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83)
검은 머리 영국 의사-183화(183/505)
183화 대재앙 [5]
조작.
보통 할 말 없는 놈이 하는 소리 아닌가?
특히 저 코라이라는 놈이 하는 말은 더더욱 신빙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많은 환자를 봤다는 놈이 어떻게 몰골이 저렇게 멀쩡하지.’
우리를 봐라.
진짜 죽기 일보 직전이지 않나.
아닌 게 아니라 진짜 이 더러운 센강 물 거르고 끓이고 증류까지 해서 적당한 온도로 식혀다가 환자에게 많은 양을 먹이는 게…….
그게…….
-시발놈이, 안 먹어? 뒤질래?
진짜 리스턴이라도 없었으면 우리가 뒤졌다.
그렇게 죽자고 만들어 낸 생명수를 거부하는 놈들이 꽤나 있었거든.
사실 대부분의 병원에서 설사와 토하는 것이 다 몸 안에 물이 많아서라고 가르치고 있는 마당이니만큼 환자들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피나 뽑아 줘!
심지어 사혈을 원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왜?
설사라는 게 뭔가가 많아져서라고 믿고 있지 않나?
그게 물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피라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실제로 다른 병원에서는 콜레라 걸려서 설사하고 토하고 심지어 열까지 나는 환자들에게서 피를 낸다고 하더라고.
하.
“콜레라는 아주 무서운 병이오! 걸리면 70%가 죽는다고!”
참고로 자연 경과가 50%다.
그냥 두면 절반이 죽는다는 거다.
치사율이 진짜 미쳐 버린 병이다, 이건데…….
저 말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절반만 죽는다고 할 뻔했다.
하긴 당연한 일이긴 했다.
본능이, 그러니까 살려고 물을 먹으려고 하는데 그걸 말리잖아.
게다가 피도 낸다고?
“상식적으로 판단하시오, 프랑수아 경! 콜레라에 걸렸는데 10%만 죽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상식 운운하고 있었다.
물론 이 시대는 저게 상식이기는 했다.
게다가 코라이는 괜히 대부 격으로 승격한 사람이 아닌지, 무언가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지식이 있는 나조차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들이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그렇소.”
허나 우리의 프랑수아 경은 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제출한 서류를 부채처럼 흔들거리면서,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단지 병원에서만 제출한 것이 아니라…… 묘지에서도 제출한 내용인데. 수가 거의 맞소. 아무것도 제출하지 않은 몽펠리에 쪽보다는 신뢰도가 있는 거 같소만?”
학회에서 들어 봤음 직한 목소리다.
날카로우면서도 엄청 똑똑해 보이는…….
질문 있습니다 하는데 저런 목소리면 일단 소변 마려워지는…….
‘근데 이 시기에 어떻게 저런 합리적인 사람이 있지……?’
보다 인상 깊은 건 저 사람이 보이는 합리성이었다.
내 주변이 이상한 건가 싶었다.
그러다 나는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하긴, 프랑스가 볼테르의 나라지…….’
놀랍게도 18세기 사람이지 않나.
뭐 후에 덧붙여진 말이라지만, ‘나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의견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라는 문구로 대표되는 철학자.
그런 사람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이라면 저런 태도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있다면, 저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데 왜 대다수의 사람은 이 지경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잇.”
코라이는 프랑수아의 말에 잠시 당황하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조용히 웃었다.
특히 리스턴은 박장대소했다.
이 시기에는 유명하거나 훌륭하거나 관계없이 자칫 잘못하면 수틀린 관중에게 맞아 뒤질 수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용기였다.
뭐, 자신도 있긴 할 터였다.
덤벼 봐야 죽는 건 저쪽일 테니까.
“잘 들으시오. 현명한 파리의 시민들이여! 저들은 영국인이오!”
허나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듯했다.
코라이는 놀랍게도 ‘메시지가 훌륭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메신저를 공격하라’라는 21세기형 프로파간다를 시전했다.
괴벨스가 생각난다.
그러고 보니까 좀 닮은 거 같기도 하고……?
그 새끼는 독일인이지만 뭐 어찌 알겠어.
조앤 롤링도 조상은 프랑스인이었다잖아?
“영국 놈들이 하는 말을 어찌 믿겠소! 우리 프랑스를 속여서 겁박하려는 적의 속셈이오!”
“우우우우우!”
아무튼, 효과는 기가 막혔다.
우리가 환자 살리느라 죽도록 고생하는 사이에도 간신히 만들어 제출한 자료 따위는 훅 들어가고야 말았다.
어느새 모여 있던 군중들이 영국인이라는 말에 금세 흥분하고 있었다.
저거 저대로 두면 당장에라도 기요틴을 들고 올 거 같았다.
실제로 어떤 놈이 방금 나를 보면서 목을 손으로 그었다구.
“그렇지 않소!”
그 와중에 장 피에르가 나섰다.
잔뜩 쉬어 터진 목소리로.
“이들 덕에 살아난 사람들이 그 증인이오!”
그는 비교적 초창기에 우리 병원에 왔었고, 덕분에 살아난 이들을 가리켰다.
이제 보니 장 피에르는 이미 레볼루숑의 나라 프랑스에 대비해 우군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몽펠리에에 갔으면 우리는 죽었다!”
그 수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흉포했다.
코라이를 보면서 목에 손을 긋는 시늉하는 이들이 꽤나 있다, 이 말이었다.
‘결론이 어찌 나건 간에…… 프랑스에 오래 있으면 안 되겠다…….’
뒤지겠어.
뭔 놈의 분위기가…….
자꾸 지도층을 혁명으로 끌어내려서 그런가.
뭔가 모이면 그쪽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조용, 조용!”
그때 프랑수아가 나섰다.
그와 동시에 그가 끌고 온 근위병들이 발을 굴렀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양측의 군중이 조용해졌다.
‘좋아…… 군중 모였고, 군대도 있고.’
훌륭한 혁명이다.
지금껏 영국에서 환생한 것에 불만을 품었던 것을 반성한다.
여기서 태어났으면 벌써 뒤졌을 거 같다.
이거 따지고 보면…… 그냥 학회잖아.
그것도 사람 살리겠답시고 공부하는 의학회.
근데 분위기가 이래서야 이거…….
“장 피에르.”
“네.”
“먼저 해명하시오. 아 자리에 영국인들이 있소?”
저거부터 묻다니.
내 생각보다 영국과 프랑스 사이가 개판인 모양이었다.
뭔가 느낌이 앙숙 같긴 했지만…….
21세기에는 나름 동맹 아니었나?
나치 독일 상대로 같이 싸웠잖아.
아.
혹시 그걸 계기로 가까워진 거였나.
“아…… 네. 하지만 의사들입니다! 영국인이기 전에 의사들입니다. 그들이 살린 이들이 적지 않아요!”
“하지만 영국인들이 있긴 하군.”
“그건…… 네, 굳이 거짓말을 하진 않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자료의 신빙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니 안심하시오. 다만 조심스러워지는 것은 사실이군.”
프랑수아 경은 흐음 소리를 내면서 아까까지만 해도 결정적인 증거인 것처럼 흔들어 대던 서류를 내려다보았다.
그러곤 코라이와 그 뒤에 선 의사들 그리고 성난 군중들을 바라보았다.
군대가 조용히 하라니까 조용하긴 한데 얼굴만 보면 당장 폭동을 일으켜도 이상할 거 없어 보였다.
내가 보기에도 그러니, 유경험자인 프랑수아가 보기엔 더더욱 그럴 거 같았다.
“이렇게 하지.”
프랑수아는 입맛을 다시고는, 그리 마뜩잖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몽펠리에 측은 쭉 그쪽 지침을, 왕립 외과 아카데미 측은 쭉 이쪽 지침을 지키는 것으로. 그리고…… 한 10년 후에 다시 자료를 모아 확인하지. 어떻소?”
10년?
저 새끼 도망간다.
도망가는 게 확실한데…… 잡을 수는 없었다.
내가 7월 혁명 분위기는 잘 모르지만 시가전이 있었다는 건 안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이 죽었겠어.
그렇게 이겨서 올라서긴 했겠지만 그만큼 적이 많을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여기서 또 논란의 여지를 남기게 되면 죽을 확률이 껑충 뛰겠지?
“뭐, 나름 잘됐군.”
장 피에르는 판결 결과를 듣자마자 인상을 팍 썼다.
그러곤 프랑스어로 뭐라 뭐라 떠들고 있었는데 아마도 욕인 거 같았다.
그에 반해 리스턴은 여유만만이었다.
“잘돼요?”
“그래. 사실…… 이 이론이 너무 급진적이지 않나?”
솔직히 프랑스 놈들이 더 죽어 나갈 것이 분명하니 잘됐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리스턴이 얼굴과는 달리 사실 꽤 훌륭한 사람 아닌가.
여러 번 나를 놀래킨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네.”
여러모로 할 말이 없어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막을 모르는 리스턴은 마차에 오르며 말을 이었다.
뒤에는 성난 군중들이 소리치고 있었지만 별로 개의치 않고 있었다.
이쪽에도 만만치 않게 성난 사람들이 있긴 한 데다가, 원래 호랑이는 개가 아무리 짖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니까.
“평범한 상황에서…… 그것도 파리에서 이런 이론을 떠들었다가는 목이 잘렸을 거야. 이 인간들 취미가 목 자르기 아닌가.”
“아.”
그 정도입니까?
지식을 알리는데 그 정도의 각오가…….
역시 영국에서 태어나길 잘했다.
“하지만 마침 콜레라가 터졌지. 우리는 성과를 보였고…… 그래서 절반이나마 우리 이론을 받아들이게 된 걸세. 내 생각에 프랑수아? 그 이름 이상한 인간도 우리 이론이 더 마음에 들었을 거야.”
“근데 10년이나 유예 기간을 두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하지만 잘 생각해 보게. 지금이야 영국인이 했네 어쩌네 하는 말이 통하겠지만 계속 통하겠나? 저 강을 보게.”
리스턴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니 센강이 보였다.
지난 며칠간 사람들이 줄고 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더럽기 그지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지.
조상님, 여기 와 보면 그런 말은 못 할 겁니다.
1인치도…… 아니, 아니지!
3센티도 안 보인다고요…….
“앞으로 콜레라는 계속 돌 거야. 절대로 개선이 될 리가 없지. 그럼 알게 될걸세. 10년까지 두고 볼 것도 없어.”
“아…….”
“그리고 막말로 그사이에 죽어 나가는 게 빠게트 놈들 아닌가. 더 죽어도 된다네. 이놈들은.”
리스턴은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 주고는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껄껄 웃었다.
나도 웃었다.
너무 리스턴스러워서 그랬다.
그렇게 우리는 텅 빈 거리에 웃음소리를 남기며 병원으로 돌아왔다.
안에는 여전히 환자들이 있긴 했지만, 이미 숙달될 대로 숙달된 이곳 병원 사람들이 빈틈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학회차 온 우리가 딱히 도울 이유는 없다, 이 말이었다.
“미안하네. 훈장이라도 받았어야 할 일인데…… 영국인이라는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우리에게 장 피에르가 뒤통수를 긁으며 말했다.
리스턴의 말을 듣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모를까, 다 듣고 난 마당에 뭐라 하겠나.
괜찮았다.
진짜로.
“아무튼, 좀 쉬고 있게. 아. 맞아.”
장 피에르는 우리를 나름 특실 격으로 쓰고 있는 숙소에 남겨 두고 나가려다가 뒤로 돌아섰다.
리스턴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면서였다.
“그…… 알렉상드르 뒤마가 자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던데…… 혹시 오늘 괜찮겠나?”
뒤마.
장르 문학의 아버지.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난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광팬이다.
거기에서 하시시 피우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안다고.
그게 작가 경험일 줄은 몰랐지만…….
아무튼,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네. 좋죠.”
“그래. 그럼 마차가 오면 알리라고 일러두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