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2)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2화(192/505)
192화 위생 강박 [1]
우리가 탄 범선은 올 때처럼 덜컹거리며 바다를 갈랐다.
세차게 불어오는 해풍은 소금기가 있어 찝찝했지만, 그럼에도 신선해서 좋았다.
특히 지금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런던 전경 때문에라도 더 그랬다.
저 시커먼 연기라니…….
그나마 겨울을 파리에서 보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런던의 3월은 상당히 추운 편 아니던가.
아마 공장에서 내뿜는 것 외에 가정에서 내뿜어 대는 매연도 장난이 아닐 터였다.
‘모르긴 해도 수백 명은 공기 때문에 죽었다.’
고작 수백 명뿐일까 싶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내 상식에 비해 19세기 인간들은 훨씬 강하지 않던가.
이번 콜레라만 해도 그랬다.
수액?
수액이라니…….
먹는 수액조차도 어설프게 만들어서 먹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률이 10% 안쪽이었다.
원래 콜레라의 사망률이 40에서 50%을 육박하는 데다가 의료 인프라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에서의 사망률은 그보다 높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원래 상태도 그리 좋지 못한 사람들이지 않았나?
‘수십 명일까……?’
이미 굶어서 영양 상태도 후진데도 불구하고 살았어.
“무슨 생각을 그리 하나.”
“아…… 뭐, 오랜만이니까요.”
“오랜만이지. 내가 그동안 있었던 일들 다 편지로 써서 보내 놨으니, 우리 의과 대학도 어느 정도는 변함이 있을 거야.”
“변함이라면……?”
“미아즈마의 개념 같은 것들 말이지.”
“아.”
리스턴과 대화를 하고 나니 상념의 종류가 바꼈다.
과연…… 변함이 있을까?
어느 정도는 있을 거 같다.
적어도 우리 대학은 그럴 거 같아.
지금까지는 변함이 없었다고 해도 리스턴 박사랑 같이 가면 변할 거거든.
하지만 다른 곳은 어떨까?
‘여전히 백린 성냥 만드는 곳이 하나 가득이지.’
리스턴의 물리적인 협박을 받은 곳에서조차도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물론 죽기는 싫을 테니 아예 업종을 바꾼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기존의 성냥과 백린 성냥의 효율이 너무 차이가 나다 보니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그거 쓰면 사람이 죽는다고 해도 별 소용은 없었다.
어차피 사람은 죽기 마련이라는 말만 돌아왔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너무 기대는 하지 말자…….’
그거 외에도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빠게트 놈들만 해도 그렇지.
이미 콜레라라는 대재해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몽펠리에 놈들을 비롯한 절반은 고집을 부리고 있지 않나?
해부학에도 개발려 가지고 우리가 한밑천 두둑이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런던 놈들은 무식하다는 말을 남겼다.
물론, 그거 들은 마부는 나중에야 말해 줬다.
그 자리에서 했다가는 리스턴이 사지를 찢어 죽일 거 같았다는 말을 덧붙이면서였다.
“자, 곧 도착이니 안으로 드시죠.”
항해사가 다가와 우리에게 안쪽을 가리켰다.
배가 멈출 때 범선이라는 물건이 얼마나 흔들리는지 이제는 알게 된 터라 우리는 순순히 안으로 향했다.
그렇게 안에서 좀 기다리고 있으려니 거의 뭐 충돌했나 싶을 정도의 출렁임이 있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정말 적응 안 되는군그래.”
리스턴 마저 살짝 질렸다는 기색이었다.
아까 마주했던 항해사를 떠올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딱 보면 사실 그렇게 체격이 건장한 것도 아니거든.
아니, 오히려 마른 편이었다.
이 당시 뱃사람들에게 주어지던 음식의 종류나 마실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게다가 힘을 워낙에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이를 앙다물게 되었고, 그러다 보면 이가 박살이 나기 마련이었다.
가뜩이나 양치 문화도 자리 잡기 전이라 충치도 많으니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박살 난 이로는 아무래도 제대로 된 영양 섭취가 어렵다.
‘치과 쪽도 한번 들여다봐야지. 하지만…….’
어찌 된 놈의 시대인지 뭔가 보면 문제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있다.
그리고 그 문제가…….
내가 의사라서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대개 의학적인 문제로 이어진다.
근데 이런 거 다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들었다가는 뒈져…….
아니, 가능하지도 않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는 게 내 결론이다.
다행히 아주 고무적인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아무튼, 돌아가면 바로 소독제를 찾아보세.”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게. 반드시 찾아야 하네. 어쩌면…… 이것이 산욕열의 비밀일 수도 있어!”
이것도 내가 하는 말이 아니다.
19세기 의사의 표본이라고 해도 좋을 리스턴과 블런델의 말이다.
둘만 정신이 나가서 이러고 있냐?
그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요, 교수님. 아버지에게 무역하면서 혹시 들은 게 없는지 물어보겠습니다.”
“저도 돕겠습니다. 양조하시면서 뭔가 힌트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저, 저도 돕겠습니다! 저는 발견하는 거 다 발라도 좋습니다!”
엘프리드, 조지프 그리고 저렇게까지는 안 해도 될 거 같은 콜린.
그러고 보니까 콜린 저 새끼는 바라는 게 대체 뭔가 싶다.
마취제 확인한다고 이 뽑아, 미아즈마 확인한다고 똥물 마셔…….
그런데도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열정적인 것을 보면 나중에 엄청난 놈이 될는지도 몰랐다.
아무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 일행의 위생에 대한 개념이 드디어 하늘 위에 올랐다는 점이었다.
“마차가 왔군. 가지.”
“아이고, 냄새. 거리에 온통 미아즈마가 있을 거 같군그래.”
리스턴과 블런델이 오는 길에 산 손수건으로 코를 감싸 쥐었다.
심지어 장갑도 끼고 있었다.
너무 더러울 거 같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아휴.”
“에효.”
“아이고, 우리 고향.”
나머지 셋이라고 해서 별 차이가 있지는 않았다.
‘꼴값 떠네…….’
내가 볼 때는 진짜…….
지랄이었다.
그렇게 더럽게 살더니.
특히 리스턴…….
댁 칼 사진이라도 찍어 놨어야 했는데.
남의 피와 기름, 심지어 살점까지 덕지덕지 붙어 있던 칼로 남의 팔다리 자르던 게 누구시더라.
“어이구. 저 템스강 물 좀 보게!”
“똥물이군. 여기도 언제 뭐가 생겨도 이상하지 않아.”
“하나 이상한 점이 있다면…… 왜 우리가 실험했을 때는 콜레라가 생기지 않았냐는 건데.”
“그야 당연한 일 아닌가. 주님께서 우리를 보우하시는 것이지.”
“아하. 그렇군그래. 하긴 프랑스 놈들…… 그 자식들을 주님께서 우리만큼 사랑할 리가 없지.”
“하하하하!”
내 상념과는 별개로 두 교수는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내가 아직 미아즈마, 그러니까 병원균에도 종류가 있고 그 종류에 따라 일으키는 병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어떤 병원균은 사실 병원균이 아니라 유익균이 되기도 하고 또 어떤 놈은 그냥 우리 몸에서 사는 상재균이라는 걸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결론은 영 이상한 곳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여기서 뭘 설명할 수는 없지.’
마녀로 몰리기 두려워서는 아니었다.
적어도 이 그룹은 이제 내게 그럴 리가 없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 거다.
함께 지낸 세월이 얼만가.
심지어 그 세월의 밀도 또한 장난이 아니었다.
콜레라 때는 진짜 뒈지는 줄 알았다니까.
나도 정이 들었나, 블런델 교수 똥물 튀겨서 설사할 때는 눈물도 찔끔 났다.
‘헷갈릴 거야…….’
이제 겨우 병원균의 개념을 알아내고 있는 우리 새내기 의학자들에게 저런 얘기 해 봐…….
심지어 사실 병원균의 종류에는 세균, 바이러스, 기생충, 진균 등이 있다구?
이게 얼마나 복잡하면 아예 감염내과라는 분과가 따로 있겠어.
내가 나름 외과 교수인데도 불구하고 깊이 들어가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더 많을 거다.
‘그냥 닥치고 있자. 이 사람들 돕기나 해야겠어.’
이러한 생각 때문에 쓸데없이 끼어드는 대신 입을 꾹 다물었다.
그사이 우리 마차는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템스강을 건너는 다리였는데, 쉽게 말하면 이 지점이 템스강과 가장 가까운 지점이다.
“어우.”
“이렇게 더럽다니…….”
“내가 의회에라도 나가서 얘기를 해야겠군그래.”
“그래. 자네가 힘 좀 쓰게.”
냄새가 진짜 장난이 아니었다.
냄새만 끔찍한 게 아니라, 강물 생긴 거 자체도 끔찍했다.
뭔가 건더기 같은 것들이 있는데 저게 다 뭔지 모르겠다.
알고 싶지도 않고.
다행한 것은 우리 리스턴 박사님이 의회에 나가겠다고 한 점이다.
저 사람이라면…… 아마 우리 중 어떤 사람이 나서는 것보다 훨씬 나을 것이었다.
“물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소독.”
“그래. 소독.”
리스턴도 일단 소독에 집중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과연 현명한 사람이었다.
그래, 모든 문제를 어떻게 다 해결하겠어.
이게 맞다.
“워어, 다 왔습니다.”
“그래. 음.”
하여간, 우리는 아주 오랜만에 대학에 도착했다.
솔직히 나는 좀 반가운 기분도 들었다.
뭐가 되었건 여기가 이제 내 학문의 고향이니까.
내가 이럴 정도면 다른 사람들은 더 그래야만 할 텐데…….
“흐음.”
“으으음.”
어째 반응이 좀 떨떠름했다.
“해부 실습실이…… 저 미아즈마 덩어리가 환자 병실 옆에 버젓이 있다니. 이런 미개한.”
“산부인과 병실이 바로 옆에 있네. 이건 모욕이야!”
이유가 있었다.
내가 전에 머릿속으로만 떠올렸던 것들을 이제 이들이 가감 없이 입 밖에 내고 있었다.
약간 열이 받는데…….
그래도 이게 다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을 하니 속이 좀 편안해졌다.
“야, 이 새끼들아! 다 나와!”
“네, 네!”
“아, 오셨습니까!”
“어어, 자네 왜 그러나.”
우리의 리스턴은 일단 문을 부술 듯한 기세로 열고 들어갔다.
음침한 가스등이 빛나는 복도에, 소리를 들은 모두가 헐레벌떡 뛰어나오고 있었다.
그러곤 무슨 조폭 두목이라도 반기는 뉘앙스로 인사를 건네왔다.
“지금 공부할 때야? 책장이 넘어가나!”
아마 어리둥절할 거다.
대체 이게 뭔 일인가 싶겠지.
평소 사람 살리고 싶으면 한 자라도 더 보라고 하던 양반이 갑자기 저러니 얼마나 이상하겠어.
나는 어떻냐고?
‘개신나지.’
하고 싶지만 못 했던 말을 리스턴이라는 스피커를 통해서 할 수 있다.
이게 얼마나 기쁘고 든든한 일인지는 리스턴의 등 뒤에 서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법이다.
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거대한 이 사내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렀다.
“쥐새끼들도 있잖아! 싹 다 잡아 죽여! 그리고 바닥 청소부터 한다! 해부실. 그래, 해부실이 가장 문제야. 저 안에 대체 얼마나 많은 미아즈마가 있는 줄 아나?”
뭐 강의 끝나고 해라, 진료 끝나고 해라 이런 말도 없었다.
그냥 바로 하라고 했다.
그러니 학생들은 몰라도 교수 중에는 불만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어, 리스턴 교수…….”
물론 그 불만을 힘껏 표출하는 건 불가했다.
잘못한 것도 없으면서 한 교수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왜 그러나.”
“미아즈마라는 건…… 공기일세. 독을 품은 공기야. 이 런던은 이미 오랜 세월 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그 기운을 소모한 곳이야. 근데 바닥 청소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설마 악취 자체가 나쁠 거라는 이론에 심취한 건가?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글쎄.”
그런 것치고는 꽤 청산유수였다.
과거형을 쓴 건, 그가 곧 입을 다물어서였다.
“글쎄, 뭐. 그래서 청소 안 한다고?”
“아니, 하기는 하는데…….”
“그럼 해! 입씨름은 나중에 하지. 한시가 급하니까!”
“어…… 아, 알겠네.”
교수는 빗자루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