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6)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6화(196/505)
196화 위생 강박 [5]
“뭐로 닦지?”
보통 이러한 종류의 고민은 적어도 환자를 눕히기 전에 해야 했지 않았을까.
나는 기절한 환자를 내려다보면서 중얼거리고 있는 리스턴을 보면서 애써 입 안에 맴돌고 있는 본심을 삼켰다.
그딴 말 했다가 처맞으면 어쩌려고.
게다가 지금 중요한 것은 리스턴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실제로 뭐로 소독할지 여부였다.
후보는 총 두 개다.
페놀(석탄산)과 요오드.
나야 당연히 요오드를 바르고 싶다.
실험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요오드 뭐시깽이가 더 붙어 있었던 거 같아…… 베타딘이…… 요오드의 개선판 같은 거 아닐까?’
나 혼자 중얼거리고 있을 때와 달리 다른 사람들에게서 ‘요오드’란 단어를 들으니까 뭔가…….
뭔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냥 요오드가 아니었던 거 같아.
문제가 있다면…….
‘페놀도 완전한 답은 절대 아닐 거라…… 이 말이지?’
그렇다면 남은 건 인체 실험뿐인데,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평소와는 달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답이 아예 없었다.
“평, 자네도 아무 생각이 없나?”
“네? 아, 네. 형님. 모르겠는데요.”
“조선에서는 이런 거까지 하진 않나?”
“그…….”
조선에서 하겠냐?
애초에 외과학의 발전은 완전히 배제한 체계였다고.
그렇다고 침놓기 전에 이런 소독을 했을까?
그랬을 거 같지도 않긴 하다.
“아뇨.”
“그렇구만. 어쩌지?”
늘 답을 내놓던 내가 침묵하고 있다 보니 시간이 속절없이 흘렀다.
다 가만히 있던 건 아니었다.
앨프리드도 입을 털긴 했다.
“제 생각에는…….”
“자네는 가만히 있게.”
“그래도…….”
“뭐, 페놀탕에 들어가 보고 싶나? 자원하는 거면 내가 갸륵하게 생각하겠네.”
“아.”
별 소용은 없었다.
아니, 큰일 날 뻔했다.
앨프리드라고 하면 우리 일행의 실험체 비슷한 존재이지 않나.
그렇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심지어 나까지도 한번 이 사람을 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지경이었다.
“으음.”
하여간,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으려니 환자가 깨어났다.
리스턴의 뒤통수 치기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금세 깨다니.
엄청 강인한 사람인 모양이었다.
물론 리스턴 앞에서는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고 해도 약해지기 마련이라 성질대로 움직이진 못했다.
거기에 더해 이미 몸이 맛이 간 상황이었다.
배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 해.
“으읏. 이것들. 이놈들!”
대신 소리는 질러 대고 있었다.
아까처럼 시끄럽게는 하지 못했다.
또 맞을까 봐서였는데…….
다행히 리스턴에게 또 때릴 생각은 없어 보였다.
“어어, 형님. 그거 얼굴에 붓는 거는 좀.”
리스턴은 주먹을 쥐는 대신 아까 내려놓았던 페놀과 요오드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환자에게 들이밀었는데 나는 진짜 붓는 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야만적인 사람 같나? 지극히 이성적인 과학자일세. 거참. 실망이구만.”
“아…… 붓는 게 아니군요.”
“그래, 물어볼 작정이야.”
“물어요?”
뭘 물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한 손에는 페놀, 다른 한 손에는 요오드를 든 채로 환자에게, 방금 자신이 말한 대로 물어봤다.
“둘 중에 뭐가 더 좋지?”
“어…….”
환자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리스턴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리스턴은 하는 수 없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두 액체를 환자의 얼굴에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뭐가 더 좋냐고.”
페놀에서는 독한 냄새가 났다.
요오드라고 해서 딱히 더 나은 건 아니었다.
냄새는 좀 덜하지만 색이 문제였다.
누런…….
위험해 보이는 색이다, 내가 봐도.
아무튼, 환자는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뭘 알겠나?
당연히 모르지.
다른 의사들도 소독의 개념을 아예 모르고 있는 상황에서 환자가 알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닌가.
허나 리스턴의 말에서 네가 안 고르면 이제 곧 큰일이 날 거란 것을 느꼈는지, 부리나케 입을 열었다.
“자, 잠시만 시간을 주십쇼!”
“그러지. 하하. 평, 어떤가. 내가 이렇게 민주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일세.”
“어…….”
환자에게 약을 고르게 한다라.
21세기에서도 이런 일은 없었다.
진짜 민주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점은 배워야 한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열려 있는 마음이라니!
‘아니, 아니지. 의사가 알아서 제일 좋은 걸 추천해야지, 물어보는 건……. 취향으로 치료하는 게 아닌데.’
잠깐 감탄했다가 제정신이 들었다.
하지만 리스턴은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내 감탄했던 얼굴만 기억한 채 흡족하게 웃어 버렸다.
“좋아.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정하지. 어차피 두 개뿐이니까 이렇게 들어서 물어보기도 편하지 않나? 게다가 이렇게 하면 나중에 혹시 잘못됐을 때 책임 전가하기도 좋지, 안 그런가?”
그러곤 이따위 말을 환자 앞에서 당당하게 떠들었다.
환자의 얼굴은 조금 어두워졌지만, 누구보다 말려야 할 포지션에 있는 블런델은 껄껄 웃었다.
“좋은데? 합리적이야. 과학적이고. 민주적이고. 과연…… 우리 영국이 최고지, 이런 점은.”
“하하하하!”
“역시 교수님들이십니다!”
“멋지십니다!”
“존경합니다!”
다른 놈들?
다른 놈들이야 뭐…….
아부하느라 바쁘지.
나?
나라고 다를 수는 없었다.
이게 참 이상한 일이긴 한데.
내가 봐도 저게 되게 합리적인 거 같다.
19세기화가 그새 진행한 건지 아니면 정말로 이게 옳은 것인지 모르겠다.
“흐으음…….”
아무튼, 우리가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는 동안 환자는 치열한 고민에 빠져 있었다.
세상 진지한 얼굴로 페놀과 요오드 사이를 오가던 그가 결국, 선택한 것은 리스턴이 은근히 더 가까이 들이밀고 있던 페놀이었다.
어쩌면 그 냄새를 더 맡기 괴로워서였을 수도 있었다.
말 그대로 코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멀리 있는 나도 이럴 지경이니 환자는 어떻겠나.
“이, 이걸로 부탁드립니다.”
“좋아.”
“히익!”
“형, 형. 때려서 말고!”
“아, 맞다. 가스 쓰면 되지. 앨프리드, 돌리게.”
“네!”
리스턴은 습관적으로 손을 집어 들다가 이내 앨프리드를 턱짓으로 환자 머리 쪽으로 올려 보냈다.
앨프리드는 매우 숙달된 손짓으로 내가 따로 주문해서 더 개선해 낸 고무 마스크로 환자의 입과 코를 덮었다.
그래 봐야 뭐…… 구멍은 뚫려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파래지는데?
-왜 그렇지?
-몰라.
-아!
전에 한번 써 봤는데, 가스통에 산소는 없지 않나.
아산화질소만 들어간다, 이 말이었다.
그렇다 보니 마취 대상은 산소 부족으로 죽어 나갈 지경이었다.
그나마 다행히 내가 사람 아니라 지나던 들개로 해 봐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슉.
개도 결국 죽지는 않았으니 뭐, 사람한테 바로 했어도 됐나 싶긴 했다.
아무튼, 앨프리드는 곧 마취 가스를 주입했고 환자는 뭐라 말하려다가 이내 기절했다.
“자, 붓지.”
리스턴은 내가 걷어 놓아 하얗게 드러난 환자의 속살에 페놀액을 들이부었다.
치이익 소리가 나면 어쩌나 했는데, 그런 일은 없었다.
아니, 나기는 했는데 그건 아까 딴 데 부어 놓은 염산 쪽에서 나는 소리였다.
돌아보니 자리 하나가 아예 박살이 나 있었다.
저걸 사람에게 부을 생각으로 사 왔다니.
화형당할 뻔했어…….
“어?”
“왜 그러나?”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블런델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서 보니 환자의 피부색이 변하고 있었다.
‘어엇, 시발?’
페놀이 표백제잖아.
그래서 벌써 화학작용을 일으켜 표백이 되나 했다.
하지만 곧 내 21세기 지식이 설령 그럴 수 있다 해도 벌써 그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해서 깨끗한 면으로 젖은 곳을 밀어 보니 새카만 때가 묻어 나왔다.
페놀이 독하다 보니 때가 녹아서 더 잘 밀렸다.
“아.”
“어찌 이렇게 더러울 수 있단 말인가!”
“우웁.”
예전에는 별 반응 없이 그냥 그런갑다 했을 양반들이 헛구역질을 해 대고 있었다.
이제 저게 그냥 색만 시커먼 것이 아니라 미아즈마 덩어리라는 걸 알아서 그럴 터였다.
그래서일까?
“저, 형님?”
“왜 그러나?”
“이거…… 피부 벗겨질 거 같은데요?”
“이렇게 더러운 피부는 벗겨지는 게 나을 수도 있네.”
“아니, 그래도…….”
리스턴은 잠시 때밀이로 전직했다.
어찌나 살뜰하게 미는지 나중에 한번 등을 맡겨 볼까 싶은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물론 표백제 말고 비누만 써서.
아무튼, 그 덕에 환자의 배는 아주 깨끗해졌다.
‘이 시기에는 페놀이 맞을지도.’
평생 안 씻는 사람이 더 많지 않나.
그런 사람들의 소독을 고작해야 요오드로 할 수 있을까?
점점 요오드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자, 째 볼까. 평. 도와주게.”
“네.”
“자네도.”
“어? 어어. 그러지.”
그렇게 깨끗해진 배를 우리는 마찬가지로 페놀액으로 문질러 닦은 장갑을 낀 채 째기 시작했다.
지이익.
이제 칼도 작아졌겠다, 수술도 손에 익었겠다…….
거기에 더해 리스턴은 확실히 천재지 않나?
나도 꽤 손이 좋은 편이라고 자부하는데, 이 사람은 나보다 한 수 위였다.
그렇다 보니 절개부터 아주 깔끔해졌다.
“형? 좀 작지 않아요?”
“해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안 될 거 같으면 그때 늘리지. 어차피 뭐…… 오래 안 걸릴 거야.”
“아, 네.”
그러면서도 짧아졌다.
복강경 이용하는 수술을 제외하면 거의 제일 작을 거 같은 절개다.
사실 나도 제대로 된 소독이 불가능했던 이전 시절까지는 이렇게 작게는 잘 안 했다.
장을 밖에 꺼내야 하거든.
“읏차.”
지금처럼.
대강 부은 곳과 인접한 장을 꺼낸 리스턴은 슬슬 돌리다가 부은 곳을 찾아냈다.
“실.”
“네.”
그러곤 충수돌기를 묶어다가 툭 하고 잘랐다.
다음은 제자리에 넣고 봉합하는 게 다였다.
아니, 그보다 중요한 과정이 뒤에 남아 있었다.
‘썩은 빵…… 안 되겠지.’
푸른곰팡이에 대한 신뢰도는 날이 가면 갈수록 떨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킬리언이 나은 건 수은 덕분이었던 건가 싶기도 했다.
가망이 없는, 그러면서도 나쁜 놈 대상으로 경찰이 멋대로 쓰고 있다는데…….
이제 와서는 사형의 다른 방식으로 정착한 거 같았다.
다시 말해 항생제는 없다고 봐야 한다는 얘기.
내가 화학자는 아니다 보니 실패한 모양인데…….
“기도합시다.”
“그래.”
해서 나를 포함한 일행은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대상이 누가 됐건 간에 제발 감염으로부터 지켜 달라고.
특히 이 환자는 더더욱 중요했다.
소독의 중요성을 남들에게도 설파할 수 있는 근거가 되어 줄 테니.
물론 수술실이 멸균처리가 된 것도 아닌 데다가, 양압이 걸린 것도 아니다 보니 감염의 위험을 소독만으로 떨어뜨릴 수는 없을 터였다.
한 명만 두고 해 볼 수는 없다, 이 말이었다.
해서 우리는 오늘까지 돈이 없어 방치되었던 환자들 중 우측 하복부가 아픈 사람들을 대상으로 더 수술을 진행했다.
최종적으로 페놀을 고른 사람이 6명, 요오드를 고른 사람이 4명이었다.
불행하게도, 그중 충수돌기가 부어 있지 않은 사람은 2명이었다.
역시 신체검진만으로 완전한 진단을 한다는 건 환상이었다.
“어쩔 수 없지, 뭐.”
리스턴의 반응은 이랬다.
덕분에 나도 그렇게까지 큰 충격 없이 진료를 속행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다, 리스턴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