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Haired British Doctor RAW novel - Chapter (212)
검은 머리 영국 의사-212화(212/505)
212화 독이다, 독 [3]
“정말 악독한 아이디어군그래…….”
“하지만 솔깃했지?”
“솔직히 말하면 그렇다네.”
“나도 그랬네.”
둘은 무슨 거대한 악이라도 보는 양 나를 보고 숙덕거렸다.
그럴 거면 저기 가서 하지, 가까이에서 떠들고 있다 보니 아주 잘 들렸다.
사실…….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 제외하면 나한테 얘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
“세상에 그 드레스를…… 의사란 사람이 입으면 사람이 죽을 거라는 걸 알면서 입혀 보겠다니.”
“뭐, 이제 와 하는 얘기긴 하지만. 템스강 물을 사람에게 먹이기도 했다네.”
“허어.”
“아니, 형. 그건.”
“하지만 그 덕에 우리는 미아즈마의 정체를 보다 제대로 밝힐 수 있었지. 이건 독기 따위가 아닌 실재하는…….”
“독기 아닌가?”
“으음.”
내가 중간에 난입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템스강 물 먹인 것도 내가 되어 버렸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어떨지는 모르겠는데, 경찰은 한 번 허어 하고 놀라더니 이걸 딱히 범죄와 엮으려는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냥 뭐 연구의 일환이라고 하면 다 넘어가 주는 분위기였다.
그러니 비소 드레스는 어찌 되겠나.
“아무튼, 사형을 그렇게 해 본다라…….”
“그래. 몇 명인가, 이번에 목매달 놈들이.”
“이번 주에만 셋은 되지.”
셋이라…….
적다.
치안이 좀 좋아졌나 싶었다.
아니면 우리 런던 경찰의 수사 기법이 좋아졌거나.
‘아니, 그럴 거 같진 않은데…….’
수사 기법이라는 게…….
있기는 하다.
있기는 한데, 대부분이 미제 사건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사실상 새로 발생하는 미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잖아?
여기서는 범인이 잡히면 기적이었다.
아니, 전에 살인범 하나 잡고 나서 축제를 벌이더라니까.
괜히 셜록 홈즈가 19세기에…… 나와서 인기를 얻은 게 아니다.
아무튼, 분위기가 잠시 좀 그랬다가 이내 내게 호의적인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셋이라. 셋.”
리스턴은 코를 쓰다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렇게 하지.
그러다 마치 솔로몬이라도 된 듯 명쾌한 답을 내렸다.
“하나는 비소 벽지를 처바른 곳에 가둬 보지. 아주 좁은 곳에.”
“아…… 그래. 그리고?”
“다른 하나는 비소 드레스를 입히고. 다른 하나는…… 글쎄. 둘 다 해 봐?”
“둘 다라. 근데 비소 이거 다 비쌀 텐데. 죄수들한테…… 흐음.”
“이거 가져가서 쓰게. 협찬받은 거라니까? 좋은 데 쓰면 주인들도 좋아할걸세.”
“역시…… 불철주야 우리 런던을 위해 일해 주는 명의답군그래. 고맙네. 내 바로 가서 준비를 하도록 하지. 그럼 그거…… 보겠나?”
뭘 보라는 걸까.
고민할 이유는 없었다.
실험이나 연구라는 이유만 대면 모든 것이 가능해지는 시대 아닌가.
“봐야지. 어찌 되는지. 그래야 이게 정말 비소인지 다른 이유로 죽는지 볼 수 있지 않겠나.”
“그렇지. 역시 참의사야. 그럼 준비되는 대로 부르지. 집행은…… 뭐, 내가 서장한테 말해서 오늘 안에 해 보도록 하겠네.”
“고맙네! 역시 참된 경찰이야!”
참의사와 참된 경찰이라면, 원래라면 그냥 죽을 운명인 사형수로 하여금 마지막에라도 인류에 공헌하게 만드는 일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멀쩡히 다른 날 죽기로 되어 있는 사람의 죽음을 당기는 것이 되나 싶기는 했지만…….
“아, 근데 왜 사형이지?”
리스턴도 사람이다 보니 좀 찜찜했는지 연유를 물었다.
이 시대 사형수라고 하면 다 죽어 마땅한 놈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아닌 경우도 있거든.
대개 현지에서 죽이는지 여기까지 오진 않지만, 정치범이나 식민지 독립운동가들도 있었다.
“아…… 다 강간에 살인범들일세.”
“마음이 아주 편해지네.”
“그래. 가족들도 다 와서 지켜볼 거야. 아.”
“왜 그러나?”
“제이미 경도 와서 봐야 할 테니…… 시간을 맞춰야 할 수도 있겠어. 아무튼, 정해지는 대로 보내 주겠네. 과정에 따라서는 가족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겠군. 목매달기는 안 그래도 너무 인도적인 거 아니냔 말이 있거든. 너무 금방 가잖아.”
“아아. 그렇지. 그럴 수도 있겠어. 바로 연락 주게.”
“알았네.”
좋게 좋게 끝났다.
잔잔바리 경찰들이 비소 드레스랑 벽지 같은 것도 들고 갔다.
리스턴은 그 꼴을 보고 있다가 팔다리 자르러 갔고…….
나?
나는 좀 잤다.
아무리 수액 특공대랑 함께했다지만 거의 밤을 새워서 그랬다.
‘따지고 보면 여기…… 대학 병원인데 근무 시간에 이렇게 자도 되는 걸까?’
연구실에 누워서 이런 생각을 하다가, 다 부질없게 느껴져서 눈을 감았다.
대학 병원이라니…….
이게?
으아아아아.
굳이 들으려 애를 쓰지 않아도 비명이 들려온다.
마취제가 나오긴 했지만 이건 전신마취지 않나.
그렇다고 안전한가?
그것도 아니다.
나조차 피치 못할 상황이 아니면 안 쓰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소마취제를 반드시 찾아봐야 한다.
리도카인 같은 거 있으면…….
‘그거면 어지간한 큰 수술도 다 할 수 있지.’
21세기에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면, 전신마취를 했다.
그편이 수술받는 입장에서만이 아니라 하는 입장에서도 훨씬 수월하니까.
하지만 워낙에 오래 살던 시절인 데다가, 암같이 큰 병 앓은 지 오래된 경우에는 많이 좋아진 전신마취도 견디기 어렵다 보니 국소마취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정도로 큰 수술까지 했냐면…….
내가 그거 뭐지.
그래, 가슴 근육 돌려서 막는 것도 했다.
“으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었다.
감히 밤새고 곤히 잠든 교수를 깨울 사람이 없어서 그랬다.
그에 비해 학생은 잠을 잤건 말건, 돈을 냈건 말건 간에 부려 먹힘 당하기 일쑤였다.
콜린이 그랬다.
아니, 쟤는 비소 중독당했었는데…….
“너, 뭐 하냐?”
“아, 저…… 리스턴 교수님이 팔 잡으라고 해서요.”
“안 잘렸어?”
“긴장했더니 괜찮았습니다. 그리고…… 강장제가 있어서요.”
“강장제? 그런 게…….”
“그게.”
“아니, 아냐.”
뭔가 안 좋은 느낌이 딱 들었다.
콜린, 저 새끼다 보니 더 그랬다.
생긴 건 인종차별하는 게 딱인 백인 귀족 그 자체인데, 하는 짓은…….
야만인이잖아.
오늘 별일이 없는 상태면 모르겠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지금 여기서 머릿속이 더 복잡해지면, 어?
안 될 거 같아…….
“나중에. 근데 너도 가?”
“당연히 가야죠.”
“그래, 몸은?”
“괜찮습니다. 저 튼튼합니다.”
그거야 알지.
강장제라고 해 봐야 멀쩡한 걸 먹었을 리가 없지 않나.
오히려 기운을 떨어뜨리지 않으면 다행일 텐데…….
아무튼, 나는 우연히 마주친 콜린과 방금 팔다리 자르느라 피투성이가 된 리스턴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에이, 찝찝해. 조지프, 그거 줘 봐라.”
“네!”
리스턴은 피 묻은 얼굴로 인상을 썼다.
존나 무서웠다, 진짜로.
한참 떨어져 있던 행인들조차 화들짝 놀라 넘어질 정도였다.
“으으…… 아프군.”
“좀 아파도 죽는 거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래, 콜레라에 걸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하여간, 리스턴은 그렇게 인상을 더 써 가면서 페놀을 잔뜩 묻힌 새하얀 천으로 얼굴과 목, 팔뚝, 손을 닦았다.
진한 표백제 냄새가 곧 마차를 가득 채웠다.
과장 조금 보태면 토할 거 같은데, 조지프는 거기다 대고 코를 벌름거리고 있었다.
“아, 생명의 냄새.”
저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다 미친놈이라고 하면서 피하지.
근데 그래도 괜찮긴 했다.
일단 조지프 자체가 거구인 데다가 리스턴 라인으로 분류되어 있어서 그랬다.
저놈 건드렸다가 뒷일 치루느니 그냥 손 좀 아프고 말지 싶을 것이었다.
“흐으, 좋군.”
페놀을 이 리스턴이 밀지 않았나.
처음엔 내가 들고 온 요오드랑 사용 빈도가 비등비등하더니만 이젠 페놀이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 같아도…… 요오드는 좀 그렇긴 하다.
상처에 닿기라도 하면 뒈지게 아픈 것도 아픈 건데, 노랗게 물드는 게 문제였다.
날 싫어하는 놈들은 저 노랭이가 이참에 백인들을 물들이려 음모를 꾸몄다고 지랄했다.
너무 억울해서 프랑스에서 들고 온 거라고 할까 하다가 말았다.
-그 말 했다간 나도 못 막아 주네. 프랑스의 지령을 받은 청나라 갱이라…… 당장 죽을걸.
리스턴이 말렸다.
듣고 보니 진짜 그렇게 될 거 같아서 그랬다.
“으읍, 이게 무슨 냄새입니까?”
아무튼, 그러한 연고로 인해 페놀은 이 지독한 냄새에도 불구하고 소독제 1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생명의 냄새일세. 익숙해지는 게 좋아, 살고 싶으면.”
우리는 앞에 경계 서고 있던 경찰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경찰서는 언제 봐도 멋졌다.
물론 멋진 모습만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지하엔 차라리 지옥이 낫지 않을까 싶을 만한 공간이 있었다.
“이쪽일세.”
오늘?
오늘은 아마 더할 거다.
아래로 향하는 층계 옆에 아스라이 빛나는 가스등에 비친 경찰들의 얼굴은 말 그대로 귀신 같았다.
아니, 진짜로.
“이분들 괜찮은 겁니까?”
“아…… 작업하고 좀 어지럽다고 했네. 그렇지 않아도 의사 오는 김에 좀 봐 달라고 하려고 했지.”
“어지러워요? 핏기가 하나도…… 없는데?”
“우웁.”
“토하잖아!”
“미안하네. 명색이 런던 경찰이라는 것들이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중독이잖아!
생각해 보니 지하는 좁고 어두운 것을 차치해도 일단 환기가 안 되잖아.
뭐 환기해 봐야 런던 공기가 밀고 들어오겠지만, 그래도 비소보다는 낫다.
“먹는 수액!”
“1호!”
“2호!”
“3호! 출동!”
내 명령에 의해 앨프리드, 조지프, 앨프리드 3형제가 출동했다.
일단 적당한 용기를 찾고 물 끓여서 삶고, 증류하기 시작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고작 10분.
진짜 미쳤다.
얘네들과 함께라면 30명 정도는 우습지 않게 수액 꽂아 넣을 수 있을 거다.
게다가 지금은 의식은 있는 상태다 보니 소금만 대충 타다가 먹이면 되어서 훨씬 수월했다.
“진귀한 광경이로군.”
경찰은 핏기가 사라졌다가 이내 조금씩 돌아오고 있는 부하들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리스턴은 그런 경찰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아래서는 더 진귀한 구경을 할 수 있지 않겠나?”
“하하. 그렇지. 인류사에 이렇게 녹색이 가득한 사형 집행은 없었을걸세.”
“사치스러운 사형 집행이지, 그렇지 않나?”
“그렇지. 드레스가 너무 작아서 조금 잘랐는데, 괜찮나?”
“협찬이라, 괜찮네.”
원래 협찬은 돌려줘야 되는 거라고 얘기를 하려다 말았다.
나도 사실 돌려줄 생각은 전혀 없었거든.
저거 줘 봐야 뭐 하나.
사람이나 죽이지.
“이제 괜찮겠네. 지하에는 얼씬도 하지 마세요. 알았어요?”
“네에. 아휴.”
하여간, 나는 경찰들 살려 놓고 아래로 향했다.
작업 한창 할 때 더 날려서 그랬는지 지하 전체가 비소로 자욱하거나 하진 않은 느낌이었다.
물론 확신할 수는 없었다.
비소는 냄새가 없거든.
“혹시 몸 이상하면 서로서로 말해 주자.”
“네.”
해서 우리는 우리끼리 안전장치를 마련한 후, 미리 준비되어 있던 의자에 앉았다.
눈앞에는 세 개의 작은 감방이 있었는데, 그중 두 개는 녹색의 화려한 벽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곧 사형수로 채워질 방들이었다.