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03)
검은 머리 영국 의사-203화(203/505)
203화 역시 예방이 중요하다 [3]
그런 우리에게 의회에서 사람을 보내왔다.
백린 성냥이 정말 그렇게 위험한 게 맞냐는 것을 묻기 위함이었다.
어째 뉘앙스가 호의적이진 않았다.
딱 봐도 원하는 답이 있었다.
‘이 새끼들……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은 모양인데.’
나도 어지간하면 정치권과 야합하고 싶다.
잘 나가는 분들과 어?
굳이 각 세울 필요가 있겠어?
하지만 백린은 안 된다.
나는 대강 이게 왜 문제를 일으키는지도 알고 있단 말이지.
‘백린은…… 주로 턱뼈의 인산칼슘과 반응해 턱뼈를 괴사시키지.’
용어도 있다.
인악(Phossy Jaw).
이건 내가 활동하기 한참 전에 이미 유해성이 확인되어 전 세계 모든 곳에서 생산이 중단되었다.
왜?
만들 때만 독성이 발생하는 게 아니거든.
쓸 때도 발생할 수 있다.
성냥팔이 소녀가 괜히 성냥에 불 그으면서 환각을 본 게 아니라는 얘기다.
백린 가스에 급성 중독되면서 발생한 증상이다.
그래서 추운데도 모르고 죽어 간 거고.
“이걸 보게. 우리 평이 걱정한 것과 정확히 같지 않나.”
“하지만 우연일 가능성도…….”
“이보게. 내가 가 본 공장에도 이미 비슷한 증상이 있는 여급들이 여럿이야! 모두 수술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그게 우연이라고?”
“그, 그치만…… 이런 걸 대체 이 사람이 어찌.”
“이거 이거 조선이라는 나라를 모르니까 이렇지. 의학에 있어서만큼은 우리 대영제국과 비견될 만큼 발전한 나라가 있다네.”
“그…….”
리스턴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윽박질렀다.
그 중간에 나로서는 좀 마음에 심히 걸리는 점이 있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
이 양반이 조선에 가 봤을 리는 만무했다.
개항을 한 거 자체가 1870년대 아니었던가.
그전까지 조선은 은둔의 나라다.
“그래도 이게 군수물자 아닙니까…… 이걸 우리만 안 만들다가 프랑스 놈들하고 전쟁이 또 터지면 어찌합니까?”
프랑스.
흐흐.
놈들하고 전쟁이 터지기는커녕 동맹을 하게 될 터였다.
크림전쟁이라고 아시려나 모르겠어?
얼마 남지도 않았다.
러시아 제국이 남하함에 따라 우리 섬나라가 사사건건 견제하기 시작할 거거든.
하지만 이런 얘기를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나.
“잘 보십쇼.”
해서 나는 리스턴의 말에도 조심스럽지만 바락바락 대들고 있는 사람을 향해 성냥을 내보였다.
백린 성냥이었다.
이 유해성을 지극히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들고 다니는 것조차 찜찜했지만…….
어차피 런던의 유해한 공기를 잔뜩 마시고 있는 상황에서 조심해 봐야 뭐 하겠나.
기왕 다시 살게 된 거 짧고 굵더라도 제대로 살다 가 볼 참이었다.
“이게 마냥 유용하답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유용하긴 했다.
이거 진짜 불이 잘 붙거든.
어느 정도냐면…….
말 그대로 아무 때나 순식간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아직 간편 전투식량이 개발되려면 한참 남은 상황에서, 군대에 이런 물품이 있다는 건 없는 군대에 비해 어마어마한 장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렇지,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이걸 보십쇼.”
물론 너무 잘 붙다 보니 단점도 있었다.
코트 안에 넣어 온 백린 성냥이 안에서 비벼지면서 불이 붙는 바람에 화상을 입은 사람의 사례를, 나와 리스턴은 어제 잠깐 병원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여럿 찾아낼 수 있었다.
군대?
거긴 더했다.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이들 아닌가.
더욱이 화약도 같이 다루는 이들이다 보니 큰 사고로 번진 적도 꽤 있는 모양이었다.
이러한 정보를 물어다 준 것은 경찰서장과 대미언 경이었다.
확실히 높은 사람들은 알고 지내서 나쁠 것이 없었다.
“단점이 명확합니다. 너무 위험해요. 게다가 생산하면서도 우리 대영제국의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고 있어요. 금지해야 합니다.”
“단점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의회에서 온 놈은 답답한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리스턴이 나섰다.
나는 할 수 없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다.
“프랑스에서 사 오면 되지 않나. 놈들 노동자들이야 어떻게 되든 알게 뭐란 말인가.”
“그.”
“일단 정부 차원에서는 사이가 좋지 않나? 지금도 멀쩡히 사 오고 있는 물품이야.”
“그…… 그렇긴 하죠.”
그래도 비슷한 생명인데 알게 뭐란 말인가라는 대사는…….
내가 직접 치기는 좀 그렇잖아?
“그거 말고 불붙이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이렇게 명확하게 죽어 가고 있는데 이걸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네. 자 보게. 이 그림들을.”
“으음.”
리스턴은 그렇게 강압에 가까운 설득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사실 저런 절차가 필요하다는 거부터가 이상한 일이긴 했다.
사람이 죽는데…….
그것도 이렇게 끔찍하게 죽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단 말인가.
의회에서 온 사람들도 그림 속 여인들을 보고 나니 느끼는 바가 좀 있는지 금세 조용해졌다.
“이건 확실히 좀 그렇긴 하네요.”
“좀 그래? 자네 턱뼈 한번 잘라 줘? 좀 그런가?”
“아니, 왜…… 왜 이러십니까. 저는 그저…….”
“그러니까 가서 말을 잘하라고. 내가 자네 얼굴, 이름 기억했네.”
“네?”
“변화가 없다면, 내가 어딜 가겠어. 아는 사람을 찾아가겠지?”
“사, 살려 주십쇼!”
“그럼 죽을 짓을 하지 않으면 될 일이야. 가서 최선을 다하게. 어차피 대미언 경께서도 지원 사격을 해 줄 텐데 뭐가 걱정이란 말인가.”
걱정할 만한 일만 계속 말해 준 주제에, 리스턴은 껄껄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칼집도 두드렸기 때문에 의회에서 온 이들을 대표하던, 나름 런던에서 끗발 좀 날린다던 사람의 얼굴은 나날이 창백해져만 갔다.
“자, 그럼 최선을 다해.”
“그…….”
“여기서 잘라?”
“아닙, 아닙니다! 가 보겠습니다. 제가, 제가! 이건 반드시!”
“그래, 기대가 커. 말 안 듣는 사장이 있으면 말하게. 런던에서 통하는 게 반드시 법뿐인 것은 아니라는 걸, 내가 잘 알게 만들어 주겠네.”
“네네!”
그러곤 굉장히 어려워 보이는 일을 해내겠노라고 단단히 맹세를 한 채 사라져 갔다.
리스턴은 그쪽을 흐뭇하게 웃으며 바라보다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나는 좀 미안해하고 있었다.
“형님. 저게 될까요? 의회 놈들 말 진짜 안 듣던데.”
사실 대한민국 국회라고 말을 잘 듣던가?
자고로 전문가 말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제일 신빙성 있는 말은 대개 듣기 싫은 법이었다.
아무래도 탁상공론하고는 다른 얘기가 펼쳐지기 마련이거든.
“하수도 정비 안 하는 대신이라고 하면 뭣한데…… 대미언 경 체면을 한번 살려 주긴 할 거야. 막말로 이게 필수품도 아니고, 워낙 싸지 않나. 이걸로 돈 벌던 놈 말고는 딱히 반대할 필요도 없어. 우리 대영제국이 제일 손해를 보고 있는 무역은 어차피 차 무역이니까.”
“아…… 네.”
차 무역…….
크림전쟁보다 아편전쟁이 먼저였지?
그럼 벌써 아편이 흘러 들어가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걸 기점으로 강대했던 동양의 문명이 통으로 서구 제국주의 손아귀에 빠져들게 되기는 할 텐데…….
‘어쩌겠어. 눈앞의 백린도 혼자 어쩌지 못하는데.’
당랑거철이다.
나 혼자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일단 내 앞가림부터 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아, 맞다. 그건 그렇고…… 자네, 이번에 파티 기억하지?”
“파티요? 아. 기억하죠. 그걸 잊으면 안 되죠. 현미경도 그냥 주셨는데…… 파티에 초대까지 해 주시고.”
“일단 자네 신분은 귀족으로 소개되었어. 맞지? 노블 킴인 건?”
“네, 그럼요.”
조상들이 성씨를 샀을 가능성도 상당히 높기는 했다.
김씨의 분포도를 보면 자연 발생했다기엔 너무 많다잖아?
뭐, 그런 찜찜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나는 내가 양반 집안이라고 듣고 자랐다.
따지고 보면 친구들 다 양반 집안이라고 하긴 했다.
조선의 신분 구조상 태반은 상놈이었을 텐데.
사실 내 생전의 체형으로 미루어 볼 때, 대대로 농사짓는 집안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당당한 양반이죠. 아, 조선말로 귀족이라는 뜻입니다.”
“역시 그렇군.”
물론 난 구라 마스터가 된 지 오래였기 때문에 일말의 거리낌과 망설임도 없이 양반을 입에 올릴 수 있었다.
“그래, 그럼 그렇게 소개하도록 하고…… 옷은 있지?”
“있죠. 저도 나름 돈을 잘 번다니까요?”
“하하, 그렇긴 하지. 그럼 준비하고 있게. 마차를 보내오실 거야. 자네는 나름 귀빈이라.”
“아…… 네.”
파티라 함은 대미언 경까지 오는 거대한 파티를 의미했다.
나 같은 쩌리가 갈 만한 곳이 아닌데…….
대미경 경이 힘을 써 준 모양이었다.
그 파리를 주최한 사람은 놀랍게도…… 제이미 경이었다.
전립선 비대증에 미쳐서 스스로 불알을 잘랐다는 소문을 딛고, 드디어 사교계에 복귀하는 날이었다.
감히 눈앞에서 불알이니 고환이니 떠드는 놈들이야 없을 테지만…….
소문에 따르면 실추된 명예를 곧추세우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쓴 모양이었다.
최근 몇 년간 치러진 연회 중 가장 화려할 거란 말도 있었다.
왕실 파티까지 합쳐서라고 하니 어느 정도가 될는지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부럽다…….”
“그러니까. 역시 교수는 다르구나.”
집에 돌아오자 앨프리드와 조지프가 질시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맛대가리 없는 영국 음식을 저녁으로 먹으면서였다.
“파티 가면 정어리 파이도 있겠지.”
“장어 푸딩도…….”
그러면서 맛대가리 없는 걸 넘어서 최악의 음식을 늘어놓았다.
앨프리드는 몰라도 조지프 저 새끼는 놀리는 거다.
한국 음식 먹으면서 컸잖아.
“그런 걸 왜 먹어. 그냥 빵이나 먹을 거야.”
“제이미 경은 너무 부유해서 빵 안에도 정어리 삭힌 걸 넣어 드신다는데.”
“하.”
“그래도 부럽다. 작위 받은 사람들은 다 온대. 어마어마한 자리야. 블런델 교수님도 초대받지 못했는데, 너는 가는 거잖아.”
음식을 생각하면 가기 싫어지지만…….
확실히 특별한 자리긴 했다.
그래서 나는 나름 향수도 뿌리고 경건한 얼굴로 마차를 기다렸다.
그렇게 좀 있으려니 화려한 장식을 단 마차가 도착했고, 그 마차는 곧 켄싱턴 어귀에 있는 대저택에 나를 내려 주었다.
“음?”
“뭐지?”
내리자마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들이 꽂히기 시작했다.
괜찮았다.
“아, 평.”
일단 리스턴이 옆에 서자마자 꽂히던 시선이 삭 줄었다.
대개 땅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귀족이고 잘나가는 상인이나 군인들이나 다 똑같았다.
죽기는 싫겠지.
“아, 피영.”
그리고 대미언 경이 반가워하며 오자 다시 시선이 꽂히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종류가 완전히 달랐다.
이젠 순수한 궁금증이 느껴졌다.
바야흐로 사교계에 정식으로 데뷔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 소개해 줄 텐데…… 우선 제이미에게 가지. 모르는 얼굴도 아니고, 주최자한테 먼저 인사하는 게 예의야.”
“네, 공작 각하.”
“자, 이리로.”
아마 데뷔 방식으로는 이게 최고일 터였다.
무려 공작님의 에스코트를 받아 가며 다른 공작에게 가는 길이니.
‘와…….’
아무튼, 그렇게 도착한 제이미 경이 있는 곳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약간 하나의 원색이 너무 도드라지는 느낌이 있긴 한데…….
그 원색이 하필 내가 좋아하는 초록이다 보니 촌스럽단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물론 좀 이상하긴 했다.
카페트와 벽지 그리고 옆에 선 여인의 드레스까지 온통 녹색이었으니까.
‘이게 유행인가?’
유행이라면 뭐 그럴 수 있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