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85)
검은 머리 영국 의사-185화(185/505)
185화 보다 진보된 수술 [2]
뒤마가 아무리 파리에서 잘 나가는 인사가 되었다 해도 바로바로 장인들을 구할 수는 없었다.
평소라면 또 모르겠지만 지금은 시국이 시국이지 않은가.
도시 전체가 한번 박살이 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장인을 어디서 구하나.
아는 장인이 있었다고 해도 죽었을 가능성도 컸다.
“으음.”
“자네는 참 환자 복이 많구만그래.”
해서 먼저 달려온 것은 내 일행들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블런델, 리스턴,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이 왔다.
녀석들은 해부 실습실에 익숙해진 인간들인 만큼 냄새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다만 수술에 있어서는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특히 블런델과 리스턴이 그랬다.
“유방암?”
“등에 난 종기?”
포인트는 조금 달랐다.
블런델은 산부인과 의사이니만큼 아무래도 여성 질환에 관심이 많았다.
그에 비해 리스턴은…….
“그거 뭐 하러 마취를 하나. 그냥 째면 되지.”
이따위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평소에 그가 하던 짓을 생각해 보면…….
무리도 아니긴 했다.
‘아직도 대부분은 붙잡고 하긴 하지.’
이게 단순히 리스턴이 깡패 같은 사람이라서는 아니었다.
전신마취는, 그러니까 우리가 쓰고 있는 에테르나 아산화질소는 위험 요소가 너무 컸다.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스무 명에 하나 또는 서른 명에 하나 정도는…….
그로 인해 잘못되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말을 안 할 수 있는 건, 이 시기 사람들은 일단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아픈 사람들의 죽음에는 무감해진 지 오래라 그랬다.
“그냥 째면 너무 아프잖아요. 저분은 너무 쇠약해서…….”
“물어는 봤나?”
“네?”
“자네도 알지 않나. 마취는 아직 불완전해.”
“그…… 그렇긴 하죠.”
국소마취제가 나와야 한다.
리도카인…….
그거 한 방이면 해결될 문제지 않나.
‘생각해 보면 근데 리도카인이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지…….’
그거 한 방이라고 하기엔 좀 그렇긴 하다.
기적의 약이야, 진짜로.
주사 좀 찌른다고 주변이 마비가 된다는 게 말이 되냐?
있을 때는 너무 당연하게 썼었는데 19세기에서 보니까 말 그대로 신의 은총이었다.
“내가 봐도 가슴 수술은 못 참아. 아닌가?”
“아뇨. 못 참죠. 저걸 어떻게 참습니까?”
하여간, 나는 리스턴과 대화를 이어 나갔다.
리스턴은 참을 수 있으면 유방 절제술도 참는 게 좋다고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좀 놔두면 실제로 그렇게 할 게 분명해서 일단 말렸다.
다행히 리스턴도 나름 환자의 고통에 예민한 사람이다 보니 금세 설득은 됐다.
“하긴. 그럼 이렇게 함세. 내가 가서 얘기를 해 볼 테니까…… 등은 그냥 하지.”
“으음.”
“그리고 가슴은 마취로. 굳이 엎드릴 필요가 없어지잖아.”
“그건…… 그렇긴 하네요.”
내가 여기서 의사 노릇 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들었어도 그럴싸하게 들렸을까?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다.
그래, 등쯤은 참을 수 있을 거 같다.
사실 뭐…… 엄청 쨀 것도 아니니까?
“환자분.”
내가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리스턴은 뚜벅뚜벅 걸어가 소피 제르맹에게 향했다.
그녀의 얼굴에 두려움이 이는 게 보였다.
당연했다.
아마 사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로 이 시기 의사들이라는 게 사신하고 다를 바 없기도 하고, 그중에서 리스턴쯤 되는 외모라면 차고 넘치지.
“네? 등? 아…… 이거야 뭐, 참아야죠. 근데 가슴도 수술이 됩니까?”
“나는 모르지만.”
다행히 소피 제르맹은 과학자답게 이성으로 두려움을 억누른 채 멀쩡히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질문을 들은 리스턴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나를 가리켰다.
“조선에서 온 닥터 평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분명 조선에서는 이렇게 한다는 식으로 설명을 하겠죠.”
어쩐지…….
비꼬는 느낌이 든다.
저 새끼, 분명히 다 알고 있다.
그게 핑계라는 거…….
‘그래도 넘어가 주고 있다는 건, 어찌 되었건 문제 삼지 않겠다는 거겠지?’
다행이다.
리스턴이 마음이 넓어서.
“진짭니다. 조선은 아마도 의학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나라임이 틀림없어요.”
“그중에서도 닥터 평은 우리 영국의 우수한 교육까지 받았으니 최고죠.”
“네, 우리 교수님은 진짜 최곱니다.”
아닌가……?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의 반응을 보니까 저게 진심인지 아닌지 헷갈린다.
그리고 저런 반응이 소피 제르맹과 같은 과학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다.
“사실 이거 불치병이라고 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믿겠습니다. 죽기밖에 더 하겠습니까.”
근데 효과가 있었다.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조선을 팔아야겠다.’
아니, 매국노가 되겠다는 뜻은 아니고.
말이 좀 이상하게 들리네.
아무튼.
“네, 조선에서 온 닥터 평입니다. 그럼 등은 그냥 하고. 가슴 할 때는 마취를 해 드리겠습니다. 수술은…….”
나는 환자에게 다가가 종이에 그림을 찍찍 그렸다.
동의서는 아니었다.
설명서라고 보는 것이 더 옳았다.
법적으로 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해도 이 정도는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하는 건데…….
‘평아. 그런 거 해서 뭐 하냐. 어차피 이해도 못 할 텐데.’
‘그러니까. 환자들은 우리랑 달리 그렇게 합리적인 존재들이 아니야.’
‘저는…… 이해는 안 가지만 교수님 말씀이니 따르겠습니다.’
일단 우리 학생들의 반응은 이랬다.
가만 보면 선민의식의 화신들이다.
‘흐으음…….’
그에 비해 리스턴의 반응은 좀 달랐다.
의외로 리스턴은 내 수술에 자주 합류하진 않는 편이지 않나?
물론 전립선 수술같이 중요한 수술에는 있었는데…….
그렇게 귀족을 대상으로 하는 수술 전에는 원래 19세기 의사들도 설명을 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그 숱한 절단술을 시행하는 동안, 리스턴이 대부분의 환자에게 설명했던 말은 거의 이랬다.
-잘라야 해. 안 그러면 뒤져.
간단명료.
뭘 어떻게 자를 건지, 그리고 자르고 나면 어찌 되는지, 특히 자주 동반되는 환상통은 어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었다.
나도 감히 그에 대해 왈가왈부하진 않았다.
고쳐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지만…….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닌데 고작 설명하는 거 하나 고치겠다고 심력을 소모할 수는 없었다.
그때 마침 템스강 물 먹이기도 했고…….
“확실히 자네는 뭔가 다르군그래.”
근데 말을 했어도 됐나 보다.
설명을 마치고 나서 수술 기구를 점검하고 있는 내게 리스턴이 이렇게 말을 걸어오는 것을 보면 그랬다.
“네?”
“환자가 자꾸 도망가는 일이 있지 않나? 예전보다는 줄었지만 말이야.”
“아…… 네.”
물론 언제나 그렇듯 내 생각하고는 조금 달랐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이어지는 말은 긍정적이었다.
“그때마다 내가 완력을 써야만 했단 말이지. 한 번은 말이야. 명치를 친 적도 있어.”
“환자…… 환자를요?”
“그럼 환자가 때렸겠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보통은 그런데요.
응급실에서 환자한테…….
슬픈 일이긴 한데, 아마 맞아 본 의사가 적지 않을 거다.
“아무튼, 그렇게 해야만 했는데 상세히 설명을 해 주면 좀 줄 거 같긴 하군. 저보게. 저 환자도 멀쩡히 누워 있지 않나.”
“저 환자분은…… 그냥 일어나서 움직이는 게 어려워서 그런 거 아닐까요?”
“아, 그런가? 그것도 잘됐군. 좋아. 설명했는데도 도망갈 거 같으면 더 아프게 만들어야겠어.”
“아니, 그.”
“농담일세, 농담! 하하하! 내가 설마!”
이 새끼…….
농담 맞지?
그것도 잘됐다고 할 때 너무 진심이었는데…….
“아무튼, 오늘 한 방에 다 할 건가?”
리스턴은 고작해야 칼과 당길 거 그리고 봉합용 실만 늘어놓은 나를 보면서 물어 왔다.
‘상식적으로…… 그렇겠냐?’
유방 절제술은…….
현대 외과에 있어서는 기본 술기에 해당하는 수술이긴 했다.
물론 분과 전문의가 따로 존재하긴 하지만, 레지던트 때도 충분히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수술이란 얘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띨룽띨룽 할 수 있는 수술은 절대 아니다.
일단 기구가 몇 개 더 필요했다.
다른 것보다 시야를 위해서 그랬다.
‘검사를 해 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해. 결국, 완치를 꿈꾸는 건…….’
제일 좋은 건 역시 근치적 절제술이다.
하지만, 지금 그게 가능한가?
영상의학적 검사도 없이, 그러니까 정확히 병변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도 모르면서?
게다가 수술 이후에 검체에 대한 조직 검사가 가능한가?
그것도 안 된다, 지금 당장은.
다시 말해 내가 잘라 낸 부위 끝에 암세포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도 확인이 안 된다는 얘기다.
‘확인을 해도…… 다시 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방사선치료나 항암치료가 가능한 것도 아니긴 하지.’
내가 지금 열거한 모든 것이 가능했던 21세기에서조차 완치가 불가능했던 것이 암이다.
근데 여기서 욕심을 내?
그건 안 될 말이다.
‘다만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해. 그리고…… 수술로 인한 합병증을 최대한 줄이자.’
나는 마음을 정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 필요한 기구도 정했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차근차근 가야지.
“아뇨. 오늘은 등만요. 그거만 해도 힘들 겁니다.”
“마취하면 환자는 모르잖아?”
“환자의 몸은…… 알지 않을까요?”
“무슨 소리야?”
“그…… 컨디션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이번에 보셨잖아요. 콜레라.”
“아. 음. 확실히…… 하긴.”
지금도 봐라.
처음 왔을 땐 진짜 갈길이…….
이게 길도 아니었어.
아무것도 아닌 곳을 혼자 뚫어 내는 기분이었는데, 이제는 아니지 않나.
드디어 면역력 즉 외부 요인과 싸우는 데 있어 숙주가 되는 사람의 상태가 중요하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여전히 이론적으로는 아니었지만 경험적으로는, 적어도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동의하게 되었다.
장족의 발전이다.
“그래, 그것도 그렇군.”
“네. 일단 이거 수술하고 나면 환자가 훨씬 편안해질 거예요. 살도 오를 것이고…… 어차피 저희 바로 떠날 것도 아니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 콜레라 때문에 해부학 강의도 거의 못 하지 않았나. 문제는 하나야. 우리 강의 들을 사람들이 많이 죽었네.”
“아.”
“그래도 몇 주는 더 있을 거야.”
“그럼 그사이에 더 회복시키고 나서 수술을 하죠. 한 일주일이라도?”
“자네 좋을 대로 하게. 그…… 조선에서는 그렇게 하겠지?”
“아…… 네.”
그 대가로 미심쩍어하는 시선을 얻게 되긴 했지만.
괜찮을 거 같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리스턴과 대충 계획을 정하고 나서 환자에게로 향했다.
그사이 정말 놀랍게도 내 제자들은 환자를 옆으로 누인 채, 깨끗한 물로 등을 닦아 주고 있었다.
깨끗한 물, 닦아 줌.
이 두 개 다…… 기적이다.
“야, 손 닦자.”
“어어. 그래야지.”
그 뒤로 벌어지는 일들도 다 기적이다.
“안 닦으면 콜레라 걸려.”
“어어. 그렇지.”
약간 오해가 뒤섞여서 저렇게 된 거긴 한데…….
굳이 정정해 줄 생각은 없었다.
염화석회에 손을 담그고 있다고 해도 그랬다.
안 닦는 거보다는 시뻘건 손이 되는 게 낫다.
“야, 평!”
“응?”
“너도 담가!”
아.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