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1)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1화(191/505)
191화 보다 진보된 해부 [3]
“자 여길 봐라.”
어차피 나 때문에 다 모여 있던 참이었다.
몽펠리에 놈들이야 오기 때문에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그 외에 거의 십여 구에 해당하는 시신 곁은 텅 비어 있었다.
내가 막 떠들 때보다도 더했다.
왜?
리스턴만 보여 줄 수 있는 퍼포먼스가 있기에 그랬다.
드드득.
소드 마스터.
절단 마스터.
뭐라 불려도 다 어울릴 만큼이나 칼질에 능한 이 사내는 가슴 근육을 통으로 드러냈다.
아, 자기 것이 아니라 시신의 것을 얘기하는 거다.
“오…….”
“와…….”
리스턴의 것을 보여 주었다고 해도 반응은 비슷했을 거 같긴 하다.
진짜 장난 아니거든.
아무튼, 대흉근과 소흉근 모두 잘려 나간 덕에, 그리고 그것을 꽤 세심하게 해낸 덕에 모여든 모두는 경추에서 나와 팔로 들어가는 신경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자 보면 여러 개가 모여서 가는데…… 이게 각각 뭐가 뭔지는 아직 몰라. 하지만…….”
리스턴을 말을 하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꽤 놀랄 만한 자료를 갖다준 적이 있어서 그랬다.
내 입으로 이렇게 말하긴 좀 그렇긴 한데, 나도 이제 제법 명성도 있고 돈도 있는 사람이지 않나?
리스턴처럼 절단을 팍팍 하진 않아도 콘돔 팔아 돈 벌고, 코 후벼서 돈 벌고 하고 있단 말이지.
그 돈으로 뭐 하고 있냐.
모으기도 한다.
한국인의 미덕은 역시 플렉스보다는 저축이지.
물론 쓰는 것도 꽤 있었는데 브론테 자매에 대한 후원도 있지만, 자료 수집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조선 드립이 이게 리스턴한테는 먹혀도 다른 놈들한테는 좀 그렇잖아.’
먹힌다는 것도 먹혀 주는 거지 실제로 막 잘 속이는 건 아니잖아.
해서 그래도 해부는 좀 오래 했으니까 혹시 하는 생각으로 막 뒤져 봤다.
마침 영국이 대영제국을 표방하면서 세계 각지에 식민지 만들고, 또 혐성국답게 그 지역 문화재고 뭐고 상관없이 다 뺏어 오고 있어서 더 쉬웠다.
벌써 지어진 지 100년은 되어 가는 대영박물관으로도 물건들이 꽤 가고 있긴 한데…….
책이나 문헌 같은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보니 그런 건 심지어 박물관 소장 물품이라 해도 볼 수 있었다.
-뒈질래?
가끔 개기면 리스턴을 보내면 됐다.
리스턴의 물리력이 닿지 않는 상대라면?
-어허…… 나 민망하게 할 건가?
대미언 경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내 빽이 진짜 장난이 아니게 되었네.
아무튼, 그렇게 뒤지고 뒤져서 찾아낸 사료 중에 정말 놀라운 것이 있었다.
무슨 생각까지 들었냐면, 혹시 이 유럽 새끼들이 이미 방사선 기술이나 이런 거 다 발견했는데 단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헤로필로스라는 사람이 있었네.”
리스턴은 내가 찾아낸 그리스 사람의 이름을 말했다.
말이 쉬워서 그리스지, 지금으로부터 거의 2000년 전 사람이다.
그때 사람이 해 봐야 뭐 얼마나 했겠나 싶을 텐데, 놀랍게도 대단한 짓을 했다.
이 사람은…….
사형수를 대상으로 무려 산 채로 해부를 600례 이상 진행했다는 혐의를 받고 학계에서 매장되었다.
“그 양반의 이론에 따르면 이 신경이 어떤 것은 운동 신경이고 어떤 것은 감각 신경인 것 같네. 그게 모여서 가는 거겠지? 그러니 이 위에서 한 가닥이 잘리면 운동이 됐건 감각이 됐건 기능을 하나만 잃지만, 아래에서 잘리면 둘 다 잃게 되는 것이지.”
“으음…… 너무 급진적인…….”
“애초에 헤로필로스가 누구요?”
“그리스 사람일세.”
“당시 사람이면 갈렌이라는 걸출한 해부학자가 있지 않소?”
그래서 해부학의 아버지는 방금 빠게트 놈 중 하나가 언급한 갈렌이 되었다.
이 사람은 당시 헤로필로스를 비롯한 너무 강성 해부학자들에 대한 반발심으로 인해 여론과 종교계가 인체 해부를 금하게 된 나머지, 비교 해부학이라는 걸 만들었다.
돼지 해부하면서 사람으로 치면 이렇지 않나, 뭐 이런 이론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그걸 토대로 치료를 했으니…….
본격적으로 다시 해부를 하기 시작한, 그러니까 비로소 인체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기 시작한 르네상스 이전의 치료가 개판일 수밖에 없다.
‘근데 놀랍게도 그 이전에 이루어진 치료를 답습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 이 새끼들.’
내가 이런 상념에 빠진 사이, 리스턴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돼지나 해부하던 사람이 해부학의 아버지라니. 이제 그런 인식도 바뀌어야지.”
“그래도…….”
“일단 듣기나 해.”
“네.”
그러곤 단호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반발은 거의 없었다.
적어도 앞에서는 그랬다.
“자 이걸 보면…… 이 세 개의 신경 가닥이 이어져서 결국엔 하나는 여기, 하나는 여기, 하나는 여기 중앙으로 가지.”
“확실히 그렇군.”
“엄청 세밀하게 했군그래. 이 길을 다 아는 건가.”
“후후.”
리스턴은 공손한 반응에 껄껄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다 알지 그럼 모르겠냐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았다.
사실 여기 있는 내 제자들과 블런델도 다 안다.
이렇게 세밀하게 분리하는 건 어렵겠지만.
“이제부터는 단지 예상일 뿐인데. 아마 엄지 쪽으로 가는 신경이 엄지를 비롯한 이런 손가락 움직임에 관여할 거야. 약지로 가는 건 약지 쪽이겠지? 가운데는 뭐, 손을 이렇게 굽히는 데 쓰이려나?”
“허어…… 확실히. 그쪽으로 가는군. 흐음…… 이건 상당히 새로운 이론인데…… 신경이 위에서 이어져서 내려간다, 이건가?”
“그렇네.”
“반대로 위로 올라가는 것일 수도 있지 않나?”
“그렇긴 하지. 이걸 막 잘라 가면서 할 수는 없지 않나?”
리스턴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막 잘라 가면서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인상이어서 그랬다.
물론 리스턴은 꽤 훌륭한 의사였고 또 인격도 이 시대 평균에 비하면 우수한 편이다 보니 절대로 그럴 생각은 없었다.
“다만 이 지식을 가지고 그런 일이 벌어진 환자를 보다 보면 알게 되겠지.”
“오, 그렇군. 우리도 그렇게 해 보도록 하지.”
대신 아주 현명한 얘기를 꺼냈다.
그 후로는 내가 또 혈관을 보여 주었다.
동맥과 정맥.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동맥이라고 해서 빨갛게 보이는 건 아니었다.
혈관벽이 두꺼워서 오히려 하얗게 보인다.
정맥은 좀 검푸르게 보이는 게 맞고.
하여간, 혈관 박리가 신경 박리보다는 쉽다 보니, 또 내가 아무래도 아직은 리스턴보다 해부학적인 지식이 더 위다 보니 내가 봐도 귀신같이 했다.
“와…….”
“이걸 이렇게까지.”
후후.
그에 비해 우리 몽펠리에 분들은…….
토막이나 안 내면 다행인 수준이었다.
너덜너덜해졌어, 아주!
“자, 그럼 이쪽이 잘했다는 놈들은 왼쪽. 우리가 잘했다고 하는 분들은 오른쪽으로 오시죠.”
그 꼴을 내려다보던 리스턴은 기가 찬다는 듯 웃다가 이내 손짓해서 사람들을 분류했다.
참으로 놀랍게도 처음엔 빠게트 놈들답게 왼쪽으로 가려는 놈들이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거만 보던 것도 모자라서 아예 메모까지 하던 놈이 그러니 화가 안 나고 배기나?
“뒈지고 싶습니까?”
보다 못한 리스턴이 점잖게 가서 물었다.
“그게, 아무리 그래도.”
“뭐, 시발놈아.”
그러다 딱 한 번, 딱 한 마디 욕을 했더니 역시나 자기가 생각해도 사리에 맞지 않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는지 오른쪽으로 왔다.
그런 그의 모습에 회개한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그래.”
나는 그런 이들을 보며, 리스턴에게 받은 명검을 어깨에 걸친 채 껄껄 웃었다.
나머지?
나머지 애들은 우측에 선 이들 앞에 주머니를 펼쳐 놓았다.
“이, 이게 뭔가.”
“솔직히 잘 배웠지?”
“그건…… 그건 맞는데. 원래 교류의 장으로서…….”
“교류? 우리가 니들한테 뭘 배워? 미아즈마 개념 잡아 줬지, 해부 알려 줬지…… 심지어 콜레라 때는 돈도 안 받고 사람 수천 명은 살렸는데. 해 준 게 뭐가 있어.”
“그…….”
저기서 주도하고 있는 건 조지프였다.
리스턴에게 밀려서 그렇지, 쟤도 170을 훌쩍 넘는 거구 아닌가.
게다가 리스턴이 슬슬 자기 칼을 안 쓰게 되면서 스페어로 만들어 뒀던 칼을 친한 사람들한테 뿌린 탓에 조지프도 녹슨 리스턴칼을 받았다.
칼이라는 게 코앞에 들이밀면 다 무서운 법이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건 녹슨 칼이다.
심지어 그 칼에 사람의 피와 기름이 묻어 있다면?
“얼, 얼마를?”
“사람 생명과 지식에 감히 값을 매길 생각을 하다니…… 천박하구만.”
“그.”
“눈치가 없네.”
“드, 드리겠습니다.”
우측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왼쪽으로 이탈하려 했지만, 가운데에는 리스턴이 서 있었다.
“자발적 모금일세, 자발적. 내기 싫으면 안 내도 된다네.”
그는 방금 걸음을 옮기려던 이에게 친절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어쩐 일인지 상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는가 싶더니 사죄를 하기 시작했다.
“네, 네. 죄송합니다!”
“죄송은 무슨. 하하.”
리스턴은 그렇게 모금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한 후, 몽펠리에 놈들에게 다가갔다.
몽펠리에 놈들 중 제일 높아 보이는 사람은 이제 슬슬 분위기가 파악되는 모양이었다.
사실 딱 봐도 얘네는 개판이었다.
나름 잘했다고 하긴 했지만…….
이 정도 지식으로는 딱 절단이 한계다.
그 위 레벨 수술로 넘어가려면 훨씬 더 섬세한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다.
“내기는 우리가 이긴 거 같은데.”
“아니…… 협박을…….”
“협박이라니?”
“칼을!”
“자네도 칼 들고 있지 않나? 저기에 선 사람들도 다 칼을 들고 있네.”
“이렇게 큰 칼을…… 큰 칼을 의사가 쓸 일이…… 아.”
리스턴은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해부가 아직 진행되지 않은 다리를 슥 하고 잘랐다.
뼈만 남기고 도려냈다는 표현이 더 옳기는 할 텐데, 산 사람 대상으로도 30초도 안 걸리던 사람인 만큼 시신을 대상으로는 수 초 수준이었다.
“이게…… 소드 마스터 리스턴인가.”
그걸 보고 나서야 상대의 무릎이 툭 꿇렸다.
단지 위력 시위에 의한 것은 아닌 듯했다.
원래 중요한 것은 마음을 꺾는 것이지 않나.
이 시기 외과 의사의 실력을 무엇으로 가늠할까.
절단이다, 절단.
마취가 보급되었다고 해도, 올해지 않나.
그마저도 런던을 제외한 지역에서는 제대로 된 마취가 시작된 지 이제 고작 한두 달밖에 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이렇게 깔끔하다니.”
그런 상황에서 저런 절단술을 봤으니 저리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21세기 정형외과 의사들도 저거 보면 아마 꿇을걸?
무슨 이런 수술이 있나 싶어서도 있겠지만…….
아무튼, 리스턴은 그렇게 상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대가를 치러야지.”
“대, 대가?”
“돈 내기 하지 않았나.”
“아, 아. 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여기서 말고.”
“네?”
“집으로 가세.”
“지, 집에는 처자식이!”
“잘됐군.”
상당히 악당같이 느껴질 텐데 알고 보면 그런 건 아니었다.
처자식을 거느릴 만한 재력이 있어 다행일 거란 뜻일 거다.
결코 처자식을 담보나 노예로 삼겠다는 건 아니라는 거다.
아무튼, 우리는 그렇게 상당한 돈과 명성을 쌓고 다시 런던으로 향하게 되었다.
끔찍한 기억이 더 많은 도시지만, 파리도 만만치 않게 끔찍하다 보니 고향처럼 그리워지던 참이라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