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09)
검은 머리 영국 의사-209화(209/505)
209화 이거…… [6]
“으음.”
“흐으음.”
우리는 약탈해 온 전리품.
아니, 아니지.
연구 목적으로 얻어 온 물품들을 강의실에 늘어놓았다.
종이, 옷감, 페인트, 벽지, 비누, 전등갓, 장난감, 초, 천, 케이크 장식, 과자, 드레스, 조화 등 무척 다양한 물건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물품에 비소가 쓰이고 있었다니.
‘모아 놓고 보면 왜 그렇게 쓰는지는 알 거 같아.’
시발.
이쁘긴 이쁘다.
색이 정말 영롱하니…… 약간 고려청자 느낌도 나고 그런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고려청자는 죽음과 연관이 없겠지만, 이건 독극물이라는 점이다.
‘아닌가……?’
이렇게 많이 쓰이고 있다면 내가 틀렸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잠시 들었다.
그렇지 않겠나?
이 양반들도 다 눈이 있고 생각도 하는 사람들인데…….
옆에서 픽픽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면 생각을 달리해 보지 않았겠어?
심지어 이 셸레 그린인지 나발인지는 나온 지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면서.
그럼 엄청 죽어 나갔을 텐데?
‘아니지…… 아냐.’
그러다 센강과 템스강을 떠올리니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이 미친놈들은…….
거의 매년 콜레라나 다른 이유로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전혀, 말 그대로 전혀 개선을 하지 않았다.
따지고 보면 무작정 이놈들 잘못이라고 보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이유를 불문하고 이 시대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으니까.
아마 단위 면적당 죽어 나가는 사람들의 숫자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지 않았을까?
그렇다 보니 죽음에 대한…….
뭐라고 할까.
관용?
아무튼, 그런 게 대단했다.
-이것 보게. 조카에게 줄 선물인데 어떤가?
어느 정도냐고 하면, 얼마 전에 블런델이 조카 줄 선물이랍시고 보여 준 게 관을 비롯한 장례식 놀잇감이었다.
어찌나 리얼한지…….
특히 관은 크기만 좀 크면 바로 런던 국립 묘지에 묻어도 될 것같이 생겼더랬다.
-시신은 깨끗이 씻어 주세요.
그뿐만이 아니다.
어떤 가족의 일인데…….
죽은 아이를 씻겨다 줬더니 옷을 입혀다가 같이 사진을 찍었다.
그 애 옆에는 동생이 앉아 있었다.
가족사진을 찍기 위함이었다.
죽은 가족이 끼어 있는.
“많기도 하네.”
“그러니까요.”
내 복잡다단한 감상과는 달리 리스턴의 감상은 간단하기만 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존나 많았다.
비소 성애자들인가 싶을 정도로.
“여기에 다 비소가 있는데…… 그 비소가 독성을 품고 있다면 어떻게 될 것 같나.”
“죽겠죠.”
“근데 안 죽었잖아?”
“모르죠……. 그건.”
“모르나? 하긴, 모르지. 하지만 상품을 취급하는 사람들도 아직은 멀쩡하던데.”
“보니까 약제소 말고는 다 장사한 지 그렇게까지 오래된 것 같지는 않았어요.”
“하긴…… 그것도 그렇긴 하네. 흐음…… 그럼, 사람들을 잡아 와야 하나.”
대체 왜 여기서 결론이 사람 잡아 오는 걸로 튀는 걸까?
한 가지 슬픈 일은 거기에 대고 내가 뭔가 더 해 줄 말도 없다는 점이었다.
이렇게 비소 관련 물품만 늘어놔서 뭐가 되겠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와…….”
“엄청 이쁘다.”
“와…… 고급스러워.”
우리가 약탈해 온 많은 물품은 소문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지금 런던 사교계를 강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녹색 드레스나 벽지는 물론이거니와, 줄 서서 사 와야 하는 디저트까지…….
그 외 각종 고급스러운 녹색 아이템이 강의실에 즐비해 있다는 소문에, 의과대학 학생들뿐만 아니라 다른 쪽 놈들까지 몰려들었다.
통제?
그런 건 필요 없었다.
-내 물건이니 손대는 놈은 죽는다.
리스턴의 서슬 퍼런 경고에 의해 모두들 보고만 있었다.
간혹 손을 가까이 가져가는 놈들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가 다였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잡아 올까?”
“그럴까요?”
해서 우리는 콜린에게 대강의 확인만 맡겨 두고 집으로 향했다.
아니, 리스턴만 그랬다.
나는 뭘 두고 온 것이 생각나 강의실로 다시 향했고.
그곳에서…….
“어, 어!”
그러니까 문이 닫혀 있던 강의실에서 쓰러져 있는 환자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웁.”
구토 중이었다.
정확히 같다.
그 환자와.
“이런 시발!”
나는 욕설과 함께 일단 학생을 밖으로 끌어냈다.
“리스턴! 블런델!”
“조지프, 앨프리드, 콜린! 야, 콜린 너 어디 갔어!”
그러곤 내가 친하게 지내는 놈들을 전부 불렀다.
누구 하나라도 와서 도우라는 뜻이었는데…….
“으.”
콜린이 제일 먼저 나타났다.
약간 얼굴이 창백해 보였다.
“뭐야, 너 괜찮아?”
“토, 토가. 나와서. 어지러웠습니다. 죄송…….”
생각해 보니까…….
확인을 위해서 제일 오래 저 방 안에 있던 게 바로 이놈이었다.
“이런 망할. 너 병동 가! 일단 가서 누워 있어!”
“그…… 네, 넵.”
진짜 힘든 모양이었다.
원래 같으면 저는 괜찮습니다!
19세기 악으로 깡으로 정신으로 버티겠습니다!
이깟 비소! 의학에 도움이 된다면…… 하면서 한 움큼 씹었을 텐데 누우라는 말에 한달음에 가고 있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뭐지?”
조지프와 앨프리드는 해부를 하고 있었나…….
장갑을 벗으면서 뛰어오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요새 우리 조지프가 약간 강박증에 걸린 거 같거든?
다행히 다른 강박은 아닌 위생 강박이긴 한데.
“으, 으악.”
“으으읏.”
지도 고통스러워하면서…….
철로 된 통에, 보통은 양주 넣어 다니는 그 통에 든 염화석회를 자신의 손과 앨프리드의 손에 각각 들이부었다.
그래, 비누도 아니고 저 정도로 닦았으면…….
“으앗, 이 시발놈이.”
나도냐?
“손 닦는 데 교수 학생이 어딨나.”
“그…… 그래.”
정도인 이상, 화를 내기도 뭐하다.
아무튼…….
손을 닦고 있잖아…….
미아즈마 죽이고 싶다잖아.
장족의 발전을 해낸 사람에게 뭐라고 한다면, 그건 21세기 문명인으로서 온당한 처사가 아니다.
“근데 왜 불렀어?”
“이 사람은 누구야?”
“저 안에 쓰러져 있었어.”
“자연사?”
“해부실로?”
“아직 안 죽었어!”
미친놈들이…….
왜 멀쩡한 사람을 죽이고 그러냐.
“아, 살았군.”
“토를 하네. 배를 열어야 되나.”
아니, 아니다.
배를 열면 안 돼.
“비소야, 비소.”
“비소? 아……. 안에 든 것들이 다 비소라고 했지.”
“그래. 중독 같아. 비소 먹으면 구토, 설사, 발한이 있잖아. 슬슬 몸이 식고 있어. 이러다 죽어!”
“그럼 안 되지, 그건.”
우여곡절 끝에 우리는 환자를 끌고서 병동으로 향했다.
그러자 먼저 와서 누워 있던 콜린이 넋 나간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안, 안녕하세요…….”
“그냥 쉬어. 언제부터 이런 거야?”
“사실 저한테 확인 맡기시고 한 한 시간 후부터?”
“한 시간?”
“네.”
“이른데……. 뭐지? 뭔가 다른 걸 했어?”
“약간 어지럽길래, 파울러 용액을 먹었습니다.”
“아, 이런 미친.”
비소 중독 증상에 비소를 먹인다라…….
신박한 발상이다.
“수액!”
“오케이, 수액.”
“제작부터 해야겠구만. 금방이지.”
“비명 듣고 왔네. 수액이라고? 맡겨 주게나.”
여전한 19세기 의학에 절망할 뻔했지만…….
수액이라는 말에 귀신같이 움직이고 있는 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조지프, 앨프리드 그리고 이제 합류한 블런델까지…….
모두 센강의 전사들 아니던가.
파리 콜레라 사태 때 사망자를 적어도 절반 이상 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이었다.
위생 관념이 철저해진 거야 뭐 당연한 거고…….
보글보글.
물 끓이고.
주르륵.
증류하고.
타다닥.
계량해서 소금 치고.
저건 솔직히 나도 못 한다.
왜?
아니…….
왜 아직도 인치, 파운드에 집착하는 거야?
적응이 안 돼…….
“완성됐어.”
“바늘도 소독 싹 했어.”
“칼도!”
아무튼, 나는 수액 어벤져스의 도움으로 완벽하게 제조된 수액을 받을 수 있었다.
문제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즉석에서 제조된 수액을 곧장 넣을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어…….
뜨거워.
입안 점막처럼 혈관 내벽이 엄청 튼튼한 건 아니거든.
아마 이대로 부었다가는 그대로 익을 거다.
그렇다고 미리 생산한다?
보존이 불가했다.
냉장고는커녕 제대로 된 밀폐용기도 없는 시대지 않나.
“좀만 참아라.”
“으……. 네. 웁.”
식을 때까지는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만 했다.
그나마 콜린은 좀 나아 보였다.
얜…….
애가 강하잖아.
불어 터진 시신 보고 멘탈이 나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거 보고 안 나가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거니까?
“너는 어때?”
“으…….”
그에 비해 쓰러져 있던 환자는 거의 의식이 나가고 있었다.
“너는 대체 뭘 먹은 거냐?”
“푸, 풀인 줄 알고.”
“풀?”
시발놈이 조화를 씹었나.
대체 왜 그랬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우웁. 우우웁.”
구토를 하다가…….
“어, 어어.”
설사도 하고…….
“으, 으으으으.”
이제는 발한과 함께 오한이 찾아오고 있었다.
이걸 해열 작용이라고 생각하고 약을 쓰고 있는 모양인데…….
사실은 죽어 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었다.
옛날 사람들이 워낙 강해서 식었다가 회복한 거지, 21세기 나약한 현대인들이었으면 다 뒈졌어.
“수액! 여기가 급해!”
“어, 아직 좀 뜨끈한데?”
“오히려…… 오히려 좋아. 익지만 않으면 돼. 칼!”
“어, 오케이.”
급하다.
급성 중독 증상이 아주 빠르게 진행 중이야.
그럴 만도 했다.
조화의 녹색…….
‘진했지. 아주 영롱하게 진했어.’
비소의 농도 또한 장난이 아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칼로 목을 툭 하고 베었다.
죽였다는 게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바늘은 조악하거든?
그냥 푹 하고 찌르면 혈관은 피해 가고 다른 데를 찔러.
아니면 찢어 버리거나.
두께가 얇은 주삿바늘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수액을 넣을 용도로 쓸 때는 그런 걸로는 안 되다 보니 두꺼워서 더 그랬다.
지이익.
해서 나는 살갗을 베고, 좀 들어가서 혈관을 직접 보고 찌르기로 했다.
현대 의학에서는 굉장히 낯선 개념이고 나도 거의 해 본 적이 없던 짓이지만 나도, 보조의를 맡고 있는 이들도 아주 익숙했다.
왜?
파리에서 엄청 했거든!
더욱이 그때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 나가고 있는 데다가 다른 곳에서 파리로 들어가면 죽는다는 소문까지 퍼져서 물자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여기는 그에 비하면 뭐 천국이지.
살다 살다 내가 19세기 런던을 두고 천국 운운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푹.
아무튼, 그렇게 됐다.
“으. 으으읍.”
“느낌 이상하지? 근데 움직이면 죽으니까 가만히 있어. 못 하겠으면 말하고.”
나는 앨프리드를 돌아보았다.
세상에서 가스통 제일 잘 돌리는 우리 선배.
지금도 끼릭끼릭거리고 있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돌려다 먹일 터였다.
“콜린. 너도 짼다?”
“네네. 저는 근데…….”
“너는?”
“마취를, 부디.”
“아.”
아하.
우리 환자분 움직이던 게…… 아파서였구나?
미안하네.
하하.
까먹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