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199)
검은 머리 영국 의사-199화(199/505)
199화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3]
“으으으으.”
“으으!”
“뭐라 하셔요?”
“너무 무섭다고.”
“누가, 제가?”
“네.”
“아.”
그렇게 한참 있으려니, 환자들 표정이 좀 안 좋아지는 것 같아 보이긴 했다.
생각해 보면 어느 문화권에서 건 상대를 빤히 쳐다보는 건 무례한 행동이지 않을까.
“평.”
“네.”
“일단 칼부터 내려놓게.”
“네? 아이구, 이게 뭐야.”
“뭐긴 뭔가. 자네가 이번에 새로 맞췄다고 신난 칼이지.”
“아.”
그리고 동시에 칼까지 들고 있다면, 그건 무례함을 넘어선 무엇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번에 메스가 아주 잘 빠졌다.
좋은 철을 썼다고 하더니 딱 봐도 그래 보였다.
‘전에 진짜 식겁했지…….’
철강이 왜 모든 산업의 근간이 되는지 알았다.
수술하다가 칼 부러져 본 사람 혹시 있나?
21세기에는 아마 없을 거다.
실수로 메스로 뼈 긁은 거 아니라면.
아니, 근데 진짜 그냥 근육층 긋는데 뚝 부러지더라고…….
-할 수 없지. 작은 칼이니.
그거 보면서 리스턴은 속 뒤집어지는 소리나 하고 앉았고…….
죽으라고 부러진 조각 찾아 헤매고 있으려니 블런델도 비슷한 소리를 했다.
-뭐 하러 찾나, 그거. 다시 쓸 것도 아닌데.
개열받는 소리를 했다, 이 말이었다.
하긴 뭐 이물질에 대한 염증 반응 따위 알 게 뭐란 말인가.
그나마 병원균에 대한 개념을 미아즈마라는 이상한 말로라도 잡아 가고 있는 게 다행인 시대라고 생각해야 했다.
너무 감개무량했던 나머지 얘기가 옆으로 샜는데, 지금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칼은 진짜 명품이다.
소피 제르맹의 친구인 가우스가 독일에서 보내 준 것인데, 무려 수학적인 계산도 들어가 있었다.
말에 따르면 어지간한 충격으로는 부러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보기에도 그랬다.
“지금 당장 수술하는 건 무리예요.”
칼은 칼이고, 수술은 수술이다.
해서 나는 환자들에게서 잠시 떨어진 후 리스턴에게 말했다.
리스턴은 잘 이해가 안 가는 얼굴이었다.
“왜?”
순수한 호기심은 때에 따라 가장 악해 보일 수도 있는 법이었다.
지금이 딱 그랬다.
아마…….
‘그냥 자르면 되는데 왜 이러나 싶겠지.’
마취의 발견은 분명 어마어마한 것이다.
아마…….
지금 유럽 각지에서, 또 미국에서 새로운 술식이 물밀 듯이 나오고 있을 거야.
거기에 더해 우리는 소독의 개념까지 거즘 완성해 가고 있으니 더더욱 그렇지.
실제로 리스턴은 배 수술을 이제 곧잘 하는 편이 되기도 했고.
하지만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사람의 관념도 저절로 따라서 변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이건…… 시간이 필요하다.
‘화낼 일이 아니다. 화를 내서도 안 되지.’
리스턴 박사에게 화낼 생각이 들다니.
이런 얼굴도 결국엔 익숙해지지 않던가.
나는 여기서 희망을 보았다.
그래,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잘라 봤다고 했죠, 형님은?”
“그렇지. 잘라 봤지. 많이는 아니네. 기껏해야 4번?”
“그중 몇이나 살았습니까?”
“음…….”
나는 그렇게 희망을 품었다가 이내 버리기로 했다.
얼굴을 보니까 알겠어.
모른다, 이 새끼.
“몰라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어는 봤다.
억울할 수도 있잖아?
“몰라. 아, 근데 한 명은 전에 봤네. 거리에서. 우연히. 여전히 살아 있던데?”
“어…… 그래요? 어떻던데요?”
하지만 역시 억울해할 만 일은 없었다.
하긴, 이 시기 의사들은 수술만 해 놓고 도망치는 데 도가 튼 인간들 아닌가.
우리 의과 대학에서도 여전히 승마를 가르치고 있었다.
물론 승마라는 게 말이 있어야 하고, 말이라는 건 키우고 유지하는 데 돈이 많이 들기 마련이다 보니 배우는 게 가능한 놈들만 배웠다.
지금 내 제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도 그래서였다.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콜린 모두 승마장에 가 있었다.
그걸 배우는 이유가 환자 죽었을 때 잘 튀기 위함이니 이미 사람 죽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데…….
“멀쩡하진 않았지, 당연히.”
그 새끼들은 나중에 모아서 따로 단도리를 쳐야 할 거 같다.
“어떻게요?”
“그림을 그려 보면…….”
“음.”
“대강 이랬네.”
“어떻게 산대요?”
“모르지. 근데 어디 사는지는 알아.”
“어떻게요?”
“구걸하고 있거든. 그래도 꽤 살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말이지.”
그사이 이루어진 리스턴과의 대화를 미루어 보면 역시 지금의 턱뼈 절제술은 엉망인 듯했다.
사실 생각지 않아도 엉망일 거 같긴 했지만…….
“그 사람 혹시 데려올 수 있어요?”
“데려오라고? 귀찮은데…….”
“수술법을 개선해야 할 거 아닙니까. 마취도 없이 수술할 때랑 지금이랑 같아서 되겠습니까?”
“아. 그렇지. 지금은 마취가 있지…….”
리스턴은 아무래도 누구한테 붙잡으라고 하고 냅다 칼을 휘두를 생각이었던 듯했다.
마취가 나왔는데도 일단 아픈 사람만 보면 참으라는 소리가 나오는 게 이 시기 의사들이니 당연했다.
다행히 리스턴은 꽤나 마음이 열린 사람이니만큼 부리나케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나는 해부 실습실에 도착했다.
‘오.’
전과는 달리 구더기나 쥐가 없었다.
아니, 자세히 보면 있긴 있을 텐데 그래도 전처럼 널브러져 있진 않았다.
위생 강박이 생긴 리스턴이 한바탕 뒤집어엎어 놨기 때문이었다.
박박 닦은 바닥엔 미처 닦여 나가지 못한 좋지 못한 흔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쾌적해진 환경에 기분이 좋아져 콧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 동시에 시신 앞에 섰다.
포르말린을 대강이나마 만들긴 했지만 늘 그것만 고집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해부학적 구조를 가르치는 데 있어서는 별 무리가 없었지만, 새로운 술식을 고안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우, 웃는다…….’
‘야, 눈 마주치지 마. 리스턴보다 더 무섭대.’
‘파리에서 빠게트 놈들 똥으로 으깨 버렸다던데.’
해서 오늘 새롭게 들어온 시신 앞에 섰는데 뒤에서 영 이상한 대화가 들려왔다.
뒤를 슬쩍 돌아보니 쥐새끼들처럼 도망쳤다.
똥으로 으깼다니, 실로 억울한 얘기 아닌가.
실제론 똥에 으깨진 도시를 구원하고 왔거늘.
‘일단…… 여기서 여기까지는 제거해야 해.’
하여간 나는 붓으로 시신의 얼굴에 점선을 찍었다.
아까 환자들은 다행히 관절은 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거의 중앙에서 우측을 날리면 될 거 같다, 이 말인데…….
‘안에 뼈까지 뭉텅이로 날아간다고 치면…… 구조가 절대 보존이 안 될 거야. 그렇다고 해서 뼈를 재건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21세기에서는 된다.
하지만 여기서는 절대 무리다.
아무리 소독을 한다 해도 감염의 우려가 있었다.
더군다나 헤파린과 같이 혈액 응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약도 없는데 딴 데서 살을 떼 오는 건 좀 너무 위험한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
주변에서 살을 돌리면 될 일이었다.
“데려왔네.”
그렇게 수술 방식을 대강 정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영문도 모르고 끌려온 사람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사, 사어 주입소!”
상대는 무척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19세기 의사들 중 절반은 비인도적인 실험을 해 봤거나 적어도 해 볼 용의가 있었으니.
게다가 어쩌다 보니 공간이 해부 실습실이었다.
사방에 시신이 널린 공간에서 일반인이 제정신을 어찌 지킬 수 있을까.
“아, 뭐 하려고 데려오라고 한 건 아니고요. 그냥 아 해 보세요.”
“으아아.”
“아 해 봐요.”
“으아.”
“아 해. 평 화나면 죽을 수도 있네.”
“아.”
내 이미지가 왜 점점 이렇게 되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는 벌어진 입을 메스를 쥔 채 들여다보았다.
칼로 쑤셨다는 건 아니었다.
거꾸로 쥐어서 메스 손잡이로 혀를 눌렀다.
다른 한 손으로는 옆에 있던 가스등으로 입 안을 비추었다.
‘텅 비었어. 식사를 거의 못 했겠는데…… 가난해서 비쩍 마르긴 했을 텐데, 아마 먹을 게 있었어도 비슷했을 거야.’
21세기에는 유동식이라는 게 있다.
필요한 영양분을 액체로 섭취할 수 있게 만든 건데…….
그런 게 있겠나, 여기.
절대 이래선 안 되었다.
“역시…… 무리를 해서라도 돌려야겠어요.”
“돌려? 뭘. 아까 환자 앞에서도 돌려 돌려 했는데 뭘 돌리겠다는 거야?”
“여기 살을 이렇게.”
“여기…… 이걸?”
“네.”
“으음…… 이게 돌린다고 돌아가나?”
빈 공간을 채워 준다고 해서 함부로 씹을 수 있게 되는 건 아닐 터였다.
살로 음식을 잘 씹을 수 있으면 이가 왜 나겠나.
하지만, 근육 조직이라도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면 훨씬 낫긴 할 터였다.
질겅질겅이라도 씹을 수 있으면 살 수는 있겠지.
부드러운 음식이…….
그래, 장어 푸딩 같은 거 있잖아.
“어는…….”
“아, 환자분은…….”
이 환자분도 개선을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안 될 거 같았다.
오히려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여기, 이걸로 부드러운 수프라도 좀 사 드세요.”
“아, 암아함이아!”
이와 턱이 다 없는 사람의 발음은 이렇다는 걸 한눈에 보여 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여간, 내가 줄 수 있는 도움 중 가장 큰 것은 돈이었기 때문에 돈을 줬다.
꽤 큰돈이었다.
아마 앞으로 아껴 쓴다면 한 달은 걱정 없을 터였다.
“자네, 뭔 돈을 그렇게 쓰나.”
“안됐잖아요. 면도하다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걸세. 게다가 면도를 왜 한단 말인가. 위험하게.”
막 부른 게 미안해서도 준 건데, 정작 그 턱뼈 날려 먹은 인간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 사람 탓을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또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상처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는 시대에 대체 왜 면도를 했을까.
이 시대에 주로 쓰이는 칼이라는 게 녹슨 칼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더더욱 무서운 일이었다.
“일단 어떤 모양이 될지 이걸로 보여 드릴게요.”
“으음…… 시신 턱을 자르겠다고?”
“네.”
“그럼 이럴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 다 모으지. 만약 자네 말대로 백린과 연관이 되어 있다면…… 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 런던에 한바탕 소란이 일걸세.”
“아, 그게 좋겠네요. 그러죠, 그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리스턴을 제외하면…….
하지만 보조라도 할 수 있게 되거나 또는 경각심이라도 갖게 되지 않겠나?
‘뭐…… 나만 할 수 있다고 해도 손해는 아니지.’
명성을 쌓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되게 속물 같아 보일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이 시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명성도 쌓고 부도 쌓는 거다.
아무튼, 나는 곧 상당한 수의 의사들 그리고 의대생들에게 둘러싸일 수 있었다.
모두 호의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다.
당연했다.
해부쇼로 어그로 끌었지, 미아즈마에 대해 새로운 이론도 냈지, 소독도 해야 한다고 하지…….
옆에 리스턴 없었으면 아마 칼 맞아 뒈졌을 거다.
‘그래도…… 다들 그런 건 아니네.’
그래, 날 좋아하는 사람들만 보고 가자.
나는 그런 생각으로 시신의 턱부터 날리기로 했다.
칼로는 절대 안 되기 때문에, 톱을 꺼냈다.
다들 웅성대기 시작했다.
“저저…….”
“저런 흉악한 수술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지들은 더 끔찍한 수술도 했으면서 저런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