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1)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1화(211/505)
211화 독이다, 독 [2]
둘이 악랄한 미소를 띠고 있다 보니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뭔가 하고 사방을 둘러보다가 나는 내 바로 곁에 누워 있던 환자가 마침내 눈을 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하하.
아이코,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만.
언제 일어난 거야.
설마 우리 대화를 들었나?
“쓱싹해야 하는 상황인가.”
아, 이거 나 아니다.
리스턴이야.
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 같지만 나 아냐.
“누굴……?”
“들었나 해서.”
리스턴은 가만히 환자를, 그러니까 학생을 들여다보았다.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의사가 시신 공급 얘기하다가 쓱싹하니 어쩌니 하는 게 말이 되나?
이해가 안 될 만한 얘기다, 이 말이다.
그러니까 좀 얼탈 수 있을 텐데…….
본능적인 공포심 덕분일까.
아니면 나름 머리가 좋은 애들이 오는 곳이라 그럴까.
“무슨 일이 있었죠?”
“하하, 이 친구.”
“저는 정말 지금 깨서요.”
“그래, 이 정도면 믿을 만하지.”
이게 연기면 상 줘야 된다.
아마 연기겠지만.
아무튼, 별일 없을 거란 확신이 생겼다.
해서 우리의 학생은 죽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뭐, 이건 그저 사소한 일일 뿐이었다.
이제부터 우리는 런던이 저 녹색 독에 잠기지 않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보통의 의사에게는 절대 무리인 일이었다.
특히 나처럼 동양인이다? 눈앞에서 네가 먹어 보라고 할 가능성이 100%다.
“경찰부터 부르지.”
“네.”
하지만 난 혼자가 아니다.
리스턴이 있다.
그리고 이 리스턴은 오직 나만이 컨트롤 가능하지.
‘아, 원장님도.’
그러고 보니 원장과 리스턴은 무슨 인연일까.
존나 깐족거리던데…….
보통의 리스턴이었으면 벌써 두 주먹을 피로 물들였다.
어지간한 의사들은 자기 피지컬이 아무리 좋고 또 단련이 되어 있어도 실제로 패진 않는데, 이 사람은 얼굴 교정의 달인이기도 하지 않나.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어쩌면 원장님도 고수일까?
아니, 그럴 수는 없다.
기술이 힘을 이기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리스턴 정도의 힘이라면 기술이고 나발이고 다 무용지물이다.
“뭔 생각하나?”
“아뇨, 아닙니다.”
“아무튼, 경찰 불렀으니…… 얘 똥부터 좀 씻기지.”
“아, 네.”
“자네가 하진 말고. 교수는 이런 거 하는 게 아냐. 야, 너 친구 없어?”
환자지만 병원 사람이 아닌 친구를 부른다.
이게 19세기지.
실제로 환자 시트 같은 거…….
따로 돈 안 주면 환자 보호자나 환자 본인이 갈아야 한다.
문제는 환자도 의사도 시트를 꼭 깨끗한 걸로 써야 하나 하는 의문이 진하게 있는 시대기 때문에, 대부분의 침대가 썩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 비하면 뭐…….
“있습니다.”
“어, 잘됐네. 불러. 일어날 수 있지? 얘 이거 계속 꽂고 있어야 되나?”
“이제 입으로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뽑지.”
“네.”
“으으.”
얘는 상황이 좋다.
바로 어제 비소 먹고 중독되어서 요단강 근처 헤매다가 돌아온 애한테 좋네 마네 하는 게 좀 그렇긴 한데…….
그래도 시트도 깨끗하잖아?
비록 똥은 지려서 바지가 좀 그렇긴 하지만, 센강 페스트로 단련된 수액팀 덕에 목숨은 건졌다.
거기에 더해 위생 강박 때문에 뭘 하든 간에 손부터 닦는 의료진에게 둘러싸여 있다.
전자야 뭐 시큰둥할 수도 있겠지만, 후자의 경우엔 정말 대단한 거다.
21세기 대학 병원 가도 이렇게까지 강박적으로 닦진 않아.
“잠깐 움직이지 마. 피 난다?”
“네, 네. 으. 윽!”
“아프게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봉합해야 피가 덜 나.”
“네, 네!”
아무튼, 나는 바늘을 뺐고, 리스턴이 그 찰나의 틈을 타서 봉합했다.
기껏해야 한 땀이긴 했다.
하지만 구멍 난 정맥을 뜨는 한 땀이기에 그리 쉬운 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이게 가능한 걸 보면 확실히 리스턴의 외과 의사로서의 재능과 노력은 장난이 아니다.
잘만 가르치면 나보다 더 대성할 거야.
이미 나이를 좀 많이 잡수시긴 했는데…….
‘뭐 설마 요절하거나 하진 않겠지?’
서른 살이 뭐 그리 많은 나이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19세기 평균 수명은 40대에 머무르고 있다.
귀족들이야 훨씬 오래 사는 경우도 있고, 평균 수명 자체가 영유아 사망으로 인해 팍팍 깎여 나가기도 하지만…….
와서 마흔이라는 사람들 보면 진짜 깜짝 놀랄 거다.
얼굴만 보면 거의 환갑이야.
리스턴도…… 적어도 마흔은 훌쩍 넘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 천천히 관리시켜서 오래오래 써먹어야지.’
리스턴의 재능도 아깝지만, 이 장미칼보다도 더한 만능 칼이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시려 온다.
안 되지, 그건.
안 될 말이야.
내가 지킨다, 리스턴.
“으아악!”
“아프게 하려는 게 아니라 눌러야 피가 안 나서 그런 거야.”
“으아.”
“너무 그렇게 의심하는 눈초리를 지으면 진짜 아프게 누르는 수가 있네.”
“읍.”
이것 봐.
내가 짼 곳은 목이다.
원래 중심 정맥관 삽입에 제일 많이 쓰이는 곳은 쇄골하정맥이고, 여의치 않은 경우에 허벅정맥(대퇴정맥)이나 경정맥으로 가는데…….
쇄골하정맥…….
‘눈 감고도 지를 정도긴 하지.’
제대로 된 기구만 있으면 그렇다.
하지만 여기 뭐가 있냐…….
바늘조차 어거지로 깎아 만든, 송곳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물건인데 이걸로 쇄골 밑…….
그러니까 가슴을 찌르라고?
그러다 폐에 구멍 슝 나면…….
환자 목숨도 천국인지 지옥인지로 슝이다.
허벅정맥도 사정은 비슷하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목을 살짝 째고 경정맥에 박아 넣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생각보다 더 겉에 있고 하다 보니 다 좋은데, 단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수, 숨이.”
“어어. 참아.”
눌러야 하는 곳이 목이다 보니 가끔 이렇게 숨이 막힌다.
“끕끕.”
“어…… 좀만. 2분만.”
“끄으…….”
그나마 다행인 건 완전히 틀어막는 건 아니란 점이었다.
한 70% 정도 눌릴 거 같다.
“됐다.”
“휴.”
“자 이제 씻기게.”
“네, 네!”
뒤에 서 있던 환자의 친구들은 리스턴의 명령을 무슨 사신의 명령이라도 된다는 듯 즉시 떠받들었다.
그럴 만했다.
딱 오자마자 한 손에는 바늘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친구의 목을 사정없이 누르는 꼴을 봤을 테니까.
“똥물 목에 안 튀기게 조심하고. 거기에 있는 미아즈마에 당하면 친구 죽어.”
“네, 네! 살려 주십쇼!”
“친구가 죽는다고.”
“네네!”
너무 주의를 주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전혀 지나치지 않다.
19세기 위생 관념이라는 게 진짜 보통이 아니라서 그렇다.
냄새만 안 나면 오케이라는 생각이 많아서…….
지금도 씻기라고 했지만 아마 대강 물만 끼얹고 덩어리 좀 없다 싶으면 오케이 할 가능성이 컸다.
물론 우리의 프로 위생러 조지프가 갔으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 마침 왔구만.”
그렇게 환자를 씻기기 위해 보내 놓는 동안 경찰이 왔다.
전에 왔던 경찰이었다.
상당히 높아 보여서 물어보니 부서장쯤 된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제이미 경과 연관된 사망 사건이다 보니 경찰 쪽에서도 신경을 쓰는 듯했다.
아닌 게 아니라, 평범한 빈민 살해 사건이었으면 자수하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제대로 된 수사도 안 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아니, 진짜로 그냥 시신을 내다 버리더라니까…….
“뭔가 알아낸 게 있다고 하던데.”
“그렇지. 자, 일단 저 강의실로 가 보지.”
“그러지.”
경찰은 리스턴 그리고 나와 함께 비소 제품이 늘어서 있는 강의실로 향했다.
앞에는 콜린이 지키고 서 있었다.
“아무도 못 들어갔습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우리는 녀석을 치하한 후, 강의실 문을 열었다.
느낌이겠지만 뭔가 녹빛 가스가 우리를 향해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마 실제로 그랬을 거다, 저기 창문을 열어 두지 않았다면…….
“이게…… 이거 엄청 비쌀 텐데. 설마 어제 신고 들어온 강도가?”
“강도라니. 엄연히 합법적으로 협찬받은 건데.”
“협찬…… 아무튼, 말해 보게.”
“이 안에 있던 학생이 어제 비소 중독 증상을 보였어. 둘이나. 하나는 요 앞에 있던 놈인데 그나마 금방 회복됐고, 다른 놈은 이제 겨우 의식 회복해서 똥 닦고 있네.”
“똥을……?”
경찰이 혼란스러워하는 거 같아서, 내가 설명을 덧붙였다.
프랑스였다면 끝까지 닥치고 있었어야 했겠지만 여긴 런던 아닌가.
내가 인마 경찰 수사도 돕고, 귀족 불알 따는 것도 막고, 예비 여왕한테는 해부 쇼도 한 번 더 보일 예정이란 말씀.
경찰 또한 내 위명을 잘 알기에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비소 중독 증상 중엔 설사도 있죠.”
“아…… 치료 과정 중에서도 그런 게 있다고 들었네.”
하씨.
때릴 뻔?
아무리 내 위명이 대단해도 경찰을 치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겠나.
간신히 참았다.
“그, 그렇죠. 하지만 중독에도 분명 그 증상이 있습니다. 그 전에 아픈 곳도 없던 애들인데 증상이 나타났으니 치료 과정이 아니라 중독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
제대로 이해시키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긴 했다.
일단 리스턴이 방문 걸어 잠그고 몇 날 며칠 두고 떠들어 대면 되겠지.
하지만 내가 이런 경찰 하나를 위해서 그래야 할까?
아직 리스턴을 비롯해서 블런델 그리고 제자들도 명확하게 개념을 잡진 못했거늘.
내 시간과 노력은 명백히 이 사람들을 위해 기울여야 할 터였다.
“으음, 그럴싸하군.”
“하나는 아예 죽을 뻔했어. 치료는 아니지.”
리스턴이 나를 거들었다.
런던 최고의 명의와 떠오르는 스타인 내 말에 경찰은 좀 흔들리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흔들린 건 아니었다.
“그럼 이 비소 제품들이 다 위험하다는 건가?”
“그렇지. 이거 다 금지해야 하네.”
“금지라…… 그게 가능할 거 같나……?”
경찰의 말에 나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사람이 죽는다는데 그걸 왜 금지를 못 한다는 건가!
‘아니, 아니지…… 백린 성냥도 런던에서만 금지됐잖아…….’
가출했던 어이는 순식간에 다시 돌아왔다.
상황이 달라져서는 아니었다.
이 시대에 대한 이해를 불현듯 해 버려서 그랬다.
19세기 런던.
자본주의의 끝판왕.
사람이 죽어 나가도 돈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그래도 이건 사람이 죽는다니까?”
“언제는 안 죽었나. 하지만…… 귀족도 죽을 수 있겠군. 드레스도 위험하다, 이거지? 자네 말은.”
“아, 그렇지. 귀족이 죽을 수 있다, 이 말일세.”
“근데 이걸 증명하려면 보다 확실한 방법이 필요할 거 같은데…….”
“확실한 방법?”
그런 게 있으면 내가 했지.
딱 불만 어린 표정을 지으려는 찰나 경찰이 말을 이었다.
“하필 제이미 경이 이 사업에 손을 대고 있단 말일세. 힘 있는 귀족이 이런 말 하나에 휘둘릴 거 같나.”
“아.”
진짜 하필 제이미 경이다.
그 사람 전립선 불편하다고 불알도 자른 사람이잖아.
과학적인 사고하고는 거리가 대단히 먼 인간이란 말이었다.
진짜 아마 그 정도 사건은 터져야 물러설 거야…….
“게다가 파리에서 너무 유행 중이라 귀족들이 진짜 관심이 많네. 미안하지만…… 나로서는 아는 사람들에게 조심하라는 말밖엔…….”
불알 잘못 잘랐을 때의 충격을 준다…….
“그렇군. 흐음.”
어?
“잠깐.”
경찰과 리스턴이 체념하려고 할 때쯤, 귀신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귀신같아서 문제긴 한데…….
“방법이…… 있겠나? 보통 방법으로는…….”
“가만있어 보게. 내 아우가 보통 악독한 게 아니거든.”
나는 리스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랜 화를 내야 마땅하겠지만, 이건 좀 그래서 그랬다.
“사형수…… 없습니까?”
“응?”
“입혀 보죠. 드레스를.”
“오.”
경찰은 좀 놀란 얼굴로, 내 눈을 피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리스턴?
리스턴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