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4)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4화(194/505)
194화 위생 강박 [3]
“자, 다들 모였나.”
다음 날.
리스턴은 나를 비롯한 런던 칼리지의 정예 멤버를 강의실로 불렀다.
학생들이 있다고 해도, 강의보다는 해부실 아니면 실습 또는 진짜 진료를 위해 투입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보니 늘 그렇듯 텅 비어 있었다.
그렇게 텅 빈 강의실 단상과 학생들용 책상은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였다.
“현미경은?”
“여기요.”
일단 내가 대미언 경의 현미경을 들고 왔다.
이거 하나가 어지간한 마차 가격이라는 걸 감안하면, 대단히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이제 와 조심 운운하기엔 파리에도 들고 갔다 왔다.
내가 익히 알던 모양의 현미경이 아니라 휴대가 간편한 현미경이라 가능한 일이었다.
“좋아. 미아즈마는?”
“여기 있네. 우웁. 아휴, 이거…….”
리스턴의 이어지는 말에 블런델이 대꾸했다.
그는 코를 장갑 낀 손으로, 그것도 무려 깨끗한 하얀 손수건까지 쥔 채로 싸매고 있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템스강에서 떠온 강물이 담겨 있었다.
딱 봐도 역시나 상서롭지 못했다.
‘파리보다 더하단 말이지…… 아무리 봐도.’
일단…….
인구가 많아서 그런가?
물에 덩어리가 져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파리의 거의 세 배는 되지 않던가?
거기가 인구가 60만인 데 비해 여기는 200만을 넘는다.
19세기 초에 벌써 200만의 인구가 살고 있다니.
괜히 대영제국이 아니다 이건데, 문제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에 비해 인프라는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자, 그럼 한번 볼까?”
“이걸 굳이 봐야 하나. 그냥 미아즈마 덩어리인 것을.”
“어허! 이 친구. 물 먹임 실험을 통해 배운 것이 있지 않나! 실험은 자고로 전후 차이를 비교 분석해야 하는 법일세! 자, 여기 화가도 데려왔어!”
“아…… 그렇구만. 그럼 뭐 할 수 없지.”
아닌 게 아니라 웬 모르는 얼굴의 사람 하나가 있다 싶더라니 화가였다.
제대로 돈을 받고 온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너무 얼었어.
“으읍.”
블런델은 냄새 때문에 코를 솜으로 막은 후, 템스강 물을 조금씩 나누어서 담았다.
아무래도 배경이 희어야 유리한 만큼 하얀 접시에 물을 따랐다.
그러자 금세 하얀 접시가 검게 물드는 느낌이 들었다.
“어디…….”
블런델을 시작으로 해서 나까지 차례로 현미경으로 각각의 물을 봤다.
뭐라고 특정해야 할지 모르겠는 균들이 득실거렸다.
저걸 먹고도 용케들 살았단 생각이 들었다.
“좋아. 자네도 보게.”
“아, 네.”
“보고 그려야 하니까, 자세히 보라고.”
“읍.”
마지막으로 보게 된 것은 화가였다.
진짜 화가인지는 모르겠는데 뒤에 보니까 물감이랑 연필 같은 거 들고 온 것을 보면 화가가 맞는 것 같다.
아무튼, 그는 리스턴의 도움인지 뭔지 모를 것에 의해 미아즈마를 관찰하게 되었다.
“이, 이것이 대체…… 대체 뭡니까?”
“뭐긴! 병을 일으키는 미아즈마지!”
“무슨 그런.”
“자네가 그런 거까지 고려할 필요는 없고. 그릴 수 있어, 없어.”
“그, 그릴 수는 있습니다.”
“좋아. 뒈지고 싶지 않으면 잘 그려야 할 거야. 알지? 내가 한번 봐준 거.”
“네네. 알겠습니다. 제가 명심하겠습니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굳이 캐묻지 않았다.
사실 나뿐만 아니라 다들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실험은 곧장 재개되었다.
“자, 그럼 각자 들고 온 소독액을 꺼내 보게나.”
“하하.”
블런델이 자신 있게 무언가를 밑에서 들어 올렸다.
“으읍!”
그리고 뚜껑을 열자마자 엄습하는 냄새에 모두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리스턴조차도 그랬으니 나야 당연한 일인데, 그런 나를 보며 블런델이 상당히 억울해했다.
“왜 그러나! 이거 자네가 만든 거잖아!”
“포, 포름…… 아…… 용액.”
하마터면 포름알데히드라고 할 뻔했다.
갑자기 이 1급 발암물질은 코 앞에 들이대면 놀랄 수밖에 없잖아.
“이게 얼마나 독한지…… 하하. 실은 내가 어제 여기서 잡은 쥐 중에 하나를 집에 가져갔거든.”
“쥐를?”
“그래. 쥐.”
“그걸 왜, 왜 가져갔나.”
이어지는 말은 리스턴조차 말을 더듬게 하기에 충분했다.
쥐를 왜 가져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블런델이 밑에 있던 주머니에서 또 뭔가를 부스럭대면서 꺼냈다.
쥐였다.
정확히 말하면 포름알데히드에 절여져서 죽은 쥐.
“이렇게 해 보려고.”
“죽었네? 아주 끔찍하게 죽었어.”
“그래. 쥐는 해충이지 않나. 커다란 미아즈마지, 안 그런가?”
“그건…… 또 그렇긴 하군. 그건 생각 못 했네.”
그건 생각하면 안 된다고 정정해 주려는 순간, 블런델의 말이 이어졌다.
“이거 용액에 담그니까 1분도 안 되서 죽더라니까. 쥐들이 수영 잘하는 거 알지? 그러니까 빠져 죽은 건 아니야. 근데 그냥 가더라고. 이걸로 소독하면 미아즈마가 버티겠나?”
“못 버티겠군그래. 일단 그럼 이걸 저 접시에 부어 보게.”
“그래, 아무래도 이거 1등은 나 같은데?”
쥐와 사람은 같은 포유류라는 생각이 없는 걸까?
아무래도 그런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장 정정하지 않았다.
‘다른 새끼들 것도 뭐…… 비슷하겠지?’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는 건 별로 내 취향이 아니다.
해서 나는 잠시 뒤로 물러난 채 기다렸다.
아무튼, 실험은 지속되었다.
“자, 이건 내가 가져온 것들인데.”
다음은 리스턴 차례였다.
그는 염산과 황산 그리고 페놀액 그러니까 석탄산이라고 불리는 물건을 꺼냈다.
시큼한 냄새가 코끝을 찔러 와서 나는 이내 코를 막았다.
포름알데히드도 1급 발암물질이지만 염산이나 황산은 자칫 잘못하면 죽는다.
“염산과 황산! 당연히 강력하겠군그래.”
“그럴 수밖에 없지. 이거 원액은 사람도 죽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어찌 쓰려고?”
“당연히 희석해야지. 한 반반이면 되지 않겠나.”
“그럴싸하군그래. 실험은 해 봐야겠지?”
“뭐, 기회야 많지. 아무튼. 부어 보겠네.”
석탄산도 만만치 않게 독해 보이는데, 염산과 황산이 너무 인상적이다 보니 말도 안 나왔다.
아무튼, 곧 각각의 접시에 세 용액이 담겼다.
치익 하는 소리가 난다.
리스턴이 작게 어잇 시발 했던 것도 같다.
도자기에 유약이 치밀하게 발려서 코팅이 딱 되어 있으면 아마 잠깐 정도는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만약 벗겨져 있다면 녹을 게 뻔했다.
유리병 말고는 딱히 견딜 수 있는 게 없을 거다.
아니면 브레이킹 배드인가 뭔가에 나왔던 플라스틱 통이나.
“저는 유황입니다.”
앨프리드는 유황을 꺼냈다.
“저는 이것입니다.”
조지프는 수은을 꺼냈다.
“고체 소독이라. 하하 참신한데?”
“그러니까 말이야!”
그걸 보면서도 리스턴과 블런델은 칭찬만 해 주었다.
21세기에도 저런 교수는 못 본 거 같다.
창의력 영재 교육법이라도 수료한 걸까?
무슨 의견을 내도 좋아해.
“수은. 이것도 전통적인 약이지.”
“아무래도 고체보다는 이쪽이 바르기도 쉽겠지.”
“그러니까. 냄새도…… 흐음. 냄새가 안 나는군. 이건…… 너무 큰 장점인데?”
“그러고 보니, 그렇구만그래. 수은은 맛도 없던데?”
“허허! 그렇네!”
유황도 칭찬을 받았으니 수은에 대해서는 극찬이 잇따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보다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리스턴이 수은의 맛을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긴…… 템스강 물도 먹여 볼 생각을 하는데…… 수은 정도는…….’
뭐든지 직접 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이지 않나.
리스턴이야 그 시대 정신에 딱 부합하는 사람이다 보니 뭐,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저, 저는…… 저는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수은을 준비하려고 했었는데 조지프가 벌써.”
내가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는 사이에 모두의 시선이 돌아 콜린을 향해 있었다.
콜린은 부끄러움에 손사래를 치고 있었다.
뭔가 열심히 하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일 터였다.
이런 건 열심히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나는 탓할 생각이 없었다.
다른 사람은 혼낼 생각인 거 같아서, 나는 좀 부리나케 미리 준비했던 것을 꺼냈다.
“이, 이게 뭔가?”
“이…… 이상하게 생긴 건 뭐지?”
염산, 황산 심지어 포름알데히드에 절여져 죽은 쥐를 보면서도 놀라지 않았던 사람들이 내가 꺼내 놓은 것을 보며 놀라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거 처음 보고 진짜 놀랐다.
이름이 루골이었나?
그는 장 피에르 박사의 친구였는데, 우리가 콜레라 치료에 크나큰 기여를 한 것에 대해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면서 이것을 건넸다.
결핵약이라고 했지만 난 딱 보자마자 알았다.
“요오드액입니다.”
“요오드……?”
“갈색이라 그런가 아주 위험해 보이는군그래.”
“핏빛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평이 좋아할 약이로군.”
요오드라는 걸.
거의 뭐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는 빨간약의 원류다 이 말이었다.
세상에 이게 벌써 있었다니.
근데 소독을…….
어? 다른 이상한 것들로 하고 있었다니.
‘하긴, 딱 봐도 엄청 강해 보이진 않지.’
이 시대 사람들은 워낙에 강한 것을 좋아하지 않나?
석탄산이 한때 모든 소독약의 왕이 되었던 것도 우연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그에 비해 요오드는 뭔가 좀 비리비리하다.
냄새도 그렇고.
그렇다고 수은처럼 딱 봐도 신비해 보이지도 않고.
하지만 괜찮았다.
우린 실험을 할 거니까.
살균력에서 밀리지 않겠냐고?
상대가 저렇게 짱짱한데?
‘어마어마한 산화력을 가지고 있지.’
일단 여러 아미노산에서 황의 전자를 빼앗아 결합을 깨부수고, 아르기닌, 히스티딘, 라이신, 티로신 같은 아미노산에서는 질소, 수소 결합을 깨부순다.
이렇게 되면 단백질 구조가 박살이 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생물이 살아남을 수가 없다.
“일단 넣을게요.”
“그래. 그럼 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동시에 접시에 요오드를 부었다.
치지직.
그사이에 아까 리스턴이 부었던 염산과 황산이 접시를 다 녹이고 밑에 있던 책상도 녹이기 시작했다.
“아잇. 이거 어쩌지.”
그제야 그 사태를 알게 된 리스턴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치우면 되잖아아아아악!”
블런델이 부주의하게 거기에 손을 댔다가 화상을 입었다.
다행한 것은 진짜 조금 입었다는 점이었다.
장갑을 끼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걸 사람한테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절망에 빠진 얼굴로 녹은 책상을 쳐다보고 있던 리스턴과 자신의 손가락을 호호 불고 있는 블런델을 보며 물었다.
둘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조금 불쌍해 보였지만, 나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이거…… 사람도 이렇게 되지 않을까요?”
아까부터 흉한 몰골로 책상 위에 얹혀 있던 쥐 시신을 가리켰다.
그러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지프는 아, 그렇겠네 했다.
앨프리드 또한 조용히 감탄했다.
할 수 있다면 나머지도 다 까고 싶은데, 유황, 수은, 페놀은 깔 게 지금 당장은 없었다.
아, 방금 생겼다.
“야야, 불나겠다!”
유황이 탈락했다.
이제 남은 타자는 수은, 페놀, 요오드 이 셋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