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02)
검은 머리 영국 의사-202화(202/505)
202화 역시 예방이 중요하다 [2]
끼이익.
내 생각과는 별개로 마차는 곧 공장에 도착했다.
나랑 리스턴이 수술하고 난리 법석 피우는 동안 원장님이 파악해서 알려 준 곳 중 하나였다.
이 양반이 국회에서 리스턴이 연설도 하게 만들어 주지 않았나?
그렇다 보니 잠깐 알아본 것만으로도 공장을 벌써 네 군데나 알아냈다.
이 공장은 그중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었다.
“어떻게 오셨어요?”
노크도 없이 나무 문짝을 밀고 들어서자 옆에 서 있던 기도(騎徒, 기병과 보병) 같은 남자가 다가와 물었다.
술집도 아니고 공장인데 왜 이런 사람이 있나 궁금할 텐데, 이 시기 공장에는 필수 인력이었다.
왜?
노동자들이 도망가거든.
나 같아도 도망가고 싶게 생겼다.
하얀 연기에 개같이 좁은 공간에…… 휴식 시간이나 식사는 제대로 주겠나?
돈이라도 제대로 주면 다행이었다.
19세기에 마르크스주의가 팽배했던 건 어찌 보면 필연이랄까…….
“마차 타고 왔어.”
하여간, 묻는 말에 답하는 게 문명인으로서 합당한 처사가 아니겠나.
리스턴도 나도 스스로 문명인이란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보니 제대로 답을 해 주었다.
근데 그게 딱히 상대가 원하던 답이 아니었는지, 기도는 우리를 빤히 쳐다보았다.
“뭔…….”
“뭐. 사장 어딨어.”
그리고 리스턴은 충분히 할 거 다 했는데 삐딱하게 나오는 기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대로 한 손으로 상대 목을 잡고는 위로 들어 올렸다.
이래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이렇게 되면 성대가 눌려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
숨도 안 쉬어질 텐데 말이 나오겠나?
“켁.”
“나는 답해 줬는데, 말을 안 해 줘?”
리스턴이라고 해서 모르는 건 아니었다.
딱히 의사라 해부학적 구조에 해박해서는 아니었다.
많이 해 봐서 경험적으로 파악한 지식일 게 분명했다.
“어어.”
“사장님! 사장님 불러와!”
리스턴은 목 잡힌 사람이 조용해지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부리나케 움직이는 걸 보면서 미소 지었다.
이렇게 행패를 부리는 게 제일 빠른 길이라는 걸, 이 사내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나?
나도 명성에 걸맞게 행동하고 있었다.
한쪽 다리를 기도가 앉아 있던 의자에 걸치고 섰다.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자세 중 제일 불량해 보이는 자세라서 그랬다.
“평.”
“네.”
“헛짓하지 말고 내 옆으로 와. 자네는 나랑 있어야 강해 보이네.”
“아, 넵.”
내가 자세를 정정하는 동안 안쪽에서 잠깐 소란이 일더니만 덩치 큰 사내가 씩씩거리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분명 처음엔 달렸다.
하지만 지금은 걷고 있었다.
아니, 어정쩡한 거리를 두고 멈췄다.
“무슨…… 누구신지.”
아닌 게 아니라 리스턴과 내 조합이 좀 그렇지 않나?
리스턴은 누가 봐도 깡패고.
나는 그 옆에 있으니 당연히 깡패일 텐데 동양인이다.
아까 삐딱하게 나온 기도가 이상한 놈이다, 이 말이었다.
쿵.
리스턴은 완전히 조용해진 기도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는 사장을 바라보았다.
합법적인 사업보다는 깡패 일을 할 거처럼 생겼지만, 놀랍게도 이 시기 자본가들은 대개 이런 식이었다.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을러 대서 돈을 최대한 주지 않고, 또 최대한 많은 시간을 일하게 해야 돈을 버는 사회이지 않나?
그게 경쟁력이고 또 실력이었다.
“도, 돈이 필요하신 거면…….”
합법과 불볍의 경계에 선 사람들이라 이건데.
그렇다 보니 본격적인 갱과 엮인 일도 많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히 리스턴을 거물 갱 중 하나라 여기게 된 모양인데, 뒤따르던 놈 중 하나가 돈 뭉치를 꺼냈다.
“음.”
리스턴의 눈알이 번쩍일 정도로 묵직한 액수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좀 흔들렸다.
공장이 네 갠데 거기서 다 받으면…….
“돈 때문에 온 게 아닐세. 일단 거기! 그래, 거기! 다 나가.”
“어어. 무슨 권리로 이러는 겁니까!”
하지만 리스턴은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지금도 맨 얼굴로 백린 증기를 쐬고 있는 노동자들을 밖으로 내몰기 시작했다.
그러자 사장도 비로소 겁대가리를 상실하고 리스턴의 팔을 잡았다.
생계가 달린 문제라 생각했기에 그랬을 터였다.
실제로 별 잘못이라고 여기고 있지도 않을 것이고.
“여기서 일하던 여급 둘이 얼마 전부터 안 나오고 있지?”
“아, 네네. 아…… 그 둘이 뭐 돈이라도 빌렸습니까?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아니, 미리 돈을 갚…….”
“이 새꺄. 나 깡패 아니고 의사야!”
“그럴 리가…….”
“리스턴이라고, 리스턴!”
“아, 아아! 소, 소드 마스터…….”
자꾸 대화가 겉돌아서 이내 신분을 밝힌 리스턴 앞에서 사장은 무릎을 꿇었다.
원래 같으면 의사가 깡패보다 무서울 수는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리스턴이면 모든 게 달라졌다.
사장은 그제야 발견한 칼집을 보고는 눈도 바닥으로 깔았다.
“어, 어찐 일이신지…….”
그 시선을 따라 식은땀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청소한 적이 한 번도 없을 것이 분명한 바닥에서는 땀이 떨어질 때마다 먼지가 일었다.
“그 두 여급 얼굴 최근에 본 적 있나? 있지?”
“자,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럼 보여 줘야지. 평.”
“네.”
나는 그림 두 장을 꺼내 리스턴에게 건넸다.
리스턴은 한 손으로 그림 두장을 펼친 후, 나머지 한 손으로 꿇어 엎드려 있던 사장의 뒤 머리카락 뭉치를 잡아 고개를 들었다.
“으아아아!”
“보여?”
“네, 네!”
“이렇게 됐다고. 이게 다 너 때문이야. 알아?”
“네? 저, 저는 아무것도…….”
“이 새꺄! 우리가 백린 성냥 만들지 말라고 했어, 안 했어? 공문 다 보냈을 텐데?”
“아…… 그거. 보기는 했습니다만, 그게 말이 됩니까? 공기 좀 쐰다고…….”
보여 주는 데도 말이 잘 안 통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 시기 사장하면서 큰돈을 벌 정도면 양심이 없다는 얘기도 되거든.
허나 다른 노동자들이라면 어떨까.
아닌 게 아니라 여기도 초기 증세를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어어, 그럼 저 이거 때문에?”
“안 돼…….”
“이런 나쁜 놈이!”
밖으로 내몰렸던 여급들의 입에서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감히 사장에게 달려드는 이는 없었다.
법은 있는 자들의 편이었으니.
그 증거로 경찰들이 오고 있었다.
사장은 그런 경찰을 보면서 얼굴을 폈고.
“이거, 이거 놓으시지! 감히 벌건 대낮에 죄 없는 사람을 핍박해?”
동시에 리스턴에게 윽박을 질러 댔다.
승리의 미소마저 띠고 있었으나, 리스턴은 놓아주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주어 뒷머리를 한 움큼 뽑았다.
“으, 으아아악!”
“이건 내 환자의 몫.”
“으아아아아!”
“이건 평 환자의 몫이다.”
그걸로도 모자라 앞머리도 한참 뽑아 버렸다.
신체의 고통과 마음의 고통을 전부 주었기 때문에 사장은 한동안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때문에 다가온 경찰을 맞이하게 된 것은 그들을 부른 사장이 아니라 리스턴이었다.
“어…….”
물론 바로 잡혀가는 일 따위는 없었다.
“어, 그래. 서장은 잘 있나.”
“네, 네. 리스턴 박사님.”
“그래, 웬일이지?”
“여기 소란 피우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아, 아까부터 이 사람이 시끄럽던데. 소리를 어찌나 지르던지.”
리스턴은 사장을 가리켰다.
소리를 지르고 있긴 했다.
비명이긴 한데…….
“그…… 여기가 이 사람 영업장인데요. 영업 방해가…….”
“아, 그 영업이라는 게 잘못일세.”
“네?”
“보게.”
“으읏. 이게 뭡니까?”
리스턴은 말 그대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경찰에게 그림을 건네주었다.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이야. 이렇게 됐어.”
“네? 때린 거예요?”
“아니, 연기 때문이지.”
“연기……?”
경찰은 사장이 잘못했네 하다가 연기라는 말을 듣자마자 뭔 잘못이지 하는 얼굴이 되었다.
산업재해라는 말이 존재하지도 않는 시기이지 않나.
경찰이 무식한 게 아니라 그냥 시대정신이 이러했다.
뭔가 돈 벌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들 어쩔 수 없지 뭐 이러고 넘어가곤 했다.
“내가 말한 적이 있을 텐데. 백린 성냥 만드는 연기를 마시면 이렇게 될 수 있다고.”
“아아, 기억이 나긴 합니다.”
“근데 왜 그냥 뒀나?”
“문제가 생기면 그때 가서 보자, 뭐 이랬던 거 같은데요.”
와.
경찰 때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리스턴도 딱히 생각이 달랐던 건 아니었는지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럴 수 있지. 근데 이제 생겼네.”
“이건…… 제 차원에서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닌 듯합니다.”
“그래, 알고 있네. 그래서 여기 뭐 더 일해야겠나?”
“그건 안 될 거 같긴 한데…….”
“한데?”
“노동자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하긴 그렇군.”
사장이 아니라 노동자?
나는 내 귀가 잘못됐나 해서 주변을 보았고, 제대로 들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불만을 표하고 있던 이들 거의 전부가 이제는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할 터였다.
언제나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21세기 대한민국에서조차 경제 논리에 의해 무시되던 생명이 있지 않았나?
19세기 런던에서 다른 무언가를 기대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일 구할 때까지는 일단 이놈을 털까?”
“네?”
“내가 잘 합의를 해 보겠네. 평화적으로.”
“어…….”
경찰의 눈알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리스턴의 흉악한 얼굴과 우악스러운 손 그리고 칼까지.
무엇 하나 불법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실제 리스턴은 지극히 명예로운 런던 시민이자 의사였다.
심지어 이번엔 프랑스에서 사람 살린 공까지 세우지 않았나?
저 콧대 높은 프랑스에서 감사를 표했을 정도였다 보니, 지금 런던의 높으신 분들의 리스턴에 대한 시선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 저는 아무것도 못 본 겁니다.”
경찰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곳은 흩날리는 머리카락과 고통 가득한 얼굴로 그 머리카락을 바라보고 있던 사장이었다.
누구보다 약자를 보호해 주어야 할 경찰은 간신히 시선을 뒤로 돌리곤 천천히 물러갔다.
“아니! 내가 이제껏 준 돈이……!”
“그 돈을 이제 일꾼에게 주면 되겠군그래.”
사장은 절규했지만 무슨 소용이 있겠나.
경찰이 눈을 감아 버린 이상 런던 팔다리 절단 마스터 리스턴을 막을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 잘 생각했네.”
사장은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처음엔 좀 화가 났는지 이상한 소리 해서 몇 대 더 맞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제꺼덕 정신을 차렸다.
죽을지도 모르겠단 공포도 있었을 터였다.
“안 그럼 저주를 내리려고 했어.”
리스턴은 돈뭉치를 받아 들고는 나를 힐끔 가리켰다.
그러자 사장은 공포에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그렇게 떠는 사장을 두고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는 다른 업장 아니, 공장으로 향했다.
벌어지는 일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기도는 기절하고, 사장은 머리가 뽑히고, 돈도 뜯겼다.
“좋네요.”
“그래, 이제 더는 이런 문제가 없겠지.”
“날씨도 좋네요.”
“하하. 가을이지 않나.”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