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05)
검은 머리 영국 의사-205화(205/505)
205화 이거…… [2]
불길하건 말건 런던의 아침이 밝았다.
언제나 그렇듯 상쾌하거나 하진 않았다.
밖에 뿌연 연기가 올라오고 있고…….
템스강 물은 똥물인데 상쾌하다 싶으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나.
그러니 기분이 썩 나쁘지도 않았다.
여느 때처럼 맛대가리 없는 아침을 먹고 병원에 왔다.
“좀 어때요?”
“쉬익.”
그러곤 환자들을 봤다.
이틀 전에 수술한 여공들이었다.
다행히…….
당장 죽을 거 같진 않았다.
감염 징후가 있진 않아.
‘하긴…… 표백제로 닦았는데 감염이 생기면 그것도 이상하지.’
이게 어찌나 독한지 장갑이 살짝 녹았다.
어차피 일회용이 아니라 계속 쓰고 있다 보니 주기적으로 바꿔야 하긴 할 텐데, 찝찝해서 바꾸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 녹아서 바꾸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아무튼, 다 좋은 일만 있는 거 같진 않았다.
“아 해 보세요. 아.”
다행히 안에 부어 있던 건 가라앉고 있었다.
상당히 속도가 빠른데…….
역시 19세기인들은 다르다.
강해.
‘아무리 강해도…… 근육에서 이가 나거나 하진 않는군.’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살짝 기대를 하긴 했더랬다.
난 아직도 여기가 내가 있던 지구와 같은 지구인지도 모르겠거든.
다른 모든 돌아가는 꼴을 보면 확실히 지구 맞는 것 같긴 한데, 의학적인 면만 놓고 보면 자꾸 아닌 것 같다.
해서 그런 기대를 했건만 역시 그런 일은 없었다.
“자, 이거 뺍니다.”
나는 부기가 가라앉아 그냥 숨을 쉴 수 있을 거란 판단이 서자마자 목에 꽂아 넣었던 철제 튜브를 뽑았다.
이거 계속 둬 봐야 좋을 것도 없었다.
플라스틱이 아니라 철이다 보니 녹도 슬 거고…….
그럼 중금속에 중독이 되거나 혹은 흔한 파상풍에 걸리지 않겠나?
다른 데도 아니고 목에 걸리면 그거 자를 수도 없고, 죽는다 그냥.
“켁, 켁.”
“말씀하시려면 여기 막고. 네. 그렇게. 이걸로 막아야 합니다? 이게 소독이 된 거니까?”
“오, 오독요?”
“어려운 개념일 텐데…… 안 그러면 죽는다고만 알고 계십쇼.”
“중는다…… 네, 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죽는다는 말을 해서 그런가.
실감이 났는지, 환자는 고개를 마구 주억거렸다.
질겁을 한 채였다.
‘그래도 발음이 수술 전보다는 낫네. 저 정도면 어디 가서 간단한 일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먹고 사는 게 해결이 안 되면, 병에서 고쳐 봐야 별 소용이 없지 않겠나?
사실 대한민국에 있을 때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대학 병원에서 근무를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나라가 훨씬 잘 살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 거다.
제일 큰 대학 병원이다 보니 일단 환자들이 좀 사는 사람들이 왔고…….
나라 꼴이야 이곳 19세기 런던하고 비할 바는 아니었으니.
“아, 평.”
그렇게 환자들 좀 보고 다른 간단한 처치도 좀 하고 있으려니 리스턴이 다가왔다.
오늘도 절단 좀 했는지 얼굴에 피가 튀어 있었다.
일부러 안 지울 걸 수도 있어서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네, 형님.”
“성냥 그거 답변이 왔어. 오늘 제이미 경이 한번 또 얘기를 해 준 모양이야.”
“오?”
“어제 내가 봐도 심하게 딸랑거리더만. 자넨 참 그런 거 잘한단 말이지.”
“하하…… 그렇잖습니까. 고자 되셨는데 앞에서 의사가 그거 티 내면 좋아하겠어요?”
“그건 그렇지. 수염은 대체 뭘 갖다 붙인 건지…… 아무튼, 최소한 런던에서는 더 이상 생산을 안 할 거 같네.”
“와. 아……?”
런던에서는?
완전히 안 하는 게 아니고?
“이미 다른 지역에서도 많이 만들고 있나 봐. 프랑스에서 수입할 필요도 없다고 하더군. 잘된 거 아닌가? 군수 물자인데 이걸 프랑스 놈들만 믿고 있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아니…… 그래도 이거 위험한데요?”
“하하. 어쩌겠나. 세상 사람 다 살릴 건가? 그건 아니잖아. 일단 눈앞에 안 보이면 마음도 편안해질걸세.”
“그…… 그런가?”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까 정말 그런가 싶다.
헷갈려…….
“그건 그렇고, 이번에 새로 생긴 음식점이 아주 괜찮다고 하던데…… 가 볼 텐가?”
“음식점…… 이요?”
“너무 그러지 말게. 우리 영국에도 맛있는 음식이 있다네.”
“음…….”
차라리 헷갈리게만 하면 좋겠다.
이상한 소리만 하면 좋겠어.
음식점은 안 데려가면 좋겠다.
이 사람이 맛있다고 한 것 중에 정말 맛있던 게 있었나?
아니…….
맛이 있는 게 아니기만 하면 다행이다.
“읍.”
“사람 참……. 음식점 추천하는데 구역질을 하다니. 이건 무례한걸세.”
“미안, 미안합니다. 근데. 그때 먹은 그…… 스타게이지?”
“아…… 그거. 걱정 말게. 다시는 음식 못 만들게 되었네.”
“죽였어요?”
“아니, 그러자면 모든 영국 요리사를 죽여야 할 텐데? 그냥 팔만 부러뜨려 놨네.”
“아.”
너무하는 거 아니냐 싶을 수도 있을 거다.
무슨 요리 하나 했다고 사람을 죽이네 살리네 하고…….
하지만, 그놈은 죽을 만했다.
별 모양으로 정어리를 빵에 꽂아서 구웠는데…….
정어리가 원래 좀 비린 생선이어도 잘 구우면 맛있잖아?
근데 그렇게 하니까…….
“읍.”
“하하하, 이 친구! 이거 안 되겠군! 자네 기억을 고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나가서 먹어야겠어!”
“아, 평도 가나?”
“맛있는 곳이라는데 우리만 쏙 가면 되나. 삼총사가 가야지.”
“하긴 그렇지. 평, 혹시 모르는 일이니 제자들에게는 얘기하지 말게. 섭섭해할 거야.”
이렇게 나오는 거 보면 이번에는 다른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기대하면 안 된다.
전에 이렇게 호들갑 떨어 놓고 해기스라는 걸 먹었거든?
그건 진짜…….
궁금해도 절대 검색하면 안 된다.
뭐, 안 먹어 봤다면 상상일 뿐이겠지만…….
“읍.”
“하하하! 이거 이거 영국인으로서 자존심에 상처가 되는군그래.”
“그래, 우리 음식이 좀 별로일 수 있지! 하지만 맛있는 것도 있다네. 가 보면 깜짝 놀랄 거야.”
자꾸 구역질이 나오는데…….
정신이 없어서 그런가, 돌아보니 어느새 마차였다.
리스턴이 한 손으로 들어다가 안에 태운 모양이었다.
둘은 진심으로 속이 상해 보였다.
그렇다고 화가 난 거 같진 않았다.
양심이 있으면 그래선 안 된다.
의학보다 더 엉망인 것이 음식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어……?”
여러 번, 정말로 여러 번 믿음을 배반당한 기억이 있는 내게도 뭔가 좀 기대가 되는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간판을 보아하니 거의 새거 같은데 그 앞으로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냥 일반인 계층뿐 아니라 상류층으로 보이는 이들 또한 그랬다.
서 있는 줄이 다르긴 한데…….
저런 모습 자체가 굉장히 보기 드물다는 걸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애초에 영국은 서민이 가는 곳과 귀족들이 가는 곳이 구분이 되는 편이니까.
“거보게. 장난 아니라니까. 자네 때문에 늦어서 이거…… 못 먹을 수도 있겠는데.”
“이게 언제부터 이런다고?”
“몰라. 몇 주 안 되었다고 들었는데…… 그때 그 뭐야. 그래, 제이미 경이 연회에서 녹색 자랑하고 더 인기가 많아진 모양이네.”
“그게 그렇게 멋진가?”
“멋지더라고. 근데 비싸.”
“저건?”
“저것도 싸진 않지. 하지만 엄청 맛있고, 무엇보다 이쁘다고 하더군.”
놀라는 나를 두고, 리스턴과 블런델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들뜬 10대 청소년 같은 얼굴을 하고서였는데, 비난할 만한 일은 아니긴 했다.
영국에서 맛있는 음식에 대한 열망은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니까.
그 욕망이 자꾸 뒤틀린 채로 발현이 되는 게 문제였다.
해기스라든지, 스타게이트인지 나발인지 같은 게 그래서 나온다.
“이거…… 일단 앞에 세워 드리겠습니다. 상황을 보셔야겠는데요?”
“그러지.”
길가엔 온통 마차였다.
애초에 그렇게 넓은 도로도 아닌데 마차들이 우르르 몰려 있어서 더 들어갔다간 빠져나오기가 어려울 거 같았다.
나는 그 말들이 싸 둔 똥에서 간신히 시선을 거둔 채, 식당 쪽으로 향했다.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어야 했지만 난 리스턴을 대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 상관없었다.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이리저리 비켜 주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줄까지 끼워 주진 않았다.
아까 말한 대로 지은 지 얼마 안 되어 안이 선명하게 들여다보이는 유리창까지 닿는 게 고작이었다.
“아…….”
“하하. 내 그럴 줄 알았지. 신기하지?”
“어떻게 이런 색을 냈을까?”
그 유리창 안에 장식되어 있는 음식은 놀랍게도 디저트류였다.
더 놀라운 건 정말이지 선명한 색깔을 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저 정도의 발색은 21세기 압구정이나 청담 카페에서도 보기 힘들었다.
내가 뭐 병원 밖에 자주 나다닌 건 아니어도 소개팅은 참 많이 했거든?
그때마다 카페 아니면 음식점으로 가야 했는데…….
하여간, 그래서 안다.
저렇게 먹을 거에 색을 입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회귀자인가……?’
제일 처음 든 생각은 역시 회귀였다.
생각해 보면 나만 미래에서 돌아왔다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
지독한 우연인지 섭리인지는 몰라도 희귀한 일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오직 나만?
그게 아니라면 19세기 런던이 21세기 런던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비로소 이해가 갔다.
그래, 의사 혼자서 바꾸면 뭘 얼마나 바꾸겠어.
어?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데…….
“드, 들어가 보죠!”
“하하. 이럴 줄 알았네. 그래도 뭐. 기다려야지.”
“우리 시간 얼마나 있죠? 못 먹는 거 아니에요?”
“그러게 서두르지 그랬나. 뭐,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닐세.”
주인을 만나 봐야겠다.
먹을 것도 먹을 건데, 저걸 대체 누가 어떻게 만든 건지를 알아야겠다.
문제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건데…….
“아…… 팔다리 자르고 싶다.”
“크, 큰 소리로 그런 말 하지 말게.”
리스턴이 나섰다.
칼자루를 두드리면서였다.
“왜, 뭐. 여기도 자를 사람 있을걸. 어, 거기.”
“뭐, 뭡니까.”
“팔 여기 썩은 거 같은데?”
“그, 그냥 좀 곪은 겁니다.”
“곪기는. 이건 잘라야…….”
“으, 으아아아!”
그러더니 혼비백산한 채 도망간 어떤 사람의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섰다.
뒤에서 몇몇이 노려봤지만 소용없었다.
눈을 도무지 마주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
이게 옳지 못한 방법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나.
세상과 야합하기로 했다.
덕분이라고 하면 좀 그런데, 아무튼, 우리는 얼마 있지 않나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시킬 수 있는 5개의 디저트 세트였는데, 파란색 두 개, 빨간색 하나, 녹색 두 개 이렇게 있었다.
‘다시 봐도 발색이 이게…… 말이 안 돼.’
19세기 과학으로는 무리다.
식용 색소라니.
이건 21세기에서 화학자 하나가 온 것이 확실했다.
“형님. 이거 누가 어떻게 만든 건지 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영업 비밀인데 말해 줄까?”
“다 방법이 있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이봐!”
초조해진 나는 또다시 리스턴을 써먹었다.
다행히 이번엔 폭력을 쓸 일이 없었다.
요리사가 아주 자신의 요리를 자랑스러워해서 그랬다.
게다가 나랑 리스턴이 최근 런던에서 나름 명사가 되었다 보니 더더욱 신나서 떠들었다.
“비밀이긴 하지만 뭐…… 어디 가서 떠들 분들도 아니니 가르쳐 드리죠.”
“성격이 시원해서 좋군!”
“자, 이 파랑은 황산구리, 녹색은 비소, 붉은색은 수은을 쓴 겁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