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0)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0화(190/505)
190화 보다 진보된 해부 [2]
“모, 목숨?”
몽펠리에 놈이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게 현명한 거다.
리스턴 박사의 입 밖에 나온 것을 가벼이 여기다가는 진짜로 큰일 나니까.
“그래, 아니면 뭐 나는 돈도 좋네.”
“그…….”
몽펠리에 놈은 일단 의학 승부에 내기가 끼어들게 되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나에게는 애초에 승부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이 시절 사람들은 워낙에 결투니 뭐니 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던가.
에드몽 당테스가 나오는 <몬테크리스토 백작>부터가 1840년대 작품이다.
이제 30년이니까…….
지금도 아마 장갑 집어 던지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지지 않을까?
“그래! 좋다! 해 보지! 돈으로 하지.”
“목숨 아까운 줄은 아는데 돈 무서운 줄은 모르는군그래.”
리스턴은 후후 웃으면서, 방금 전까지 만지작거리던 고무장갑을 슬며시 놓았다.
저 장갑에 맞으면 결투로 죽을 수도 있겠지만 균에 의해 죽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므로 나는 조용히 찬사를 내뱉었다.
그사이 우리 몽펠리에 놈은 방금 죽다 살아난 줄도 모르고 떠들어 댔다.
“하하, 런던 놈이…… 섬나라 촌놈이. 감히 우리 프랑스의 의학을 넘보다니.”
런던이었잖아?
아마 아까 턱 돌아갔을 거다.
거기 경찰서장하고 리스턴이 친구거든.
하지만 여기서 그랬다가는 경찰들 열 명 정도는 베고 도망쳐야 할 것이 뻔했다.
어쩐지 잡히진 않을 거 같았다.
그 와중에 나를 비롯한 나머지 떨거지들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는데, 리스턴은 살아서 나갈 거 같어.
“흐흐. 시작하지. 팔부터 할까.”
“그래, 좋다!”
아무튼, 리스턴은 씨익 웃더니 나를 바라보았다.
실로 흉악스럽기 그지없는 표정이었다.
아마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 전에 저런 표정을 짓곤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젠 알고 있었다.
그냥 즐거운 얼굴이다, 이건.
“아우. 해 볼까.”
“돈 얼만지 얘기 안 했는데요?”
특히 뭔가 나쁜 짓 하기 전의 얼굴이다.
예전 같았으면 난 아니었을 텐데…….
나도 이제 어쩔 수 없는 19세기 영국인이지 않나.
저도 모르게 얼굴 전체에 막 웃음꽃이 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하하, 일부러 그런 거야. 그래야 얼마를 가져가도 이상하지 않지.”
“아, 하하하! 저 새끼 집이 가까워야 할 텐데요.”
“그렇지! 자네도 이제 늘었군그래.”
강도질을 할 생각이었다.
후후후.
하하.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무엇보다 해부를 좋아하거든, 나는.
근데 지금 이 시신들 상태가 상당히 좋았다.
아무래도 포르말린 처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하는 느낌마저 있었다.
물론 딱 그렇다고 하기엔 약간 물렁하긴 했지만…….
이것도 마취가 되어서 근이완제가 들어간 상태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21세기에서 수술할 때 느낌이 난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자네가 왼팔, 내가 오른팔을 하지.”
“네, 그럼…… 제가 혈관?”
“그럼 나는 신경을 살리는 데 주력하지.”
“네.”
하여간, 우리 리스턴-태평 듀오의 해부 실력은 적어도 런던에서는 이제 최고로 추앙받고 있는 실정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아직 쇼 기회는 받지 못해서 우리끼리 이야기이긴 했다.
의과 대학 학생들과 의사들만 모여서 보고 배우고 있다, 이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나도 살짝 궁금했다.
이걸 처음 보는 사람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허어…….”
“방금 봤나? 근육이…… 슥슥 분리가 되고 있네.”
“대체 얼마나 많이 했으면…….”
“아니, 아냐. 많이만 해서가 아냐. 상당히 체계적이야.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하긴, 저 사람이 리스턴이지? 매일 자르는 팔다리만 해도 열 개가 훌쩍 넘어간다더군.”
“아…… 검성 리스턴이 저 사람이군.”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같이 놀라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피부가 죽죽 벗겨지고, 그 사이로 근육이 온전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까.
물론 근육들도 상대적으로 겉에 있는 놈과 안에 있는 놈이 나뉘어 있고 또 주요 혈관이나 신경은 그 사이에 있기 때문에 곧 이것들은 잘라 내야만 했다.
그래서 그 전에 입부터 털어 보기로 했다.
근육 이름?
내가 정하는 게 이름이다.
이미 리스턴과 어느 정도 조율을 해 놨기 때문에 괜찮았다.
19세기 트렌드로 보면 보통 발견한 사람이 자기 이름을 붙이는데, 하도 그래 놔서 공부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이 악습도 폐지할 겸, 또 내가 익숙한 단어로 모두가 소통하게끔 할 겸 해서 그렇게 했다.
-뭐, 그래서…… 내 말 안 들어?
자세한 방법은 솔직히 잘 모른다.
리스턴이 했다.
내가 말했더니 리스턴이 했어.
“여기 이게 델토이드죠. 삼각형으로 생겼죠?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팔의 옆면으로 붙는 것으로 미루어 짐작하던데, 아마도 팔을 이렇게 움직일 때 처음 시작하는 근육일 겁니다.”
다만 운동 기능에 대해서는 내가 지금 확정적으로 말하는 건 좀 위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유추하는 식으로 말하는 건데, 사실은 유추가 아니라 그냥 이게 맞는 거다.
“그리고 이거. 이건 가슴에 있는 이 근육인데…….”
내 거 가리켜 봤자 별로 티가 나지도 않을 거 같아서 리스턴 것을 가리켰다.
리스턴의 근육은…….
비상식적으로 대단한 것이다 보니 다들 머리가 좀 못 따라오고 있는 상황일 수도 있을 텐데도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여기를 자세히 보면.”
나는 일부러 설명하면서 동시에 칼로 죽 살가죽을 그어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환자의 가슴 근육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너무 말라서 그런가 오히려 모양을 보기에는 좋았다.
“이쪽, 쇄골에 붙는 쪽이 약간 위고. 그 밑은 이 가운데 뼈로 붙습니다. 결국엔 다 붙어 있으니 같은 근육이지만 살짝 기능이 차이가 있을 겁니다. 아마 생전에 어떤 움직임을 주로 했는지에 따라 모양도 다를 겁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태생적인 해부학적인 차이가 아니라, 그냥 사람의 행태에 따른 차이일 수 있다는 거죠.”
이 시기 해부학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는 시점이었다.
막말로 시신 도굴해서 해부를 그렇게 하는데, 발전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있겠나?
하지만 기존에 지식이 부족한 데다가, 아직까지 통계학이 덜 발달했기 때문에 달라 보이면 다른 것이 되고 같아 보이면 같은 것이 되는 세상이었다.
그렇기에 오류가 아주 많았다.
완성되기까지 지금부터 거의 150년이 더 걸린다는 걸 알고 있는 나로선, 조금씩 당겨 주고 싶어서 살짝 사족을 덧붙였다.
“아…… 운동을 많이 하면 근육이 커진다는 이론이로군.”
“확실히…… 일리가 있긴 하지.”
“다만 한 가지 어폐가 있다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죽는단 말인가.”
처음엔 이러다가 이거 너무 빨리 당겨지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는데, 이젠 아니다.
지금도 봐.
일단 운동을 많이 하면 근육이 커진다는 걸 보고 이론이라고 하잖아?
물론 이게 21세기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이지만…….
지금 시대에서는 이걸 입증해 내기가 꽤 어려운 면이 있었다.
일단 통계학이 발전이 아예 안 됐다시피 한 시대이지 않나?
거기에 더해 운동은 결국, 근육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호르몬이나 영양, 수면 등의 영향을 알겠나?
거기에 더해 무언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커지거나 강해진다면 결국, 움직이는 것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거 아니냔 말도 있었다.
“뭐 제 사견일 뿐입니다.”
“그래, 그렇지. 아무튼, 귀신같은 솜씨로군…… 확실히 대단해.”
이거 교정하려면 앉혀 놓고 몇 날 며칠을 두고 떠들어야 할까.
생각만 해도…….
지겹다.
내 제자 혹은 블런델, 리스턴 정도면 또 모를까.
빠게트 놈 하나 계몽하자고 그런 수고를 할 수는 없다.
“자 이 밑으로는 보십쇼. 여기 이 두 지점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근육이 아래팔뼈에 갖다 붙었죠? 바이셉스. 즉 머리가 두 개인 셈인데. 모양만 봐도 뭐 팔을 굽히는 데 쓰일 겁니다.”
“그래, 합리적인 추론이로군그래.”
“반대로 이 뒤에는 어떻습니까. 머리가 세 개, 즉 트라이셉스인데 이건 반대죠?”
“그렇군. 그래, 그렇겠지.”
나는 이외에도 바이셉스 밑에 있는 브라키알리스, 즉 상완근도 보여 주었다.
이것도 위팔뼈에서 출발해서 아래 뼈로 붙다 보니 굽힘근의 일종이긴 하지만…….
길이가 짧아서 힘이 강하진 않았다.
거의 뭐 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었다.
그 외에도 코라코브라키알리스, 이건 한국어가 더 어려운데 오훼완근도 보여 주었다.
있는지도 모를 사람이 더 많을 텐데, 그만큼 작은 근육이었고 당연히 여기서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오…… 이게 이렇게 분리가 되던가……?”
“허어. 대단하군.”
감탄이 이어졌다.
그사이 우리의 리스턴은 열과 성을 다해 일단 신경부터 분리하고 있었다.
저게 사실 진짜 어려운 일인데, 저 양반이 손이 굉장히 좋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리스턴칼로도 어지간한 수술은 다 하던 사람인데 메스를 부여받았으니 뭐 날아다닐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리고 아래로 가면, 여기는 근육이 좀 더 많은데…….”
위팔뼈에 있는 근육들이야 할 일이 없지 않나.
팔 펴고 굽히는 게 다지, 뭐.
하지만 아래는 다르다.
손목도 있고 손가락도 있으니.
게다가 잘 보면 아래 뼈는 뼈도 두 개다.
“이거 보입니까? 위팔뼈 끝에서 반대편에 위치한 아래 뼈로 가는 거.”
“아. 그래, 아주 작은데……?”
“이게 뭘 하겠습니까?”
“음.”
“팔을 뒤집겠죠. 시작하는 시점과 끝나는 지점만 알면 다 보이지 않습니까?”
“시작과 끝을 나누는 건…….”
“몸의 중앙으로 갈수록 시작일 거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으음.”
내 설명은 해부만큼이나 상세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렇지 않은 놈들도 있었다.
어쭙잖게 아는 척하는 놈들이 그랬는데 문제는 이놈들이 나름 의료를 선도하는 놈들이란 점이었다.
“전기 실험을 보면, 무작위던데…….”
시발놈아.
그중에서도 이 새끼 이거.
전기 실험은 죽은 사람에 대고 하는 거니까 그렇지.
아니, 사람한테 하지도 않았을 거다.
“개구리 말입니까?”
“그래, 개구리.”
개구리가 딱 지금 수준에서 전기 실험하기 좋거든.
사실 사람한테 쓰기엔 아직 출력이 달리니까.
괜히 침침한 가스등 같은 거 쓰는 게 아니라니까.
“개구리랑 사람이 같겠습니까?”
사실은 같다.
근데 그냥 심술부려 봤어.
“그런가. 그럴 수도 있겠군.”
헷갈리라고!
“그리고 이놈은 보면 엄청 넓은데…… 끝나는 지점이 두 군데입니다. 그러니 기능도 두 개겠죠? 손을 굽히거나 뒤집거나.”
“오호, 재미난 이론인데. 확실히 이게 더 그럴싸해.”
다행히 개구리, 인간론에 심취한 놈이 고민에 빠진 덕에 다른 놈들은 순수하게 감탄만 하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몽펠리에 놈은 바르고도 남았다.
애초에 근육 모양을 완전히 알고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같은 결과물을 보일 수 있겠나?
심지어 나는 수술 솜씨도 더 위잖아.
허나 아직 멀었다.
“자, 이제 내가 떠들어 볼까.”
리스턴이 나섰다.
거미줄 같은 신경들을 늘어뜨린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