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8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89화(189/505)
189화 보다 진보된 해부 [1]
해부의 목적은 무엇인가.
질문을 좀 바꾸어야겠다.
지금은 21세기가 아닌 19세기니까.
해부의 목적은 무엇이었나.
“자자. 저 미개한 것들한테 집중하지 말고. 내 말을 들으시오.”
몽펠리에.
이름 하나는 진짜 멋진 대학에서 나온…….
어느새부터인가 의학은 안 멋지게 만드는 놈이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이 해부란 우리가 인간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오. 경건히 진행해야 한다는 뜻이지. 자, 칼.”
그래, 인간을 온전히 이해한다.
저랬던 적도 있긴 할 터였다.
과학과 종교가 뒤섞인 시대에는 더더욱…….
우리 생각엔 서양 학문이라고 하면 무조건 실용적일 거 같지만 그것도 옥시덴탈리즘의 오류 중 하나이지 않겠나?
얘네도 같은 인간이니만큼 당연히 어느 정도 관념적인 허상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자 보라고.”
거기에 더해 철저히 도제식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인쇄술이 발달했다고는 하지만 그림책까지 딱딱 만들어 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겠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퀄리티 좋은 그림책이 있긴 한데, 우습게도 병원이나 의과 대학이 아니라 귀족의 서재에 꽂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즉 해부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배우려면 직접 스승님께 배워야 한다는 것인데…….
개인적으로도 배움이 느리고 체계적일 수 없다는 단점이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그 배움의 번짐이 너무 느렸다.
지이익.
그 때문에 벌써 본격적으로 해부를 해 온 지도 200년이 지나가는 무렵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저런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
“저거 봐라…… 저거.”
나도 대강 봤다.
아무 고려 없이 죽 째는 거.
키가 큰 리스턴에게는 얼마나 잘 보이겠나.
게다가 이 양반은 이제 해부에 상당한 실력자가 되어 가고 있는 마당이었다.
물론 얼굴이나 머리 등 해부가 어려워도 너무 어려운 부위는 좀 예외인데, 팔다리나 배 쪽은 상당한 수준을 자랑하고 있었다.
“엉망이구만그래.”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인 것도 아니다.
절대적인 세월도 짧았지만 일단 이 양반이 진짜 바쁘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을 쥔 리스턴은 일단 자세부터 달랐다.
최대한 본인이 편한 자세를 자연스럽게 취하고, 시야를 확보해 가면서 배를 가르고 있었다.
당연히 레이어와 레이어를 구분해 가면서였다.
‘우리가 하는 해부의 목적은…… 사람의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고, 더 나아가 실제 임상에 있어서 질환이 발생하는 기전과 치료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 있지.’
목적이 명확해져야 가야 할 길도 더 또렷이 보이게 되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그 길을 걷고 있는 이들 중 하나, 리스턴은 분명 천재다.
“으음…….”
“흐으음.”
보는 눈이 개눈깔이라 해도 너무 다른 것을 보여 주게 되면 알아볼 수밖에 없다.
사실 여기 모여 있는 놈들도 지식이 많이 모자라서 그렇지, 지능이 달리는 건 아니지 않겠나?
뭐, 달리는 놈도 있긴 하다.
“여긴 이렇게, 손으로!”
맨손으로 이제 막 부패가 시작된 시신의 배 속을 후비는 놈은…….
저 새끼는 목숨이 여러 갠가?
그랬다 해도 오늘쯤은 죽을 거 같다.
보아하니 손에 벌써 흉터가 여럿인데 한 8번은 죽다 산 거 같거든.
저 정도 당했으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어야 정상일 텐데…….
“와아아…… 신기하다. 장이 막 나오는데.”
“그렇다니까? 여기를 이제 째 보면? 보게.”
“변이 나오는군요!”
“이게 몽펠리에일세!”
아무래도 이름에 올인했던 모양이다.
이름만 멋있고 나머지는 다…… 좀 그래…….
미친놈들이 왜 해부하다 말고 장을 째서…….
“아이, 시발 냄새.”
악취라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것이 우리다.
해부 실습실에서도 그랬고, 이번 콜레라 사태 때도 그랬다.
따지고 보면 지금 나는 냄새 다 익숙할 수밖에 없다는 얘긴데…….
그럼에도 시신 속에 있던 변이 풍기는 악취는 남달랐다.
“하하. 이렇게 해야 장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법이지. 영국 놈들은 장갑 끼는 것을 보아하니 겁이 많아서 제대로 된 해부도 못 하는 모양인데?”
몽펠리에 놈이 시비를 걸어왔다.
이제 죽겠군 했는데, 리스턴은 의외로 참았다.
그저 내게 이렇게 말을 할 뿐이었다.
“의사는 칼로 말해야 하는 법이지.”
그래서 이제 죽겠군 했는데, 의외로 또 참는 거 같았다.
“본때를 보여 주세. 저들이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원형을 보여 주자고.”
“아…… 그런 뜻이었구나.”
“그럼 뭔 줄 알았나.”
“이제부터 다 베어 넘길 줄 알았죠.”
“그건…… 그것도 쉬운 방법 같긴 하군.”
물경 100명을 넘어가는 의사들을 다 베어 넘기는 것이 쉽다고 하는 중세 기사와 함께, 나는 해부를 이어 가기 시작했다.
지이익.
일단 복막을 십자로 가르고, 간부터 보여 주기 시작했다.
몽펠리에의 저능아 빼고는 대부분 힐끔거리기라도 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니 보여 준다는 표현이 정말로 맞았다.
“자, 여기 보면…… 이게 담낭이죠. 빵빵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죽기 전에 뭔가 먹지는 못한 모양입니다. 자 이걸 일단 이렇게 떼어 보면…….”
리스턴과 나는 둘 다 칼을 쥐고 서로 가까운 곳을 집도 아니, 해부하고 있었다.
헷갈릴 만한 것이 칼 들어가고 나오는 수준이 해부나 하고 있기에는 좀 아까운 수준에 이르고 있었다.
디디딕.
나는 일단 담낭을 분리해 냈다.
레이어에 대한 개념이 있고 또 충분한 시야를 확보한 상태라면 말 그대로 순식간에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게 담도죠. 담낭에서 이어져서…… 여기. 대략 손가락 열두 마디 길이쯤 되는 장으로 들어갑니다. 이뿐만 아니라…… 이 뒤로는 췌장이 있는데.”
“아, 췌장은 내가 분리했네.”
“와…… 잘했네요.”
“아무렴. 칼 쓰는 건 내가 최고지.”
췌장은 솔직히 말하면 좀 어렵다.
장기 자체가 흐물거리니까.
허나 리스턴에게는 해당 사항이 딱히 없는 일인가 보다.
순식간에 분리를 해 놨어.
조교로 써먹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그래, 이 췌장에서도 이쪽 장으로 췌장액을 분비하는 것으로 보이죠?”
“그래, 아마도…… 소화액이겠지.”
“그럴 겁니다.”
인슐린 얘기를 할 뻔했다.
마녀사냥당할 뻔했다, 이 말이다.
놀랍게도 19세기 훨씬 이전부터 당뇨라는 병은 알고 있지 않았나.
소변이 달콤해지면서 점점 말라가다가 종래에는 죽어 버리는 병으로 알고 있다.
치료?
인슐린이 발견되려면 지금부터도 한 100년은 더 걸린다.
21세기에서도 당뇨는 참으로 무서운 병이지만 지금은 아예 죽음의 병이다.
물론 21세기처럼 잘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적은 시대다 보니 그렇게까지 화제가 되고 있진 않은데…….
“자, 이제 간으로 갈까.”
“네.”
각설하고 간이다.
거대한 장기, 간.
이 간이 얼마나 하는 일이 많던가.
망가지게 되면 그만큼 생기게 되는 문제도 많은데…….
툭.
툭.
일단 이 시대에도 대강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간경화일 터였다.
우연찮게도 이 환자가 바로 간경화였다.
사실…….
우연은 아니다.
되게 많아, 이게.
‘뭐가 원인이었을까?’
비형간염? 씨형간염? 어쩌면 술 때문일 수도 있다.
런던처럼 이곳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혹독한 노동에 내몰린다지 않던가.
그러면서 동시에 노동자 보호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치거나 아파도 쉬는 날은 일절 주어지지 않았다.
치료?
치료는 언감생심이지.
그리고 만약 좋은 마음으로 치료를 보내 줘도 문제다.
병원에서 당장 죽지 않아도 될 병을 죽게 만들 수 있을 테니.
‘아무튼, 이런 것 때문에라도 장갑은 껴야 해…….’
나는 나도 모르게 몽펠리에 쪽을 바라보았다.
그쪽에서 아무렇게나 짼 배 안쪽으로 보이는 간.
저기도 간경화다.
거길 맨손으로 만지고 있다.
저 간에 어떤 바이러스가 있을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엔 죽는다…….’
이런 얘기를 해 줄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그럴 수가 없다.
게다가 몽펠리에, 저 새끼들은 좀 그래.
말을 너무 안 듣잖아.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더 죽었고…….
“참, 보다 보면 어떤 간은 이렇고, 어떤 간은 매끈하고 그렇단 말이지.”
“그러니까요. 뭔가 차이가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밝혀 봐야겠군그래.”
“네.”
우리 쪽도 모르고 있긴 매한가지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미아즈마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생긴 위생 강박으로 장갑을 아주 열심히 끼게 되었단 점이었다.
그 정도가 아니라 돌아가면 장갑 더 맞춘다고 하더라고.
이거 찢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냐 하면서.
“여기 포탈 베인(Portal Vein, 간문맥)이 있군요.”
“아무리 들어도 참 잘 지은 이름이야. 온몸의 정맥이 여기로도 통한다니…….”
“간이 그만큼 중요한 일을 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래, 우리가 모를 뿐 뭔가 하겠지.”
리스턴은 천장 쪽을 바라보았다.
그가 믿는 신이 있는 방향일 터였다.
“아무튼…… 여기 이 혈관들은 간 동맥과 정맥입니다.”
“거참. 이런 장기가 다 있나. 볼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지.”
“다음은…….”
“비장으로 가세.”
“네.”
아무튼, 우리는 두런두런 대화를 이어 나가면서 동시에 늘 하던 것처럼 장기를 하나하나 분리하고 있었다.
들어가는 혈관과 신경 그리고 관 등을 온전히 보전해 가면서였다.
사실 이게 가능한 이는 여기도 있긴 할 터였다.
하지만 우리처럼 체계적으로 딱딱 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거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어…….”
“어떻게 저렇게 빠르고 정확하지.”
“하는 얘기도 심상치 않네. 뭔가…… 뭔가 벌어지고 있어.”
몽펠리에 쪽을 제외한 대부분의 해부가 중단됐거든.
보통 리스턴이 있으면 물리력이 동원되었다는 걸 의미하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순전히 해부 퍼포먼스만으로 모두를 집중시키고 있었다.
“공주 하나가 저기 동양인 팬이라더니…….”
“확실히 뭔가 있지?”
“손이 좋은 건지 뭔지…….”
그럴 만도 했다.
벌써 장기가 대부분 분리되어 나왔는데,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잘려서 나온 건 아니거든.
혈관은 여전히 이어져 있다.
아마 이런 모습은 처음 볼 거다.
어느 정도로 대단한 거냐면, 이거 처음 했을 때 원장님도 달려왔어.
공주한테는 나중에 편지도 왔다고 했다.
직접 보고 싶다고.
돌아가면 해야 된다, 이건데…….
그렇게 설레발 떨고 별거 아니게 보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던 것이 우습게 느껴진다.
“오…….”
“이럴 수가.”
“저거. 저거 신장인가?”
“그…… 그런 모양인데.”
이제 후복막에 위치한 장기도 하나둘 떨어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요관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완전히 떨어져 나오진 않고 연결이 되어 있었다.
“허어…….”
“어찌…….”
그런 분위기가 불편했을까?
몽펠리에 놈도 칼을 쥔 채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한동안 말을 잃었다.
알 것 같다.
싫을 거다.
우리가, 또는 이 상황이.
하지만 눈 달린 인간이라면 딱 보는 순간 알 수밖에 없다.
이쪽이 훨씬 대단하다는 사실을.
“그…….”
“왜 배워 볼 텐가?”
리스턴은 아무래도 나보단 인성이 별로이다 보니 대놓고 먹이기 위해 물었다.
“아니, 아니! 웃기지 마라! 배 안을 이렇게 들여다보았다니! 역시 영국놈들은 사특한 구석이 있군그래! 팔다리로 승부하자!”
그러자 예상대로 펄쩍 뛰었다.
팔다리 운운하면서였다.
리스턴은 껄껄 웃었다.
팔다리에 있어서는 나조차 한 수 접어 줘야 할 사람이지 않나.
“그래, 해 보지. 뭘 걸겠나. 목숨?”
웃다 보니 장르가 살짝 누아르가 되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