를 싸 재끼느라 탈수 증상이 오거나 또는 쇼크에 빠질 거 같은 환자들에게 주기도 바쁘단 말이었다.
그 때문에 의료진 태반은 대부분의 수분 섭취를 술로 하고 있었다.
“어…… 취한다. 목말라서 확 먹었더니 훅 올라오네…….”
옆에 있던 조지프가 알딸딸한 얼굴이 되어 비틀거렸다.
저 꼴을 보고 있자니 암만 물이 없다고 해도 이건 아닌데 싶지만…….
그렇다고 환자가 먹을 물을 먹을 수는 없지 않나.
아니면 환자에게 술을 줘?
그것도 안 될 말이었다.
도시는 지금 재앙에 휩싸여 있었다.
덕택이라고 해도 될는지는 모르겠는데, 21세기라면 상상도 못 할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런던이었으면 더 죽었을 거야.”
“기분이 나쁘지만…… 그럴 거 같긴 하네.”
콜린도, 앨프리드도 맛탱이가 간 채로 치료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제는 나머지 의료진이나 보조원들도 물 먹이는 데에는 숙달이 된 지 오래다 보니 그 둘만 있어도 괜찮았다.
덕분에 리스턴과 블런델은 여유 있게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광경이 파리 전체를 두고 보면 그리 적절하진 않았다.
다그닥.
지금도 병원 앞으로 우마차 하나가 지나가고 있다.
소 한 마리가 끙끙거리며 끌고 있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뒤에 실린 시신이 너무 많았다.
그것만 있나?
아니었다.
저기 너머에도 비슷한 형태의 마차가 가고 있었다.
그나마 마차에 실린 시신들은 다행이라 할 수 있었다.
어떤 집은 그냥 몰살당하다시피 해서 그저 집에서 썩어 가고 있는 시신들도 많다고 들었다.
“우리는 여기보다 훨씬 사람이 많지…… 그리고 템스강 물도 끔찍한 수준이야. 내 기억이 온전한지는 모르겠는데, 그때 현미경으로 본 미아즈마의 양이 여기서 본 것과 그렇게 차이가 없어.”
“나도 그렇게 기억하네. 소름이 돋는군, 그래. 뭐 연락 온 거 없지?”
“연락은 없지만…… 뭐, 제대로 된 연락이 오갈 수나 있겠나?”
“하긴…… 이래서야.”
파리는 이제 거대한 묘지가 되어 있었다.
주변에 있는 이들은 얼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어느 용감한 사람이 여기까지 배달 올 수 있겠나.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보면 되었다.
“아무튼, 돌아가면 뭐라도 해야 하네.”
“뭘 하지, 근데?”
“의회를 설득해야지. 템스강 물…… 하수구를 어떻게 하긴 해야 해. 그 물이 그거…… 나 어릴 때만 해도 이러진 않았어.”
“그건 그렇지. 그랬어. 하긴, 그랬지.”
둘은 그렇게 얘기를 도란도란 나누면서 반대편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도 병원이 있었다.
이제 와서는 병원인지 장례식장인지 모를 지경이 되기는 했다.
건너 건너 듣자니 저 병원으로 간 환자들은 그야말로 아무 치료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고 했다.
그게 치료라고 주장하는 놈들이 많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먹으면 설사한다고 하면서…….
“아무튼, 갈까.”
“그래야지. 아, 진짜 힘들군, 그래.”
“힘들어도 해야지. 그래도 이제 발생이 좀 줄었어. 원래 아프던 사람들만 좀 더 보면 될 거야.”
“그래…… 아까 평이 중얼거리던데. 길어야 3, 4일이라고.”
“조선에서 경험이 있나 보군그래.”
“그런 거 같네. 조선이라는 나라는 대체 어떤 곳일까. 청보다도 훨씬 더 발전한 곳일 게 분명하네.”
“그러니까 말일세. 내 평생소원이 조선 땅 한번 밟아 보는 것이라니까?”
아, 내가 중얼거리는 거 들었구나.
콜레라라는 병의 자연 경과를 알고 있어서 할 수 있던 말인데, 그나마 다행이다.
이젠 내가 이상한 말을 하면 대강 조선에서 했겠거니 하고 있지 않나.
본의 아니게 조선이 점점 더 신비한 이미지가 되어 가고 있기는 한데…….
“어.”
그렇게 장갑까지 다시 끼고 병실 안으로 들어간 블런델이 낭패한 얼굴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마스크를 두고 들어갔는데…….
“입에 들어간 거 같은데.”
“응? 뭐가.”
“그.”
뭐가 들어갔겠냐.
나는 술이 확 깨는 느낌을 받았다.
즉시 장갑과 마스크를 끼고 블런델에게 달려갔다.
“삼켰어요?”
“어? 아니. 아닌가? 모르겠네…… 어쩌지?”
블런델은 눈앞에 있던 환자를 가리켰다.
어떤가 하고 보려는데 갑자기 바지를 내리고 날린 모양이었다.
원숭이나 호랑이들이 상대를 모욕하거나 할 때 변을 날린다던데…….
일부러 그런 건 아닐 거다.
그냥 단순히 문화가 좀 그런 것이겠지.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블런델이 중요했다.
“일단 물로 가글해요!”
“어어.”
“아니, 아냐. 술! 술 가져와!”
“왜, 왜. 절단하려고?”
“네? 뭘 잘라요.”
“나도 몰라.”
“그게 아니라…….”
알코올이 소독 효과가 있다는 거…….
아직 잘 모르지.
“우리 조선에서는.”
“조선?”
“술로 상처를 소독합니다. 그때는 미처 몰랐는데 이제 보니 경험적으로 술이 미아즈마를 죽인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아하. 그럼 믿을 수 있지. 조선 술만 그런 효험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마 아닐 겁니다.”
“그, 그래.”
나는 여기저기 갈색 변이 튄 블런델의 얼굴을 닦아 주면서, 노상 홀짝거리고 있던 술을 권했다.
다행히 와인만 늘어놓은 것이 아니라 코냑도 있다 보니 도수가 강한 놈들이 있었다.
불붙일 수 있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조금 튄 변에 들어가 있던 균 정도면 죽일 수 있을 터였다.
“빨리!”
“으으.”
하여간, 블런델은 아주 두려움 가득한 얼굴이 되어 술로 입 안을 헹구기 시작했다.
아까 손 닦는 것도 그렇고 지금 가글하는 것도 그렇고…….
괄목상대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이들은 이제 미아즈마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재정립해 나가고 있지 않나?
그렇다 보니 병원균과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꺼리게 되었는데, 거기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의료진 감염이었다.
장 피에르의 제자였던 거 같은데…….
우리의 가르침이 썩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장갑이요? 하?
-손을 씻어? 굳이?
이딴 식으로 깝치더니 결국, 콜레라에 걸려 지금은 묘지에 가 있다.
이게 전에 봤으면 그냥 뭐 재수가 안 좋았구나 싶었을 터였다.
아니면 공기가 안 좋아서 걸린 거라고 생각했거나.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내가 딱히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기 있던 모두가 저건 변에 있던 미아즈마가 몸 안에 들어가서 생긴 거라고 인지하게 되었다.
‘후후.’
그런 생각을 하니 나도 모르게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자네…… 웃나?”
“아, 아닙니다.”
그 미소를 본 블런델이 뜨악한 얼굴이 된 채 나를 바라보았다.
옆을 보니 리스턴 또한 역시 너는 못 이기겠단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그런 뜻이 아닌데 자꾸 오해가 쌓이는 거 같다.
난 엄청 착한 사람이라고!
“아무튼, 교수님은 이제 좀 쉬세요.”
“쉬라고? 왜?”
“그…….”
사람이 병원균에 의해 감염이 되는 데에는 사실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한 법이다.
일단, 당연한 말인데 병원균에 노출이 되어야만 했다.
지금처럼 입에 들어가든지, 코로 들어가든지 아니면 피부에 난 상처를 통해 들어가든지…….
근데 들어가기만 하면 걸리나?
그럼 우리 인류는 이미 멸종하고도 남았을 거다.
다행히 우리 몸은 균과 싸울 수 있는 힘이 있는데…….
침도 그렇고, 위산도 그렇고, 일단 화학적으로 죽인다.
그랬는데도 침입에 성공했다면 그때부터는 면역 세포가 싸워야 하는데…….
‘그게 몸 컨디션과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란 어려운 일이지?’
면역이라니.
어느 정도는 사실 개념이 잡혀 가고 있기는 했다.
전염병이 돌고 나서 그 전염병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은 다시 해당 전염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건 수천 년 전부터 알고 있었잖아.
심지어 제너 박사가 종두법을 개발한 지도 벌써 수십 년이다.
하지만…….
여전히 면역은 어느 정도 베일에 싸여져 있는 학문이었다.
“조, 조선에서는 아픈 사람이 있으면 일단 푹 쉬게 만들어요. 뭐 그게 더 좋다는 증거는 없지만.”
“조선에서 그렇다면 그래야겠지.”
다행히 조선을 팔면 대강 된다.
게다가 나는 봤다.
블런델이 웃는걸.
이 사람도 사실 얼마나 쉬고 싶겠어…….
너무 힘들 거 아냐…….
나도 힘든데…….
블런델은 나보다 나이도 많다고.
심지어 산부인과라 자기가 죽을 일은 없는 직업인데 괜히 여기 따라와서 실험하다가 똥도 먹고…….
“그래요, 가서 쉬세요.”
“그, 그래. 고맙네.”
“술 대신 물 드시고.”
“알았네.”
그렇게 블런델은 도망치듯 자기 방으로 향했다.
호텔로 가진 않았다.
지금 파리는 질병 때문에도 위험하지만 치안도 박살 나 버렸거든.
리스턴이라면 모르겠는데 블런델이 나가면 10분 안에 털리고 죽는다.
그리고 여기가 제일 깨끗했다.
미아즈마에 대한 인식을 한번 하고 나더니 단체로 결벽증이라도 발병한 건지 뭔지 맨날 쓸고 닦았다.
미친놈들이 비누칠을 바닥에다가 해 가지고 미끄러워서 뒤질 뻔했다니까?
“자, 우린 가죠.”
“그래.”
“며칠 안 남았습니다.”
“그래…….”
“마스크는 끼시고.”
“두 개 꼈네.”
하여간, 우리는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러 들어갔다.
지금까지 우리 병원 사망률은 대략 10%.
이미 다른 병원과 비교하면 압도적이다.
이번 사태가 끝나고 분석에 들어가게 되면, 의료의 판도 자체가 바뀌게 될 것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