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08)
검은 머리 영국 의사-208화(208/505)
208화 이거…… [5]
“이게 대체 무슨 짓인가!”
경찰은…….
이 시대 경찰은 말이 경찰이지 그냥 깡패다.
왜 그러나 했더니 애초에 중세 시대부터 경비병이라는 게 그랬더라고.
영주한테 받는 돈이야 뻔하다 보니 서민들을 갈취하는 게 진짜 업이고 팁이었다고…….
그게 완전히 그대로 이어진 건 아니라지만 상당수 계승된 것이 지금의 경찰이니만큼 어지간히 흉악한 일에 대해서는 대단히 관용적이었다.
그중에서도 이렇게 높이 올라간 사람이라면 그간 보고 듣고 겪은 것이 있을 테니 더더욱 그럴 텐데, 그런 사람이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럴 만한 사안이었다.
“뭘 먹었는지 알아야지!”
“근데 왜 칼을? 옷은 왜……?”
“하하, 이거야 원. 이게 다 평이 때문일세.”
“피영……? 닥터 피영이 이런 취미가 있나.”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있던 경찰이 이제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억울했다.
내가 무슨……?
내가 언제……?
“그때 그랬지 않나? 배 가르고, 위 가르면서. ‘이 시신은 죽기 전에 장어 젤리를 먹었나 보다’라고.”
“아.”
그랬구나.
내가 그랬네?
근데 그건 정말이지 학구적인 태도였다.
결코 저런…….
매드 사이언티스트와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고.
“그러니 이 불행한 친구가 죽기 전에 무엇을 먹었는지 알려면.”
“아하…… 배를 째서 위를 열어 보면 되는군그래?”
“그렇지.”
“빨리 해 보게.”
아무튼, 이유를 납득해 버린 경찰은 말리는 대신 시신의 배 가르는 것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유가족의 동의?
그런 건 없었다.
아마…….
‘프랑스 놈이니까 저기 어디 버리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심지어 프랑스 본국으로 데리고 간다고 해도 문제였다.
보존 처리를 어찌할 건가?
암만 제이미 경이 부자고 또 신경을 써 준다고 해도…….
그 습한 바다를 지나고, 마차 타고 덜커덕거리는 동안 마구잡이로 썩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이건 우리끼리 하는 얘기긴 한데…….
그래서 그냥 아무거나 보내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잠깐 장갑 좀 끼고.”
“장갑? 그런 걸 왜 끼나.”
“하하…… 이렇게 무식할 때가. 시신에서는 미아즈마가 나온다네.”
“미아즈마가?”
“간혹 시신 만지다가 죽어 나가는 경찰이 있었지? 그게 다 이거 때문일세.”
“허어 그러면 어쩐단 말인가!”
우리의 훌륭한 리스턴은 칼로 배를 째기 전에 장갑을 꼈다.
그동안 나도 장갑을 끼고 합류했다.
호텔 방에서 사람 시신 짼다는 게…….
내키는 일은 아니지만, 다들 납득하고 있다면 뭐 괜찮지 않겠나?
게다가 이놈의 비소 살인은 어떻게든 밝혀야 할 일이었다.
자꾸 아니라고 하는데, 나는 어쩐지 비소 때문인 것 같거든.
마스크를 낀 것도 그 이유 때문이다.
고작 천 마스크 따위가 공기 중에 퍼진 입자를 막아 줄지는 의문이지만…….
‘마음 방역이다. 마음 방역…….’
주술 외듯이 외다 보면 좀 낫지 않을까.
“장갑을 끼면 대개 괜찮지.”
“이런 장갑 말인가.”
“그래. 가죽 장갑은 미아즈마가 오히려 거기서 더 자랄 수도 있다네. 고무장갑이 최고지.”
“어디서 사지, 이런 걸…….”
“걱정 말게. 여기서 사면 돼.”
“아하.”
그 와중에 영업까지 해 버린 리스턴은 어중간한 크기의 칼로 배를 냅다 째 버렸다.
지이익.
그러다 잠시 멈칫하고는 나를 바라봤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냅다 째는 건 리스턴 그 자체였으니까.
“왜요?”
“소독 안 해도 되나?”
“이미 죽었는데 뭔 소독을 해요.”
“아, 그렇지.”
위생 강박 때문이었다.
감개무량하다.
가슴이 웅장해져!
내가 진짜 이 개념을 탑재시키기 위해 얼마나…….
얼마나 모진 세월을 홀로 지새워 왔던가.
“어디…….”
“여깄네요.”
“옳지. 밖으로 꺼내 보게.”
“네.”
아무튼, 나는 이제 슬슬 썩기 시작한 시신의 위를 밖으로 꺼냈다.
그러자 리스턴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위를 갈랐다.
안에 남은 내용물이 좀 있었다.
이게 아마 한식이었다면 아니, 제대로 된 음식이었다면 아마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 음식은 남달랐다.
어떻게 조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씹기도 힘들고 소화시키기도 힘들뿐더러 맛대가리도 없었다.
요리사들부터 다 효수해야 해.
“저녁 메뉴가 뭐였다고?”
“아…… 양고기 스테이크.”
“여깄네. 이거, 이건 뭐지?”
“아…… 오이.”
“오이구나.”
위와 십이지장 그리고 소장을 면밀히 살펴본 결과, 불행한 희생자가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은 뻣뻣하게 구운 양고기 스테이크, 오이 생선 요리, 장어 푸딩, 정어리 파이였다.
‘이 사람 프랑스 사람인데…….’
영국에 돈 벌러 왔다가 이게 무슨 봉변이란 말인가.
아마 음식 먹을 때도 그리 행복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같이 먹는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는 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싶었겠지.
근데 그걸로도 모자라 죽었다.
그것도…….
구토를 하다가.
“다 같은 음식을 먹었는데 죽었군.”
“자연사 아니겠나?”
“자연사할 때 구토하는 경우는 잘 없지.”
“으음…….”
둘의 대화에 나는 조심스레 끼어들었다.
한쪽은 리스턴, 다른 한쪽은 경찰 간부라는 것을 감안해 보면 이렇게 끼어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출세였다.
“잠시.”
“아, 말해 보게.”
“그래, 닥터 피영. 자네의 신통력에 대해서는 익히 들은 바 있지.”
그 이유가 어째 좀 이상하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내 생각을 읊어 나갔다.
“비소에 중독이 되면 구토와 설사…… 그리고 발한이 생기죠.”
“그게 중독 증상인가? 치료되는 과정 아닌가.”
“그래, 평. 그건 좀 너무 나갔네.”
시발.
이건 또 뭔 소리야.
“그…… 그래요. 중독이 아니라고 치죠. 아무튼, 비소를 먹거나 하면 구토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렇지.”
“이 환자는 구토를 했습니다. 비소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합리적이지 않을까요? 이 벽지, 이거 비소 물감으로 칠한 거라면서요.”
“듣다 보니 흐음. 이 친구, 이거 벽이라도 핥았나?”
간신히 잘 나가나 싶었는데, 또 이상한 데로 튀어 나간다.
벽을 왜 핥아!
변태냐?
아니, 아니지.
프랑스 놈이니…… 그럴 수도 있긴 했다.
“핥지 않아도 가루가 흩날리지 않겠습니까?”
물론 나는 무고한 희생자를 비난하지 않는 당당한 21세기 의사다 보니, 보다 합리적인 추론을 던졌다.
“가루라. 비소 가루? 으음…….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네만…… 이게 벌써 프랑스에서는 엄청 유행한 지 오래됐네. 몇 달이라고 했지만 그건 폭발한 것을 말하는 거고 상류층은 벌써 꽤 오래됐어. 만약 이게 정말 가루가 날린다면 다 죽어야 마땅하지 않겠나?”
“가능성……을 열어 두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우리가 마취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같은 약도 사람에 따라 약간씩 반응이 다릅니다.”
“그런가?”
내 말을 리스턴이 거들어 주었다.
“그래. 사람마다 다르더군. 신기하지.”
사실 그냥 덩치와 간 해독 능력에 따라 써야 하는 용량이 달라지는 것이지만, 일단 그건 신비의 영역에 두고 있었다.
그런 거까지 다 설명하면 내가 너무 신비해 보일 거 같아서 그랬다.
이미 신통력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고 다니고 있는 모양인데…….
여기서 더 나가면 어쩐단 말인가.
사이비로 몰려서 죽거나 아니면 숫제 교주라도 되게 생겼어.
“그렇군. 그럼 이 사람이 비소에 유독 약했다, 이건가?”
“그렇죠.”
“뭐…… 알겠네. 도움이 됐어. 일단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도 알았으니 수사에 진척이 있겠군그래. 고맙네.”
“이 정도 가지고 뭘. 사형수 있으면 또 보내 주게.”
“그래, 그래. 내 잊지 않고 보내 주지.”
뭔가 이상하지만 훈훈한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다시 돌아왔다.
마냥 뚤레뚤레 온 것은 아니었다.
“형.”
“응.”
“비소 이거 영 감이 안 좋아요.”
“그래? 사실 나도 아까 거기서 좀 느꼈네. 그 방에 있다 보니까 살짝 어지러운 거 같기도 하고 말이야?”
“그래요? 형도 그랬어요? 난 갑자기 위 갈라서 미식거리는 줄 알았는데.”
“아, 그건가……?”
“하여간! 비소에 대해 보다 알아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거 진짜 독이잖아요, 사실.”
“뭐…… 그렇지. 그렇게도 쓰이긴 하지. 하지만 약으로 쓰는 경우도 있다네.”
약이라니, 시발.
이걸 대체…….
살바르산은 아직 못 만들었잖아!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헤헤.
리스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인성이 좋아진다니까.
“그…… 그러니까 그 과정이 오해일 수도 있으니 잘 보자 이거죠.”
“오해라…… 오해.”
“네. 오해. 미아즈마에 대해서도 전통적인 시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우리가 밝히지 않았습니까? 뭐 아직도 대부분은 받아들이고 있지 않긴 한데…….”
“그렇지, 그래! 생각해 보니까 그렇군? 그럼 어디서부터 알아봐야 할까…….”
“글쎄요. 문헌?”
공부의 시작은 역시 책이지.
당연한 거 아닌가.
하지만 리스턴은 좀 달랐다.
“그런 책상물림 같은 태도에서 벗어나게. 방금 전통적인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해 놓고, 옛날 가르침이나 적혀 있는 책을 보자고 하면 되나?”
“그…….”
학자가 책을 봐선 안 된다는 말…….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럴싸해!
“그럼 어쩌죠?”
“이보게!”
리스턴은 마부를 불렀다.
“네.”
“약 파는 곳으로 가지.”
“아…… 네.”
그러더니 약제소로 향했다.
약제소…….
만악의 근원 중 하나다.
아편 팅크도 저기서 팔아.
따지고 보면 그 외에 달리 쓸 약이 없는 시대이긴 한데…….
“들어가지.”
“아, 네에.”
아무튼, 우리는 약제소 안으로 들어갔다.
왜 들어가는지는 나도 몰랐다.
그냥 들어가자니까 간 거야.
“사장 나와!”
들어가서 알았다.
우리 강도다.
“네? 네?”
“비소로 만든 약 있나? 다 들고나와.”
“네? 아니, 무슨…… 누군…….”
“그게 중요한가.”
“아니, 아닙니다!”
리스턴의 얼굴을 확인한 사장은 금세 이런저런 병들을 들고나왔다.
“아무래도 이게 메인입니다.”
“파울러 용액? 그게 무슨 말이야?”
“제일 잘 팔립니다. 먹으면 설사도 하고 구토도 하고. 땀도 나고…… 결국엔 경련을 하다가 열도 내리거든요.”
설사, 구토, 발한 이후에 경련이 있었다면…….
그게 열이 내리는 거냐?
식어 가는 거지?
달리 말하면 죽어 간다는 얘기다.
이런 게 버젓이 팔리고 있다니…….
그것도 나름 과학 좀 발전했다는 19세기에!
“용한 약이긴 하구만, 열이 내린다니.”
“그렇죠.”
“일단 이것 좀 연구를 해 봐야겠는데.”
“어어.”
“왜.”
“아닙니다. 연구 잘하십쇼.”
아무튼, 리스턴은 그 약을 챙겨서 마차에 탔다.
그러곤 마부를 불렀다.
“이보게.”
“네.”
“다음은 벽지 파는 곳으로.”
“아…… 네.”
내가 마부 생각을 읽어 낼 만한 재주는 없지만…….
아마 벽지 파는 곳 사장의 명복을 빌고 있지 않을까?
나처럼.
“사장 나와!”
“이거 다 줘 봐.”
“자, 가세. 다음은 옷 가게야.”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명복을 빌어야 할 사람이 자꾸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