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8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88화(188/505)
188화 보다 진보된 수술 [5]
“이렇게 한다고……?”
“너무 많이 뗀 거 같은데…….”
내가 떼어 낸 종양을 보고 일행은 여전히 각자의 감상을 내뱉고 있었다.
별로 의미 있는 감상은 없었다.
적어도 의학적으로는 그랬다.
무지의 소산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이제 와서 뭐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에는 좀 그랬는데, 이제는 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한 지 오래다.
오히려 내가 신기한 건 다른 것에 있었다.
‘여기서 대체 어떻게…… 반세기 후에 제대로 된 개념으로 수술을 하게 된 거지?’
윌리엄 할스테드 박사.
현대적인 외과학의 아버지.
천재란 이런 것이다를 보여 준 사람인데…….
어느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이냐면 불과 30대에 완전히 새로운 수술들, 그러니까 탈장, 유방 절제술 그리고 담낭 절제술 같은 것을 시행했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그 자신은 담낭염에 의한 패혈증으로 사망했을 정도로 주변 의사들의 실력은 그를 따라가지 못했다.
나름 열심히 가르쳤고 제자들 또한 열과 성을 다해 배웠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그랬다.
‘그런 천재들이 한 번씩 있어서 퀀텀점프를 하는 건가.’
다행히 여기도 천재가 있다.
몇 명인지는 모르겠는데, 하나 확실해.
리스턴.
저 양반은 천재다.
거기에 더해 진취적이고 또 행동력도 장난 아니다.
무엇보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필요도 없다.
말 그대로 전가의 보도…….
“자, 일단 닫아야죠. 빨리해야 해요. 마취한 지 벌써 한 시간도 더 넘었어요.”
“아아. 그렇지. 근데…… 생각보다 잘 닫힐 거 같네?”
“네?”
“이렇게 많이 떼면 보통 안 당겨지지 않나?”
“아.”
지금 질문도 봐라.
꽤 좋다.
특히 개념이 아예 안 잡혀 있는 상태라는 걸 감안하면 정말 그렇다.
상식적으로 절제가 크면 나중에 닫을 때 어렵지 않겠나?
당연히 현대적인 절제술은 그런 것을 다 고려해서 발달해 왔다.
“잘 보면…… 제가 이렇게 밑을 팠잖아요. 오히려 피부 절제는 거의 안 했어요.”
“음…… 아, 그렇군. 가운데 부분만 살짝 나갔네?”
“네. 그러니까 잘 닫히는 거죠.”
“그렇군…… 흐음. 흐으음…….”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얼굴만 보면 당연하다고 해도 좋을 만큼 그리 좋지 못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 같다.
교활한 방향보다는 악랄하거나 잔인한 생각 같은 거 있지 않나.
누구 죽인다거나.
죽여서 뺏는다거나.
하여간, 누가 죽을 거 같아.
하지만 아마도.
나도 확신은 어려운데, 아마도 어떻게 하면 자신의 수술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을 거다.
툭.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동시에 봉합을 할 수 있었다.
여전히 실은 개판이었지만…….
그러니까 일반 명주실에서 하등의 발전도 이루지 못했지만, 나름 소독을 거친 실이라는 게 이전과의 차이였다.
그것도 그냥 뭐 삶기만 한 게 아니라 알코올로도 처리하고 했다.
그래 봐야 완전한 멸균 상태는 아닐 거다.
명주실이라는 게 사실 아주 얇은 실들이 꼬여 있는 형태지 않나.
그 사이사이에 있는 틈마다 균이나 바이러스가 있을 수 있었다.
‘그건…… 우리 19세기인들의 힘을 믿는다.’
내가 여기 와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사람은 강하다.
옛날 사람이 강하다고 하는 게 옳은 말인 거 같긴 한데 아무튼, 그래.
지이익.
그런 생각과 함께 나는 봉합을 완전히 마쳤다.
그러자 반대편 가슴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이 되어 버린 가슴이 비로소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다들 탄식하고 있었다.
“이런.”
“이게…….”
“참…….”
그래도 생각했던 것처럼 격렬하진 않았다.
외과에서 제일 많이 하는 수술이 절단이지 않았나.
생각해 보면 절단만큼 사람의 형태를 많이 바꾸는 것도 드물다.
아, 절단이라고 하면 팔다리만 떠올릴 텐데…….
생각보다 턱도 많이 자른다.
리스턴이 전문이 아니라서 나도 자주 보진 않았는데…….
많은 모양이다.
당연하다.
‘면도 같은 거 괜히 하다가 다치면…….’
다치면?
썩히겠지.
그러다가 와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 자르겠지.
그럼 턱이 잘리는 거다.
뭐 그뿐만 아니라, 양치의 개념도 거의 없는 곳이다 보니 충치가 곪고 또 곪아서 턱뼈까지 썩어 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 만큼 다들 무언가의 변형에 아주 익숙하다는 얘기였다.
“음…….”
물론 익숙하다는 건 의사들끼리나 통하는 얘기였다.
환자에게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
소피 제르맹은 다행히 마취에서 잘 깨어났지만, 거울을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겠지…….’
이해가 간다.
생각보다 외형의 변화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니까.
“그래도 더 살 수 있겠죠?”
물론 그것도 인간마다 다르다.
더 강한 인간이 있고, 약한 인간이 있다.
그리고 소피 제르맹은 아주 강한 인간이었다.
“네, 적어도 수년은 더 살 겁니다.”
수년까지 될까.
그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수술을 하지 않았을 때보다는 훨씬 오래 살 거다.
나는 그렇게 확신한다.
“그럼 수학도 더 할 수 있겠군요. 일단 편지부터 써야겠습니다.”
“편지요?”
“네. 독일에 친구가 있는데…… 걱정이 많아서요.”
“아, 독일에도 친구가 있습니까?”
“네, 가우스라고.”
“가우스……?”
나 아는 것 같은데.
지금 이 가우스가 그 가우스가 맞나?
약간 혼란스러운데, 하여간, 환자가 편지 쓰고 싶다는데 그걸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게다가.
“평. 이제 가야지. 파리 놈들한테 한 방 더 먹어야 하네.”
“아, 네. 시신은 준비되었겠죠?”
방금 말이 좀 그랬던 거 같다.
너무 나쁜 놈 같았어.
“그럼 당연히 준비했겠지. 공급책이 있다고 들었어. 물론 태반이 이번 사태 때 죽었다고는 하던데.”
“아, 네. 공급책이요.”
조만간 파리에서도 교수형이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 할 건 아닐 테니까.
공급책도 콜레라로 많이 죽었겠지만, 경찰들도 많이 죽지 않았나.
그 외에 행정력도 많이 소진되었을 거다.
그러니까, 시신 도둑과 공급이라는 아주 사소한 범죄 가지고 뭐라고 할 만한 놈은 없을 거다 이 말이었다.
막말로 이게 다 어?
우리 좋자고 하는 짓은 아니지 않나.
다그닥.
우리는 그렇게 환자를 남겨 두고 마차에 탔다.
사실상 우리 덕에 이 대환난을 쉽게 넘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부다 보니 대단히 친절해졌다.
원래도 그렇긴 했다.
리스턴이 있으니까.
“빨리 가지. 우리 늦었어.”
“네? 늦어요?”
“어, 수술이라길래. 한 20분 정도 걸릴 줄 알았지.”
“아…….”
“근데 이번에 하는 거 보니까 확실히 마취가 되면 수술도 길어질 수 있는 거 같더군. 쓸데없이 질질 끄는 게 아니라…… 배우는 바가 있었네.”
“아, 그렇군요. 좋군요.”
그래, 배우는 것이 있으면 됐지.
유방 절제한다는데 20분 생각했다는 게 좀 놀랍긴 하지만 뭐…….
이번에 돌아가서 원래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닐 거 같긴 했다.
아마 별 이상한 기구를 썼을 거야…….
마취 없이 잘랐을 테니까…….
‘개끔찍하네, 진짜.’
팔다리도 끔찍하지만, 턱이나 가슴을 마취 없이 자른다는 건 더 그렇게 느껴진다.
단순히 내가 팔다리 절단은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는데…….
“다 왔습니다요!”
마부는 아까 리스턴이 흘러가듯 말한 것만 듣고는 나는 듯이 달렸다.
다행은 아닌데, 길거리에 사람들이 확 줄어 가지고 그래도 되게끔 되어서 그랬다.
“아 왔나. 마침 시신도 왔네.”
안에 있던 장 피에르가 나왔다.
한때 엄청 수척해져 가더니 이제는 많이 회복한 상황이었다.
“몇 구나 왔지?”
“많아. 원하는 대로 해 볼 수 있네.”
“많다고? 콜레라 아니지?”
리스턴은 많다는 말에 떨떠름한 얼굴이 되었다.
예전의 그가 아니지 않나.
위생을 안다, 이 말이다.
“아닐세. 그날 그렇게 난리를 치고 갔는데 설마. 그냥 굶어 죽은 사람들이네.”
“아하, 그럼 좋지.”
여기서 좋다는 말이 나오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아무튼, 우리는 말 그대로 시신들이 줄지어서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많다더니 스무 구다, 스무 구.
이게 다 굶어 죽은 사람들이라니…….
프랑스도 지옥이다.
영국만 지옥이 아냐.
“미리 말을 못 했는데, 몽펠리에 놈들도 왔네.”
“코라이?”
“그치는…… 이론 학자지 임상 의사가 아니야. 대신 부하라고 할 수 있는 놈들이 왔네.”
“그래?”
시신마다 여러 명의 의사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다수의 의사들은 들뜬 얼굴이었다.
외과 의사로서 해부를 해 보고 아니고가 실력 향상에 워낙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대학이야 내가 천천히 포르말린을 도입하고 있다지만 다른 곳은 그런 게 없지 않나?
해부할 수 있는 기회가, 특히 한창 실력을 쌓아야 하는 젊은 의사들에게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저놈들인가?”
“본때를 보여 주세.”
“어디 런던…… 근본도 없는 놈들이 말이야.”
“홍차나 마실 것이지.”
그중에서도 호승심을 보이고 있는 놈들도 있었는데 그게 몽펠리에 놈들인 거 같았다.
장 피에르는 그런 이들을 보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예의가 없네, 저것들은.”
“오히려 잘됐네.”
물론 리스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정도를 지나치게 무례하게 나온다?
오히려 잘된 일이다.
별 죄책감 없이 패면 되니까.
적당히 무례하게 나온다?
그때는 원래 계획했던 것처럼 실력으로 밟아 버리면 된다.
“알지?”
“알죠.”
“좋아…….”
“가시죠.”
우리는 실로 악당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 몫으로 비워져 있던 시신 앞으로 향했다.
굶어 죽은 시신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말랐다.
생각해 보니까 이것도 참 낯선 죽음이다 싶었다.
적어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굶어 죽는…….
그러니까 아사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살았으니까.
아무튼,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장갑부터 꼈다.
나만이 아니라 다들 그랬다.
“유난이네…….”
“저 새끼들…… 저건 또 무슨 풍습이지.”
그 모습을 보면서, 나머지들이 뭐라 뭐라 했다.
특히 몽펠리에 놈들이 그랬다.
예전엔 저런 반응이 꽤 치명적이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유를 모르고 내가 쓰라니까 쓰는 상황이었으니 뭐…….
“미친놈들.”
“미개한 놈들…….”
“미아즈마가 잔뜩 있는지도 모르고.”
“오늘 모인 꼴을 보니 적어도 한둘은 뒈지겠는데요?”
예의 바른 콜린까지 이렇게 나온다.
후후.
나는 절로 나오는 웃음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다 웃고 나서야 내가 지금 오늘 어쩌면 어제 죽은 시신 앞에서 웃었다는 걸 깨달았는데, 여기서만큼은 괜찮았다.
‘죄송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물론 속으로는 명복을 빌었다.
그러곤 메스를 들고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해부를 강의할 닥터 평이라고 합니다.”
“강의?”
“강의라고?”
“저 오만방자한 놈이!”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예상을 했다는 건 다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었다.
“형님, 좀 시끄러운데.”
“오케이.”
리스턴이 나섰다.
“더 떠들면 바로 여기 눕힌다.”
그러자 다들 조용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