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7)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7화(197/505)
197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1]
배를 연 사람은 총 10명.
충수돌기염으로 확진…….
조직검사를 하진 않았으니 확진까지는 아닌데, 하여간, 수술 이후 증상이 호전된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8명.
다시 나눠 보면 페놀이 5명, 요오드가 3명이었다.
이런 걸 특기할 만한 사항이라고 해야 할는지는 모르겠는데, 페놀과 요오드 모두 단점이 있었다.
“으음.”
“아파하는군.”
페놀은 상당히 독했다.
일단 털이 좀 녹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니 방금 블런델의 말처럼 아픈 것도 당연한 일이란 얘기였다.
“웁.”
거기에 더해 냄새도 좀 그랬다.
비위가 약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약하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환자들 중에 일부가 이 때문에 꽤 힘들어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땐 내가 꽤 의기양양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일단 다 살았거든?
뭐, 이제 기껏해야 수술한 지 사흘째다 보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고, 또 열 나는 환자도 있긴 하니 아무래도 죽을 환자가 하나둘은 생기겠지만.
지금까지는 소독의 효험에 대해서는 페놀과 요오드 모두 거의 동일해 보인다는 얘기였다.
헌데 저런 부작용이 있으니 요오드가 훨씬 나을 것임은 자명해 보였다.
“아픕니다…….”
하지만 아픈 건 요오드도 매한가지였다.
처음엔 상처에 닿아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내가 한번 발라 보니까 그냥 피부에만 발라도 아프다.
근데 사실 아픈 건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니긴 했다.
21세기라면 또 모를까 19세기지 않나.
죽는 것도 아니고 그냥 아프기만 한 건데 못 참겠어?
심지어 이거 바르면 죽을병도 나을 건데?
남자라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놀리면 그만이었다.
여자?
여자도 여자답지 못하다고 하면 됐다.
“평, 자네 이거…….”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리스턴은 상당히 진중한 얼굴이 되어 환자의 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를 잔뜩 의심하는 기색도 숨기지 않았다.
“설마, 아니겠지.”
블런델 또한 마찬가지였다.
리스턴만큼이나 날 믿어 주는 사람이 이럴 정도니 억울해야 정상인데.
그렇다기보다는 당황스러웠다.
“야, 평아.”
“이거…… 이건.”
“교수님…….”
앨프리드, 조지프, 콜린조차도 그럴 정도의 문제라서 그랬다.
“아, 아냐. 나도 몰랐어.”
진짜 몰랐다.
순수 요오드는 사람 피부를 노랗게 변색시킬 수 있다는 걸 내가 대체 어찌 알겠냐고.
물론 처음 칠할 때부터 노랗게 되기는 했지만, 그건 베타딘도 마찬가지잖아?
비누로 닦으면 바로 닦인다.
허나 이건…….
“다 노랗게 만들려고 하는 거 아닌가?”
“아니에요, 형! 진짜!”
“하긴, 그랬으면 온몸을 담가 버렸겠지. 자네는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니.”
“아니…….”
“억울하다고 하진 않겠지.”
“그…….”
업보인가, 이런 게?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자꾸 날 악랄하게만 몰아가고 있었다.
그사이에도 블런델은 마치 심슨에 나오는 사람처럼 변해 버린 환자의 배 색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환자도 그랬다.
아마 절개 상처 때문에 아프지만 않았다면 주구장창 그랬을 터였다.
“이래서는 이거 여자 어떻게 만납니까.”
“그게 걱정인가?”
“걱정이죠!”
“가난뱅이가 무슨 여자는 여자란 말인가. 게다가 유념하게나. 이 약을 고른 건 자네지 우리가 아니야.”
“허.”
컴플레인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19세기의 의사는 환자에게 있어 절대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수틀린 상대가 칼로 찌를 수는 있긴 하고, 그게 확률이 꽤 높긴 한데…….
리스턴이 곁에 있는 한 물리적인 위협은 있을 수 없었다.
게다가 본인이 고른 것도 맞긴 하지 않나?
“하하하! 배를 열었는데 다 살았다고? 이건 기적이군그래. 확실히…… 미아즈마 미생물론이 맞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어.”
그래도 병원을 맡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걱정을 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낸 원장님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걸 대대적으로 홍보하세. 배 아픈 사람들…… 그중에서도 이 어디라고?”
“우측 하복부라고 부르기로 정했습니다.”
“그래! 여기가 죽도록 아픈 사람들은 실제로 많이 죽지 않았나.”
충수돌기염 또한 사람을 죽이는 병이었다.
그것도 60% 이상의 확률로 그랬다.
나머지 40%라고 해서 마냥 살아남는 건 아니었다.
만성적인 재발을 반복하면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성별에 따라 유병률이 살짝 다른데, 퉁치면 대충 7, 8%다.
다시 말해 전체 인구의 6% 정도가 이 병으로 사망했다는 얘기다.
만약 터졌다?
그럼 거의 100% 죽었다.
그런 와중에 이렇게 치료가 되었으니 어마어마한 일이었다.
“저놈들이 돈을 낼 수는 없겠지?”
원장은 그 와중에 돈 없어 치료 못 받고 방치되던 사람들을 노려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앞으로 비싸게 받아야겠지. 일단 그 소독하는 게 뭐라고?”
“페놀하고 요오드.”
“둘 다 그리 비싸진 않겠군…… 수은이 비싸서 안 된다고 했는데. 그걸 써 보면 어떤가?”
“평이가 그러는데, 수은이 그렇게 좋았으면 벌써 사람들이 오래 살지 않았겠냐고 하던데. 듣고 보니 일리가 있어서. 납이면 몰라도, 수은은 좀.”
“뭐, 그래. 당사자들이 그렇게 합의를 봤으면 그런 것이겠지. 문제는 둘 다 어느 정도 단점이 있다 이건데…… 그거야 환자에게 정하라고 하면 될 거야. 귀족들이 까다롭긴 할 텐데, 체면이 있으니 오히려 본인이 결정한 것에 뭐라 하지는 않을 거야. 공증인을 세우면 되겠지.”
“그럼…… 배 열어도 되는 건가, 이제?”
“다 열지는 말고. 꽝 나왔다며, 둘이나. 아직도 아파한다고 하던데.”
“그건 그렇지. 그래도 20%밖에 안 되는 거 보면 열어도 되지.”
리스턴의 말에 원장은 다시금 활짝 웃었다.
사실 충수돌기염, 그러니까 맹장염이 유병률이 높은 질환이지 않나.
절단도 아직은 어마어마하게 많이 시행되고 있다지만, 내 상처 치료법이 도입된 이후론 줄고 있었다.
거기에 이 소독약까지 더해진다면 어떻게 될까.
엄청 아프기야 하겠지만 절단은 이제 점점 더 줄 터였다.
사람들에게는 잘된 일이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수익이 줄 테니 안 좋은 일이었는데, 이렇게 대박 수술이 탄생했으니 웃음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물론 우리의 리스턴 박사는 가는 게 있으면 반드시 오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상대가 원장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럼 의회는?”
“내가 간신히 잡았지. 있는 인맥, 없는 인맥 다 동원했다고. 뭐…… 자네랑 닥터 피영의 명성이 상당히 대단해서 가능했던 거기도 한데. 그래, 오라고 하더군. 의회 앞에서 얘기할 기회를 얻었어.”
“나만? 아니면 평이도?”
“자네만. 근데 왜 이렇게 말이 짧지, 아까부터?”
“암말 없길래, 그래도 되는지 알았지.”
“하, 이…… 아무튼, 가 보게. 의원들이 그렇게 오래 기다려 주진 않을 거야.”
의회라.
떨린다.
나는 동석만 하는 것인데도 그랬다.
전생에도 국회에 출석해 본 적은 없지 않나?
대한민국 국회의원들도 장난이 아니겠지만 대영제국의 의원들은 거의 귀족과 같다고 보면 되었다.
평민 출신 의원이 몇이나 되겠어…….
“평, 뭐 죄라도 지었나? 왜 이렇게 떨어.”
“떨리죠, 그럼.”
“걱정 말게. 공주도 총애하는 데다가 공작 각하께서도 이뻐하는 자네를 누가 감히 뭐라 할까. 게다가 우린 지금 역사를 바꾸러 가는 길일세. 파리에서 보지 않았나. 빠게트 놈들 똥 지리는 꼴을.”
“그건 그렇죠. 그걸 예방하려면…….”
“자네 말대로 손 씻고 물을 끓이든지 해야겠지. 하지만 말이야. 우리 국민들이 그 말을 듣겠나.”
“절대 안 듣겠죠.”
법으로 정해도 아마 안 들을 거다.
국민 대다수가 고등교육을 마친 것도 모자라 대학 진학률이 무려 90%에 달하는 대한민국에 비해, 여긴 문맹도 완전히 해결이 안 된 상황이다.
상식?
그런 게 어딨나.
나름 배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정상적인 토론이 불가능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법으로 정해야 해. 그 전에 상하수도라도 정비를 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 전에는 그냥 허세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지 않나.”
“허세는…… 아니죠. 반드시 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법이 필요했다.
다행히 대영제국의 법치주의는 상당히 발전해 있어서, 어겼는데 걸리면 큰일 난다는 인식 정도는 널리 퍼져 있었다.
문제는 그 법을 만드는 인간들이 19세기 영국인들이라는 점인데…….
리스턴이라면 설득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말로 안 되면 물리력으로라도?
“들어오시죠, 박사님. 닥터…… 피영. 아, 닥터 피영은 여기 있으면 됩니다.”
“여기 있으면 누가 볼 수 있단 말인가?”
“그게…….”
“괜찮습니다. 다녀오세요.”
“혼자 있으면 위험할 텐데?”
“총 있어요.”
“아하. 역시 동생이야.”
난 입구 컷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입구 안에 들어와 우측에 마련된 숙소가 배정되었다.
원래는 의원들이 타고 다니는 말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쉬는 곳인데, 그래도 오늘은 나 하나 때문에 비워 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신분 고하가 엄격한 사회이니만큼 안은 비좁고 어둡고 더러웠다.
다행히 고개를 내밀어 안쪽을 들여다보는 건 괜찮다고 해서 나는 몸을 반쯤 빛 아래 놓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스턴이 단상에 올랐다.
원체 체격이 좋은 사람인 데다가 최근엔 돈까지 벌어서 양복도 좋은 걸 입었다 보니 상당히 멋있었다.
가까이서 보면 그저 무섭기만 하겠지만, 아무튼.
“미아즈마 독기론은 틀렸습니다!”
그는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자리에 앉아 있는 의원들은 좀 심드렁해 보였다.
“아닌 거 같은데. 냄새가 덜한 시골로 가면 확실히 덜하지 않나. 미생물이라면, 거기도 똑같이 걸려야지.”
“사람이 똥을 싸면 거기에 미생물이 있다니까? 그게 물에 섞여서 병을 일으키는 것이고!”
“신성한 국회에서 더러운 얘기를…….”
“이…….”
리스턴이 죽일 듯한 기세로 노려보자, 상대 의원은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명색이 대영제국의 의원들 아닌가.
성질 더럽기로 따지면 보통은 넘었다.
더군다나 다수다, 이들은.
“결론부터 얘기해 보게.”
“손 닦고, 물을 끓여야 합니다! 그전에 상하수도 정비도 해야 하고.”
“하하하. 이보게, 그게 다 비용이네, 비용! 세계 경영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아나? 우리 대영제국이 없이는 사람의 삶을 이어 나가지 못하는 식민지인들이 아주 많다네.”
“비용보다 런던 시민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리스턴의 말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옳은 말에 정곡을 찔려서는 아닌 거 같았다.
저 새끼들 돈이 생명보다 중하다고 여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다만 대외적인 이미지 문제 때문에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전령인 듯했는데, 그는 급히 달려 높아 보이는 의원에게 무언가를 전했다.
그러자 소식을 전해 들은 의원이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어 입을 열었다.
“이보게, 리스턴 박사.”
“왜 그러십니까.”
“프랑스 놈들이 이번에 상하수도 정비를 시작한다더군. 7월 혁명 때문에 잃은 민심이 급하겠지.”
“아…….”
“설마 놈들을 따라 하자는 건 아니겠지? 우리 대영제국의 자존심이 있지 않나!”
미친 소리였다.
나는 리스턴이 당연히 소리를 지를 줄 알고, 기대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허나 리스턴은 체념한 얼굴이 되고야 말았다.
“그럴…… 수는 없죠.”
결국, 그도 어쩔 수 없는 홍차새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