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8)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8화(198/505)
198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2]
“이보게, 평.”
“아휴…… 됐습니다, 됐어요.”
국회에서 빠져나온 나는 확실히 삐쳐 있었다.
아니…….
사람이 말이야?
아무리 빠게트 놈들이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놈들이 했다고, 필요한 일을 안 한다는 게 말이 되나?
“그, 사실 돈이 없다고 하더라고. 진짜야.”
“대영제국이 돈이 없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냐, 진짜야. 청과의 무역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고 있네.”
“아……?”
여기서 왜 청이 나와.
뭔가 내가 알고 있는 역사와 연관이 있어 보여서 당황했다.
물론 그런 당황을 리스턴이 알아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방금 그가 보여 주었던 모습은 솔직히 평소 그의 패기 넘치던 모습과는 좀…… 거리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이 있지 않나?
그렇다 보니 주눅도 들어 있었다.
리스턴의 주눅 든 얼굴이라니.
이것도 꽤나 진풍경이다 보니 시간을 두고 바라볼 만했다.
해서 나는 리스턴이 이미 내가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열과 성을 다해 털어 내는 동안에도 지루한 표정 없이 진중하게 들을 수 있었다.
“차 말이야, 차. 이게 참 맛있지 않나. 근데 청에서만 난다 이 말일세.”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대영제국이 돈이 없어요?”
“없다니까? 그 새끼들은 아무것도 안 사. 근데 우리는 비단이랑 도자기에 차까지 산단 말일세. 그러니 우리가 은이 있겠나, 없겠나.”
“아…… 그렇다고 상하수도 정비도 못 한대요?”
“할 수는 있는데 다른 급한 일들이 많다고 하네. 런던에 문제가 뭐 한둘인가.”
“그건…….”
나는 리스턴의 돈으로 마련한 마차를 탄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창밖에 내비치는 런던은 잿빛 도시였다.
창이 흐려서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원인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곳은 문제가 한둘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그냥 문제투성이였다.
“아무튼,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세. 일단 어? 지역별로 물을 끓여 먹으라고 하는 거지.”
“우리 시민들이 그걸 듣겠냐고 한 게 형님인데요?”
“가까운 사람들은 들을 거야.”
리스턴은 내 말에 주먹을 들어 보였다.
국회에서는 한없이 작아 보이던 야만인의 주먹은 여전히 크고 웅장했다.
한 대 맞으면 의원이고 총리고 국왕이고 한 방에 죽긴 할 터였다.
이쪽도 죽는다는 게 문제지만, 일반 시민들에게는 아쉽게도 그런 힘이 있을 턱이 없었다.
“하긴, 그건 그렇겠네요.”
“그렇게 해서…… 다음에 콜레라가 돌 때 우리 말을 들은 놈들은 살았다는 걸 증거로 들이밀면 좀 낫겠지.”
“그 정도 증거면 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파리에서의 증거도 그만하면 훌륭한 증거일세. 그래도 안 들어 처먹지 않나. 미개한 놈들 같으니라고.”
“음.”
19세기가 슬슬 미개해 보이는 것을 보면, 리스턴도 진정한 과학자가 되어 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좋은 일이었다.
상하수도 정비가 안 되는 건 좀 아쉽긴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 보면, 그건 지금 당장 시작한다고 해도 몇 년 걸릴지 알 수 없는 일이지 않나.
그에 비해 주변 놈들 협박해서 물 바꿔 먹게 하는 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 좋게 좋게 생각해야겠다.
어쩔 수 없잖아.
19세기에 와서 는 게 인내심과 그럴 수 있지 정신이라서 그럴까?
아까까지만 해도 실망감과 분노로 얼룩져 있던 가슴 한켠이 빠르게 안정되고 있었다.
“음.”
“으음.”
그 마음의 안정은 불행하게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마차에서 내린 우리는 일단 응급실로 향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고, 마부가 헷갈려서 거기다 내려 주어서였다.
런던 길이 워낙에 복잡하다 보니 그러려니 해야 하지만, 노상 이 길만 다니는 양반이 이러는 거 보면 또 술 먹고 운전한 모양이었다.
괜히 마차에 치여서 오는 환자들이 꽤 있는 게 아니라는 건데…….
내가 말하는 건 좀 무서우니 이따가 리스턴에게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그와 동시에 나는 끔찍한 몰골의 환자를 마주할 수 있었다.
“으…….”
“으으으…….”
처음엔 다친 줄 알았다.
턱이 썩어 들어가고 있었지만…… 뭐, 우리 병원 제외한 다른 병원에서 초기 치료를 받았다면 드문 일도 아니지 않겠나?
살짝 다친 상처도 크게 잘못될 수 있는 세상이 바로 19세기 런던이었다.
아니, 파리도.
허나 둘이나 그렇다면 생각을 달리해야만 했다.
“이걸 어쩌나.”
담당 의사는 그런 환자들 번갈아 보면서 이런 소리나 하고 있었다.
아마 치료만 막막해 보여서는 아닐 터였다.
환자들의 옷차림 또한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아니, 남루하기만 한게 아니라…….
삭아 있었다.
이런 환자들이 돈을 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평. 턱은 우리 전문이…….”
관심이 갔다.
뭔가 내 지식과 연관이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해서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고 하자, 리스턴이 말렸다.
아니, 말리려고 했다.
“뭐요?”
“아닐세. 근데 돈은…….”
“뭐요?”
“내가 내도록 하지.”
아까 지은 죄가 있다 보니 시무룩한 얼굴로 내 뒤를 따라왔다.
물론 내가 볼 때나 시무룩하게 보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볼 때는 그저 무서워 보일 따름이었다.
게다가 응급실에서 전에 개물림 환자를 다소 우악스럽게 뺏어 간 전적도 있지 않나.
그렇다 보니 담당의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환자 보기도 그리 좋지는 않았을 터였다.
세상에 턱이 썩다니.
일단 보기에도 끔찍할뿐더러 대체 어찌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힐 것이 분명했다.
내가 아는 19세기 의학으로는 절대 치료가 불가했다.
“환자분들.”
“으으.”
두 환자는 내 말에 그저 신음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제대로 된 답은 같이 온 비슷한 행색의 여성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네네.”
“그,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모르겠어요…… 출근을 안 해서 가 보니까, 이렇게 아프더라고요.”
“출근? 어디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공장이요.”
“어떤?”
제대로 된 답이라고 해서 진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들 의학적 질문에 익숙하기는커녕 고등교육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보니 원하는 답을 얻기까지는 간단한 질문조차 여러 번 반복해야 하는 일이 잦았다.
이 부분은 나도 훈련을 더 받아야 하는 부분이었다.
진료 과정에 있어서 만큼은, 의사가 환자에게 전적으로 맞추는 것이 옳았다.
“성냥이요.”
“아, 씹.”
성냥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다행히 한국 욕이라 영국인들은 알아듣지 못했다.
리스턴을 빼고는 그랬다.
“내가 협박했던 곳은 아닌 거 같네.”
그는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진짜야. 거긴 고무 공장이야. 콘돔 만들어.”
“형님이 나섰으면 당연하죠. 하지만…….”
“백린 성냥이 돈이 되기는 한다고 들었네. 또…… 이 미개한 런던 놈들이 그때 자네가 했던 경고를 새겨들을 사람들인가. 있으면 얼마나 되겠나. 사실 나도 이 지경이 될 줄은 몰랐네.”
“으음…… 이거 큰일인데.”
리스턴도 표정이 음울했지만 아마 나만큼은 아닐 터였다.
나는 녹아내린 두 환자의 턱을 보면서, 그 뒤에 있을 더 많은 환자를 떠올렸다.
제기랄.
욕이 나온다.
사실 백린 가스라는 게 딱 봐도 유해해 보이지 않나?
그렇게 보이지 않더라도, 그 가스는 만성 중독만 일으키는 게 아니었다.
급성 증상도 일으키는 녀석인데, 심지어 내가 리스턴과 원장님을 통해 경고까지 했음에도 이런 식으로 그냥 쓰다니.
“어…… 치료가 가능합니까?”
“치료…….”
치료라.
그래, 일단 뒤 말고 앞에 있는 환자를 봐야 했다.
물론 동시에 원장님과 공작 등 내가 가진 모든 인맥과 힘을 동원해 이 망할 성냥 공장들을 털어 보기는 할 텐데…….
‘오늘 국회 보니까 괜히 혐성국이 아니긴 한데…….’
이 새끼들, 이거.
어? 돈이 사람 목숨보다 중한 놈들 아닌가.
백린 성냥은 듣자니 군대에서도 쓴다고 하던데…….
어쩌면 이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은 감내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사소한 희생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었다.
“아 해 보시겠어요?”
아무튼, 그런 걱정보다는 일단 환자를 보기로 했다.
“아.”
“음.”
한숨이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턱은 나름 괜찮아 보인다는 것인데…….
아래턱은 실로 엉망이었다.
애초에 양치의 개념이 자리잡지 못해서 더 그런 거 같은데…….
기존에 있던 충치가 아래 턱뼈가 약화되면서 뻗어 내려간 것으로 보였다.
썩어 있다, 이 말이었다.
당연하게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하는 이 썩었다는 말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건…….
“절단?”
썩은 것을 본 리스턴은 손이 근질거리는지, 저도 모르게 칼집을 매만지고 있었다.
이제 팔다리 자를 때를 제외하고는 저런 칼 쓰지도 않으면서 차고 다니고 있었다.
당연히 무기소지죄에 걸려야 할 거 같지만, 용인되고 있었다.
이미 경찰서에서 리스턴의 칼은 의료용이라고 정해서 그랬다.
“히익.”
그 덕에 한 걸음 정도만 물러나 있던 응급실 담당의는 이제 뒷걸음질 치는 수준이 아니라 도망가 버렸다.
“아닌가?”
내가 잠시 가만히 있자 리스턴은 틀렸나 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나도 틀렸다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건 살릴 수 없다.
“잘라야 해요.”
“내가 하지. 단칼에…….”
“아니, 아니. 잠시만요.”
어쩔 도리가 없다고 하면 단칼에 자르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래턱을 그렇게 자르면 사람이 어찌 산단 말인가.
게다가 잘라 봤냐는 문제도 있었다.
아무리 수술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해도 해부가 달라지면 적응을 못 할 수 있었다.
“해 봤어요?”
“배울 때는 해 봤지.”
턱뼈 절제술이라는 게 역사 속에 있었겠나?
백린 가스가 없었다면 있었을 리가…….
“해 봤다고요?”
“그럼.”
“어떤…… 왜요?”
설마 잘라 보고 싶어서는 아니겠지?
생사람 턱을…….
음.
아니라고 확신하기는 또 어려웠다.
시절이 시절이지 않나.
리스턴이 배울 적이라면 지금으로부터도 한 10년, 20년 전이니 더더욱 미개했을 게 뻔했다.
“왜긴, 면도하다가 베였다가 그게 문제가 생긴 거지. 대체 왜 면도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아…….”
면도…….
면도하다가 자칫 잘못하면 턱을 잘랐구나.
나는 그냥 이 시기에는 수염 기른 게 멋있어 보여서 무작정 기른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면에는 어쩌면 아주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절단?”
“아니, 그래도.”
해 봤다고 바로 자르는 건 좀 그랬다.
일단 아래턱 중 어디까지 잘라야 하는지부터 정하고, 또 그 방식을 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나?
될 수 있으면 뭔가 씹어 먹을 수 있게는 해 주고 싶었다.
형태의 손실이야 어쩔 수 없다손 쳐도 기능적인 재건은 필요해 보인다는 얘기였다.
‘플랩…… 아냐. 그건 절대로 무리야.’
재건을 떠올렸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역시 플랩(Flap, 피판술)이었다.
다른 곳의 살을 떼다가 붙이는 건데, 고도로 발전한 현대 의학에서는 뼈도 붙였다.
실제로 턱뼈를 암 때문에 절제하고 종아리뼈로 재건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난 안 해 봤다.
어떻게 하는지도 몰라.
‘돌릴까…… 흠…… 흐음…….’
그건 무리라는 얘기였다.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나는 한동안 고민하는 얼굴이 되어 환자 둘을 번갈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