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3)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3화(193/505)
193화 위생 강박 [2]
“으아아!”
“이게 청소한 거냐?”
“아니, 대체 이것보다 어떻게 더 깨끗하게 하겠나.”
“시발…….”
시간이 꽤 지났다.
아마 처음엔 병원 전체를 다 갈아엎을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중간쯤 느낌이 왔던 거 같다.
어느 순간 모든 인원은 일단 해부 실습실 안쪽으로 들여보내졌다.
안쪽의 광경은 여전히 기괴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전보다 더했다.
한쪽으로는 내가 실습을 진행했던 시신 세 구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포르말린으로 절여 둔 것인데, 그랬던 만큼 부패가 현저히 지연되어서 지금도 상태가 썩 나빠 보이진 않았다.
물론 장기가 남아 있었다면 그건 썩었을 텐데, 이미 다 제거를 해 두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 옆으로는 여전히…… 생시신이 있군.’
이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사실 포르말린 처리를 하는 순간 시신이 좀 달라지긴 하지 않나.
책이 제대로 된 상태라면야 모르겠지만, 그런 책이 없는 상황에서는 이게 좀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투 트랙으로 나누고 있는데…….
그렇다 보니 이게 참 묘하게 됐다.
한쪽에서는 포르말린 냄새가, 다른 한쪽에서는 부패의 냄새가 풍겨 왔다.
“아유, 이 쥐새끼들 봐라 이거. 아유.”
그렇다 보니 쥐와 파리 그리고 구더기 등은 여전히 창궐하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묘한 냄새 때문에 고생하게 된 의대생들 그리고 의사들이 게워 놓은 토사물들 또한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중에서도 역시 사람 마음을 가장 괴롭히는 건 쥐였다.
리스턴은 오늘 하루에만 수십 마리가 잡힌 것을 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씨.”
그 외에도 구더기가 하나 가득이었다.
아무튼, 그것들을 치우고 나니까 훨씬 나았다.
그렇다고 해서 안심이 되는 건 아니었다.
소독을 하진 않았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균이 여기 대체 얼마나 득실거리겠나.
일단 저기 부패하고 있는 시신부터가 병원균의 온상일 터였다.
그 생각을 했더니 살짝 속이 미식거렸다.
“우웁.”
정작 구역질을 하기 시작한 건 내가 아니라 블런델이었다.
“여기 미아즈마가 대체 얼마나 많았던 걸까.”
“현미경 가져다드릴까요?”
“아니, 됐네. 됐어!”
콜린의 말에 손사래를 치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시선은 해부 실습실 너머에 닿아 있었다.
말을 이렇게 해서 그렇지 바로 산부인과 병동이었다.
원래는 이게 어마어마한 복지였다.
해부하다가 바로 환자 보러 뛰어갈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병동이 산부인과다 보니 시신을 바로 옮기기에도 좋았다.
블런델도 좋아했을 거다.
병원균에 대한 개념을 잡기 전까지는.
“내가 죽인 사람이 적지 않을 거 같군그래.”
그때 알았다.
불런델이 단지 위생 걱정에 구역질을 한 게 아니라는 걸.
그의 얼굴과 말투 아니, 그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에서 후회와 자책이 느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뭐 많이 안 죽였겠나? 이래서야 백정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네.”
리스턴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상당히 침울해져 있었다.
풀이 죽었다는 말이 어울릴 지경이라고 해야 하나?
낯선 풍경이었다.
저 인간은 언제나 기운이 넘쳤으니까.
“에이.”
“이런 젠장.”
저러다 이제 의사 못 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리스턴이나 블런델 정도면 19세기 의사들 중에 그래도 어마어마한 인재들이지 않나.
무엇보다 나랑 관계가 좋았다.
나도 저들이 좋았고.
“앞으로 잘해야지.”
“그래야지, 뭐.”
물론 기우였다.
둘은 금세라는 말도 모자랄 만큼 찰나의 순간에 정신을 차리더니만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우리를 모았다.
나도 포함해서였다.
“평.”
“네.”
“그때, 손 닦으라고 했을 때 말이야.”
“네.”
“염화석회를 추천했던 이유가 있나?”
“아.”
오…….
이 날카로운 양반 봐라.
아마 짱구를 굴려 보니 지금 이렇게 치우는 것만으로는 미아즈마를 다 죽이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거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어져 어느덧 손에 닿았을 거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주장했던 손 씻기에.
‘잘 말해야겠지.’
여기서 ‘아, 사실 그런 성분이 병원균을 잘 죽입니다’라고 하면 어떻게 되겠어.
우리끼리는 괜찮을지 몰라도 좀 이상해지잖아…….
“뭔가 독한 걸 써야 할 거 같아서요.”
“그래, 그렇지. 바로 그거야.”
해서 전에 했던 말로 그냥 대충 뭉개려고 했는데, 그게 오히려 리스턴의 생각과 딱 맞아떨어진 모양이었다.
리스턴은 방금 전까지 침울해했다는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활기차게 떠들기 시작했다.
나름 깨끗해진, 그러나 악취는 여전한 해부 실습실을 이리저리 떠돌면서였다.
두 손을 이리저리 흔드는 것이 어쩐지 머지않은 미래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날 짝부랄 놈과 닮은 거 같아 불안해졌다.
보통 사람이 저럴 때면 상당히 과격해지는 법이어서 그랬다.
“독한 거…… 독한 것이 필요해. 현미경 아직 안 돌려줬지?”
“아, 네. 아직요.”
“잘했어. 그냥 주지 말자.”
“대미언 경 물건을 꿍치자고요……?”
“어차피 기억도 못 할걸? 그 사람이 얼마나 자산이 많은데.”
“하긴…… 그렇긴 하죠. 말 안 하면 모를 거 같긴 합니다.”
바쁘기도 하지 않나.
원래 전립선비대증 때문에 요실금도 있고 할 때는 대외 활동을 엄청 줄였는데, 지금은 아주 왕성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직위가 직위다 보니 진짜 엄청 바쁜 모양이었다.
아마 지금도 런던에 없을 수도 있었다.
어디 나가 있을 가능성이 높아.
“그래, 됐어. 좋아.”
“좋다고요?”
“이제부터 숙제야. 평, 너도 잘 들어.”
“어…… 네.”
“지금부터 각기 독한 거 찾아보자고. 내일…… 강의실에서 실험을 해 보는 거야. 독한 걸로 처리하고 나서 전후로 미아즈마의 양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자고.”
“아…… 아하.”
그래.
맞다.
우리 시대의 의사들은 실험 정신이 미쳤지.
미아즈마의 독성을 확인하기 위해 자기 몸과 학생들의 몸에 물을 들이부은 것이 바로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다.
너모 무서워…….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론보다는 이런 것이 훨씬 잘 먹히지.’
무섭지만, 잘 먹힌다.
저 말 안 듣는 빠게트 놈들도 보여 주니까 절반이나마 넘어오지 않았나?
물론…….
그 넘어온 절반 중 또 한 절반 이상은 리스턴의 무력 때문일 거 같긴 한데 아무튼.
“자자. 멍하니 있지 말고 출발하자고!”
“네네.”
“아, 평. 자네는 그러지 말고.”
“저는 왜요?”
“자네…… 안 보여 주려고 했는데.”
그 말에 블런델, 앨프리드, 조지프, 콜린이 부리나케 밖으로 향했다.
원래는 나도 나가려고 했는데 리스턴이 잡았다.
그러곤 뭔가 보여 줬다.
봤더니 투서들이었다.
“자네 죽을 수도 있어.”
“어…….”
“나한테도 왔네.”
“그럼 형님도 위험한 거 아닙니까!”
“나? 내가?”
“아.”
투서야 똑같이 왔다.
하지만 내가 위험할까 아니면 리스턴이 위험할까.
리스턴이 위험해지려면 아마 반국가 사범 정도로 찍혀야 할 거다.
어차피 의사들이나 공격해 올 텐데 그놈들이 리스턴을 상대로 대체 뭘 할 수 있겠나.
기껏해야 총이나 쏠 텐데, 이 시기 총은 명중률이 어마어마하게 떨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겠더라고.
‘전열 보병이 활약하는 시기지.’
군에 대해 내가 뭘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일단 장전을 뒤로한다.
강선? 그런 게 뭐야 수준이고.
총알도 동그란 게 나가.
삐죽하지가 않다 보니 공기 저항이 어마어마할 거다.
어떻게 알았냐고?
경찰서에 들락거리고 있으니까.
“경찰들도 알고는 있을 거야. 원장님도 열심히 뒤에서 자네 미워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고. 하지만…… 쉽지가 않은 모양이야. 이단이니 뭐니…… 말들이 많아. 심지어 조선 마법사라는 말도 있더군. 이게 말이나 되나.”
“그러니까요.”
“조선은 마법이 아니라 주술을 쓰지 않나. 그러니 조선 주술사가 옳은 말이지.”
“그건…….”
“아, 자네가 전에 그랬잖아. 조선은 신비의 나라라고 하면서. 작두도 타고 그런다며?”
“아니…… 아무튼, 이거 대로면 저 혼자 나가면 진짜 죽을 거 같은데요?”
투서는 생긴 거부터가 살벌했다.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는데 피로 썼다.
내가 무슨 세계의 적도 아니고…….
“반드시 죽여야 한다니. 의사가 의사를 왜 그렇게 죽여야 하는 겁니까.”
“솔직히 털어놓자면 나도 죽이고 싶은 놈들이 있긴 있네. 실제로 우리 하나 죽였잖아.”
“네? 아니, 제가 언제요.”
“도살자 해리.”
“아…… 죽었구나?”
“죽었지. 저기 누웠을걸.”
“아.”
그냥 죽은 것도 아니고 여기 와서 해부도 당했구나…….
“해리가 친구들이 있던 모양이야. 그놈들이 사실 제일 위험하지.”
“흐음 그럼…….”
“어딜 가도 나랑 다니세. 일단 내가 생각해 둔 것이 있거든? 그것 좀 찾으러 가 보세.”
“아…… 네.”
“독한 거 하면 역시. 후후. 이걸 빼놓을 수가 없지.”
“네네.”
대체 뭘 찾으러 가는 걸까?
보통 인간이 아니다 보니 두근두근했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은 곧 쿵쾅거림으로 바뀌었다.
리스턴이 오늘 사 온 물품의 목록은 침대에 누워서 생각해 봐도 어이가 없는 것들이었다.
‘염산, 황산…… 페놀…….’
이거…….
이걸로 처리하면 미아즈마고 나발이고 다 뒤지긴 할 거다.
진짜 다 뒤질 수밖에 없어.
하지만 사람도 죽을 거 같다.
특히 염산과 황상은 안 돼.
할리퀸이 그런 것에 당하고 정신과 의사에서 메인 빌런이 되지 않았었나?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럴 거다.
‘페놀…… 페놀이 뭐더라.’
뉴스에서 본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가물가물하긴 한데, 아까 맡은 냄새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이것도 딱히 순한 거 같진 않다.
말이 안 된다…….
“야, 뭐 해?”
충격에 맛이 가서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안으로 조지프와 앨프리드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왔다.
얘들도 뭔가 사 온 모양이었다.
열린 문틈 새로 체격이 건장한 아저씨가 하나 보였다.
-대체 뭔 짓을 하고 다녔나?
-네?
-자네 죽이겠다고 벼르고 있는 사람이 한둘이 아냐. 그래서 내가 몇 명을 고용했네. 반드시 같이 다니게.
-아…… 감사합니다.
아저씨가 고용한 경호원이었다.
대영제국 해군 출신이라고 하니 실력은 확실할 거다.
뭐 우리 시대 특수부대 수준은 아니겠지만…….
하여간, 생긴 것만 봐도 싸움 잘할 거 같다.
“이게 뭐야?”
“넌 안 샀어? 아, 맞다. 어지간하면 시내 안 나가는 게 맞지.”
“그렇지. 너무 급진적이긴 했어. 그게 옳기는 하지만.”
“뭐……냐고.”
내 말에 둘은 주섬주섬 무언가를 바구니에서 꺼냈다.
앨프리드가 꺼낸 것은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었는데 딱 봐도 참으로 상서롭지 못해 보였다.
“뭐야, 이게?”
고체다.
고첸데 진짜 위험해 보였다.
“유황.”
“아. 유황.”
이거 독성이 있지 않나?
“너는 뭐야?”
“나? 나는 수은.”
“오.”
“매독이 나았잖아. 죽기도 했지만. 아마…… 수은이 미아즈마를 죽여서 그런 거 아닐까?”
이건 또 완전 틀린 말이 아닐 거라 화가 난다.
그래도 괜찮았다.
내가 프랑스에서 가져온 것이 있거든.
‘생각지도 못했던 게 벌써 있었단 말이지.’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그래도 이것들보단 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