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06)
검은 머리 영국 의사-206화(206/505)
206화 이거…… [3]
수은, 비소, 납.
우리 혹시 죽으러 온 건가?
그런 건가?
“그래서 색이 이렇게 영롱하구만.”
“어쩐지. 이게 참…… 허허. 물감으로 칠한 거 같아.”
“진짜 물감에 쓰는 재료를 쓴 겁니다, 하하.”
나는 스턴에 걸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최근 들어 사실…….
내가 좀 안일해져 있긴 했거든.
우리 19세기 의사분들이 위생위생거리고…….
손만 닦는 데 그치지 않고 어?
장난 아니거든.
그중에서도 우리 조지프는 다른 놈들 손까지 다 닦게 만들고 있다구.
안티 조지프 세력이 형성되고 있을 정도로 적극적…… 아니, 어떻게 보면 야단법석이었다.
“아하? 요리사이면서 동시에 화가로군. 어쩐지 예술적이다 했네.”
“근데 그러면 맛이 좀 이상하지 않겠나?”
“하하하. 그랬다면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희 가게를 사랑해 주셨을까요?”
“그것도 그렇군!”
“맞는군그래. 그럼 어디…….”
그래서 기대했다.
아니, 안심했다?
우리 19세기가 드디어 개화되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성급했다.
이 미친놈들이…….
이런 걸로 먹을 것을 만들어 팔다니.
그리고 그걸 누구보다 말려야 할 놈들, 의사인 리스턴이나 블런델은 좋다고 집어 들고 있었다.
“잠깐!”
파는 거?
그래, 내가 뭐 어쩌겠나.
당장은 방법이 없다.
아마 불법은 아닐 거다.
식품위생법도 없는데 무슨 불법이야.
그냥 막 먹는 거지, 뭐.
하지만 내 눈앞에서 아는 사람들이 그냥 독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음식을 먹는 건 못 참겠다.
“왜 그러나.”
“아아. 이거 두 개가 다 녹색이네. 미안하네. 하나는 자네가 먹게.”
빽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리스턴은 궁금해하고, 블런델은 미안해했다.
둘 다 내가 원했던 반응은 아니었지만 만족할 수 있었다.
뭐가 되었건 간에 지금 당장 입 안으로 저 음식들이 들어가지는 않았으니까.
‘또 다른 회귀자…… 지랄 났네.’
그런 생각을 했었던 나를 죽이고 싶다.
생각해 보면 21세기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영롱한 색을 지닌 디저트가 버젓이 있다는 거부터가 이상한 일이지 않나.
줄 서서 기다릴 게 아니라 줄 선 놈들 내쫓았어야 했다.
“이거…… 수은, 납, 비소…….”
돌아라 머리야.
이 세 개 다 아주 훌륭한 독이다.
먹으면 안 돼.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그냥 먹으면 안 된다.
수은중독은 아예 미나마타병이라는 별칭이 있고, 납중독도 비슷하게 유해하다.
비소?
비소는 독이야, 그냥.
“그래, 그 세 개. 왜.”
“빨리 말하게. 나 배고파.”
하지만 수은과 납은 아직 그 위험이 많이 알려져 있진 않았다.
당장 우리 병원에서도 수은은 약으로도 쓰지 않나?
심지어 소독제로 쓰자는 의견도 있었다.
납?
납은 잘 모르겠는데…….
내가 잘 모를 정도면 아마 이 사람들도 잘 모를 거다.
어그로가 안 끌려.
‘비소…… 비소는 진짜 독이야. 그걸…… 몰랐을 리가 없어.’
하지만 비소는 다르다.
-비소? 이건 독인데?
그때…….
매독 치료 때문에 화학자 찾아갔을 때 분명 들었다.
이들이라고 해서 모를 리가 없다!
“비소는 독이지 않습니까?”
“응? 아…… 독으로 쓸 수도 있지. 하지만 이건 용법이 달라.”
“그래, 하하. 우리 평…… 이럴 때 보면 확실히 경험이 부족하다니까?”
해서 회심의 미소와 함께 비소를 들먹였다.
일격을 날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반응은 영 뜨뜻미지근했다.
리스턴과 블런델의 머리 뒤로 ‘miss’라는 글자가 둥실둥실 떠다니는 거 같아.
말 그대로 타격이 전혀 없다, 이 말이었다.
“무슨…… 무슨 소리예요. 독인데 용법이 다르다니.”
“잘 들어 보게. 지금 이건 음식으로 나오지 않았나.”
“그렇…… 그렇죠.”
“독으로 쓸 때랑은 아무래도 다르지.”
“뭐가…… 달라요?”
“의도가 다르지, 무엇보다. 그리고 색이 녹색빛이 나지 않나? 이건 그냥 비소가 아냐. 화학적으로 처리한걸세.”
“무슨?”
의도가 다르면 독성이 약해지나?
정말 그런 얘기를 진지하게 하고 있는 건가?
상대가 리스턴만 아니었으면 진짜 비소로 후려쳤을 텐데…….
“하하, 그렇습니다. 원래 비소는 색이 없어요. 하지만 산화 처리를 하고 구리와 결합을 하게 되면 이런 아름다운 녹색빛을 띠게 됩니다.”
“이것 보게. 그냥 비소가 아냐!”
“그렇다니까? 설마하니 우리가 그냥 비소를 막 먹겠나?”
스턴은 지속되고 있었다.
롤이었다면 이 요리사는 무적이다.
진짜…….
영원히 스턴을 걸 수 있잖아?
그렇다고 딜이 약한가?
아니다.
방금 궁극기에 맞은 거 같아.
‘그럼 여기에 구리도 있다는 건가.’
구리도 훌륭한 중금속이다.
산화를 시켰다면 더더욱…….
말이 좋아 산화지 녹이 슬었다는 거 아냐.
박물관에서 녹색으로 화한 금속을 봤을 텐데 그게 다 이런 거다.
아, 그러고 보니까…….
그래서 이게 녹색이구나.
물론 이건 더 열심히 녹색을 내기 위해 처리를 한 거다 보니, 더더욱 영롱하긴 했다.
“카를 셸레라는 분이 개발한 것으로 셸레 그린이라고 합니다. 최근에는 에메랄드그린이라는 새로운 대항마가 뜨긴 했는데, 그래도 역시 고급스러운 것으로 보면 이게 최고죠.”
“하하하. 이제 이해했나?”
“하하하하! 우리 평. 아직 멀었어. 공부가 여전히 필요해. 걱정은 말게. 우리랑 같이 다니다 보면 이렇게 일상 중에서도 배울 수 있는 게 참 많을 거야.”
넋이 나가서 색이나 좀 보고 있으려니, 리스턴과 블런델은 각각 비소와 수은으로 만든 디저트를 뚝딱 해치웠다.
내 앞접시 앞으로는 다른 비소 디저트를 건네주면서였다.
“먹게.”
“먹어.”
“먹어 보십쇼. 듣자니 동양에서 온 귀족분이라고 하던데…… 아마 거기랑은 음식이 많이 다를 겁니다. 하하.”
나도 이제 19세기 사람 다 되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그냥 정신이 나가서 그랬을까?
잘은 모르겠는데, 아무튼, 먹었다.
다는 아니고…….
한 절반 정도.
“우웨에엑.”
그 후로는 무슨 얘기를 했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정말이지 보기에나 멀쩡했을 뿐, 정신적으로는 완전히 혼절했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블랙아웃이 따로 없어.
“우웁.”
그렇게 병원으로 돌아온 나는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토하는 데 어려운 일은 없었다.
사방에 역겨운 것들이 깔려 있었으니.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녹색이 잘 안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시발…… 이대로 죽는 건가? 아니, 아니지. 정말…… 비소에 어떤 처리를 하면 독성이 약해지는 건가……? 색깔만 남고? 어? 그럼 개꿀인데.’
안 그래도 물감으로 쓰고 있다고 하지 않나?
그렇게 곰곰이 생각을 해 봤더니 나 이 색깔을 어디서 봤다.
그것도 상당히 최근에.
아주 감탄하면서!
‘그래, 그래…… 제이미 경. 그분 파티에서 봤어.’
녹색이 두 개나 있었는데 하나는 셸레 그린, 다른 하나는 에메랄드그린이었다.
이제 보니 그게 비소 물감이었다.
위험했다면 그만한 대귀족이 쓸까?
그것도 그렇게까지 큰돈을 내고?
말이 안 된다.
‘말이 안 돼야 하지만…….’
제이미 경은 도살자 해리를 불러 자발적으로 불알 딴 사람이다.
신뢰가 가겠나?
그럴 수가 없다.
말이 안 돼.
무엇보다 이런 방법이 정말 안전했다면, 21세기에도 이 녹색은 존재했어야 한다.
왜?
진짜 이쁘긴 해!
거의 무슨 고려청자 느낌이 날 만큼 고급스럽다니까?
‘근데 싹 사라졌어……. 그 말은…… 이게 위험하다는 거야.’
어지간히 위험하지 않았다면 감수해도 좋지 않나 싶을 만큼 이쁜 녹색이다.
내가 오죽하면 첫날 보자마자 홀려서 방을 그 녹색으로 꾸미고 싶단 생각이 들었겠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 이러한 녹색은 없다.
흐흐.
나 죽는 거야?
그런 거야……?
‘아니, 아냐. 아니다.’
나는 더 이상 구토를 해 봐야 나오는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채, 화장실에서 나왔다.
사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원래 증상이 구토와 설사……지?”
중독 증상이 없다, 지금 당장은.
그 생각에 머리가 차가워져서 그럴까?
비소에 대해 내가 산발적으로 공부하고 배웠던 내용들이 차례차례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번에 잘 안 죽는 경우도 많아. 천천히 소량의 비소로 죽이는 경우가 그래서 많았지.’
독살은 그렇게 한다.
이 비소라는 놈은 무색이거든.
냄새도 없다.
맛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데, 설령 맛이 난다고 해도 단맛이다.
세상에…….
우리가 쓴맛에 더 예민한 이유가 독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비소야말로 정말이지 완벽에 가까운 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디저트로도 먹을 수 있는 거야.’
단 독.
그리고 죽는 데까지…….
소량으로 먹는다면 시간이 꽤 걸리는 독.
이러한 특성 때문에 디저트로 먹을 수 있는 거다.
다시 말하면 지금 그 식당은 수많은 런던 시민들을 천천히 독살시키고 있단 얘기가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옷, 벽지, 카페트…….
거기서 비소가 얌전히 있을까……?
‘이거 어쩌면 진짜 대량으로 죽어 나갈 수도 있겠는데?’
제이미 경.
스스로 돈 주고 돌팔이한테 불알 잘랐으면 그냥 부끄러운 줄 알고 사실 것이지…….
왜 파티를 해 가지고 녹색 대유행을 일으킨단 말인가!
‘이건 말려야 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런 생각으로 나는 우선 리스턴에게로 향했다.
리스턴은 연구실 아니면 수술방에 있을 텐데, 최근 우리 병원에선 절단술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연구실로 먼저 향했다.
안에는 과연 리스턴이 있었는데 혼자 있지 않았다.
웬 아저씨가 하나 더 있었다.
“누구…….”
“아, 영업하는 사람인데. 내가 여기 벽지 좀 바꾸려고 하네. 칙칙하잖아.”
“아…….”
실행력이 좋기도 하지.
이 미친 양반이…….
그러고 보니 영업하러 왔다는 양반이 늘어놓고 있는 건, 죄다 녹색이었다.
벽지의 샘플인 듯한데…….
확실히 이렇게 보면 이쁘게 생기긴 했다.
그냥 녹색이 아냐.
영롱해.
하지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이건 죽음의 녹색이다.
‘이래서 서양에서 독이 녹색으로 표현되었나?’
나야 역사를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 보니 완전 개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어쩐지 확신이 든다.
이거…….
진짜 같아.
이거 맞다!
“형, 잠깐만.”
“응? 왜. 아 너도 하려고? 하긴 네 방 벽지도 오래됐지……. 거기 곰팡내도 나고, 인마. 너 건강 상해, 그러다. 새 걸로 싹 갈자.”
“그…….”
이거로 갈면 건강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골로 갑니다…….
“아저씨, 잠깐 나가 봐요.”
“네? 아니…….”
“나가라면 나가 봐요.”
“그, 알겠습니다.”
형님 걱정에 표정이 어두워져서 그럴까.
아니면 청나라 갱이라는 내 소문 때문에 그럴까.
아무튼, 영업하러 왔던 분은 금세 쫓겨났다.
남은 건 황당한 얼굴을 하고 있는 리스턴이었다.
“뭔 짓이여?”
한참 녹색으로 꾸밀 생각에 들떠 있던 그는 내게 해명을 요구했다.
나는…….
‘미래에서는 녹색을 독약으로……!’
안 되지.
이 말은 안 된다.
머리를 천천히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이 양반을 다시 제대로 된 길로 돌아오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