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
검은 머리 영국 의사-2화(2/505)
2화 19세기 [2]
“살려 줘, 이 개새끼들아아아아!”
“살리려고 이러는 거 아닌가!”
“이 미친놈들이 수술을! 그렇다고 수술을!”
“그러게 조심하라고 하지 않았나. 다리가 이게 뭐란 말인가.”
환자는 그야말로 발광을 하고 있었다.
난 아저씨 덕에 좋은 자리에 앉은 김에 환자의 상처부터 살폈다.
보통 수술 구경이라고 하면, 수술에 구경이라는 말이 따라붙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만 넘어가고, 하여간 거리가 좀 있어야 하지 않나?
그게 상식일 것 같은데.
여긴 상식 따위는 안드로메다에 던진 모양인지, 나는 그야말로 코앞에 앉아 있었다.
‘19세기 의료가…… 어땠더라?’
머릿속으로 학생 때 배운 걸 뒤적거렸지만 소용은 없었다.
그거, 1학점짜리 그거…… 교수님도 학생도 신경 안 쓰는 과목 아니던가.
기억나는 건 없었다.
해서 그냥 환자나 다시 보기로 했다.
‘봉와직염(세균 감염으로 생기는 피부 질환)을 넘어서…… 썩었네. 절단해야겠는데?’
오랜 경험상 저건 절단각이었다.
다리를 자른다는 게 참 끔찍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환자가 죽게 될 테니.
그 어떤 이유도 생명 그 자체 앞에서는 빛이 바래지 않겠나?
해서 나는 환자보다 환자를 붙잡고 서 있는, 다소 우악스럽긴 하지만 하여간에 살릴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했다.
그런데 보다 보니, 수술장에 으레 있어야 할 게 보이지 않는 게 좀 이상했다.
“근데 마취는 안 하나요?”
“마취?”
인공호흡기도 없고, 무엇보다 마취 기기가 없었다.
해서 물었더니 아저씨가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 하긴…… 우리 아저씨는 의사가 아니지.’
그래.
업턴은 워낙 촌구석이다 보니 수술도 없지 않았나.
그러니 마취를 모를 수도 있었다.
“응?”
그때, 아저씨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
“네?”
나와 조지프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이 되었다.
미처 말릴 새도 없이, 아저씨가 환자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그랬다.
그러곤 가방에 들어 있던 포도주 세 병을 건네주었다.
“이거 마시게.”
“아니, 이런 고마울 데가…….”
“쭉 들이켜야지. 안 그러면 아프다고?”
“하하, 고맙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주고받더니, 환자를 우악스럽게 잡고 있던 이가 술을 받아 들곤 환자에게 먹이기 시작한다.
“너 말 잘했다. 태평이 덕에 환자 마취 잘하네.”
“네?”
술이 마취라고?
이런 미친놈들이.
술은 이 사람들아…….
마시면 혈압을 떨어뜨린다고…….
가뜩이나 피가 날 텐데 혈압이 떨어져 있으면 환자가…….
“오, 저기 의사 선생님 오시네. 니들 운이 좋다. 저분이 런던 최고 명의셔.”
뭐라 하려고 했더니 아저씨가 광장 한쪽을 가리켰다.
이상하게 저기만 비어 있다 싶더니만.
그쪽에서 무슨 권투선수라도 입장하듯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등장했다.
“누가…… 최고 명의셔요?”
인상들만 봐서는 의사가 아니라 나쁜 일 하는 사람들 같은데.
나는 암만 봐도 분간이 안 가서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저씨가 또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업턴 촌놈들 같으니라고!”
댁도 업턴 사람이라는 사실은 잠시 잊기로 한 모양이었다.
하여간 아저씨는 껄껄 웃더니 무리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저분이 바로 로버트 리스턴 박사님이시다. 너희들도 외과 의사가 되고 싶으면 저분을 목표로 삼아야 해.”
“아…….”
“와우.”
말 그대로 와우였다.
기골이 장대하다고 해야 할까?
의사가 아니라 장수가 더 어울릴 것 같은 체격의 소유자였다.
암만 영국이라 해도 아직 산업화의 수혜를 제대로 입지 못해서 그런지 평균 키가 170도 안 되는 시절인데, 저 사람은 180도 훌쩍 넘어 보였다.
그런 사람이 가운도 아닌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다 보니 진짜로 좀 무서웠다.
‘최고 명의라 이거지…….’
겉모습이 뭐가 중요하겠나.
최고 명의라는데.
나도 이참에 이 시기의 의학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겠구나 싶어서 눈에 힘을 주었다.
어찌 보면 수술을 이렇게 탁 트인 실외 광장에서, 그것도 사람들 죄다 불러 놓고 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망한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런던 시민 여러분. 저는 닥터 리스턴. 로버트 리스턴이라고 합니다. UCL(University College London) 의과 대학의 교수이기도 하죠.”
리스턴 박사는 덩치만큼이나 우렁찬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좀 이상했다.
‘아니…… 왜 수술 전에 저런 소개를…… 약 팔러 온 것도 아니고…….’
게다가 교수 아닌가?
교수면 자기 어필을 할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여러분, 오늘 수술을 잘 보시고 제 이름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 여러분에게 수술이 필요하게 되면! 그때 제가 필요할 테니까요!”
하는 짓만 보면 영락없는 약장수였다.
“으아아아! 살려 줘!”
“넌 술이나 더 마셔, 살고 싶으면.”
그 모습을 본 환자가 잠시 소리쳤지만, 주위에 있던 친구인지 원수인지 모를 것들이 입에 술을 처넣었다.
이미 얼굴이 시뻘게질 정도로 과음했던 환자는 곧 조용해졌다.
‘죽었나……?’
내가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있는 동안, 리스턴이 손짓을 하자 따라 나왔던 제자로 보이는 사람이 가방을 열었다.
리스턴은 그 안에 들어 있는 칼을 빼 들었다.
“보십시오, 이 수많은 흔적을! 이것이야말로 제 연륜과 경험의 증거물입니다!”
미친.
시발놈아.
야.
내가 진짜 덩치만 좀 컸어도 욕하면서 뛰쳐나갔을 텐데.
아니, 동양인만 아니었어도…….
‘안 돼. 그러지 마. 그러면 안 돼.’
리스턴의 칼에는 아마 이전 환자들의 것으로 보이는 피와 기름, 그리고 미미한 살점 등이 눌어붙어 있었다.
빡빡 닦아서 고온에 살균하고 소독기에 돌려도 시원찮을 판에, 육안으로 보기에도 이물이 득실득실한 칼을 쓴다고?
이건 수술이 아니라 사형이었다.
“어어.”
그 칼을 보자마자 환자가 다시 외치기 시작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라도 저런 거 보면 질겁하지.
술이 확 깼을 터였다.
“저 겁쟁이 저거.”
아저씨는 그런 환자를 보며 에휴 하고 혀를 찼다.
‘아닙니다…… 저건 겁쟁이가 아니에요.’
지극히 합리적인 반응입니다, 아저씨!
일단 우리가 구경하고 있다는 것부터 이 수술은 망했다구!
“잡아.”
그런 환자를 물끄러미 보던 리스턴이 이렇게 말했다.
그러자 제자들인지 조폭인지 뭔지 모를 사람들이 튀어 나가선, 환자를 능숙하게 책상에 고정했다.
“어어! 제발! 부디 자비를!”
환자는 사형수라도 된 것처럼 소리쳤다.
허나 이전과는 다르게 별 소용은 없었다.
제자들의 힘이 어찌나 억센지 어깨와 허리, 그리고 다리 등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잘라.”
리스턴 박사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제자들의 움직임 또한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지이이익-
난 또 자르란 말에 바로 다리를 자르나 했는데, 다행히 그건 아니었다.
일단 바지부터 잘랐다.
그러자 아까까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던 환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읍.”
냄새도 심했다.
확실히 자르긴 잘라야 했다.
‘그래. 알겠으니까…… 이제 소독만이라도 하자.’
칼이 저 모양 저 꼴이니 소독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살에 있는 균이라도 줄이면 좀 낫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 전에 선생님…… 선생님은 장갑도 안 끼십니까…….’
하다못해 마스크라도 좀 끼시지.
리스턴 박사님인지 개새끼인지 하는 분은 그저 맨얼굴이었다.
손 역시 맨손이었고.
“묶어.”
아니, 칼을 들고 있으니까 맨손이라는 말은 안 어울리나?
하여간 묶으라는 말에 제자가 환자의 허벅지를 꾹 묶었다.
가죽 스트랩이었는데 저걸 묶는 것만 해도 아파 보였다.
“으아아아아! 웩, 웨에엑.”
당연하게도 환자는 소리를 질러 댔다.
그러다 숨을 너무 헐떡였는지, 아니면 술이 과했는지 옆으로 토를 해 댔다.
일부 토사물이 튀어 다리 쪽에도 묻었다.
“에이, 술 먹인 게 아깝네.”
그럼에도 중얼거리거나 뭐라고 한 사람은 아저씨뿐이었다.
수술은 도무지 중단될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토…… 토는 닦자…… 인간적으로.’
내 바람과는 별개로, 리스턴은 또다시 입을 열었다.
“꽉 잡아.”
그리고 동시에.
정말이지 동시에, 눈앞에 빛이 번뜩였다.
콱!
리스턴은 들고 있던 칼을 즉시 내리찍었다.
내가 쓰던 메스 크기의 칼이 아니라 거의 30cm도 넘어 보이는 칼이었기 때문에, 광장으로 내리쬐던 햇빛이 이리저리 반사됐다.
츄라라락!
그와 함께 피도 이리저리 튀었다.
아무리 스트랩으로 묶었다 해도, 안에 고여 있던 피가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그랬다.
‘으아.’
그 와중에도 난 외과 의사답게 상처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었다.
‘소드마스터인가?’
한칼.
단 한칼에 살가죽은 물론이거니와 근육까지 죄다 끊어져 나갔다.
“으아아아아아!”
당연하게도 환자의 비명은 끊이지 않았지만.
리스턴은 물론이거니와 그의 제자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톱.”
그저 즉시 뼈를 잘라 내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으, 으아!”
서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뼈가 눈앞에서 잘려 나가고 있었다.
“이야, 역시 명의다! 지금 30초도 안 지났어!”
이 끔찍한 광경을 보며, 콧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전형적인 런던 신사 하나가 소리쳤다.
슬쩍 보니 손에 시계를 쥐고 있었다.
미친놈아.
30초 만에 다리 자르는 게 의사가 할 짓이냐?
여포가 방천화극 휘둘러도 이것보다 더 걸렸겠다.
그그극-
뼛조각이 이리저리 튀고.
마침내 뼈가 떨어져 나갔다.
“실.”
피가 딴 데도 많이 튀긴 했는데, 아무래도 리스턴 박사의 얼굴에 제일 많이 튀어 있었다.
악귀가 따로 없었다.
그 와중에도 리스턴은 무심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고, 제자가 맨손으로 쪼물딱대던 실과 바늘을 건네주었다.
리스턴은 그 실과 바늘로 톡톡 튀어나와 있는 혈관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살 수 있을까?’
아니.
저건 죽는다.
저런 건 수술이 아니었다.
수술에 대한 모독이라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감염…… 감염으로 죽는다……. 아니, 이미 죽은 거 같은데?’
나는 환자의 얼굴을 조심스레 살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파 죽겠다고 소리치던 사람이 조용했다.
너무 아파서 졸도했거나, 아니면 통증으로 인한 쇼크로 죽었을 가능성이 컸다.
가뜩이나 술까지 잔뜩 취하게 만들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어…….”
그걸 해낸 사람이 다름 아닌 의사란 것에 생각이 미치자 그만 아찔해졌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이랄까?
수술대가 아니라 하늘이 보이는가 싶더니, 귓가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런 것도 못 봐서 어떻게 외과 의사가 되려고 그러냐?”
아니에요.
아닙니다.
그래서 기절하는 게…… 아닙니다.
이건…… 이런 건 수술이 아니라구요…….
‘내가…… 내가 다 바꾸고 만다. 이 야만인 놈들아…….’
그날 나도 외과 의사를 꿈꾸게 되었다.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속없이 지껄이는 조지프와는 좀 다른 이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