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화(19/505)
19화 너네는 뭐 했냐? [1]
조산사라.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조산사의 도움을 받아 애 낳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의사다 보니 맨날 병원에서만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하여간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둘의 뒤를 따랐다.
“어쩐 일로……?”
집사가 불만 어린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 도련님.”
내 뒤에는 앨프리드가 있다고.
후하하하.
호랑이 등에 탄 여우던가.
하여간 뭐 그런 말도 있잖아.
“응. 조선에는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더군.”
“네?”
“다른 산의 돌에서도 교훈을 배울 수 있다, 이런 말입니다. 조산사의 부족한 의학 행위를 보면서도 배울 게 있다, 뭐 이런 말이지.”
“아하…… 좋은 말이군요. 과연, 노블 킴이시군요.”
똘똘해서 그런가, 말도 잘한다.
타산지석을 바로 활용할 줄이야.
그 말에 감복한 집사는 고개를 끄덕였고, 앞서가던 조산사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험험 소리를 내면서 밖을 내다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을 것 같았다.
누가 봐도 여기서 조선 사람은 나 같잖아.
‘시발. 거기서 부족한 의학 행위 어쩌구를 왜 말해.’
미친놈들.
누가 영국을 신사들의 나라라고 했냐.
이 무식한 앵글로색슨족 놈들.
매너라고는 없어 그냥.
끼이익.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조산사들은 프로의식이 대단해서, 시비를 걸어오는 대신 곧장 하녀 방으로 향했다.
하녀라고 부르는 게 맞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걸 물어볼 타이밍을 이미 옛날 옛적에 놓쳐 버린 참이라 그냥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이슬라. 모셔 왔네.”
집사는 문을 열고 하녀의 이름을 불렀다.
“으…… 네.”
딱 봐도 애가 곧 나올 것 같은 모양새였다.
외과 교수였던 주제에 ‘같다’라는 말을 쓰는 게 좀 그렇긴 한데.
산부인과는 진짜 하나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건 진짜 영역이 다르다고.
“흠…… 끓인 물은?”
“아, 네. 여기 있습니다. 근데 이건 왜…….”
“손 닦아야지.”
“왜요?”
“나도 몰라. 그렇게 배웠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놀랍게도.
시발 진짜 놀랍게도 조산사가 끓인 물부터 찾았다.
그러곤 더 놀랍게도 손을 닦았다.
이유는 모르는 것 같은데, 그래도 닦았다.
‘와…… 이거…… 이것만 해도 예후 차이가 딱 날 것 같은데.’
그 후론 별 차이가 없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산부인과가 그리 발전을 이루지 못한 상황 아닌가.
산전 검사를 할 거야, 아니면 제왕절개를 할 거야.
‘제왕절개도 한다고는 들었는데…….’
정정.
하기는 하는데, 보통 그럴 경우 엄마는 죽는다고 보면 되었다.
아이라도 살릴 마음이 있으면 그때 짼다고 하더라고.
문제는 해부학적인 지식이 개판인 데다가 술기도 아직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아서, 아이에게 흉터가 남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읍.”
“왜.”
“아니, 아냐.”
이놈들이야 이런 생각을 해도 그리 생생하게 떠올릴 수 없겠지만.
난 워낙에 지식이 뛰어나다 보니 상상이 아니라 회상이었다.
멘탈이 강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토했다, 진짜.
제왕절개를 세로로 한다니.
미친놈들.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산모들이 죽어 나갔던가.
손도 안 씻었으니 그냥 다 죽어 나갔다고 봐도 무방했다.
‘하.’
다시 생각해 봐도 정말 어이없는 시절이었다.
현대를 코앞에 둔 시기에 이토록 야만스러운 시절이 있었을 줄이야.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이 단지 문학적인 서사가 아니라, 역사에 대한 묘사였음이 새삼 사무치게 느껴졌다.
사람을 살리겠다는 미명하에 오히려 학살을 자행하고 있었다니.
이건 환자들에게도 못 할 짓이지만 의사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설마하니 의사를 자처하는 이들이 원해서 사람을 죽이고 있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으아아아아!”
곧 비명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산사 일행이 무슨 몹쓸 짓을 저질러서 그런 건 아니었다.
알고 보니 신사는 그냥 조산사를 모시고 온 사람이었고, 일을 치르는 이는 조산사 하나였는데 경험이 아주 많아 보였다.
“자, 이거 잡고 힘을 줘! 머리 보이니까, 조금만 더!”
“으아아아아!”
이슬라.
오늘 처음 본 여인은 정말이지 처절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애 낳는 게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름 실습도 돌았지만.
아무래도 21세기에서는 유도제를 쓴다든지, 아니면 살짝 입구를 터 주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덕분에 이것보다 나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저 내가 본 산모가 초산이 아니라서 그랬을 수도 있고.
‘와…… 어머니…… 내가 진짜 효도할게요.’
보아하니 아플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대가리가 크지 않던가.
특히 애들은 어깨너비보다도 머리둘레가 더 넓은데 그걸로 밀고 나오고 있으니 아플 수밖에 없지 않겠나.
고아로 자란 전생에서는 어머니에게 효도할 기회조차 없었지만, 지금의 어머니에게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조산사의 행동을 눈여겨보았다.
그녀는 마침내 태어난 아이의 엉덩이를 능숙한 솜씨로 두들기곤 미리 떠다 놓은 끓인 물로 슥슥 닦아 주었다.
“자, 수고했어요.”
그다음, 마찬가지로 깨끗한 물로 적신 수건을 들고 환자도 닦아 주었다.
무엇 하나 사려 깊지 않은 구석이 없었고, 무엇 하나 위생적이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물론 저렇게 한다 해도 머리가 큰 인간이라는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돌발 상황에는 대처할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인위적인 손상이나 위해는 가하지 않았을 터였다.
여기에서만 특별히 한 일 같지도 않아 보였다.
사람이 저 정도로 능숙하게 움직이려면, 같은 일을 골백번은 반복해야 했다.
그 누구보다 외과를 수련한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예후가 같을 리가 없어.’
그래.
이런 곳에서 아이를 낳는 산모와 병원에서 낳는 산모가 똑같은 비율로 죽어 나갈 리는 없었다.
그쪽은 진짜 위해를 가하고 있으니까.
개새끼들.
지들이 뭘 하는지 모르니까 그렇다는 말은 변명이라 할 수 없었다.
‘이걸…… 이것만 밝혀도 새끼들이 마음을 바꿔 먹지 않을까?’
나는 일단 좌우에 있는 조지프와 앨프리드부터 돌아보았다.
뭐라도 느끼는 게 있나 싶어서였다.
녀석들도 마침 나를 돌아보아서 대화가 시작되었다.
“확실히…….”
“다르네.”
오?
그간 내가 슬금슬금 풀었던 지식이 도움이 되었던 걸까?
응? 그런 걸까?
나는 기대를 품은 채, 뭐가 다르냐고 물었다.
“느려.”
“하품이 나올 정도라고.”
돌아오는 답은 어이가 없었다.
느려?
악마의 열매라도 먹었냐?
“손은 왜 닦는 거야? 거기서 시간이 다 가잖아. 머리가 나오고 있었다면…… 빨리 도왔어야지.”
“그러니까. 이 손에 얼마나 좋은 것들이 많이 있는데. 하긴, 조산사의 손이 우리 손하고 같을 리가 없나.”
아닌가.
만화를 너무 많이 본 건가.
같을 리가 없다니.
같지.
같은 사람인데.
너도 닦아야지.
‘이대로는…… 안 돼.’
역시 이 시기는 안 될 시기였다.
뭔가…… 과학적인 것 같으면서도 전반적으로 비과학적이란 말이지.
시늉만 하고 있는 느낌이랄까?
하긴 사실 현대 의학도 1990년대를 넘어가고 나서야, 전문가의 권위보다 근거에 더 집중하기 시작하지 않았나.
지금은 스승 아니면 전대 사람들의 말을 더더욱 바이블로 여기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걸 뒤집어엎으려면 근거가 필요했다.
‘이 사람들의 통계를 보자. 차이가 있을 거야.’
있을 수밖에 없다.
후후.
나는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일이 끝나길 기다렸다.
조지프와 앨프리드는 그런 나에게서 관심을 끊은 채, 나름대로 지금 본 것에서 느낀 점을 나누고 있었다.
“확실히 타산지석이네.”
“응. 나는 절대로 손을 닦으면 안 되겠어. 그래야 더 급하게 가지?”
“그렇지. 하하. 조선 사람들이 지혜롭네.”
열통 터지는 소리만 해 대서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대놓고 귀를 막는 행위는 비단 19세기 영국에서만이 아니라 어디에서건 불경한 짓이지 않나.
제길.
그래서 참고 들었다.
그러다 조산사가 나오는 것을 보고 후다닥 달려갔다.
“응?”
조산사는 엄청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그래…….
검은 머리에 노란 얼굴은 처음 본다 이거지.
밖에서라면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여긴 저택이었다.
조지프가 나설 것도 없이, 집사님이 험험 하고 나섰다.
“조선의 귀족입니다.”
“조선……?”
“동방에 있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하더군요. 지혜로운 이들이 많이 사는 곳입니다.”
“아…… 그, 네. 근데……?”
“여기 의과 대학에 다니고 있어요. 조선의 의학과 우리 의학을 접목하시려고요.”
싹 다 구라였다.
그렇다고 해서 찔리진 않았다.
난 진짜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이라고.
사람 살리려고 구라 치는 거라고.
해서 떳떳한 얼굴로 조산사를 바라보았고, 조산사는 그제야 내게 예를 갖추었다.
귀족이라는 말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는 시대이니만큼 당연한 일이었다.
“네, 실례가 많았습니다. 어떤 일 때문이신지…….”
“다름이 아니라,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어서 따라왔습니다. 혹 이런 식으로 가정에 방문해서 아이를 받는 일이 잦으신가요?”
내 질문에 조산사는 묘한 경계의 빛을 띠었다.
왜 그러나 했더니, 뒤에 답이 있었다.
“흥흥. 발라 버리라고.”
“화이팅 평!”
미친놈들이 개무시하는 얼굴로 조산사를 보고 있었다.
병신들아…….
니들보다 훨씬 낫다고…….
어쩌면 이런 놈들 때문에 21세기에도 현대 의학에 대한 불신이 생겨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확실히 이런 시기에 쓰인 저서들이라면, 전통 의학에 대한 평가를 더 후하게 주는 사람이 있었을 테니까.
하여간 나는 말을 보탰다.
급하게.
“안 좋은 뜻으로 묻는 게 아닙니다. 정말로 궁금해서 그렇습니다.”
“음…… 뭐……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갑니다. 여기뿐 아니라 교외에도 저택은 많으니까요. 대개는 병원에서 아이를 받고요.”
“아.”
병원에서도 받아?
몇십 명씩 있는 그 병실에서?
거기서도 이렇게 깨끗하게 아이를 받을 수 있을까?
절대 무리였다.
그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일단 물 끓이는 곳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혹시…… 이렇게 가정 방문을 통해 낳는 경우와 병원에서 낳는 경우 사이에…… 산욕열 발생 빈도 차이가 있지는 않나요?”
“음.”
산욕열.
아, 입에 잘 안 붙네.
그래도 난 천재라 용케 이 단어를 기억해 내고, 심지어 활용도 했다.
내 질문을 받은 조산사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답했다.
“아마…… 있을 거예요.”
답이 좀 애매했다.
“아마?”
“네. 따로 비교해 보지는 않아서. 하지만 차이가 있을 겁니다. 저택에서 낳는 경우엔…… 병원에서 낳을 때보다 산모들이 죽는 경우는 드물었던 것 같아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합니까?”
정리해 둔 건 없지만, 경험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기는 한 듯했다.
해서 더 깊숙이 들어갔다.
때론 직관이 더 정확할 때도 있으니까.
허나 돌아오는 답은 절망적이었다.
“교수님들 말로는…… 공기가 다르다고 하더군요.”
“네?”
“공기요. 그렇지 않겠어요? 그거 말고는 차이가 없는걸요.”
“아…….”
공기…….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암요. 그렇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